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이 55년 만의 아시안컵 정상 도전에 근접하면서 개인 타이틀인 대회 MVP와 득점왕 배출 가능성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MVP는 대회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출전한 경기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판단되는 선수에게 주어진다. 당연히 소속팀의 성적이 뛰어난 선수가 유리하다. 반드시 MVP가 우승국에서만 배출되는 것은 아니지만, 전례를 살펴봐도 우승팀이 가장 확률이 높고 최소한 준우승팀에서 나온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미 결승전에 오른 한국이 결승전에서 호주를 꺾고 우승까지 차지할 수 있다면 MVP 배출에 대한 기대도 더 높아진다.

한국이 역대 아시안컵에서 MVP를 배출한 경우는 1988년의 김주성이 유일하다. 한국이 이번 대회 전까지 마지막으로 아시안컵 결승에 진출했던 해였다. 당시 김주성은 한국이 사우디의 벽에 막혀 준우승에 머물렀음에도 뛰어난 활약을 인정받아 MVP에 선정된 바 있다. 1996년 코다드 아지지(이란. 당시 4강) 이후 최근 4번의 대회에서는 모두 우승국에서 MVP가 나왔다.

역대 가장 많은 MVP를 배출한 국가는 일본이다. 역대 아시안컵 최다 우승국이기도 한 일본은 1992년 미우라 가즈요시, 2000년 나나미 히로시, 2004년 나카무라 슌스케, 2011년 혼다 케이스케 등 우승했던 대회에서 모두 MVP를 동시에 배출하며 이 부문 최다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은 득점왕 부문에서 강세를 보였다. 1960년 조윤옥, 1972년 박이천, 1980년 최순호, 1988년 이태호, 2000년 이동국, 2011년 구자철까지 지금까지 총 6명의 아시안컵 득점왕을 배출했다. 이란(7명)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많은 득점왕 보유 기록이다.

한국 - 기성용, 호주- 팀 케이힐 MVP 0순위

한국에서 이번 대회 MVP와 득점왕 후보에 이름을 올릴만한 선수는 누가 있을까. 나란히 2골씩을 넣은 이정협(상주)과 손흥민(레버쿠젠)이 팀내 공동 최다 득점을 기록하고 있다.

현재 개인 득점 1위는 이라크의 알리 마브코트와 요르단의 함자 알 다르두르, 나란히 4골을 기록하고 있다. 동점자가 나오면 어시스트(도움)의 수가 많은 선수를 앞에 세우는 규정에 따라 도움을 1개 더 기록한 다르두르가 좀 더 유리한 상황.

하지만 다르두르는 소속팀 요르단이 조별리그에서 일찍 탈락했고 마브코트는 아직 이라크와 UAE의 3.4위전 1경기(30일)가 더 남아있는 게 변수다. 한국의 결승전 상대인 호주의 팀 케이힐(3골)도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손흥민과 이정협이 이들을 추월하려면 경쟁자들이 추가 득점에 실패하고, 호주와의 결승전에서 헤트트릭 이상을 몰아쳐야 하는 만큼 득점왕 경쟁은 쉽지 않은 조건이다.

올해 한국은 공격보다 수비에 강점을 보이는 '실리 축구'로 결승까지 올랐다. 그만큼 수비와 미드필드 라인에 포진한 선수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주장이자 플레이메이커 기성용(스완지시티), 좌우 풀백 김진수(호펜하임)와 차두리(FC 서울), 골키퍼 김진현(세레소) 등이 MVP로 꼽힐만한 선수들이다.

역대 아시안컵 MVP는 공격수나 수비수보다 미드필더 중에서 배출되는 경우가 많았다. 기성용은 대회 내내 한국의 실질적인 에이스이자 중원 사령관으로 활약했다. 조별리그부터 5경기에 모두 선발 출전해 이라크와의 4강전을 빼고 풀타임 소화했다. 전매 특허인 패스 성공률은 349개의 패스 중 324개를 성공하며 92.8%로 대회 전체 1위를 기록했다. 득점이나 도움처럼 눈에 보이는 공격 포인트가 없었을 뿐, 공수 양면에서 기성용의 실질적인 존재감은 절대적이었다.

인상적인 장면도 많았다. 조별리그 호주전에서 사실상 이정협의 결승골의 계기가 되는 킬패스로 '2차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연장 접전을 치른 우즈벡과의 8강전에서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시작하여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측면 윙포워드까지 두루 소화하는 다재다능함을 뽐냈다. 주축 선수들이자 절친인 이청용과 구자철이 조별리그에서 잇단 부상으로 낙마하는 어려움 속에서 흔들림 없이 중심을 지킨 팀 공헌도는 기록 이상이다. 한국 대표팀에 MVP가 나온다면 누가 뭐라 해도 기성용이 0순위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수문장 김진현 역시 한국의 무실점 행진을 이야기할 때 빠질수 없는 존재다. 쿠웨이트와 2차전을 감기 몸살로 결장한 것을 제외하면 남은 4경기에 모두 나와 무실점으로 선방했다. 김진현은 총 13개의 슈퍼세이브로 이번 대회 결정적인 유효슈팅을 가장 많이 막아낸 골키퍼였다. 오만, 호주, 우즈벡, 이라크전까지 수많은 1대 1 찬스에서 김진현의 선방이 없었다면 한국은 결코 결승까지 올라오지 못했을 것이다. 김진현은 올해부터 아시안컵에 신설된 최우수 골키퍼상의 유력한 후보로도 거론된다.

'이영표의 후계자' 김진수와 '늙지 않는 맏형' 차두리는 이번 대회 공수 겸장 풀백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대회 초반 한국의 포백 라인이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상황에서도 이들이 버틴 좌우 풀백만은 기복없이 든든한 모습을 보여줬다. 몸을 사리지 않는 육탄 수비와 왕성환 활동량으로 측면을 지배한 두 풀백은 무실점 수비로 본연의 임무를 다한 것은 물론 공격에서도 높은 기여도를 보였다.

한국이 기록한 7골 중 무려 4골에 김진수와 차두리가 기여했다. 김진수는 우즈벡과의 8강전(손흥민)과 이라크와의 4강전(이정협)에서 결승골을 어시스트했다. 차두리도 쿠웨이트와의 조별리그 2차전(남태희)과 우즈벡과의 8강전(손흥민)에서 호쾌한 폭탄 드리블과 크로스로 이번 대표팀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독점했다. 김진수는 기성용-박주호를 제치고 이번 대표팀에서 유일하게 5경기를 모두 교체없이 풀타임 소화하고 있다. 차두리는 4경기에 나와 선발과 교체로 각각 두 번씩 출전했다.

한편 한국과 우승-MVP를 놓고 경쟁하게 될 호주에는 베테랑 팀 케이힐이 가장 유력한 후보다. 호주 공격의 중심이자 정신적 지주인 케이힐은 득점도 3골로 2위에 올라있어서 한국전 활약에 따라 최대 3관왕까지도 가능하다. 수비의 핵으로 꼽히는 트렌트 세인스버리(즈볼레)역시 안정된 수비와 제공권, 팀내 최고의 롱패스 성공률 등을 바탕으로 호주의 결승진출에 기여한 선수로 꼽힌다. 한국의 최대 목표는 역시 55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이 최우선이지만, 이에 못지않게 개인 타이틀 경쟁에서도 웃을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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