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아시안컵 축구 결승전이 몇 시간 앞으로 다가왔다. 축구가 아무리 상대적인 스포츠라 해도 득점 분포도를 면밀히 살피면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는 길이 보인다. 개최국 호주가 한국보다 다섯 골이나 더 많은 득점을 기록했기에 분석할 데이터가 상대적으로 많다. 흥미로운 지점이다.

호주의 선 굵은 축구 들여다보자

공교롭게도 같은 A그룹에 묶여 오로지 같은 목표를 두고 달려온 두 팀이다. 쿠웨이트와 만난 대회 개막전(1월 9일, 멜버른)에서 4-1로 시원한 역전승을 거둔 호주는 아랍에미리트를 2-0으로 물리친 준결승전까지 모두 5경기를 치르며 12득점 2실점을 기록했다.

먼저 12골의 득점 분포를 시간대별로 분석하면 그 폭이 넓다는 것이 보인다. 경기 시작 후 3분도 지나지 않아서 준결승전 승부를 일찌감치 끝내버린 수비수 세인즈버리의 코너킥 세트 피스 득점부터 큰 점수로 실력 차이를 확인시키는 후반전 추가 시간(90+2분) 트로이시의 왼발 벼락골까지 12골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호주의 득점 분포도

호주의 득점 분포도 ⓒ 심재철


그런데 호주의 득점이 집중된 시간대가 눈에 띈다. 바로 전반전 중반 이후의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27분부터 전반전 추가 시간인 45+3분에 이르기까지 무려 다섯 골(42%)이 이 시간대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한국 수비수들이 기억해야 할 것이다. 직접 부딪치며 상대를 어느 정도 파악한 바로 그 시간부터 호주의 공격이 본격적으로 불을 뿜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각각 전반전과 후반전의 1/2 지점이 지난 시점부터 집중적으로 골이 만들어지는 시간대가 보인다. '27분-30분-33분' 그리고 '62분-65분-70분'에 나란히 3골씩 몰려있는 것이다.

또한 축구 경기에서 가장 집중력이 필요하다는 바로 그 시간인 시작 후 5분까지와 끝나기 전 5분 무렵에도 호주의 득점 행진은 계속되었다. 3분(DF 세인즈버리 헤더, vs 아랍에미리트), 44분(MF 마시모 루옹고 헤더, vs 쿠웨이트), 45+3분(MF 밀리건 PK, vs 오만), 49분(FW 케이힐 오버헤드킥, vs 중국), 90+2분(MF 트로이시 왼발, vs 쿠웨이트)의 다섯 골이 상대 선수들의 흐트러진 정신을 파고들었다.

골이 터진 마지막 볼 터치(슛) 지점을 표시한 위 그림만 들여다봐도 호주의 핵심 선수들이 골 라인으로부터 11미터 지점에 찍어놓은 페널티 마크를 중심에 두고 자리 싸움을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만과의 A조 두 번째 경기에서 로비 크루즈가 루옹고의 로빙 패스를 받아서 공을 몰고 들어온 것을 제외하고 바로 그 지점에서 머리로 세 골(케이힐, 루옹고, 세인즈버리)을 만들어냈다. 이는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한국 수비수들에게 주문한 지역 방어 시스템과 절묘하게 부딪치는 지점이다. 곽태휘와 김영권이 어떻게 역할을 분담하느냐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이제 호주의 선 굵은 득점 유형을 들여다보자. 미드필드 지역까지 빌드 업 하는 과정은 오밀조밀한 패스 플레이를 추구하지만 그 다음 결정타를 날리는 순간은 비교적 선이 굵다. 코너킥 세트 피스로 만든 두 골(맥케이, vs 오만 / 세인즈버리, vs 아랍에미리트)부터 전담 키커라 할 수 있는 마시모 루옹고의 시원한 오른발 킥이 올라왔다.

