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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정세현·황방열의 한통속> 진행자인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과 황방열 오마이뉴스 기자.
 팟캐스트 <정세현·황방열의 한통속> 진행자인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과 황방열 오마이뉴스 기자.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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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1945년 6월에 태어난, '해방둥이'입니다. 그 시절 만주라 불린 중국 동북3성의 북쪽 헤이룽장성에서 태어난 그는 생후 100일 만에 강보에 싸여 그곳을 떠났고, 만주와 한반도를 관통하는 40일간의 여정을 거친 뒤 아버지의 고향인 전주에 도착합니다.

이런 개인사를 보면, 그의 표현대로 "강보에 싸여 넘어온 38선을 되짚어, 다시 평양으로 가는 길을 뚫는 일을 하게 된 것"이, 즉 그가 통일 문제를 일생의 화두로 갖게 된 것이 그의 운명이라고 해도 심한 비약은 아닐 듯합니다.

김대중 정부의 마지막 통일부 장관으로 바로 이어서 노무현 정부 초대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이례적인 경력으로 널리 알려진 그는, 1977년 국토통일원 공산권 연구관으로 공직을 시작한 이래 실무부터 장관까지 통일관련 업무를 경험한 유일한 통일부 장관입니다. 또 '공산 중국'에 대한 연구가 척박했던 1982년에 '모택동의 대외관 전개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론가이기도 합니다.

장관 재임중 남북대화 95회, 합의서 73개 나와

그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때까지 열린 606회의 남북대화 중 99회의 회담에 관여했고, 총 226건의 남북합의서 중 76건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특히 통일부 장관으로 있던 2년 5개월(2002년 1월~2004년 6월)동안 95회 남북대화가 있었고 73개 합의서가 작성됐습니다. 지금 상황과 비교하면 '꿈같은 시절'이라 할 만합니다.

27년간의 공직생활을 마친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민화협(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 대통령자문 통일고문회의 고문,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 등을 맡아 민간에서도 계속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면서, <프레시안> '정세현의 정세토크'와 <한겨레> 칼럼 등의 언론활동을 계속해왔습니다.

그가 '평화통일을 하려면 남북한이 한통속이 돼야 한다'는 취지아래 <오마이뉴스>가 만드는 남북관계-통일문제 전문 팟캐스트 <정세현·황방열의 한통속>에 참여하기로 한 것도 이같은 활동의 연장선일 겁니다.

방송을 한 주 앞두고 만난 그는 "박근혜 정부 대북 정책의 문제점을 짚고, 그 문제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대책을 제시하고자 한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한편, '정세현·황방열의 한통속'은 오는 2월 3일 시작되며, 매주 화요일에 방송될 예정입니다. 현재는 예고방송이 나가고 있습니다.

☞팟빵에서 '정세현·황방열의 한통속' 듣기
☞아이튠즈에서 '정세현·황방열의 한통속' 듣기

다음은 정 전 장관과의 문답 전문입니다.

-1945년에 중국 헤이룽장성(흑룡강성)에서 태어나셨는데요. 뭔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습니다.
"45년 6월에 헤이룽장성 자무스(佳木斯)라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헤이룽장성 성도 하얼빈에서 러시아쪽으로 동북단 끝에 있는 곳입니다. 아버님이 젊었을 때 이주해서 한의원으로 자리를 잡고 계셨는데, 내가 태어나고 두 달 뒤 해방이 된 겁니다. 내가 태어난 지 100일 정도 지났을 때 추석 직후인 9월 말에 아버님이 가족을 이끌고 고향인 전주로 출발하셨답니다.

기차 타고가다 막히면 걷고 그러다 다시 기차를 구해 타는 식이었다는데, 당시 만주와 북한을 점령한 소련군이 젊은 처자들을 그냥 두지 않는다고 해서 어머니가 얼굴에 검정 칠을 하기도 하고, 아기 울음소리 나면 소련군이 마구 죽인다고 해서 극도로 조심했다고 합니다.

