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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손자 서준이가 자기보다 위인 이웃집 누나의 어깨를 다독입니다. 아니 작업 중인지도 모릅니다. 이즘되면 작품이라 할 수 있을까요?
 제 손자 서준이가 자기보다 위인 이웃집 누나의 어깨를 다독입니다. 아니 작업 중인지도 모릅니다. 이즘되면 작품이라 할 수 있을까요?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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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에게 안기려는 서준이 녀석을 안지는 않고 사진만 한 컷 찍고 있습니다.
 아빠에게 안기려는 서준이 녀석을 안지는 않고 사진만 한 컷 찍고 있습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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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을 떠나며 디지털 카메라 한 대를 샀지만, 여행 후에는 카메라와 딸린 부속물들을 고스란히 '선물'이라며 제게 전해 주었답니다. 제 딸내미가요. 좀 값이 나가는 디지털 카메라보다는 휴대폰으로 셀카를 즐겼던 천진난만한 아가씨였죠. 제 딸내미는.

평소 그리 사진에 관심을 두지 않았었지요. 엄마가 되기 전의 제 딸내미는 그런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아들 서준이를 낳고는 딸내미의 사진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습니다. 자신이 모델일 때와 자신이 낳은 아들이 모델이 되었을 때의 사진에 대한 열정이 천지차이라고나 할까요. 한마디로 정신없이 찍어댑니다.

딸내미는 '표정을 찍은 엄마 사진작가'

겉옷이 너무 큽니다. 추운데 여며줄 생각은 않고 사진을 찍었군요.
 겉옷이 너무 큽니다. 추운데 여며줄 생각은 않고 사진을 찍었군요.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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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찍은 사진은 고스란히 카카오스토리나 자신의 블로그에 전시됩니다. 모든 사진은 N드라이브에 저장되는 건 물론이고요. 이젠 나도 손자녀석이 보고 싶을 땐 그의 사진이 전시된 공간을 드나드는 게 일상이 되었답니다.

'스토리를 입히는 사진작가', '사진에 역사를 입히는 작가', '표정을 찍는 엄마 사진작가', 뭐 그 무엇이든지 괜찮습니다. 제 딸내미는 이제 엄마 사진작가 반열에 오른 게 분명하니까요. 하루에도 수십 통의 사진을 찍습니다. 다작으로 치면 그 어떤 사진작가도 따라 올 수 없을지 모릅니다.

서준이가 똥을 싸 뭉개도 딸내미의 카메라는 발동합니다. 예방주사를 맞아 열이 올라 벌게진 팔뚝에도 카메라를 들이댑니다. 아이는 울고 보채며 난리법석인데도 딸내미의 카메라 셔터는 작렬합니다. 어떤 때는 발악하는 아이 사진이 딸내미의 작가적 결과물로 등장한 걸 보며, '이 짓이 엄마가 할 짓인가' 생각할 때도 있답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그렇게까지 하니까 이 손자바보 꽃할배가 멀리 있어도 서준이의 자라는 모든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한편으로는 사진 찍기에 광분하는 딸내미가 고맙답니다. 낡은 사진첩을 들춰봐도 어렸을 때 사진을 눈을 씻고 찾아도 찾을 수 없는 이 할배로선 그런 엄마를 둔 손자 녀석이 부럽기까지 합니다.

사진은 프랑스에서 1839년 8월 19일, L.J.M. 다게르(1787∼1851)의 은판사진(Daguerreotype)이 공식 발명품으로 인정받으며 등장했지요. '가시광선, 자외선, 적외선, ○선, 전자선 등의 작용에 의해서 감광면 위에 직접 또는 간접으로 물체의 반영구적인 영상을 양화 또는 음화의 상으로 만들어 내는 기술'이라고 사전은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 놀라운 발명품이 제 손자 녀석의 역사를 기록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다게르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다게르를 몰라도 손자는 사진 속에서 무럭무럭 자랍니다. 그 엄마는 오늘도 아들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 열심히 셔터를 누릅니다. 그러나 우는 아이 버려두고 사진을 찍는 게 아닌지 걱정됩니다. 갑자기 사진작가 케빈 카터가 떠오릅니다.

