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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백설공주 성.
▲ 세고비아 성 일명 백설공주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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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교의 지상 구간 관찰과 원거리 수원지 조망 등등... 세고비아 신시가지 일대 탐방은 상당히 유익한 시간이었다. 내친김에 '호랑가시 숲'이라고 불리는 수원지까지 가서 시작점을 직접 관찰해 보고 싶었으나 다음을 기약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대충이나마 시작점을 조망했으니 이제 종료점을 향해 가야 할 차례였다. 수도교의 종료점은 일명 '백설공주성'이라 불리는 세고비아 성(Alcázar of Segovia)이다.

'큰 시장'보다 더 북적거리는 '작은 시장'

세고비아 성은 구시가지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그곳을 가려면 수도교와 아조구에호(Plaza de Azoguejo) 광장을 다시 거쳐 가야 했다. 스페인어로 '아조구에호(azoguejo)'는 '작은 시장'을 뜻하고, 마요르 광장(Plaza de Mayor)할 때 '마요르(mayor)'는 '큰 시장'을 뜻한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아조구에호 광장보다 마요르 광장이 더 크고 북적거려야 하지만 세고비아에서는 좀 달랐다. 수도교 때문인지 '작은 시장'이 '큰 시장'보다 사람들이 더 붐비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 가는 데 돈 간다고, 실제로 작은 시장 쪽이 상권도 더 발달했다. 그러고 보면 건축물에도 새옹지마라는 속담이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전편에서도 언급했듯이 수도교를 두고 옛날 세고비아 사람들은 악마의 작품이라고 의문을 표시하며 경원시했지만 지금은 세고비아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고마운 존재가 아닌가?

수도교가 잘 보이는 그 작은 시장에는 '코치니요'로 유명한 맛집이 있었다. 코치니요는 새끼 통돼지 요리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통구이라면 고기를 나무꼬치에 꽂아 돌리는 것을 생각하지만 코치니아는 화덕에다 구운 요리다. 이 요리는 세고비아에 가면 꼭 한 번은 맛보아야 할 이 지역의 명물이라고 한다.

마요르 광장 쪽에서 본 모습
▲ 세고비아 성당 마요르 광장 쪽에서 본 모습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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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맛집 앞에서 필자는 반가운 얼굴들을 만났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함께 걸었던 순례팀과 재회를 한 것이다. 순례팀은 막 점심식사를 하려는 순간이었고 필자는 광장을 가로 질러 그 맛집 앞을 지날 때였다. 얼마나 반갑던지.

"여기서 또 만나네요. 역시 만날 사람은 만난다니까요!"

헤어진 지 겨우 3일 밖에 되지 않았지만 정말 반가웠다. 단체여행을 하다가 갑자기 뚝 떨어져 나가듯 단독여행을 했으니 더 그 외로움이 더 컸고, 그래서 더 반가웠던 것이다. 순례팀도 마드리드 인근 도시를 탐방 중이었다. 마드리드 민박집을 베이스캠프 삼아 인근 세고비아나 톨레도 같은 인근 도시들을 당일치기로 여행하고 있었다.

필자도 자리를 꿰차고 앉아 고기를 뜯고 싶었지만 이미 식사를 한 터라 다음을 기약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대신 그날 밤에는 필자도 마드리드 민박집으로 합류하기로 했다.

"밤에 봬요! 집에서!"

세고비아 성 방면에서 바라본 모습. 아래쪽에는 도시를 감싸고 있는 성곽이 보인다
▲ 세고비아 성당 세고비아 성 방면에서 바라본 모습. 아래쪽에는 도시를 감싸고 있는 성곽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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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새들의 놀이터 세고비아 성당

세고비아 성을 가기 위해 먼저 들러야 할 곳은 마요르 광장에 있는 세고비아 대성당이었다. 세고비아 대성당은 1525년부터 1577년까지, 52년 동안 건축된, 규모가 상당히 큰 성당이다. 노을이 질 무렵, 작은 첨탑들이 황새들의 놀이터로 이용될 만큼 세고비아 대성당은 뾰족한 고딕양식이 일품인 곳이다. 

