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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오전 인천시 남동구 푸른숲 어린이집을 방문, 아이들의 수업을 참관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오전 인천시 남동구 푸른숲 어린이집을 방문, 아이들의 수업을 참관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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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교사
"우리 어린이는 지금 그렸는데 색칠하고 있어요."
박근혜 대통령 "살색으로? 아하."

29일 인천의 한 어린이집을 찾은 박근혜 대통령의 입에서는 '살색'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박 대통령은 '빵집'을 그리고 있는 다른 어린이에게도 "(펜을 들고) 여기를 살색으로 이렇게"라고 말하면서 다시 한 번 '살색'을 언급했다.

초등학교 교과서는 물론 어린이들이 사용하는 크레파스에서마저 오래전 사라진 '살색'이 대통령의 입을 통해 다시 호명된 순간이었다.

대통령 입에서 튀어나온 인종차별적 단어

'살색'은 국가위원회에서 사용 금지를 권고한 단어다. 인종차별적이라는 이유에서다. 국가인권위의 권고로 '살구색'이 '살색'을 대신 한 게 벌써 10년 전인 2005년이다. 우리나라에서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사용하던 '살색'에 거부감을 느낀 외국인들의 문제제기가 변화의 시작이었다. 

2001년 말 미국·가나·스리랑카 출신 외국인들은 국내에서 사용되는 크레파스 색상이 피부색을 차별하고 있다며 인권위에 진정했다. 인권위는 "특정 색을 '살색'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평등권 침해 소지가 있다"라며 기술표준원에 한국산업규격(KS) 개정을 권고했다. 이에 따라 기술표준원은 KS표준에서 살색 대신 연주황을 사용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초·중등학생 6명이 "지나치게 어려운 한자어인 '연주황 사용'은 어린이에 대한 차별"이라며 인권위에 재차 진정을 제기한 끝에 '살구색'이라는 표현을 쓰기로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

이런 합의 속에 지난 2009년 한 인터넷 쇼핑몰이 옷 색깔을 '살색'이라고 한 TV광고를 내보냈다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결국 살구색으로 수정하기도 했다.

외국인 175만 시대... 아쉬운 박 대통령의 인권감수성

이처럼 살색은 사람의 피부색을 차별하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용어다. 이미 퇴출하기로 사회적 합의도 끝났다. 게다가 지금은 국내 거주 외국인이 175만 명에 이르는 다문화 시대다. 그들의 '살색'은 검을 수도 있고 흴 수도 있고, 동양인처럼 살구색일 수도 있다.

무딘 인권 감수성을 드러낸 이날 박 대통령의 '살색' 언급은 그래서 유감이다. 더구나 이날 박 대통령이 방문한 곳은 아이들이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하는 어린이집이었다.

물론 박 대통령으로서는 어렸을 때부터 써와 익숙한 표현을 무심코 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통령의 발언은 어떤 공인보다 신중하고 세심해야 한다. 국내 거주 외국인들이 박 대통령의 '살색'을 문제 삼아 항의 성명이라도 발표한다면 망신스러운 일이 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12년 총선에서 필리핀 출신 이자스민씨를 비례대표로 영입해 최초의 여성 귀화 국회의원으로 만들었다. 날로 늘어나는 국내 거주 외국인들과 다문화 가정의 대변인으로 그를 발탁해 '잘한 공천'이라는 칭찬을 받았다.

이자스민 의원을 발탁한 박 대통령이라면 이번 '실수'를 작은 문제라고 넘기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태그:#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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