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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이력서에는 외국에서는 적지 않는 몇 가지를 기재하도록 요구한다.
▲ 이력서 우리나라 이력서에는 외국에서는 적지 않는 몇 가지를 기재하도록 요구한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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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이력서와 한국의 이력서를 비교해 보면 한국 사회의 숨겨진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시대적 변화와 흐름에 맞춰 이력서 작성 방식과 내용이 변하고 있지만 고정관념으로 굳어진 악습도 남아 한국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가족사항이다. 외국의 이력서를 보면 가족사항을 이력서에 넣는 경우가 많지 않다. 이는 아직도 우리 사회가 혈연·지연으로 얽힌 '신분'이 세습되고 있다는 점을 대변한다.

이력서의 가족사항, 악용되고 있지는 않은가

가족사항이 이력서에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기업에 도움이 되는 직종이나 직업을 갖고 있는 부모들의 자녀들을 뽑기 위해서이다. 자신의 자녀가 몸담고 있는 기업을 무심코 지나칠 수 없다는 부모의 심리를 이용한 기업의 전략이다.

이마트의 고위층 특혜 채용 파문은 이런 경향을 좋은 예가 된다. 지난 2013년 1월, 신세계그룹 이마트가 자치단체장과 서울시청 노동부 간부 등 고위층 자녀들을 낙하산 채용한 정황이 밝혀진 바 있다.

이 가운데 2005년 입사했다 퇴사한 A씨는 부산 해운대구의 새누리당 출신 3선 구청장의 딸로 확인됐고 A씨가 쓴 이력서의 추천자 란에는 노태욱 당시 신세계 건설 부사장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특이사항에는 아버지가 해운대 구청장이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이외에도 많은 청탁 비리와 특혜 논란이 현재에도 끊이지 않는 이유는 이력서의 가족 항목에 아버지가 국회의원이라는 것을 경시하지 못하는 기업의 입장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에도 우리는 언론을 통해 여러 정치인·경제인 자녀가 채용 혜택을 받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현대판 신분 세습이다. 국민과 언론의 질타를 의식해서인지 현 국회는 부정부패의 척결을 약속했지만 '김영란법' 원안에 담겼던 '이해 충돌 방지 조항'이 이번 법에 반영되지 않은 것을 보면 부정부패의 한 축인 신분 세습의 악습을 개선할 의지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이해 충돌 방지 조항'은 예를 들어 국회의원이 담당한 부서와 연관 있는 기업에 자녀가 취업한다면 해당 국회의원은 해당 상임위를 맡지 못한다는 법령이다. 부정부패와 세습을 막기 위한 '김영란법'에서 국회의원만 쏙 빠진 모양새이다. 법을 통한 악습 타파의 효과는 일시적이거나 미비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이 이력서에 가족사항만 빼도 어느 정도 완화될 수 있는 문제이다. 국내 모든 이력서에 항목에 가족사항이 빠진다면 기업은 부모의 직업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이력서에 가족사항을 빼는 것이 바로 대한민국 사회에 뿌리박힌 악습을 고쳐나가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이 점을 기업과 정부 모두 인식할 필요가 있다.

외국의 이력서에는 부모 및 가족의 직업을 적는 항목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자연스럽게 부모와 독립된 사회적 구조를 갖게 만들었고 부모의 직업과 신분이 아무런 노력 없이 이어지는 일이 없게 만들었다. 무엇이 옮고 평등한 사회인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무조건 충성하는 '예스맨' 요구하는 기업들

두 번째는 외국 이력서에 없는 성장과정과 성격이다. 성장과정은 지원자에게 묻는 질문 중 가장 첫 순위로 등장한다. 기업은 성장과정을 통해 당신의 집안 분위기와 경제 상황을 짐작한다. 이는 가족사항의 부모의 직업만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부모의 교육 방침을 파악하는 동시에 당신의 성격을 유추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한국의 이력서에만 존재하는 성격은 그동안 겪어본 직장인들의 행동 패턴, 성격, 이미지를 고려해 기업의 적합한 순종적인 사람을 뽑기 위해서도 사용된다. 집안 배경이 좋은 사람은 양질의 교육을 받아 기업에 순종적이고 기업을 쉬이 배반하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깔려 있다. 이를 바탕으로 기업은 지원자의 성장과정과 성격을 눈여겨보는 것이다.

외국은 과거의 경험보다는 업무와 관련된 직접경험을 위주로 묻는다. 얼마나 기업에 도움이 되는 실력과 경험을 갖추고 있는지 주목하며 다양한 경험은 장점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와 반대로 한국 기업은 성격과 이직 횟수를 바탕으로 기업을 향한 충성도와 인내심을 파악한다. 충성도와 인내심은 곧 불의와 회사를 향한 불만을 표출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아직도 몇몇 기업은 전 근대적인 사상에 파묻혀 있는 것 같다. 개혁과 변화를 제시하고 파장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인재는 사전에 배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창의적인 인재를 원하는 동시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개혁과 변화를 싫어하는 모순된 양면성을 보인다.

물론 기업 입장에서 문제를 일으킬 사람이 달갑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로봇처럼 시키는 대로 따라 하는 인재들은 기존의 업무를 진행하는 데 유용할지 모르지만, 회사와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서는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인재들이 더욱 많아져야 할 필요가 있다.

이제 사회는 부정부패에 침묵하지 않고 고발하는 시대로 변모하고 있다. 현재 우리는 과도기에 살고 있다. 신분 세습을 통해 가장 큰 혜택을 받고 있는 정치인들이 자신의 목을 스스로 죄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세대와 그렇게 살지 못한 세대가 마주 보며 같이 노력할 필요가 있다. 신분 세습을 막기 위해 법뿐 아니라 우리 삶 깊숙이 박혀있는 악습을 같이 뿌리 뽑아야 한다.

현 정부가 이력서의 가족사항에서 시작되는 신분 세습의 연결고리를 끊지 않는다면, 더 나아가 기업의 이력서 항목에서 성격과 성장과정을 빼지 않아 충성도와 인내심이 강한 인재만 찾는다면, 불공평하고 퇴보하는 세상을 원망하며 살아가는 국민들이 갈수록 늘어나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이 정말로 창조경제를 꿈꾸고 있다면, 무조건적인 충성과 인내심을 가진 인재를 선호하는 기업의 모순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태그:#이력서 가족사항, #대한민국의 신분 세습, #대한민국의 악습, #이력서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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