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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진 배를 맛나게 채워 주던 국화빵 역시 그 맛을 좌우하는 건 발효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허기진 배를 맛나게 채워 주던 국화빵 역시 그 맛을 좌우하는 건 발효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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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50년이나 된 추억이 되었습니다. 그때는 별미였지만 지금은 좀처럼 먹기 힘들어진  별식이 되었습니다. 기억으로만 더듬어야 하는 찐빵 이야기입니다. 소풍처럼 조금 특별한 날이면 어머니는 찐빵을 해서 싸줬습니다.

국수를 밀어먹던 거무튀튀한 밀가루 대신 뽀얀 밀가루에 술약이라는 것을 넣고 반죽을 했습니다. 반죽 그릇에 하얀 식보를 덮어 반나절쯤 따뜻한 곳에 놔뒀다 삶은 팥을 듬뿍 넣어서 만들던 찐빵이었습니다. 참 맛있었습니다. 식감도 좋았지만 앙꼬(팥소)에서 맛볼 수 있었던 진한 단맛이 있어서 더더욱 좋았을 겁니다. 따뜻할 때는 따뜻해서 좋았고, 식었을 때는 식은 식감이 좋았습니다.

중학교 등하교 통로였던 면소재지 골목길에도 찐빵집이 있었습니다. 아주 가끔 친구들과 들렀습니다. 찐빵을 달라고 하면 쇳소리가 드르륵 하고 나는 솥뚜껑이 열리며 하얀 김에 가려진 뽀얀 찐빵이 보였습니다. 빵이 나오기도 전에 몇 번씩이나 입맛을 다시곤 했었습니다.

시내에 있는 중학교로 전학을 하고나서야 제과점이라고 하는 현대식 빵집을 알았습니다. 독일제과점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던 빵집이었습니다. 시골에 있는 중학교를 오가며 들르던 면소재지 빵집이 아무데나 털썩 주저앉아도 좋은 만큼 익숙한 모습이었다면 처음 들어간 제과점 모습은 너무 반듯하게 정리돼 있어 교무실에 처음 불려갔을 때 느낌만큼이나 어색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종업원들이 불친절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순전히 촌놈이라서 느끼는 문화적 낯설음 때문이었을 겁니다. 빵을 엄청 좋아한 건 아니지만 빵과 함께 떠올릴 수 있는 세월이 50년쯤이나 되니 개인적으로 빵과 얽힌 세월이 결코 짧은 건 아닐 겁니다. 

빵을 기억하고 있는 50년쯤의 세월도 결코 짧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빵의 역사가 2만 5000년이나 됐다고 하니 놀라울 뿐입니다. 

고고학자들의 최신 연구 결과에 따르면 빵의 역사는 적어도 2만 2500년 전 야생 곡식을 먹던 시절, 즉 농경과 목축, 사유 재산이 채 자리잡지 않았던 시절에 시작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빵의 지구사> 23쪽-

빵의 역사와 요리법까지 아우르고 있는 <빵의 지구사>

<빵의 지구사> (지은이 윌리엄 루벨 / 옮긴이 이인선 / 펴낸곳 (주)휴머니스트 출판그룹 / 2015년 1월 5일 / 값 1만 5000원
 <빵의 지구사> (지은이 윌리엄 루벨 / 옮긴이 이인선 / 펴낸곳 (주)휴머니스트 출판그룹 / 2015년 1월 5일 / 값 1만 5000원
ⓒ (주)휴머니스트 출판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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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의 지구사>에서는 서양 사람들 대다수가 주식으로 하고 있는 빵의 역사뿐만이 아니라 요리법의 변천사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전통음식으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찐빵이 우리나라에는 언제 어떻게 도입됐는지는 물론 '빵'이라는 용어가 생겨난 유래도 함께 알 수 있습니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적지 않게 먹었을 건빵 또한 우리나라에는 언제 어떻게 도입됐는지 소개하는 '우리나라의 빵역사'이기도합니다.

카스텔라의 모양은 떡과 비슷하다. 그런 탓인지 18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조선의 지식인들은 빵을 '서양떡'이라고 적었다. 오늘날의 한국어 '빵'은 일본에서 전해진 것이다. 18세기 일본인들은 포루투칼어로 '팡데로pan-de-lo'를 '팡'이라 불렀는데, 여기에서 '빵'이 생겨났다.

