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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랑주의보가 해제괴고 하루만에 매화도로 들어가는 연안여객선 선실 풍경.
 풍랑주의보가 해제괴고 하루만에 매화도로 들어가는 연안여객선 선실 풍경.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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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연안여객선 선실은 여느 사랑방과 같다. 화로대신 난방기가 내뿜어주는 바람은 따뜻하다. 한 다리 건너면 다 알법한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있다. 어떤 이들은 삼삼오오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섬에 살아도 여전히 멀미가 두려운 사람들은 벌써 자리를 잡고 누웠다.

젊은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수다를 떠느라 지루한 줄 모르고, 이래저래 섞이기 싫은 사람들은 습관처럼 텔레비전을 본다. 섬으로 가는 여객선 텔레비전에선 '세계테마기행, 대륙의 숨은 보석 저장성 편'이 방송되고 있다. 바다에서 내륙의 풍경을 구경한다. 섬에서 대륙의 이야기를 듣는다.

풍랑주의보가 해제되고 나서 첫배라 평소보다 사람들이 많다. 매화도는 압해도 송공항에서 40여 분만 가면 된다. 하지만 아무리 짧은 거리라도 바닷길은 가고 싶다고 언제든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바람 불어 파도가 높아질라치면 길은 끊기고 만다. 바람이 잦아들어야 길은 다시 난다. 하루 만에 열린 길, 저마다의 사연도 하루가 묵혀진 채 섬으로 들어간다.

매화도(梅花島)는 섬의 모양이 매화꽃이 피어 있는 것처럼 아름답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해서 주산(主山)도 매화산(해발 238m)이다. 섬치고는 기복이 큰 산지 형세라 매화산 외에도 노망산, 안산, 무제봉, 장군봉 등이 매화도의 동맥을 이루고 있다. 이 봉우리 능선을 따라 바닷가를 향해 목너머들, 담너머들, 작은고랑들 등 들판이 번져있다. 들판 끝에 바다가 있으니 매화도는 자연환경으로 갖출 건 다 갖춘 셈이다.

매화도 덕석할멈을 아십니까

매화도에는 목너머들, 담너머들, 작은고랑들 등 들판이 바다로 향하고 있다.
 매화도에는 목너머들, 담너머들, 작은고랑들 등 들판이 바다로 향하고 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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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도를 더욱 매력있게 만드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설화다. 대개의 섬마을 설화들이 신화의 경지로 나아가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매화도의 설화는 신의 영역으로 나아가지 않고 인간의 영역에 머무른다. 

매화도엔 덕석할멈 설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너무 가난해서 옷도 못해 입고 덕석을 옷 삼아 두르고 사는 늙은 할머니가 있었다. 할머니네 집은 하루하루 바다에 나가 먹을 것을 구해 와야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다.

마침 그날은 햇볕도 따뜻해 할머니는 덕석을 두르고 굴을 따러 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날이 어두워지더니 추위가 몰려왔다. 할머니는 굴을 따지 않으면 식구들이 굶어죽는다는 생각에 추위를 꾹 참고 계속 굴을 땄다. 추위는 갈수록 심해졌다.

식구들 먹을 만큼 굴을 딴 할머니가 집에 가기 위해 일어서려고 했지만 몸은 돌덩이처럼 굳어버려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결국 할머니는 몸이 굳은 채 죽고 말았다. 그래서 그날 음력 2월 8일이면 어김없이 추위가 온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겨울은 가장 두려운 계절이다. 매화 피고나면 봄이 온다. 덕석할멈도 매화 피고 찾아올 봄을 손꼽아 기다렸을 것이다. 봄이 오면 들에 핀 참꽃이라도 따먹을 수 있었을 테고, 봄이 오면 아지랑이라도 붙잡아 언 몸 녹일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봄은 가혹하게 천천히 온다.

