오늘날 MBC <무한도전> 김태호 PD와 함께 이 시대 최고의 예능PD로 손꼽히는 나영석 PD의 이름 석자를 널리 알린 프로그램은 단연 KBS <해피선데이-1박2일>(이하 <1박2일>)이다.

6명 혹은 7명의 남자 연예인들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아름다운 풍경도 구경하고, 산해진미를 맛보면서 복불복 게임으로 제작진들과 출연진들간에 긴장감을 형성했던 <1박2일>은 평균 30%를 육박하는 높은 시청률로 시청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그 당시 <1박2일>이 다녀간 곳은 한동안 관광객들로 붐볐다고 하니, 그 위상이 어떨지 짐작이 갈 터.

하지만 국내 여행에만 만족할 수 없었던 나영석 PD는 2013년 CJ E&M로의 첫 이적 이후, 평균 나이 70세인 노배우들, 그들의 짐꾼 격인 불혹의 이서진이 팀을 이뤄 해외로 배낭여행을 간다는 tvN <꽃보다 할배>를 런칭한다. 프로그램 대성공 이후, <꽃보다 누나>, <꽃보다 청춘> 등 배낭여행에 참여하는 출연진들의 성별과 나이대를 바꾸어가며 연일 해외 배낭여행의 묘미를 선사했던 나영석 PD는 다시 국내에 정착하기로 결심한다.

이번에는 매주 어디론가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것이 아니라, 며칠 이상 한 장소에 머무르며 그 곳에서 아예 출연진들이 스스로 끼니를 해결해보게 하겠단다. 그것이 바로 지난해 새롭게 선보인 tvN <삼시세끼-정선 편>에 이어 올해 1월 23일 첫 선을 보인 <삼시세끼-어촌 편>이다.

차승원과 유해진, 그들의 리얼 라이프?


사람들의 발길이 그리 많지 않은 한적한 산골 마을 혹은 배를 타고 10시간 이상 들어가야 하는 외딴 섬에서 남자 연예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시간을 보내는 컨셉은 마치 나영석 PD 초기 히트작 <1박2일>을 보는 것 같다. 하지만 어디를 가던지 하룻밤만 있다가 다시 어디론가 떠나는 여행객이었던  <1박2일> 연예인들과 달리, <삼시세끼>의 출연진들은 그 곳에서 스스로 밥을 해먹고, 먹을 식량을 구하기 위해 삶의 터전으로 나서야하는 현지인에 가깝다. 또한 <삼시세끼> 출연진들이 최소 며칠 이상 묵게될 장소는 일시적으로 짐을 풀고 잠을 자는 숙소가 아니라 그들이 사는 '집' 그 자체다.

<1박2일>에서 마치 대학생들이 MT를 떠나듯이 경치 좋은 곳에 놀러온 여행객들은 도시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도 구경하면서 밤에는 원활한 식량과 잠자리를 얻기 위해 대부분 제작진들과 게임 혹은 기싸움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며칠 유유자적하게 시간을 보내다 다시 살던 곳, 혹은 다른 여행 장소로 떠나는 여행객의 차원을 넘어, 아예 그 곳에서 자기네들끼리 알아서 식량을 구하고, 음식도 알아서 해먹어야하는 <삼시세끼>의 사람들은 제작진들과 게임은커녕 수다를 떨 틈새도 없다. 밥 꼬박꼬박 챙겨먹을 시간도 빠듯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시세끼-어촌편>은 그 어떤 나영석 PD의 연출작에 비해서 그의 등장이 현격히 줄어든 상태다. 대신 알아서 식재료 잘 구해오고, 밥 잘 챙겨먹고, 고된 어부와 주부의 삶에 종종 폭발하는 차승원, 유해진의 삶 그 자체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웬만한 주부를 능가하는 차승원의 탁월한 요리, 살림 솜씨 덕에 <삼시세끼-어촌편>는 만재도에서 수 십 년을 살아온 베테랑 어머니의 리얼 라이프를 완벽히 재현한다. 여기에 차승원의 바가지, 잔소리를 모두 사람 좋은 웃음으로 훌훌 넘어버리며, 가끔 차승원과 티격태격 싸우면서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차승원의 비유를 싹싹 맞추는 아버지 유해진이 있으니, 어느새 <삼시세끼-어촌편>은 대한민국 스타배우들의 어촌체험기가 아니라,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가 사시는 모습 그 자체를 보는 것 같다.

안분지족 예능에서 얻는 묘한 위안


하지만 <삼시세끼-어촌편>은 도시와 달리 물자가 넉넉지 않은 외딴 섬마을에서 끼니 챙겨먹느라 힘겹게 하루를 보내는 차승원, 유해진의 고군분투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나영석 PD가 <1박2일> 연출하던 시절 다녀간 만재도를 다시 찾아간 것은 초보 어부 유해진도 손쉽게 생선을 잡을 정도로 해산물이 풍부한 지역이기도 하지만, 어디를 가도 탁 트인 바다를 볼 수 있는 천해의 자연환경을 가진 섬이기 때문은 아닐까. 여기에 식량 구해오고, 밥해먹느라 바쁜 와중에도 서로를 살뜰하게 챙기는 차승원, 유해진 두 남자의 오랜 우정, 보기만 해도 깨물어주고 싶은 앙증맞은 산체가 보는 이들의 눈을 더욱 흐뭇하게 한다.

만약 알아서 식량 구해와서 한 끼 식사를 해먹는 것이 <삼시세끼>가 보여주는 전부였다면, 굳이 산골짜기로, 섬 마을로까지 나갈 이유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삼시세끼>는 밥 한끼 제대로 챙겨먹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소중한 것인지를 각인시킴은 물론, 인간 중심의 각박한 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꾸미지 않은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을 택한다.

모든 음식을 복불복 게임으로 제작진에게서 얻어낸 <1박2일>과 달리, 기본적인 식자재 빼곤 스스로 식량을 구해하는 <삼시세끼-어촌편>의 차승원과 유해진은 월척을 하면 풍요로운 만찬을 즐길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감자 몇 알로 끼니를 때운다. 큰 욕심 내지 않고, 자연이 내어주는 그대로에 만족하고 순리대로 살아가는 삶. 가장의 능력에 따라 가족들의 생활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이 시대 모든 가정의 서글픈 풍경을 보는 것 같으면서도, 이상하게도 자연을 벗삼아 안분지족하는 자급자족 라이프에 묘한 위안을 얻는다.

계속 진화하는 나영석표 '예능'

지금으로부터 8년 전, 도시의 침묵에 지친 시청자들을 대신해 매주 어디론가 떠났던 나영석 PD는 이제 물 좋고 공기 좋은 산골, 어촌마을에 정착을 꽤한다. 하지만 아무리 자연이 주는 여유가 좋아 찾았다고 한들, 모든 생활과 생계를 스스로 알아서 꾸려야하는 전원 생활은 마냥 낭만적이지도 로맨틱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삼시세끼>의 출연진들은 어떻게든 알아서 끼니를 챙겨 먹어야한다는 빠듯한 하루 속에서도 간간이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과 귀여운 강아지의 애교가 주는 힘으로 귀촌 생활의 고단함을 묵묵히 버틴다. 그렇게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즐기는 여행에서, 아예 그 자연 속에서 살아가며 밥 한 끼 제대로 챙겨먹기 위해 아등바등거리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으로 이어지는 나영석 PD의 예능세계는 계속 진화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