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빅 아이즈>와 팀 버튼 감독, 그리고 '빅 아이즈' 그림들.

영화 <빅 아이즈>와 팀 버튼 감독, 그리고 '빅 아이즈' 그림들. ⓒ 판씨네마(주)


28일 개봉한 <빅 아이즈>는 팀 버튼에게 여러 의미로 특별한 영화다. 어린 시절 동경해마지 않았으며, 실제로 지금도 비싼 가격의 '빅 아이즈' 그림을 소장하고 있다는 그 마가렛 킨의 실화를 영화화한 것이다. 팀 버튼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빅 아이즈'는 내게 아주 가까운 예술이었고, 늘 나를 지켜보는 것 같은 그 큰 눈에서 예술적 영감을 받았다"며 존경을 전한 바 있다. 

'빅 아이즈'는 1950~60년대 미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그림들을 일컫는다. '빅아이즈'의 작가로 알려진 윌터 킨은 그림과 포스터 판매를 겸하며 대중미술 상업화의 전기를 마련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1986년 경 부인인 마가렛 킨이 윌터를 고소하면서 그림들의 실제 화가가 마가렛 킨이었다는 일대 스캔들이 터지기에 이른다. 마가렛 킨은 이 드라마틱한 이야기에 눈독을 들인 여러 할리우드 제작자의 영화화 제안을 받았지만, 팀 버튼 감독을 직접 만나고 나서야 흔쾌히 동의했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빅아이즈>에서 팀 버튼은 그의 사단과도 같았던 배우들과의 전면적인 결별을 선언했다. <빅 아이즈>는 무려 1996년작인 <화성침공> 이후 조니 뎁, 헬레나 본헴 카터가 등장하지 않는 첫 번째 영화이기도 하다. 그가 선택한 에이미 아담스와 크리스토프 왈츠는 독창적이고 안정적인 연기로 화답했고, 그 중 에이미 아담스는 이 영화로 올해 골든글러브 뮤지컬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예술과 창작, 인간과 관계에 대한 색다르면서도 본질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빅 아이즈>는 최근 팀 버튼의 필모그래피로 봤을 땐 규모나 북미 흥행 성적 면에 있어 꽤나 돌출적인 소품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곳곳에 팀 버튼만의 여전한 개성과 전작들과의 연결고리를 찾는 재미로 쏠쏠하다. <빅 아이즈>에서 확인할 수 있는 팀 버튼의 인장들을 네 편의 영화로 정리했다. 스틸 사진들만 봐도, 그는 여전히, 그리고 역시나 '비주얼리스트'다.

두 예술가에게 헌사하는 실화영화 <에드우드>와 <빅 아이즈>  

 영화 <에드우드>의 한 장면과 팀 버튼 감독과 생전의 배우 빈센트 프라이스(위 좌, 우). <빅 아이즈>의 한 장면과 실제 마가린 킷과 그를 연기한 배우 에이미 아담스.

영화 <에드우드>의 한 장면과 팀 버튼 감독과 생전의 배우 빈센트 프라이스(위 좌, 우). <빅 아이즈>의 한 장면과 실제 마가린 킷과 그를 연기한 배우 에이미 아담스. ⓒ 브에나비스타, 판씨네마


예술가와 실화. 이 두 키워드로 <에드우드>를 연상하는 이라면 팀 버튼의 골수팬이 맞다고 보면 된다. <배트맨> 1, 2편의 성공이후 개인적인 작업을 할 여력을 갖춘 팀 버튼은 존경해 마지않았던 B급, 아니 C급 영화감독 에드워드 D. 우드 주니어에게 애정 어린 헌사를 바쳤다. 바로 자신의 페르소나인 조니 뎁을 데리고서.  

<시민 케인>의 오손 웰즈를 존경했던 영화감독이었지만, 에드우드에겐 거대 예산도, 예술가로서의 기반도 전무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그는 넘치는 열정을 바탕으로 자기 상황에서 만들 수 있는 B급 영화들을 양산해낸다. <글렌 혹은 글렌다>나 <외계로부터의 9호 계획>과 같은 작품은 여전히 '괴작'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예술이란, 창작이란 무엇인가. <빅 아이즈>는 이런 질문에 대한 <에드우드>의 대구와도 같다. 자신의 창작물을 남편에게 도둑질 당한 마가렛 킨의 실화는 앞선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팀 버튼식 답변일 것이다. 또한 <에드우드>와 마찬가지로 어릴적 지대한 영향을 받았던 예술가에 대한 애정고백이기도 하다. <빅 아이즈>가 더 반가운 이유는 그렇게 어떤 상황에서도 창작의 의지를 잃어버리지 않는 예술가들을 향한 응원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리라.

유년시절의 팀 버튼에게 영감을 준 '빅 아이즈' 그림들과 <프랑켄위니>

 영화 <프랑켄 위니>(위 좌, 우)와 <빅 아이즈>의 스틸컷.