또 그해 장티푸스가 창궐해서 아기들이 많이 죽고 또 유행병도 돌았다는데, 피난민들은 그런 게 더 심했을 텐데 나는 명줄이 길었나 봐요. (랴오닝성) 단둥에서, 신의주, 평양, 38선을 지나 예성강을 건너서 (한국전쟁 전에는 남쪽 지역이었던) 개성, 서울역 그리고 전주까지 40일 걸려서 도착했답니다. 예성강 가파른 철교를, 철로 수리하는 지붕 없는 차량 타고 건너다 떨어져 죽은 사람들도 있었다는데 우리는 별 일이 없었습니다. 강보에 쌓여서 한반도를 관통한 것인데, 최연소 월남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71년 대선 때 김대중 장충단 연설 들으러 갔는데"

- 이런 개인사가 이후 통일 문제에 매진하는 데 영향을 준 것 같아 보이기도 하네요.
"글쎄요, 그런 점도 없지않아 있을 것 같기도 해요. 어렸을 때부터 그 얘기를 하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건 기억도 없는 어렸을 때 얘기이고, 대학 때 서울대 외교학과를 만든 이용희 교수가 '한국에서 국제정치를 공부하는 이유는 결국 통일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라는 말씀을 하는데, 멋지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 뒤 대학원 1학년 때인 1971년 7대 대선 때 김대중 후보의 장충단 연설을 보러 간 일이 있습니다. 당시는 현실 정치에도 관심이 있던 때라 연설 잘 한다는 김대중 후보의 연설기법을 보러 갔는데, 세계적인 화해 흐름에 맞춰서 남북 화해를 추진해야 한다는 말이, 당시 대학 교수들보다 더 국제정세에 해박했습니다. '이용희 교수 말씀이 저거였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박사 논문이 모택동(마오쩌둥) 시대 중국 외교에 대한 것인데 그 시절에는 드물었을 것 같습니다.
"내가 중국에서 태어났고, 아버지가 한의사여서 어렸을 때부터 한문에 친숙해서 그런지 중국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1973년에 한비자 연구, 그러니까 중국 고대 정치사상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1977년에 이용희 교수가 국토통일원 장관이 돼서 뽑은 공산권연구관 중 한 명으로 통일원에 들어간 것이, 통일관련 업무를 시작한 계기가 됐습니다. 1982년에 '모택동의 대외관 전개에 관한 연구', 그러니까 모택동 시대의 중국 외교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직업적인 전공은 남북관계지만, 학문적 전공은 중국 외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그 때는 국내에 중국 관련 자료가 별로 없던 시절 아닙니까.
"나는 통일원에 근무하고 있었잖아요. 당시 민간에서 그런 자료 봤으면 불온문서 소지로 쇠고랑 찼을 겁니다(웃음). 모순론, 실천론 같은 당시 운동권의 필독서인 모택동의 주요 저작을 다 넣었습니다. 그때 중국과 소련 자료들 보고, 중국 공산주의와 소련 공산주의 비교도 하면서 비교 공산주의적 시각을 갖게 된 것이 이후 통일문제, 북한 문제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이 논문을 보강해서 '모택동의 국제정치사상'(형성사)이라는 책으로 내기도 했습니다.

한창 일할 때는 기억도 못하는 어렸을 때 경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강보에 쌓여 넘어온 38선을 되짚어 다시 평양으로 가는 길을 뚫는 일을 하게 된 것을 보면 결국 사람의 운명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시나리오는 있는데 본인은 모르고 그 장소에서 그 역할 하는 게 인생 같아요."

"대통령의 대북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꼈다"

팟캐스트 <정세현·황방열의 한통속> 진행자인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과 황방열 오마이뉴스 기자.
 팟캐스트 <정세현·황방열의 한통속> 진행자인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과 황방열 오마이뉴스 기자.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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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방송이 익숙하신 연세는 아닌데, 어떻게 마음을 먹게 되셨습니까. 물론 제가 제안하기는 했지만요(웃음).
"나보다 6살 위인 윤여준 전 장관도 계시잖아요? 우선은 황 기자의 적극적 제안이 있었는데 그건 인간관계 영역이겠구요. 이 팟캐스트를 하기로 한 것은, 박근혜 정부 대북 정책의 문제점을 짚고, 그 문제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대책을 제시하고자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분석과 대책, 공직생활의 오랜 습관입니다.