현재의 세고비아 대성당은 옛 성당을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옛 성당은 세고비아 성 인근에 있었는데 1520년에 발발한 코무네로스(Comuneros) 반란 때 파괴됐다. 코무네로스 반란은 당시 집권자인 카를로스 1세의 과중한 세금 부담 등에 반대하여 세고비아, 톨레도, 바야돌리드 등 주요 도시에서 시민들이 봉기한 사건을 말한다. 이들 도시에서는 자치조직인 '코무니다드'가 만들어졌는데 그 구성시민들을 '코무네로스'라고 불렀다. 그 이름을 따서 코무네로스 반란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반란군들은 옛 성당을 접수하여 세고비아 성의 성벽부근을 방어하고 있는 카를로스 1세군을 격파할 생각이었다. 그런 공방전 끝에 옛 성당은 파괴되고, 5년 후 현재의 자리에 대성당이 지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듯 현재의 대성당은 건축 당시에는 전쟁의 상흔을 극복하고자 지어졌고, 지금은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아름다운 대성당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대성당을 위에서 보면 3층짜리 아치형 지붕이 층층이 쌓아 올려진 것처럼 보인다. 그 사이사이에는 수많은 스테인글라스들이 성당을 돋보이게 해주고 있었다. 세고비아 대성당에서 가장 백미라고 할 수 있는 곳은 높이가 90m인 종탑이다. 이 종탑은 1614년에 세워졌는데 멀리서 보면 왕관을 올려놓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 곳에 올라서면 세고비아 시내를 시원스럽게 조망할 수 있다고 한다. 

좁은 세고비아의 구 시가지 거리.
▲ 세고비아 좁은 세고비아의 구 시가지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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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였던 세고비아 성

대성당을 뒤로 하고 좁은 골목길을 따라 일명 '백설공주 성'이라고 불리는 세고비아 성을 향해갔다. 세고비아 성은 월트디즈니사의 <백설공주>에 나오는 성의 모델이 됐다고 해서 그런 별명을 얻게 됐다.

애니메이션의 배경 모델이 될 만큼 세고비아 성은 매우 아름다웠다. 또한 독특했다. 하지만 이곳이 처음부터 그런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공간은 아니었다. 성이 들어서기 전에는 요새로 쓰였기 때문이다. 그 기원은 로마 점령기 이전의 셀티베리안(Celtiberians)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다.

이곳은 수도교의 종착점이 될 정도로  로마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전략적 요충지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즉, 거의 2000년 전부터 중요한 거점으로 쓰였다는 뜻이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코무네로스 반란 때에도 이 일대는 격전지였다.

세고비아 성의 해자. 해자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주변을 판 후 물을 채워넣는 것을 말한다.
▲ 해자 세고비아 성의 해자. 해자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주변을 판 후 물을 채워넣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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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고비아 성을 두고 안내책자에는 배 모양을 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그 표현이 적합한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한 건 이 성이 '붕' 떠 있다는 것이다. 에레스마 강(Eresma)과 클라모레스 강(Clamores)이 휘돌아나가는 작은 협곡에 위치해 있는 이 곳은 연결다리를 폐쇄시키면 외부와는 격리가 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한마디로 천혜의 요새였던 셈이다. 한편 그 옆을 흐르는 강들은 유량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수도교를 건설해 그 먼 곳에서 물을 끌어 왔던 것이다.

그렇게 협곡 요새로 기능하던 곳이 13세기 이후부터는 왕이 거주하는 왕궁으로 변모 했고, 그 이후부터 수세기동안 증개축이 거듭되었다. 세고비아 성은 감옥으로도 쓰였는데 마드리드에 있던 왕실 법정이 옮겨옴에 따라 죄수들을 격리할 공간을 마련했기에 그렇게 된 것이다.

세고비아 성은 1862년에 발생한 큰 화재로 거의 모든 게 파괴되는데, 20년 후 대대적으로 복원 공사에 나서게 된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성은 1882년에 재건축된 것이다. 한편 세고비아 성은 현재 왕립 포병학교의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한쪽 면에는 각종 대포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성 앞에서 한 컷.
▲ 세고비아 성 성 앞에서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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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떠나면 고생, 하지만 떠나야 하는 운명

세고비아 탐방을 마친 후 필자는 마드리드행 버스를 탔다. 이제 순례팀이 묵고 있는 한인 민박집을 향할 차례였다. 한인 민박집에서 순례팀을 다시 만나니 마치 가족들과 상봉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 와중에 누가 이런 말을 했다.

"집 나가니까 고생이지?"

필자는 그 말에 깊이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이런 말을 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지만, 떠나야지만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게 우리의 운명이잖아요!"

세고비아 성에 전시된 중세 기사상.
▲ 세고비아 성 세고비아 성에 전시된 중세 기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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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움말

1. 마드리드에서 세고비아까지는 약 90km 정도 떨어져 있다. 버스로는 1시간 10분 정도 소요된다.

2. 추천여행 노선: 터미널 → 수도교 → 세고비아 성당 → 세고비아 성
천천히 둘러보면 3~4시간 정도 소요된다. 

3. 시간이 되신다면 신시가지 방면에 있는 수도교 지상 구간을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정수장 안쪽의 정수시설을 관찰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안녕하세요? 역사트레킹 마스터 곽작가입니다.

http://blog.daum.net/artpunk



태그:#세고비아, #세고비아성당, #세고비아성, #스페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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