그리고 시원한 측면 크로스로 인상적인 세 골을 터뜨렸다. 그 중 두 개는 풀백들(오른쪽 프라니치, 왼쪽 데이비슨)이 포물선을 그리며 올려준 공이었고, 오만과의 경기에서 나온 유리치의 쐐기골은 날개 공격수 매튜 레키의 기막힌 오른발 아웃사이드 역습 크로스였다.

결정적인 순간에 빛난 한국 선수들의 섬세함

조별리그 세 경기를 끝낼 때까지 모두 1-0 경기를 펼치며 신기한 승리 공식을 만든 한국 선수들은 8강-4강을 거치며 이른바 '늪 축구'의 실체를 확인시켜주고 있다. 단순히 실점 없이 경기를 이긴다는 것보다 꼭 필요한 한방을 터뜨렸다는 것이 핵심이다. 늪은 밖에서 보기에는 그 실체를 모른다. 빠진 이후 좀처럼 헤어나오기 힘든 그 깊이를 절감하는 것이다.

 한국의 득점 분포도

한국의 득점 분포도 ⓒ 심재철


한국 선수들이 터뜨린 꼭 필요한 한방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우선 주요 득점 시간대를 살펴보면 당연히 전반전이 주목된다. 조별리그 세 경기 모두 전반전에 더도 덜도 말고 한방씩을 터뜨렸다. 7득점 중에서 전반전에 나온 골이 네 개(57%)였으니 꼼꼼하게 실속을 먼저 챙겼다는 뜻이기도 하다.

상대 팀 입장에서 보면 하프 타임 휘슬 소리를 듣고 걸어나가며 1-0이라는 점수판이 우습게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후반전에 뒤집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된 것이다.

한국의 득점 분포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역습으로 만든 섬세함이 돋보인다. 득점 없이 전반전을 끝냈을 경우 조급한 마음으로 후반전을 대응할 수밖에 없었던 오만과의 첫 경기부터 그랬다.

전반전 추가 시간이 표시될 무렵 이청용의 발끝에서 시작된 역습 패스가 구자철에게 이어졌고 그는 회심의 오른발 중거리슛으로 오만 골문을 노렸다. 상대 문지기 알 합시의 빼어난 순발력을 잘 알고 있었지만 타이밍을 놓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조영철의 집중력이 빛났다. 중심을 잃었지만 마지막 볼 터치를 섬세하게 할 수 있었기에 그 귀중한 결승골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더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맏형 차두리의 측면 드리블은 속도와 방향 선택이라는 역습의 조건을 완벽하게 입증해주었다. 마치 야구 경기에서 루와 루 사이에 갇힌 주자를 야수들이 잡아낼 때 섣부른 토스보다 한쪽으로 몰고가는 것이 필요한 것처럼 차두리는 상대 수비수들이 보인 약점을 철저하게 흔들어놓은 다음 완벽한 패스로 남태희(vs 쿠웨이트, 헤더 골)와 손흥민(vs 우즈베키스탄, 왼발 골)을 더 빛낸 것이다.

역습 과정에서 이처럼 상대 수비 라인의 빈 곳을 노릴 줄 모르면 아무리 속도가 뛰어나다고 해도 그 뜻을 이루지 못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섬세한 판단과 동작을 실행하지 못하면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서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 선수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A조 조별리그 호주와의 맞대결에서도 입증되었다. 왼쪽 측면부터 호주 골문 바로 앞에 이르기까지 '김진수-기성용-이근호-이정협'으로 이어진 패스의 줄기는 한방의 가치를 충분히 말해주었다.

그 과정에서 호주가 자랑하는 오른쪽 측면의 'DF 프라니치, MF 마시모 루옹고' 단짝은 축구 경기에서 가끔 볼 수 있는 '1+1=0'의 기막힌 공식을 확인시켜 주었다. 기성용이 이근호를 바라보고 찔러주는 순간에 그들 둘은 한꺼번에 바보가 된 것이었다.