학교 동판이라도 달아뒀다면 좋았을 텐데

지금은 폐교가 된 매화분교. 정문에 학교 이름 새겨진 동판까지 떼어버려 더욱 애잔하다.
 지금은 폐교가 된 매화분교. 정문에 학교 이름 새겨진 동판까지 떼어버려 더욱 애잔하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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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모양이 매화 피는 모습을 닮았다 해서 매화도다. 매화도는 봄을 맞이하는 섬이다.
 섬 모양이 매화 피는 모습을 닮았다 해서 매화도다. 매화도는 봄을 맞이하는 섬이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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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설화는 잠시 갯벌에 묻어두고 대동마을로 향했다. 섬을 돌 때마다 우물 찾듯 찾는 곳이 있다. 학교 터다. 대동마을은 압해초등학교 매화분교가 있던 마을이다. 매화 피는 모양처럼 아름다운 섬에서 매화처럼 예쁜 꿈을 키우며 자랐을 아이들이 다녔던 학교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보건소 지나 옛 매화분교가 나타났다. 이제는 폐교가 돼버린 매화분교는 마을을 살짝 내려다보고 있는 위치에 있다. 그리고 햇볕 한줌 새나가지 않고 그대로 받아 안는 양지 바른 자리다. 섬사람들은 마을에서 가장 좋은 자리를 내어 학교를 짓고 자식들을 공부시켰을 것이다.

정문 기둥에 학교 이름이 새겨져있던 동판을 떼어낸 흔적이 선명하다. 비록 폐교가 됐을지언정 동판이라도 그대로 붙어있었다면 헛헛함이 덜 했을 것이다. 이 작고 예쁜 섬마을 학교에서 뛰놀고 공부했던 아이들이 나이 들어 돌아와 학교 이름 새겨진 동판이라도 어루만질 수 있게 해줬더라면…. 아이들의 추억도 함께 떼어간 것 같아 마음 쓸쓸해진다.

섬에서든 육지에서든, 시골이든 도시든 할 것 없이 요새 '마을 만들기' 사업이 유행이다. 죽은 마을 또 죽어가는 마을 살리겠다고 나서는 것이야 얼마나 좋은 일인가. 하지만 자칭 전문가 몇 사람이 들어와 계몽운동하듯 벽화 몇 개 그리고 떠나버리면 마을이 살아날까.

마을도 사람이 사는 공간이다. 주민이 주인으로 살아나지 않으면 결코 마을은 살아날 수 없다. 그리고 마을이 살아나려면 마을 학교가 살아나야 한다. 마을 학교가 살아난다는 것은 마을에 아이들이 있고, 무언가를 배우러 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영광군에 터를 잡은 여민동락 공동체의 사례는 두고두고 되새겨봐야 하는 마을 살리기의 좋은 본보기다.   

바닷가에 있는 마을 공동작업장이 힘차게 돌아가는 날은 언제일까. 마을이 살아나려면 주민이 살아나야 한다.
 바닷가에 있는 마을 공동작업장이 힘차게 돌아가는 날은 언제일까. 마을이 살아나려면 주민이 살아나야 한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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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도에서 압해도로 가는 길, 양식장 부표 너머로 연륙교 공사가 한창이다.
 매화도에서 압해도로 가는 길, 양식장 부표 너머로 연륙교 공사가 한창이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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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텅거리는 철부선 갑판 위에서 멀어져가는 매화도를 바라본다. 봄을 맞이하는 섬 매화도, 봄으로 이끌어갈 섬 매화도. 시린 겨울, 한파보다 더한 외로움으로 겨울을 힘들게 나고 있을 벗들에게 미리 매화도의 봄 인사를 전한다.

"그대는 세상에 하나뿐인 가장 귀한 꽃입니다. 흔들려도 아름답습니다. 아파도 아름답습니다. 온전히 당신을 신뢰합니다. 힘내세요, 그대를 사랑합니다."


태그:#신안군 작은섬, #매화도, #마을만들기, #설화, #폐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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