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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청년유니온 주최로 국회의원 회관에서 열린 '청년 과도기 노동 당사자 증언대회'.
 28일 청년유니온 주최로 국회의원 회관에서 열린 '청년 과도기 노동 당사자 증언대회'.
ⓒ 박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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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날에 뭘 해야 하는지 설명해주는 사람도 없었고 제가 했던 업무 중 90%는 청소와 설거지였어요. 마치 자원봉사를 하러 온 느낌이었습니다."

미술관에서 무급 2개월 인턴을 한 A(24)씨는 담담한 표정으로 증언을 이어갔다. 그는 "미술관 인턴을 하면 취업시 전공을 살리는데 도움이 된다는 학과 교수님의 조언을 듣고 식비만 받고 일했지만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채로 인턴을 마쳤다"고 말했다.

28일 오전 10시 청년유니온 주최하고 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이 후원한 '청년 과도기 노동 당사자 증언대회'가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두 증언자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미술관과 영화제 단기 인턴이었다.

이날 증언대회에 대해 이기원 청년유니온 대학생팀장은 "최근 패션업계 무급인턴 논란, 위메프의 수습직원 갑질해고 등 일자리에 대한 청년들의 절박함을 악용한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며 "노동과 교육의 불안정한 지위에 내몰린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인턴 업무는 'Ctrl+C, Ctrl+V'의 무한반복

누군지 알아챌까봐 근무 기간을 밝히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하던 B씨는 영화제 홍보팀에서 단기 근무했다. "영화가 좋아서 일하고 싶었다"는 B씨는 관련 학과를 전공하지 않아 여러 정보를 얻기 위해 인턴에 지원했다고 한다.

정확한 월급은 명시돼 있지 않았지만 모두가 70만~80만 원 선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면접 후 알게 된 월급은 40만 원이었다. 인턴들이 불만을 제기하자 관계자는 '미리 언급했는데 왜 지금 와서 그러냐'고 말했다고 한다.

"홍보팀 인턴들은 6개월 단위로 바뀌다보니 항상 소모적인 업무만 맡았어요. 이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선배들도 '어차피 떠나야 하는 사람'이라고 인식해 일을 잘 가르쳐주지 않았고 관계를 맺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서로 대화가 없으니 선배에게 근무 조건에 대한 불만은 꺼내지도 못했어요. 만약 지금의 인턴십 제도를 그대로 둔다면 해당 업계에도 장기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겁니다."

일반 기업 인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영상 인터뷰에 응한 C씨는 대학 취업지원센터와 산학협력으로 세 번의 인턴을 했다. 세 번이나 한 것은 별탈없이 첫 인턴을 끝낸 이유도 있었지만 스펙을 많이 쌓아야 좋은 곳에 취업할 수 있다는 이유가 더 컸다. 그는 정직원과 똑같은 업무를 했지만 한 달에 30만 원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30만 원으로는 식비와 교통비를 충당하기도 어려워 주말에 따로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고 말했다.

"'Ctrl+C, Ctrl+V'식의 단순 업무만 반복했어요. 출장갔는데도 출장비를 챙겨주지 않을 때도 있었고요. 제가 그만큼의 하찮은 대우를 받을 건 아니었는데... 현장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시작했지만 사실상 아주 값싼 아르바이트생 신세였습니다. 다시는 인턴으로 일하지 않을 겁니다."

인턴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일반기업 사무직 인턴 실태를 고발한 C씨의 영상 인터뷰 장면.
 일반기업 사무직 인턴 실태를 고발한 C씨의 영상 인터뷰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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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노조 대표 '배트맨D'도 간담회를 찾았다. 패션노조는 지난 22일 패션업계의 신체차별을 규탄하는 내용의 진정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했다. 그는 "언론에서 패션이나 이미용, 제과제빵 업계는 도제 시스템으로 운영된다고 말하지만 도제는 더 이상 이들 업계에 적용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상봉 같은 유명 디자이너는 디자인보다는 회사 경영에 집중하고 있으며, 결국 스승, 제자가 아닌 일반 기업의 사장과 직원에 더 가깝다는 의미다.

"주식회사 이상봉은 사원 100명이 넘는 중소기업입니다. 이상봉 대표는 전 직원들 이름도 모릅니다. 그게 어떻게 스승입니까. 유명 디자이너이자 교수인 D씨는 무급인턴을 8명 이상 고용해 자신의 매장에서 의류 판매를 시키고 판매실적이 나쁘면 화를 냅니다. 인턴 제도에 대한 마땅한 시스템 없이 모든 것을 사람 손에만 맡겨 놓으니 탐욕으로 인한 인권 침해가 발생하는 겁니다."

'인턴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도 진행됐다. 이상훈 청년유니온 자문 노무사는 "시용이나 수습직원과 달리 인턴, 현장실습생 등은 경력 쌓기나 학습이 목적이기에 실습비를 받는다 해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볼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들이 시용(근로계약 체결 후 일정 기간을 두어 근로관계 계속 여부를 최종결정하는 제도), 수습직원과 똑같은 업무를 하고 연장, 휴무 근로를 하는 경우도 있기에 상황에 따라 근로자로 판단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과도기 노동'을 위한 법과 제도 마련이 시급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과도기 노동'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청년들이 정규교육과정 후에도 인턴, 실습, 강습 등을 경험하다 보니 실제 노동현장으로 가기 전 과정이 굉장히 길어졌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과도기 노동'에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착취 당하는 사례가 갈수록 증가한다는 점이다.

김 위원장은 "최근 논란됐던 패션업계의 무급인턴, 위메프 수습직원 해고 외에도 과도기 노동의 비중이 커졌기 때문에 여기에 속한 청년들의 노동 조건과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법과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인턴 착취 문제는 특정 업체의 사례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만연한 문제"라며 "2월 국회에서 고용노동부가 법 제정 및 정비에 나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미국에서는 무급인턴 사용시 6가지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는 내용이 연방대법원 판례와 노동부 고시로 명시돼 있다. 장 의원은 "한국의 노동 환경에 적합한 가이드라인과 기준을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국회 안에도 많은 청년들이 무급 또는 최저임금 미만을 받고 '스펙'을 위해 일하는 경우가 존재한다"며 "멀리 있는 문제만 발굴할 게 아니라 국회를 비롯한 특히 공공 영역의 무급인턴 문제도 꼭 다루겠다"고 밝혔다.


태그:#청년인턴, #인턴착취, #위메프, #이상봉, #청년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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