예비역 이근호와 후임 현역병 이정협이 만들어낸 그 결승골 순간도 섬세함의 극치다. 패스의 방향과 속도 그리고 달려들어가는 타이밍이 조금이라도 어긋났다면 꿈도 꾸지 못할 순간이었던 것이다. 호주가 이번 대회에서 실점한 두 골이 바로 그 지점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세인즈버리, 스피라노비치 센터 백의 커버 플레이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지점이다.

이런 면에서도 한국과 호주의 결승전은 서로 잘 알고 있기에 측면의 충돌 지점에서 얼마나 섬세한 기술과 조직력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에 달렸다고 말할 수 있다. 4-3-3 포메이션을 구사하는 호주는 비슷한 형태의 FC 바르셀로나처럼 오므렸다 펼치는 공격 전개 양상을 보인다. 활짝 펼친 뒤의 그 측면 공간이 바로 취약 지역이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주문하는 한국의 4-2-3-1 포메이션은 가운데 미드필더 '기성용-박주호'를 중심으로 공간 배분에 중점을 둔다. 호주가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오른쪽 측면의 '프라니치-마시모 루옹고-로비 크루즈'를 상대로 한국의 '김진수-손흥민' 라인이 얼마나 날카로운 역습의 줄기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이들을 도와 침착하게 패스를 뿌려주고 있는 특급 미드필더 기성용이 건재하기에 가장 흥미로운 장면들이 만들어질 것이다. 1월의 마지막 날 밤 시드니가 뜨겁게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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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한국과 호주의 득점 기록 모음

★ 한국 득점 상황
vs 오만(1-0 승리)
45+1 조영철(구자철 오른발 중거리 슛-골키퍼 쳐낸 공 조영철 오른발 발리슛)

vs 쿠웨이트(1-0 승리)
36분 남태희(차두리 오른쪽 측면 크로스- 남태희 헤더)

vs 호주(1-0 승리)
32분 이정협(기성용 패스-이근호 밀어주기-이정협 미끄러지며 발끝으로 방향 바꾸는 슛)

vs 우즈베키스탄(2-0 승리)
104분 손흥민(김진수 가로채기 후 낮은 왼발 크로스-손흥민 낮은 자세로 헤더), 119분 손흥민(차두리 오른쪽 대각선 패스-손흥민 왼발 슛)

vs 이라크(2-0 승리)
20분 이정협(김진수 오른쪽 측면 프리킥 왼발 크로스-이정협 헤더), 50분 김영권(이정협 가슴으로 떨어뜨린 공-김영권 왼발 돌려차기)

★ 호주 득점 상황
vs 쿠웨이트(4-1 역전승)
33분 케이힐(루옹고 대각선 패스-케이힐 오른발 돌려차기), 44분 루옹고(프라니치 오른쪽 크로스-루옹고 헤더), 62분 예디낙(PK-오른발 인사이드 킥 오른쪽 구석 낮은 곳), 90+2분 트로이시(매튜 레키 맞고 흐른 공-각도 없는 곳 트로이시 왼발 돌려차기)

vs 오만(4-0 승리)
27분 맥케이(루옹고 왼쪽 코너킥-세인즈버리 헤더-골문 바로 앞 맥케이 오른발 돌려차기), 30분 크루즈(루옹고 로빙 패스-크루즈 드리블 후 오른발 정면 슛), 45+3분 밀리건(PK-오른발 인사이드킥 왼쪽 구석 중간 높이), 70분 유리치(매튜 레키 왼쪽 측면 오른발 크로스-유리치 발리슛)

vs 중국(2-0 승리)
49분 케이힐(프라니치 헤더 로빙 볼-케이힐 오버헤드킥), 65분 케이힐(데이비슨 왼쪽 크로스-케이힐 헤더)

vs 아랍에미리트(2-0 승리)
3분 세인즈버리(루옹고 오른쪽 코너 킥-세인즈버리 헤더), 14분 데이비슨(루옹고 밀어주기-데이비슨 왼발 인사이드 킥)
축구 아시안컵 한국 호주 손흥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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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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