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주의 최종 선택은 결국 '은퇴'였다.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우타 거포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김동주가 17년 간의 프로 생활을 접고 그라운드를 떠나게 됐다. 프로야구 10개 구단 보류선수 등록 마감일이었던 지난 1월 31일까지 김동주의 영입 의사를 밝힌 구단은 나오지 않았다.

어느 정도 예고된 수순이었다. 김동주는 지난해 17년 간 친정팀으로 정들었던 두산 구단을 제 발로 걸어 나왔다. 2012년부터 기량에 급격히 하락세를 보이던 김동주는 1군에서 오랫동안 출전기회를 얻지못하며 이미 마음이 떠난 상황이었다. 두산 구단 측이 김동주에게 은퇴 후 코치직을 제안했지만, 현역 연장에 대한 김동주의 의지가 워낙 강해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동주가 두산에서 방출되면서 KT와 한화 등에서 김동주 영입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특히 KT는 조범현 감독이 직접 김동주와 면담하고 영입 의사를 타진할만큼 가장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구단과의 협상 단계에서 결국 영입이 불발됐다. 양측 모두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지만 연봉 등 대우 문제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일한 희망이었던 KT행이 불발되면서 사실상 갈 곳을 잃은 김동주는 결국 은퇴 수순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대타자의 마지막 모습이라기에는 초라한 결말이 아닐수 없다. 김동주는 두산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한국야구에도 큰 족적을 남긴 선수다. 17년간 1625경기에 나서 통산 타율 3할9리, 1710안타, 273홈런, 1097타점을 기록했고, 홈구장인 잠실에서만 무려 131개의 홈런을 날리며 잠실 홈런왕으로도 명성을 떨쳤다.

국가대표에서도 4번타자로 활약하며,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2000년 시드니올림픽,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등 숱한 국제무대에서 한국야구에 영광의 순간을 이끌었다.

위대한 선수들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은퇴 시기를 놓고 고민하거나 구단 측과 갈등을 빚는 것은 스포츠에서 흔한 일이다. 양준혁(전 삼성)이나 이종범(전 KIA)같은 선수들도 그랬다. 하지만 적어도 이들은 떠나는 순간에는 친정팀에서 성대한 은퇴식을 치르며 팬들과 후배들의 배웅 속에 아름다운 마무리를 장식했다. 혹은 손민한(NC)처럼 은퇴 기로에 몰렸다가 팀을 옮겨 백의종군하면서 명예회복에 성공한 케이스도 있다. 최근 김동주에 앞서 먼저 KT에 둥지를 든 장성호 역시 비슷한 사례다.

김동주는 그 어느 쪽도 되지 못했다. 두산에서 하락세를 보이며 주전 경쟁에서 밀려날 때부터 좋지 않은 구설수에 올랐다. 팀을 대표하는 프랜차이즈스타였던 선수가 아무리 기량이 떨어졌다고 2년 넘게 2군에서 방치되다시피 한 것은 김동주가 베테랑으로서 최소한의 대우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여기에는 김동주 본인의 잘못도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결국 선수가 먼저 구단에 방출을 요청하는 볼썽사나운 모양새가 벌어졌고, 시즌이 끝난 뒤 양측은 결별 수순을 밟았다.

김동주가 두산을 떠날 때만 하더라도 동정론이 적지 않았다. 두산이 프랜차이즈스타를 홀대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적 여론이 쏟아졌다. 하지만 KT와의 협상이 결렬되면서 김동주를 바라보는 여론의 시선도 순식간에 싸늘하게 돌아섰다. 친정팀의 코치직 제안도 거절할만큼 현역 생활에 강한 애착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였기에, 정작 KT와의 협상 과정에서 드러난 소극적인 모습은 김동주의 진정성에 의문부호를 남기게 했다.

김동주가 KT와의 협상에 실패한 이유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김동주가 연봉 등에서 욕심을 부려서 협상이 결렬됐다는 소문도 있었다. 혹은 2년 이상의 안정적인 장기계약 측을 요청했으나 KT 측이 난색을 표시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김동주에게 무엇보다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다른 조건보다 결국 '야구를 할 수 있는 기회' 그 자체였다. 연봉이나 계약기간이 어찌됐든 그라운드에서 최선을 다하고 실력으로 보여주는 것만이 자신의 명예를 지킬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 정도 핸디캡도 극복할 각오가 없다면 아예 두산에서 깨끗하게 은퇴하는 게 나았다.

냉정히 말해 2년이 넘는 1군 공백기에 불혹을 바라보는 노장에게 그런 최소한의 기회조차 주어지는 경우가 흔치 않은 게 야구판이다. 현실적으로 김동주가 과연 얼마나 야구 자체에 대한 절박함이 있었는지 아쉬움이 드는 이유다.

많은 스포츠 스타들이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한다. 유독 한국스포츠에서 자존심이라는 단어가 남발되는 경향도 있다. 그런데 자존심은 몸값이나 과거의 명성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아시아 역대 최고의 메이저리거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스즈키 이치로(마이이매)는 한창 때 최고 연봉 1800만 달러까지 받았지만, 올해 200만 달러의 연봉에 젊은 선수들의 백업멤버라는 조건을 감수하며 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에 마이애미와 말린스와 '고작' 1년 계약을 맺었다. 일부에서는 굴욕이라는 표현까지 쓸 정도였다. 그러나 이치로에게는 대망의 메이저리그 3000안타 도전이라는 자신만의 확고한 목표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조건은 신경쓰지 않았다. 선수의 진정한 자존심이란 이럴 때 해당되는 것이다.

김동주는 은퇴 과정에서 자존심도 실리도 모두 잃었다. 새로운 도전은 끝내 시작도 못해보고 결국 두산에서 깔끔하게 은퇴하느니만 못한 결과가 되고 말았다. 김동주는 2013년을 끝으로 더 이상 1군 경기 출전 기록이 없다. 두산 팬들에게는 김동주와의 이별을 받아들일만한 어떠한 준비도 돼 있지 않았다. 베어스 유니폼을 입고 누구보다 오랜 세월 많은 기쁨을 줬던 '두목 곰'의 은퇴치고는 무척 초라한 결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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