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아시안컵에서 가장 화제를 모으는 선수는 단연 '차미네이터' 차두리(FC서울)다. 아시안컵이 끝나면 국가대표 은퇴를 하겠다고 선언한 차두리는 남은 아쉬움을 털어내려는 듯 20대 초반처럼 거침없이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다.

특히 지난 22일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에서 나왔던 '60m 폭풍질주'는 차두리 축구인생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아도 될 만큼 인상적이었다. 우즈베키스탄전의 대활약에 가려지긴 했지만 8강 진출의 고비였던 13일 쿠웨이트전에서 남태희의 결승골을 배달한 선수 역시 차두리였다.

이렇게 36세 차두리의 활약이 빛나는 가운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한국의 수비진을 이끄는 또 한 명의 35세 노장 선수가 있다. 바로 이번 대회 무실점 행진의 숨은 주역 곽태휘(알 힐랄)가 그 주인공이다.

투혼의 센터백 곽태휘, 월드컵 시즌만 되면 찾아온 불운

곽태휘는 사연이 많은 선수다. 곽태휘는 대구공고 2학년 시절 강하게 날아온 공에 왼쪽 눈을 맞는 사고를 당해 왼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는 상태다. 실명에 가까운 한 쪽 눈을 가지고도 프로 선수, 더 나아가 대표팀에 선발된 것만 봐도 곽태휘의 투혼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곽태휘는 전남 드래곤즈에서 활약하던 지난 2007년 27세의 다소 늦은 나이로 대표팀에 발탁됐다. 대표팀에서도 좋은 활약을 이어가던 곽태휘는 2010년 남아공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의 주전 센터백 자리를 사실상 예약했다.

하지만 본선 직전에 열린 벨라루스와의 평가전에서 무릎부상을 당하며 최종 엔트리에서 제외되는 불운을 겪었다. 2011년 카타르 아시안컵에서는 부진한 경기력으로 대회 도중 주전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하지만 곽태휘는 좌절하지 않았다. 2011년 울산 현대에서 활약하면서 9골을 기록, '골 넣는 수비수'로 명성을 얻으며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곽태휘의 활약에 힙입어 울산은 2011년 리그컵 우승과 정규리그 준우승, 2012년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곽태휘는 브라질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포함되며 드디어 꿈에 그리던 월드컵 출전의 꿈이 이뤄지는 듯했다. 하지만 가나와의 평가전에서 부진하며 홍명보 감독의 눈길을 잡는 데 실패했고 결국 조별리그 3경기에서 한 번도 출전하지 못했다.

그렇게 곽태휘는 34세의 적지 않은 나이에 월드컵에 1분도 뛰어 보지 못한 불운한 선수로 기억되며 대표팀 생활을 쓸쓸히 마감하는 듯 했다. 하지만 을미년 새해 35세가 된 곽태휘에게 아시안컵이라는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아시안컵 우승, 대표팀에서의 아쉬움 날릴 절호의 기회

사실 아시안컵에서도 곽태휘의 존재감은 그리 크지 않았다. 대표팀에 김주영(상하이 상강), 김영권(광저우 헝다), 장현수(광저우 푸리) 등 젊은 센터백 자원이 많았고 곽태휘도 훈련 도중 가벼운 엉덩이 부상을 당해 제 컨디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만전, 쿠웨이트전에서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곽태휘 카드를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엔트리에 포함되고도 경기에 나서지 못했던 브라질 월드컵의 악몽이 재현되는 듯했다. 하지만 13일 쿠웨이트전에서 뜻하지 않은 변수가 생겼다. 김주영이 왼쪽 발목 부상을 당하고 장현수가 경고를 받게 된 것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8강 진출이 확정된 상황에서 무리를 할 필요가 없었고 17일 호주와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곽태휘를 주전으로 내세웠다. 곽태휘는 풀타임으로 그라운드를 누비며 호주의 파상공세를 무실점으로 버텨냈고 슈틸리케 감독의 눈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곽태휘는 호주전부터 본격적으로 대표팀의 주전 센터백으로 올라섰고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 이라크와의 4강전에서 모두 풀타임으로 활약하며 한국의 결승진출을 이끌었다. 특히 8강에서는 아시아축구연맹(AFC)에서 선정한 경기 최우수 선수(Man of the Match)에 선정되기도 했다.

곽태휘는 스피드가 느려 공격수와의 속도 경쟁에서는 다소 약점을 보이지만 189cm의 큰 신장과 높은 점프력을 앞세운 헤딩 경합만큼은 단연 대표팀 내 최고다. 팀 케이힐 등 헤딩에 능한 선수들이 즐비한 호주와의 결승에서 곽태휘가 중용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곽태휘는 헤딩능력이 좋아 세트피스 상황에서는 공격에도 적극 가담한다. 준결승에서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센터백 김영권의 추가골이 나온 것처럼 결승에서는 또 한 명의 센터백 곽태휘가 의외로 '대형사고'를 칠 수도 있다.

1981년생 곽태휘는 러시아 월드컵이 열리는 2018년이 되면 한국나이로 38세가 된다. 차두리처럼 대표팀 은퇴를 선언한 적은 없지만 곽태휘에게도 이번 아시안컵은 최상의 몸 상태로 뛸 수 있는 마지막 메이저 국제대회가 될 수도 있다. 적지 않은 풍파와 우여곡절을 겪은 곽태휘의 대표팀 생활에 아시안컵 우승이라는 멋진 선물이 찾아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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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컵 결승 곽태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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