북한은 물론 군사적으로는 적이지만, 현 정부는 북한을 적으로만 봅니다. 입만 열면 통일하겠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통일과정 동반자라는 점을 감안해서 정책을 펴야 합니다. 먼저 믿을 수 있는 상대인지를 보여달라는 조건을 걸고, 내 기준에 맞추라고 하면, 남북관계가 아무리 민족내부 문제이지만, 기본적으로 정치이고 외교인데 이렇게 하면 성과를 내기 어렵습니다. 신뢰를 전제조건으로 거는 게 아니라 협상과정에서 신뢰를 확인해 가야 합니다. 미세한 차이 같지만 이 부분은 남북관계 풀어가는 데 중요한 문제입니다.

77년부터 역대 정권을 거치면서 대통령의 대북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꼈습니다. 이것이 우리 국가 이익과 국제 위상에 도움이 되는지 해가 되는지 청취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머리를 짜내보려 합니다. 세금으로 국록을 먹고 살았으니, 국민들께 보고하는 자세로, 현장 경험과 현장에서 닦은 이론을 설명드려서, 국민들의 판단을 높이는데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더불어 후학들이 공부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 언론의 남북관계·통일문제 보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옛날에 통일부 기자실에 '북한은 만주벌판이다'라는 농담이 있었습니다. 뭘 버려도 흔적이 안 남는다는 얘깁니다. 북한이 어떻다고 써도 확인이 어려우니까요. 현재 언론의 남북관계와 북한 보도의 편향성이 너무 강합니다. 전문가라는 분들도 마찬가지구요. 정부가 분위기를 조성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국민을 이렇게 흑백논리, 선악개념으로 끌어가면 안 됩니다. 사상·언론·표현의 자유 속에서 나오는 창의성이 미국 경쟁력의 원천 아닙니까."

"오바마 북 붕괴론 언급, 금융제재 정당화 위한 기초작업"

-최근 현안 하나만 짚어보겠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군사해결책은 답이 아니라는 전제를 달기는 했지만 북한 붕괴를 언급했습니다. 북미 관계 개선은 사실상 불가능해진 것 아닙니까.
"북한 내부적으로 붕괴되도록 조여들어가겠다는 것은 금융제재를 정당화하기 위한 기초작업의 일환이라고 생각합니다. 금융제재가 얼마나 더 세게 들어갈지 모르지만 2005년 9.19 공동성명 직후 금융제재가 가해진 지 1년 뒤에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했습니다. 미국의 자충수였던 겁니다. 북한은 이번에도 통증이 있다 해도 굴복하지 않을 겁니다. 군사적으로 뚫고 나가면서 '미국이 북을 이렇게 다뤄서는 안 된다는 얘기'가 나오게 만들려 할 겁니다.

현실적으로 북한이 붕괴할 것인가? 미국과 힘겨루기 하는 중국과 러시아가 방관하지 않습니다. 지구상에 미국만 있는 게 아닙니다. 중국과 러시아도 동의한 유엔 제재는 계속 늘어났지만, 어찌됐는지 북한 경제는 미약하게라도 호전됐다는 것 아닙니까. 2차 대전이후 70년간 국제정치를 끌어온 미국이 북한에 대해 플랜B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미국도 비전이 없는 것 아닙니까.

또 미국의 대북정책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 우리 국민의 안보불안은 어떻게 할 겁니까. 우리 보수 언론도 이에 대해 생각하고 기사를 써야 합니다. 지나치게 사대적입니다. 보수 언론이 국수적이기까지는 안되겠지만 우리 국익이 아니라 미국의 관점을 갖고 있다는 것, 이것이 우리 보수 언론의 패러독스입니다."


태그:#정세현, #정세현·황방열의?한통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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