영화 <프랑켄 위니>(위 좌, 우)와 <빅 아이즈>의 스틸컷. ⓒ 월트디즈니코리아, 판씨네마


지난 2012년 개봉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프랑켄위니>는 1984년 만든 동명 단편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한국에서도 흥행했던 '팀 버튼전'에서도 따로 섹션을 만들만큼 초기 그의 작품에서 빠질 수 없는 이정표와도 같은 작품이다. 애완견 스파키를 부활시키는 어린 빅터는 유년시절 팀 버튼의 기괴한 상상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으로 <프랑켄슈타인>에서 영향을 받은 흔적이 역력하다.

<프랑켄위니>의 주인공 스파키나 그와 절절한 우정을 나누는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큰 눈이야말로 '빅 아이즈'가 유년시절 팀 버튼에게 끼친 결정적 증거라 하겠다. 또 다른 애니메이션 <크리스마스 악몽>이나 <유령신부> 모두 팀 버튼 특유의 그림체가 인장처럼 박혀 있는 작품들이다. '빅 아이즈' 그림들로 가득 찬 영화 속 장면들을 마주할 때면, '이것이 팀 버튼표 영화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될 것이다.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에게 바치는 애정과 존경...<빅 피쉬>와 마가릿 킨

 <빅 피쉬>에서 아버지를 연기한 배우 이완 맥그리거와 알버트 피니, <빅 피쉬>의 한 장면. (위 좌, 우). <빅 아이즈>의 스틸 컷.

<빅 피쉬>에서 아버지를 연기한 배우 이완 맥그리거와 알버트 피니, <빅 피쉬>의 한 장면. (위 좌, 우). <빅 아이즈>의 스틸 컷. ⓒ 콜럼비아트라이스타, 판씨네마


팀 버튼의 첫 번째 휴먼드라마 <빅 피쉬>는 거짓말에 능통한 아버지를 이해하는 아들의 이야기였다. 물론 그 아버지가 병상에 누워있다고 해서 여느 드라마로 끝낼 팀 버튼이 아니었다. 알버트 피니와 이완 맥그리거가 연기한 이 아버지가 늘어놓는 과거사는 총천연색 판타지가 실현되는 동화 속 세상과 다를 바 없었다.

촬영 전 실제로 아버지를 잃었던 팀 버튼 감독은 <빅 피쉬>에서 최초로 성애를 강조하며 (<가위손>의 에드워드 박사라는 유사아버지가 있었지만) 다소 성숙한 작품 세계를 열어 나가기 시작한다. 그 악동 같던 팀 버튼이 말이다. <빅 피쉬> 이후 10여 년, <빅 아이즈>는 이와 대구를 이루며 딸을 지키려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그린다.

1950년대, 여권이 신장되지 않았던 그 시절에 이른 이혼을 경험한 마가렛 킨은 그림과 딸, 이 두 가지를 지키려 고군분투한다. 훗날 법정에 나서는 것도 자신과 딸 두 사람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였다. 킨의 딸은 더불어 어릴 적부터 어린 소녀가 주를 이루는 '빅 아이즈' 그림들의 실제 모델이기도 했다. 마가렛 킨이 '빅 아이즈'를 기어코 지켜내는 모습을 긍정적으로 그려낸 팀 버튼 감독. <빅 아이즈>를 보면, 아마도 그녀가 작품들, 그러니까 예술과 딸의 존재를 동일시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비주류 감성 그리고 스타일의 대가들...팀 버튼과 마가릿 킨

 영화 <비틀쥬스>, <가위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빅 아이즈>의 스틸, 현장컷.

영화 <비틀쥬스>, <가위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빅 아이즈>의 스틸, 현장컷. ⓒ 브에나비스타, 월트디즈니코리아, 판씨네마


시대성이 듬뿍 담긴 <빅아이즈>에서 앤디 워홀에 대한 언급이 빠질 수 없다. '기계복제시대의 미술'의 창시자라 불릴 만한 앤디 워홀을 두고 월커 킨은 "통조림 캔" 운운하며 비아냥댄다. 하지만, 팀 버튼은 '빅 아이즈'야말로 그림과 포스터를 판매하며 미술 대중화의 선두에 선 예술 작품임을 감추지 않는다. 그런 친근한 듯 비일상적인 '빅 아이즈'의 그림드은 단순히 그림체뿐만 아니라 '포스트모던' 시대의 영화감독이라 불리던 팀 버튼의 스타일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속편 제작 소식이 들려오는 <비틀쥬스>나 이제는 추억의 명작 반열에 올라선 <에드워드 가위손>은 물론이요, 근작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기괴한 듯 익살맞은 표현주의적 기법들은 팀 버튼 작품 세계의 근간을 이루는 이미지들이다. 어찌보면 1950년대 추상표현주의가 주를 이루던 시기에 확연히 다른 스타일을 구축했던 마가렛 킨이나 1990년대 할리우드에 포스트모던한 스타일을 정착시킨 팀 버튼은 닮은 구석이 있어 보인다. 아니, 어쩌면 '에드우드'에게는 B급 정서를, '빅 아이즈'에게는 표현 양식을 배웠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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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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