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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1163차 수요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노환으로 별세한 위안부 피해자 황선순 할머니의 죽음을 애도하며 영정 앞에 헌화하고 있다.
▲ '고 황순선 할머니 편히 잠드소서'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1163차 수요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노환으로 별세한 위안부 피해자 황선순 할머니의 죽음을 애도하며 영정 앞에 헌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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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동, 묵념."

250여 명의 시민들은 빈 의자를 앞에 두고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긴 침묵 사이로 누군가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보라색 천으로 덮인 의자 위에는 '고 황선순 할머니 편히 잠드소서'라는 글씨가 적힌 액자가 놓여있었다. 참석한 이들은 하나 둘씩 나와 빈 의자 위에 흰색 국화꽃을 올렸다. 

28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제1163차 수요집회가 열렸다. 이날 집회는 평소와 달리 묵념과 함께 시작했다. 지난 26일 전남의 한 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한 위안부 피해자 황선순(89) 할머니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서였다. 황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8명 중 생존자는 54명으로 줄었다.

묵념이 끝난 후,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 상임대표는 헌화가 놓인 빈 의자에 대해 설명했다.

윤 대표는 "황 할머니의 자리는 중요한 자리였다"며 "빈 의자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노력한 자리이지만, 여전히 결실을 보지 못한 자리"라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는 이 빈자리를 연대의 자리로 만들어야 한다"며 "역사를 잘 모르는 젊은 세대들에게 할머니의 실상을 알리는 것이 우리가 여기 있는 이유다"라고 밝혔다.

"많은 할머니들이 돌아가시는 가운데 또 한 분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각계가 연대해 떠난 할머니 뿐 아니라 앞으로 돌아가실 분들의 몫까지 힘껏 싸워야 한다. 남아있는 피해자들은 전국 각지에서 힘겹게 삶을 이어가고 있다. 남은 할머니들이 일본과의 힘겨운 싸움을 포기하지 않도록 존경과 사랑을 표현해 달라."

17세 때 남태평양으로 끌려간 황선순 할머니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1163차 수요집회'에 참석한 학생과 시민들이 일본 위안부 범죄의 진상규명과 공식 사과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미안하다' 한 마디가 그렇게 어렵나요?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1163차 수요집회'에 참석한 학생과 시민들이 일본 위안부 범죄의 진상규명과 공식 사과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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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공장에 취직시켜준다는 말에 속아 17세 때 남태평양으로 끌려간 고 황선순 할머니는 3년간 위안부로 고초를 겪었다. 해방 후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뇌경색, 당뇨 등으로 힘겨운 삶을 이어가야 했다. 

이날 집회에는 추운 날씨에도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김복동 할머니가 참석했다. 시민들은 두꺼운 패딩 옷을 입고, 목도리로 바람을 막았다. 코끝이 빨갛게 변한 위안부 할머니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집회 참여자들의 발언을 경청했다. 시민들도 집회가 끝날 때까지 대부분 자리를 지켰다. 

이날 집회는 고등학생 연합봉사동아리인 HIT의 진행으로 이뤄졌다. 자유발언에 나선 일부 학생들은 준비한 발언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느라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때마다 시민들은 박수를 보냈다.

자유발언에 나선 박보영씨는 "내가 이렇게 자유발언을 하는 것도 큰 의지와 용기가 필요했다"며 "그런데 위안부 할머니들이 가진 용기를 보며 내 자신이 부끄럽다"고 말했다. 이승은씨는 도종환 시인의 시 '담쟁이'를 낭송했다. 이씨가 "저것은 벽 /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라고 시를 읽자, 시민들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발언을 하지 않은 시민들도 팻말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다. 한 여고생은 '진실은 반드시 밝혀지고 꽃은 절대로 지지 않습니다'라는 팻말을 들었고, 다른 학생들은 '황선순 할머니 보고 싶어요. 사랑합니다', '기억은 살아있습니다. 우리가 이어가겠습니다'라는 팻말을 들었다.

"사죄하면 마음 놓고 훨훨 나비가 돼 떠나고 싶어요"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1163차 수요집회'에 참석한 부개여고 학생들이 일본 위안부 범죄의 진상규명과 공식 사과를 촉구하며 '세상에 비밀은 없듯이 역사를 덮을 수는 있어도 영원히 감출 수는 없습니다'라는 글자를 만들어보이고 있다.
▲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 회피 하나'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1163차 수요집회'에 참석한 부개여고 학생들이 일본 위안부 범죄의 진상규명과 공식 사과를 촉구하며 '세상에 비밀은 없듯이 역사를 덮을 수는 있어도 영원히 감출 수는 없습니다'라는 글자를 만들어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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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일본정부가) 잘못을 뉘우치고 하루빨리 사죄하면, 마음 놓고 훨훨 나비가 되어 세상을 떠나고 싶어요."

김복동 할머니는 일본 정부의 사죄를 거듭 촉구했다. 김 할머니는 고 황선순 할머니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부탁하자, "저승에 가서 영혼이 되거든 아베라는 놈 면상을 잡고 흔들어줬음 좋겠어"라고 말했다.

모든 집회 일정이 끝난 뒤에도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먼저 자리를 빠져나갈 때까지 시민들은 자리를 지켰고, 멀어져가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정대협은 이날 성명을 통해 "남은 할머니들은 일본의 진실한 사죄만을 기다리며 여생을 사실 것"이라며 "하지만 일본 정부는 책임 회피와 역사 왜곡과 같은 비겁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일본정부는 피해자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면 끝이라고 생각하겠지만 피해 할머니들을 보고 역사를 배운 우리들은 일본 정부의 사죄를 받아낼 때까지 이 수요집회 자리를 끝까지 지키겠다"고 덧붙였다. 

윤미향 대표는 집회 후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며 "일본은 독일 메르켈 총리가 '나치의 학살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의 영원한 책임이다'라 말한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덧붙이는 글 | 이진혁 기자는 오마이뉴스 21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위안부 할머니, #황선순, #수요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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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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