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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막 졸업한 후 들어간 회사에 다닐 때가 떠오른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던 나는 휴대폰 소프트웨어 연구원으로 일했었다.

누구나 그렇듯 처음엔 회사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모든 것이 낯설고 막막했다. 나중에는 아주 쉽게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처음에는 그 쉬운 일도 마치 산을 옮기는 일처럼 어렵게만 여겨졌다.

다행히도 서서히 회사에 적응해 나갔다. 하지만 도통 적응되지 않는 것도 있었다. 야근과 특근이 특히 그랬다. 진짜 일이 많아 야근을 해야 하는 거면 그런대로 참을 만했다. 하지만 정말이지 쓸데없이 야근을 해야 하는 날은 짜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새벽 바람을 맞으며 퇴근할 때는 슬며시 눈물도 흘렸다. 아, 삶이 뭐 이런가!

야근과 특근마저도 더는 나를 흔들지 못하게 될 즈음, 나는 꽤 완벽한 직장인이 되어 있었다. 완벽한 직장인이란 삶의 촉수가 오로지 회사 내에서 벌어지는 일에만 반응하는 사람을 말한다. 나는 어느새 회사와 관련 없는 것들엔 무감각해진 사람이 되어 있었다. 삶이 주는 다양한 열매가 더는 내 침샘을 자극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 표지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 표지
ⓒ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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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회사생활을 위해서!'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무리 고되도 회사에 집중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 같았다. 잘못된 생각이었다. 회사 생활을 잘 영위하기 위해선 삶의 다양한 열매에 과감히 다가가 그 열매를 따 먹어야 한다는 걸 회사를 그만두고도 시간이 꽤 흐른 후에야 알게 되었다.

우리는 일을 잘하기 위해, 또 회사에 충실하기 위해, 일에만, 회사에만,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삶이 불안할수록 더욱 그렇다. 그래야 오래 버틸 수 있고, 또 성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드라마 <미생>의 미생들처럼. 일에 목숨 건 전사들처럼.

공자의 가르침을 읽기 쉬운 에피소드 형식으로 풀어낸 우간린의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에서 자공(공자가 유독 믿고 아꼈던 제자)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을 요즘 식으로 말해 '사업형 인간'이라 소개하는 자공은 일 외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러한 삶의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별을 좇으면서도 길가의 꽃 역시 잊지 말아야

언제가 공자는 제자들과 함께 노나라 군주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제단인 무우대에 올랐다. 그곳에 올라 마음을 열고 풍경을 감상하던 공자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제 늙어서 더는 나를 쓰려는 사람이 없는 것 같구나. 하지만 너희는 포부를 펼칠 기회가 많으니 좀 묻고 싶구나. 만일 기회가 된다면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싶으냐?"

제자 자로가 첫 번째로 대답한다.

"만일 천 량의 군마차를 가진 나라가 큰 나라 사이에 끼어서 이웃 군대의 침범을 받고 있는데다 기근까지 심한 상황에 처해 있는데 제게 3년의 시간이 주어져 그 나라를 다스리라고 한다면, 저는 그 백성을 용맹한 전사이자 또 예의를 아는 사람들로 만들 자신이 있습니다."

공자는 자로의 대답을 듣고 웃었다. 이어 염구가 대답한다.

"사방이 수십 리에 불과한 작은 나라를 저에게 다스리라고 한다면, 3년 안에 백성을 풍족하게 할 것입니다. 예악으로 수양을 하고, 현인과 군자를 모셔와 가르침을 베풀겠습니다."

공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공서화가 대답한다.

"제게 그런 재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공부를 하고 싶을 뿐입니다. 종묘(宗廟)에서 제사를 지내거나 제후들이 회맹할 때 예복을 입고, 예모를 쓰고 그저 의식을 진행하는 들러리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공자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증점이 대답한다.

"저의 포부는 꽃피는 따뜻한 봄날이 오면 대여섯 명쯤 되는 어른과 예닐곱쯤 되는 아이를 데리고 기수에서 목욕도 하고 무우대에 올라 바람도 쐬고 노래도 부르다 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증점의 대답에 주위에 있던 제자들은 기다렸단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공자만은 예외였다. 공자는 증점의 포부를 칭찬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자공은 의문을 품는다. 증잠이 칭찬받은 이유를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공자에게 물었다.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공아,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사람이 세상을 사는 데는 일뿐 아니라 생활도 있는 법이니라. 너는 늘 멀리 하늘과 땅이 맞닿는 곳까지 다니기를 좋아하지. 그것은 언제나 하늘에 떠 있는 아름다운 별을 좇기 때문이니라. 하지만 별을 좇으면서도 길가의 꽃 역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니라."

당시 공자와 자공 역시 무우대에 올라 있었다. 공자의 대답을 들은 자공은 처음에는 스승의 말을 납득하지 못했다.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뭐가 잘못되었다는 말인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천천히 주위를 돌아보며 아름다운 경치에 마음을 내어주니 더없이 유쾌해지는 것이 아닌가. 자공은 공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비로소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공자는 이어 자공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이런 순간을 더 체험하고 느껴보아야 하지 않겠느냐?"

나는 자공처럼 일이 좋아 일 생각만 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였다. 일에 너무 지쳐 일 생각만 했었다. 일 외의 것에 관심을 둘 여력이 없었던 셈이다. 일만하는 데도 나는 점점 더 지쳐갔다. 적응할 만큼 적응했음에도 고되기만 했다. 그때는 내가 왜 이러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일이 나를 이렇게 만드는구나, 하며 점점 위축돼 갔을 뿐이다.

이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내겐 생활이 없었던 것이다. 일이 힘들다는 이유로 삶에서 생활을 제거해 버린 탓이다. 생활이 내 삶에 활력을 주고, 유쾌함을 주고, 새 바람을 불게 해주리라는 걸 알지 못했다. 생활이 돼야, 일도 된다는 걸 몰랐던 셈이다. 알고 지내는 어린 친구들이 하나둘 취업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묻는다.

"회사 생활을 잘할 수 있는 팁이 뭐예요?"

나는 이렇게 대답해주었다.

"자주 콧바람을 맞아. 그래야 일도 잘할 수 있어."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 - 불멸의 인생 멘토 공자, 내 안의 지혜를 깨우다

우간린 지음, 임대근 옮김, 위즈덤하우스(2014)


태그:#공자,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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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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