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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소설가 마크트웨인은 "고전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다"라며 인류 정신의 보고라는 고전을 대하는 현대인들의 태도에 대한 모순을 지적했다. 이는 제목은 알고 있지만, 그 작품 자체를 제대로 읽어내는 독자는 많지 않다는 현상에 대한 비판이다.

여기서 '제대로'라는 의미는 작품의 내용은 물론 그 책이 가지는 함의를 나름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사유의 과정을 포괄한다. 그렇다면 피에르 바야르 교수의 다음 주장은 어떤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진정한 창조 활동이라 할 수 있다"(p.234).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고 게다가 그것이 진정한 창조 활동이라니! 마크트웨인과 피에르를 사이에 두고 '읽을 것이냐, 말 것이냐' 어리둥절하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피에르 바야르 교수의 주장을 따라가 보자.

프랑스 파리8대학 교수이자 정신분석학자인 피에르 바야르의 독서에 대한 대담무쌍한 주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에서 우리가 전통적으로 당연시 해온 독서에 대한 금기를 되짚으며 독서법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독서가 신성시 되는 사회에서 책을 읽지 않거나, 대충 읽어버리는 것이 눈총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경우에 따라 "심지어 어떤 책에 대해 정확하게 말하기 위해서는 그 책을 통독하지 않거나 아예 펼쳐보지도 않는 편이 바람직할 수도 있다."(p.13)라고 말한다. 또한 저자는 문학을 가르치는 자신 또한 강의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책을 읽지 않았다는 충격적인(?)고백을 한다.

저자는 "독서는 우선 비(非)독서라 할 수 있다"(p.26)라고 말한다. 삶을 온통 독서에 바치는 대단한 독서가라 할지라도 이 세상 모든 책을 읽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책을 읽지 않는 것은 책에 대한 총체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게 해준다고 설명한다.

총체적 시각이란 "전체 속에서 길을 잃지 않을 줄 안다는 것으로 그것들이 하나의 앙상블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고, 각각의 요소를 다른 요소들과의 관계 속에 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p.31). 교양인이 갖추어야할 학식은 특정의 어떤 책이 아니라 책과 책들 사이의 소통과 연결선들을 인식하는 것이다. 물론 책을 전혀 읽지 않는다고 총체적 시각이 길러지는 것은 아니다.

저자가 말하는 독서가는 책의 본질, 즉 그 책이 다른 책들과 관계 속에서 처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책 읽기를 스스로 자제하는 적극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비독서자들이 교양인인 경우라면, 그것은 독서의 부재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다! 저자의 주장은 단순히 '비독서'를 말하지 않는다. 맹목적인 독서가 가져올 수 있는 병폐를 경계하며 책과 책의 관계를 파악하고 나아가 책과 세상을 연결하는 맥락을 파악하여 세상에 대한 큰 시야를 가지라는 의미이다. 그러기 위해서 읽지 않은 책을 말해야 하는 상황에 대해 창피해하지 말고, 책을 신성한 대상으로 생각할 필요도 없으며 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할 것을 강조한다. 

"이런 저런 책을 읽지 않았다는 건 교양인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비록 그가 그 책의 '내용'을 정확히 모른다고 하더라도, 종종 그 책의 '상황', 즉 그 책이 다른 책들과 관계 맺는 방식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책의 내용과 그 책이 처한 상황의 이러한 구분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교양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어떤 주제에 대해서든 별 어려움 없이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덕택이기 때문이다."(p.31)

저자가 드는 '몽테뉴'의 사례는 흥미롭다. 몽테뉴는 읽은 책은 물론이고 자신이 쓴 책에 대해서조차 잊어버리는 건망증을 가졌다. 그는 기억하기 위해 책의 말미에 읽은 날짜와 책에 대한 개략적인 내용과 소감을 적었다고 한다.

몽테뉴는 읽었다는 사실 조차 잊어버리는 책은 읽은 것인가? 읽지 않은 것인가?라는 의문을 가졌다. 인간에게 '망각'은 오히려 축복이지 않을까. 기억하기 위해 책을 접고, 밑줄을 그으며, 노트에 정리하는 흔적을 남긴다. 그런 일련의 '흔적'의 기록들이 그 사람의 정신을 살찌우는 영양분일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독서를 해야할 것인가. 몽테뉴보다 기억력이 더 뛰어나지 않다면, 그 보다 남기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인문학자 정수복의 다음 전언은 귀담아 둘 필요가 있다.

"나는 오늘도 세상의 모든 독자가 자기가 원하는 책을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읽으면서 자기만의 고유한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책에 대해 던지는 7가지 질문>10쪽) -정수복.

바로 나만의 독서 방법을 터득하는 것. 위대한 작가들이 창조해낸 우주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읽기는 깊고 넓은 독서의 기쁨으로 우리에게 환원될 것이다.

"인간은 육체적으로는 성장하다가 멈추나 정신은 계속 자랄 수 있다. 정신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자양분은 독서에서 온다. 관심 분야를 넓게 가지고 여러 분야의 책을 교차해서 읽는 것, 나는 그것을 맥락의 독서라고 부른다.

중국 관련 책을 읽었다고 하면, 중국 역사, 철학, 중국 사람이 쓴 책도 읽고, 중국 경제와 국제 관계 등을 읽는 것이다. 하나하나 뚝뚝 떨어져서 천 권을 읽느니 관련 있는 책들을 읽으면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한 작가의 책을 읽는 것도 좋겠다."-사회학자 정수복

피에르 바야르, 정수복 교수, 몽테뉴에 이어 내가 권하고 싶은 독서법은 '음미하며 읽기'이다. 천천히 읽으면 빨리 읽었을 때 놓칠 수 있는 작은 보석을 발견할 수 있다. 의미 없어 보이는 책도 천천히 되새기다 보면 나에게 큰 깨달음을 줄 수도 있다. 내 삶이 풍요로워지는 독서법을 찾고 싶다면 천천히 읽으면서 깊게 음미하는 시간을 찾기를! 

덧붙이는 글 |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피에르 바야르/여름 언덕/ 2013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피에르 바야르 지음, 김병욱 옮김, 여름언덕(2008)


태그:#독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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