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31일 취임한 김세훈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지난 12월 31일 취임한 김세훈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 영화진흥위원회


군사독재시절의 잔재인 검열의 시대가 다시 부활하는 것일까? 지난 12월 31일 임명된 김세훈 위원장의 6기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출범 초기부터 검열을 부활시킨다는 지적을 받으며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영화계가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표현과 상영의 자유 제약과 관련된 사안이라 반발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모습이다. 2010년 영화계가 정권 차원의 탄압 속에 극심한 갈등을 빚었던 상황이 재현되는 분위기가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뒤숭숭하다. 영화인들은 김세훈 위원장의 영진위가 소통 없이 일방적 행보를 보일 경우 강력히 저항하겠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

영화제 상영작 등급분류면제추천 개정..."사실상 통제"

영진위는 2월 초 국제영화제 상영작에 대한 등급분류면제추천 규정을 개편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등급분류면제추천은 영화제에 출품되는 영화의 등급 심의를 자동 면제해 주는 것으로, 영화제 프로그램의 독립성을 보장해 주는 방편이다.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됐던 <다이빙벨>이나 2013년 전주영화제에서 상영됐던 <천안함 프로젝트> 등은 영화제 상영작으로 선정되면서 자동으로 등급분류가 면제됐었다. 그러나 개편될 경우 영진위의 심사를 거쳐야하고, 만일 등급분류면제추천을 받지 못할 경우 영화제를 통한 상영이 어려워진다.

 부산영화제와 전주영화제에서 각각 공개돼 파란을 일으켰던 <다이빙벨>과 <천안함프로젝트>

부산영화제와 전주영화제에서 각각 공개돼 파란을 일으켰던 <다이빙벨>과 <천안함프로젝트> ⓒ 시네마달. 아우라픽쳐스


이 때문에 이번 등급분류면제추천 규정 개정이 영진위가 민감한 영화들을 걸러내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사실상 영화제 출품작을 모두 들여다보겠다는 이 규정이 적용될 경우, 영진위가 민감한 영화들을 걸러내는 데 악용될 소지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국내 영화제의 한 관계자는 "사실상 영화제를 통제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라며 문화 발전을 통한 국가 이익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정권 위해가 되는 대상은 어떻게든 제재하겠다는 반문화적 인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올해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국내 영화제의 관계자는 "영화제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으로, 표현의 자유에 대한 도전이다"라며 "이런 분위기에서 영화제를 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 자칫 개최를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만큼 심각한 상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하지만 영진위 쪽은 '제도 개선'일 뿐이란 입장이다. 영진위 관계자는 "등급분류면제추천은 9인 위원회가 직접 챙기겠다고 해서 개선하는 것으로, 면제추천을 안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고 해명하고, "검열이라는 시각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등급분류면제가 된다고 해도 일단 작품들을 살펴보고 자동면제추천을 했다. 무조건 하지는 않았다. 과정에서 담당 부서가 하던 일을 다른 사람들이 하게 될 뿐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영화제들은 영화제 운영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는 규정으로 인식하고 있다. 실제로 국내 영화제 집행위원장들은 내달 2일 단체로 영진위를 방문해 입장을 설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영화제의 한 집행위원장은 "국내 영화제들이 항의방문을 하러 가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지정한 영화 상영해야 지원금..."상영관 통제 의도"

예술영화전용관 지원사업 역시 극장의 프로그램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일면서 또 다른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전용관 지원사업은 상업영화에 밀린 예술독립영화들의 상영 기회가 보장되도록 이를 상영하는 극장을 지원하는 제도가 원래 취지였다. 그러나 지난해 오랜 기간 독립예술영화를 상영했던 지방 극장들을 지원 대상에서 탈락시키고 대기업 멀티플렉스 상영관을 선정해 잡음이 일었다.

올해 영진위는 전용관 지원사업을 다양성영화 개봉지원사업과 연계해 영진위가 심사를 통해 인정한 영화를 상영해야 지원금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으로 개정안을 마련했다. 영진위의 개선안은 26편의 영화를 선정한 뒤 예술영화관들이 정해진 요일에 이들 작품을 상영할 경우 30개 극장에 지원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공모를 통해 위탁단체를 선정한 후, 배급사가 상영관을 확보하면 홍보 마케팅비 등을 지원한다.