퓰리처상 수상작가 케빈 카터의 <독수리와 소녀>

예방주사 자국이 붉은 게 선명한데 엄마는 기록에 남기려는 사명에 아이의 아픔을 사진으로 찍었군요.
 예방주사 자국이 붉은 게 선명한데 엄마는 기록에 남기려는 사명에 아이의 아픔을 사진으로 찍었군요.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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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는 울어 제키는데 엄마는 역사적 사명을 띄고 사진으로 기록했습니다.
 서준이는 울어 제키는데 엄마는 역사적 사명을 띄고 사진으로 기록했습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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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카터(Kevin Carter, 1960~1994)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태생 포토저널리스트입니다. 전쟁터와 기아의 현장으로 달려가 사진을 찍어 보도함으로 아프리카의 기아상황을 알리는 데 큰 공을 세운 사진작가이지요. 그가 수단의 아요드의 식량 센터로 가는 도중에 한 독수리와 독수리 앞에 기진맥진하여 쓰러져 죽어가는 소녀를 발견했습니다.

당연히 그 장면이 그의 카메라에 담겼고, 그 사진을 본 세계는 기아현장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상황을 대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그의 작품 <독수리와 소녀(수단의 굶주린 소녀)>는 1993년 그에게 특집사진 부문 퓰리처상 수상이라는 영예를 안겼습니다.

사바나로 변한 덤불 사막에서 뼈만 앙상하게 남은 어린아이가 기도하는 듯한 자세로 웅크리고 있고, 그 곁에 깃을 접고 아이가 죽기만을 기다리는 듯한 독수리가 앉아 있는 사진입니다. 그런데 그 사진을 본 세계는 금방 돌변했습니다. 사람들은 케빈 카터에게 그때 사진을 찍을 게 아니고 그 아이를 구해내야 했다고 비난했습니다.

"그 사진이 요행으로 찍힌 것이거나 카터가 어느 정도 연출한 장면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더욱 카터를 괴롭힌 것은 아이를 돕지 않고 사진 찍는 일에 더 신경을 쓴 사진가는 그 현장에 있는 다른 독수리에 불과하다며 카터의 도덕성에 의문을 던지는 사람들이었다."(<퓰리처상 사진> 헬 부엘, 209쪽)

안타깝게도 케빈 카터는 비난을 이기지 못하고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유서를 남기고 자살로 젊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러나 알려진 바에 의하면, 케빈 카터는 사진을 찍은 후 소녀를 구출했다고 합니다. 다만 그런 현장을 자주 접하다 보니 정신적인 고통이 있었고, 그때마다 약물을 의지했습니다. 결국, 죽음으로 위대한 포토저널리스트의 삶은 사그라진 것이지요.

케빈 카터와 동료들 이야기는 <뱅뱅클럽>(스티븐 실버 감독, 2010)이란 영화로 나와 2012년 2월 우리나라에서도 개봉되었습니다. 남아프리카 아파르트헤이트 정권(만델라의 투쟁 시절) 때 4명의 사진작가가 만나 분쟁과 아프리카의 기아를 사진으로 담으며 우정으로 소통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들의 고뇌와 아픔이 고스란히 작품에 서려있지요.

딸내미가 퓰리처상은 욕심내지 않기를

딸내미가 하도 손자 녀석을 찍어대다 보니 이야기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뱅뱅클럽>에 등장하는 사진작가들이 상을 받으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케빈 카터 역시 자신의 사진 한 장이 그렇게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될지 꿈에도 몰랐을 겁니다. 하여튼 그들의 열정이 있었기에 퓰리처상에 빛나는 <독수리와 소녀>가 탄생한 것만은 진실입니다.

조금은 억지일지 모르지만 딸내미가 우는 손자 녀석을 달래지 않고 사진부터 찍는 게 아닌가 하는 꽃할배의 노파심이 이상한 방향으로 글을 끌고 왔네요. 하여간 누가 뭐라고 해도 딸내미의 사진 기록은 여전할 것 같으니 한편으로 안심입니다. 그래야 제가 손자 녀석의 자라는 모습을 가보지 않아도 알 게 아닙니까.

열심히 셔터를 누르되 딸내미가 퓰리처상은 욕심내지 않았으면 하는 게 제 바람입니다. 그가 찍은 사진의 파급력 때문에 맹비난을 받았던 케빈 카터, 그가 퓰리처상을 욕심내진 않았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딸내미가 퓰리처상을 욕심낼 리가 없지요. 하지만 생생한 손자 서준이의 역사를 오롯이 사진에 담아내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오늘도 손자 녀석 사진을 보며 이 할배는 행복하답니다.

관련기사 : '엎드려뻗쳐'하는 손자, 벌 주는 거 아닙니다


태그:#손자 바보 꽃할배 일기, #서준, #육아일기, #딸내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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