지금도 일본인들은 '빵'이라고 발음하지 않고 '팡'이라고 발음한다. 19세기 말에 일본인의 발음을 들은 조선인들은 '팡'이라고 적기도 하고 '빵'이라 적기도 했다. 그래서 빵집이 팡집으로도 불렸던 것이다. 해방 이후 '빵'으로 표기법이 정리되었다. -<빵의 지구사> 181쪽

그중에서도 한반도에 큰 영향을 끼친 빵이 '안팡ぁんン'이다. 한국어로는 단팥빵이라고 부른다. 이스트를 구하기 어려워 청주를 만드는 데 쓰는 쌀누룩에서 얻은 효모를 반죽에 넣고 부풀린 다음, 속에 팥소를 넣은 안팡이 1874년 도쿄의 기무라木村屋 라는 빵집에서 개발되었다. -<빵의 지구사> 184쪽-

빵에 대한 선호도는 지극히 개인적이리라 생각됩니다. 밥보다 빵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굶는 한이 있어도 빵을 먹지 않는 사람도 없지는 않을 겁니다. 어떤 사람은 납작한 빵을 좋아하고 또 다른 어떤 사람은 바게트나 식빵처럼 부풀린 빵을 좋아할 겁니다. 

빵 역사는 식문화 역사이기도 하고 빵 요리법이 진화한 역사이기도합니다. 모든 역사가 갖는 공통점은 퇴보하기 위한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 점일 것입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며 진화한 빵 역사에서, '맛있는 빵'을 추구하기 위한 노력이 외면당하는 경우는 잠시도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도 누군가는 껍질을 노릇노릇하게 익힌 식빵을 아침 식사로 한 사람도 있을 겁니다. 막 구워낸 빵을 구하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맞춰 빵집을 들르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흔하게 보이던 골목 빵집들을 밀어내고 이런저런 제과점들이 들어서기까지의 과정 또한 빵이 남기고 있는 지구사의 한 쪽입니다.  

빵의 신선도도 평가의 기준이 된다. 과거에는 절대 빵이 따뜻할 때 먹지 않았다. 실제로 근대까지의 모든 건강 안내서에는 빵을 구운 뒤 하루가 지나기 전에는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된다고 쓰여 있다. <음식과 요리 On Food and Cooking)(2004)의 저자 해럴드 맥기Harold McGee가 관찰한 결과에 따르면 빵이 식는 동안에도 급격한 화학적 변화가 계속 일어나며 만 하루가 지나야 안정화되고 자르기 좋은 상태가 된다. -<빵의 지구사> 98쪽-

빵 반죽그릇에 반죽 남겨 놓는 이유

찐빵 집이나 제과점엘 들렸다, 빵 반죽을 하는 그릇에 허옇게 굳은 반죽이 그대로 남아있는 걸 본 경우가 있을 겁니다. 시각으로 가늠하는 위생적 측면으로만 본다면 아주 불결한 상태라 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반죽 그릇에 붙어있는 반죽 몇 조각은 다시 만들 빵맛을 더 풍부하게 해주기 위한 노하우, 빵맛을 좌우하는 또 하나의 발효 씨앗이 되기 때문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책이 가지는 가장 도드라진 특징은 단지 빵과 관련 된 역사적 전개에만 머물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빵이 탄생하게 된 배경, 빵에 얽혀있는 빈부격차, 맛있는 빵에 대한 정의, 세계 각국의 빵, 진화하는 빵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어 빵에 곁들어 있는 역사, 팥소처럼 역사에 들어가 있는 빵과 관련한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취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다양한 빵, 팬이나 숯에 구운 무발효 플랫브레드, 통을 넣은 플랫브레드, 콩가루를 넣은 로프브레드, 말빵, 호밀빵 등 10여 종의 빵을 만들 수 있는 조리법(Recipes)이 부록으로 들어가 있어 맛있는 빵을 요리할 수 있도록 안내해 주는 길라잡이 역할도 해줄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빵의 지구사> (지은이 윌리엄 루벨 / 옮긴이 이인선 / 펴낸곳 (주)휴머니스트 출판그룹 / 2015년 1월 5일 / 값 1만 5000원



빵의 지구사

윌리엄 루벨 지음, 이인선 옮김, 주영하 감수, 휴머니스트(2015)


태그:#빵의 지구사, #이인선, #(주)휴머니스트 출판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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