영진위 측은 기존의 예술영화관 지원사업이 큰 변화 없이 극장 지원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어 대기업 멀티플렉스와의 경쟁구도에서 상대적으로 열세를 보이고 있고, 관람객 감소와 IPTV 등을 통한 유통 상영시장 변화 등을 개선 이유로 들고 있다. 또 예술영화 인정 편수가 늘어나면서 상영 기회 등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부분 등을 기존 사업의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따라서 "좌석 대비 지원금을 주는 방식을 폐지하고 예술영화 상영에 좀 더 방점을 찍는 지원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영진위는 이를 통해 예술영화 상영 스크린 확대와 관객의 예술영화 최소 관람 기회 확보, 예전보다 예술영화관 지원 규모가 확대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강남의 예술영화전용관 아트나인

서울 강남의 예술영화전용관 아트나인 ⓒ 아트나인


하지만 예술영화관 운영자들이 개악이라는 평가를 내놓으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극장의 프로그램을 간섭해 민감한 사회비판 영화들을 배제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원금을 활용해 영화관들의 독립성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지난 23일 오후 서울 충무로에서 유통배급 지원사업 간담회가 비공개로 열려 영진위가 이에 대한 설명을 하고 독립예술전용관 운영자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예술영화관 관계자들은 검열과 다름없는 상영 자유에 대한 침해라며 의견 수렴을 다시 할 것을 요구했다. 사실상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이다.

예술영화관 관계자들은 <다이빙벨>처럼 사회적으로 예민한 작품들의 상영을 막기 위한 조처라고 반박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개선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상영해야 할 작품을 검열을 통해 정해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또 "예술영화 인정 편수를 줄이는 것은 민감한 작품들을 배제시키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비판했다.  

서울지역의 예술영화관 대표는 "독립예술영화 흥행작들은 주로 사회 비판적 소재들이 많은데 지금 분위기에서 이런 소재의 영화들이 예술영화 인정을 받기 쉽지 않다"며 "영진위가 프로그램 편성권을 침해해 극장을 통제하려는 시도로 이해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 예술영화관 관계자는 "수도권과 지방의 특성이 구분되지 않았고, 상영관의 프로그램에 간섭하겠다는 뜻"이라며 "영화 선정을 간섭하고 자율성을 해치는 지원사업에 대한 거부도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유신시대로의 귀환?..."시나리오에 따라 진행되는 양상"

김세훈 영진위원장의 취임과 동시에 영진위가 통제기관으로 돌변한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해 독립영화진영은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있다. 특히 2010년 이명박 정권 시절 영화계 혼란에 일정하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뉴라이트 단체 문화미래포럼 사무국장을 역임한 김종국 교수를 영진위원에 임명된 것도 이런 수순을 목적으로 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영진위 관계자는 "우리로서 영화계와 대립하고 싶겠냐. 하지만 우리부터 살고 봐야 하는 것 아니냐"며 "일하는 사람들도 맘이 편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최근 주무부처를 통하지 않고 윗선에서 전화가 온다는 소문에 대해 "틀린 말은 아니다. 맞다"고 확인했다.

 부산 영화진흥위원회

부산 영화진흥위원회 ⓒ 영화진흥위원회


보수 진영의 영화계 인사는 "정부 여당 내에서 강경파가 주도하다보니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판단을 못하는 것 같아 답답하다. 이 정부가 성공해야 하는데 지지율 하락을 개의치 않겠다는 자세다"라며 "2010년 영화계 혼란을 봤으면서도 같은 흐름이 나타나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국내 영상위원회 쪽 관계자는 "누가 저런 식의 검열 발상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며 "문화나 영화가 국가적 위상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정권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저런 식으로 시대에 역행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은 근시안적으로 문제가 많다. 유신시대로의 귀환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한 제작사 대표는 "부산시장이 <다이빙벨> 상영을 이유로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에게 사퇴를 권고해 파문을 일으킨 것과 최근 영진위의 태도를 보면 어떤 시나리오에 따라 진행되는 양상"이라며 "어떤 계획에 따라 영화계에 대한 정권의 탄압이 시작되는 것 같다"고 경계감을 나타냈다.

영진위 다이빙벨 영화제 김세훈 영화진흥위원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