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골망 가르는 이정협의 골 17일 호주 브리즈번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5 AFC 아시안컵 조별리그 A조 3차전 한국 대 호주 경기. 전반 이정협이 찬 공이 호주 골문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다. 한국이 1-0으로 승리해 조1위로 8강에 진출했다.

▲ 호주 골망 가르는 이정협의 골 지난 17일 호주 브리즈번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5 AFC 아시안컵 조별리그 A조 3차전 한국 대 호주 경기. 전반 이정협이 찬 공이 호주 골문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다. 한국이 1-0으로 승리해 조1위로 8강에 진출했다. ⓒ 연합뉴스


드디어 한국축구의 55년 해묵은 한을 풀 '결전의 날'이 밝았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축구대표팀은 31일(한국시각) 호주 시드니의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열리는 2015 AFC(아시아축구연맹) 아시안컵 결승에서 개최국 호주와 격돌한다.

지난 1960년 이후 반세기가 넘도록 아시안컵 우승과 인연이 없었던 한국은 27년 만에 찾아온 결승전에서 반드시 우승을 해야 할 명분이 있다. 하지만 결승전 승리 여부와는 상관없이 단 4개월 만에 한국 축구를 다시 아시아의 호랑이로 부활시킨 슈틸리케 감독의 지도력은 분명 인정받아야 한다.

슈틸리케 감독과 한국 대표팀의 만남

지난 2013년 6월 '봉동이장' 최강희 감독(전북 현대)은 한국의 월드컵 8회 연속 진출이라는 '미션'을 성공하고 다시 소속팀으로 돌아갔다. 월드컵을 1년도 채 남겨두지 않고 대한축구협회는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대표팀을 이끌고 월드컵에 출전한다는 것이 감독으로서 얼마나 커다란 명예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한국의 축구팬들은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과 2010년 남아공월드컵 16강으로 대표팀, 그리고 월드컵에 대한 기대치가 한껏 높아진 상태. 자칫 만족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감독의 커리어에 치명타를 입을 수 있었다.

결국 대한축구협회가 꺼낸 카드는 '한국 축구의 자존심' 홍명보 감독이었다. 2002 월드컵 4강 신화 당시 주장을 역임했고 감독으로서도 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을 이끌었던 홍명보 감독이야말로 위기의 한국축구를 구원할 유일한 대안이었다.

하지만 홍명보 감독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 짧았고 한국 축구의 자랑이었던 홍명보 감독도 이 부담을 떨쳐 내지 못했다. 홍명보 감독은 부임 당시 '소속팀에서 뛰지 못하는 선수는 쓰지 않겠다'는 원칙을 깨고 아스날에서 벤치 신세를 지는 박주영(알 샤밥)을 선발하는 등 소위 '엔트으리' 논란에 휘말렸다.

결과는 처참했다. 월드컵 출정식이었던 튀니지전 0-1 패, 마이애미 전지훈련에서 열렸던 가나와의 평가전에서는 0-4로 참패를 당한 홍명보호는 2014 브라질 월드컵 본선에서 1무 2패라는 부진한 성적으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대한축구협회는 홍명보 감독과의 '으리(?)'를 과시하며 홍 감독의 유임을 결정했지만 월드컵에서의 부진과 토지 구입 문제 등으로 비판이 끊이질 않았고 결국 홍명보 감독은 지난해 7월 10일 기자회견을 통해 자진 사퇴했다. 그렇게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감독직은 다시 공석이 됐다.

차기 감독의 선임을 두고도 많은 논란이 있었다. 차기 감독 후보로 베르트 판 마바이크(네덜란드), 치로 페라라(이탈리아) 같은 세계적인 명장들의 이름이 하마평에 오르내렸다. 하지만 결론은 상대적으로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독일의 울리 슈틸리케였다.

선입견 버린 안목으로 한국 축구 부활시킨 '콧수염 아저씨'

슈틸리케 감독은 현역 시절 뮌헨 글라드바흐와 레알 마드리드에서 활약하며 서독의 1980년 유로 대회 우승과 1982년 스페인월드컵 준우승을 이끌었던 세계적인 수비수 출신이다. 하지만 지도자로서의 커리어는 선수시절 만큼 화려하지 못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한국으로 오기 전 카타르에서 6년 동안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팀을 정상으로 이끌지 못했다. 심지어 카타르 도하의 알 사일리야 팀 감독이던 2010-2011 시즌에는 팀이 2부리그로 강등되기도 했다. 분명한 사실은 슈틸리케 감독이 거스 히딩크 감독(네덜란드) 이후 높아진 축구팬들의 안목을 충족시켜 줄 인물은 결코 아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대표팀 감독 부임 후 한국으로 이사를 오고 한국 대표팀을 지도자 생활의 마지막으로 삼고 싶다고 밝히는 등 남다른 열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한국 대표팀을 빅클럽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 정도로 여기는 일부 해외 지도자들과는 분명 다른 행보였다.

 지난 10일 호주 캔버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5 AFC 호주 아시안컵 A조 조별리그 1차전 한국 대 오만 경기. 슈틸리케 감독이 그라운드로 입장하는 선수들을 바라보고 있다.

지난 10일 호주 캔버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5 AFC 호주 아시안컵 A조 조별리그 1차전 한국 대 오만 경기. 슈틸리케 감독이 그라운드로 입장하는 선수들을 바라보고 있다. ⓒ 연합뉴스


슈틸리케 감독은 그 어떤 '선입견'도 없이 선수들을 꼼꼼하게 관찰하며 인재를 찾았고 자신의 안목으로 고른 선수를 과감하게 대표팀에 발탁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대표팀에 선발된 적이 없다가 슈틸리케 감독이 직접 발굴해 이번 아시안컵에서 대표팀 부동의 원톱자원으로 성장한 이정협(상주 상무)이 대표적인 예다.

사실 부임한 지 4개월 밖에 되지 않은 슈틸리케 감독에게 아시안컵 성과를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아시안컵의 중요성을 한국의 축구인들보다 더 잘 알고 있었고 특유의 '늪축구'를 통해 무실점으로 한국을 결승까지 이끌었다. 그러면서도 슈틸리케 감독은 우승을 하더라도 한국 축구는 더 발전해야 한다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에 모인 8만 5000여 명의 관중들에게 태극전사들은 분명 '적'이다. 아시아축구연맹 편입 후 첫 우승을 노리는 호주의 의지도 만만치 않다. 어쩌면 한국은 이 기세에 눌려 실망스러운 결과를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결승전의 결과와 상관없이 한국 축구에게 27년 만에 아시안컵 결승이라는 큰 무대를 경험하게 해준 슈틸리케 감독의 지도력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렇다고 해서 결승전을 안일한 자세로 나서도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90분이 될지 120분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태극전사들은 남은 1경기에서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쏟아야 한다.

부디 한국 축구가 이번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왼발로든, 오른발로든, 이마로든, 정수리로든, 뒤통수로든, 무릎으로든, 가슴으로든, 햄스트링으로든, 아킬레스건으로든, 무조건 골을 넣고 승리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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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컵 결승 울리 슈틸리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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