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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토리브에 자리 잡고 사는 노숙인. 마침 자리를 비운 사이에 사진을 찍었다.
 오토리브에 자리 잡고 사는 노숙인. 마침 자리를 비운 사이에 사진을 찍었다.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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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파리 19구 콜로넬 파비앵(Colonel-Fabien) 지하철역 근처엔 오토 리브(파리시에서 주관하는 전기자동차) 주차장이 있다. 사람들은 커다란 유리로 돼 있는 작은 폐쇄 공간 안에 설치돼 있는 기계를 이용해 전기자동차를 빌릴 수 있다.

이번 겨울이 시작될 때쯤, 한 노숙인이 저녁때만 되면 이곳에 자리를 잡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하지만 노숙인은 아침이 되면 전기자동차 이용객들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그곳을 지나가는데 입구 문이 부서져 산산조각이 나 있는 것 아닌가.

때마침 잠을 자러 온 노숙인은 그 상황에 당황했고, 결국 근처 벤치에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추측이지만, 공공장소에 자리를 잡은 이 노숙인을 방해하기 위해 누군가가 일부러 저지른 짓이 아닐까란 생각도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깨진 유리 파편이 사라지자 노숙인이 그곳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깨져서 휑하니 빈 문은 두꺼운 종이판자와 긴 스티로폼으로 대충 막은 상태였다. 그 사건이 있은 뒤 노숙인은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 24시간 내내 그곳에 머물렀다. 당시 파리엔 드문 한파가 몰아칠 때여서, 난 그곳을 지날 때마다 '그 사람 밤사이 얼어 죽지는 않았을까'라는 걱정을 했다.

계속 증가하는 추세인 프랑스 노숙인 수

 파리 지하철 역 내에 있는 서서 기댈 수 있도록 한 철판. 이것도 노숙인들의 이용을 저지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다.
 파리 지하철 역 내에 있는 서서 기댈 수 있도록 한 철판. 이것도 노숙인들의 이용을 저지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다.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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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로 보인 그 노숙인은 다른 노숙인들과는 좀 달랐다. 대다수 노숙인들은 항상 누워있는데, 이 사람은 항상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저녁엔 그 공간 안에서 엎드려 팔굽혀펴기를 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고, 어느 날 새벽엔 이미 잠자리에 들었어야 할 시각에 여전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저 사람은 하루 종일 앉아서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그 노숙인 옆에 피자 박스나 음료수 등이 놓여 있는 걸로 보아, 일부 행인이나 주민들이 음식을 나누는 듯했다. 난 몇 년 전 겨울, 내가 사는 동네에서 한 노인 노숙인이 거리에서 동사한 적이 있어, 추운 밤을 보낸 날 아침엔 항상 불안한 마음으로 그곳을 지나친다.

피에르 신부가 세운 사립 기관으로 개인 기부금과 기업의 보조 등으로 운영되며 프랑스 내에서 열악한 주거문제를 담당하고 있는 아베-피에르 파운데이션(La Fondation Abbé-Pierre)이 낸 자료에 의하면 2012년 2월 현재, 프랑스에서 무주거자나 열악한 주거 환경에 처한 자들의 수가 360만 명이나 된다. 경제 통계 조사기관인 인세(INSEE) 2008년 자료에 의하면 이 중에 13만3000명이 정기 주거지가 없는 노숙인이다.

프랑스 노숙인 수는 계속 증가하는 추세인데, 지난 2001년과 비교했을 때 50%가 증가해서 2012년 현재 15만 명에 이르고, 파리와 파리 근교에 자리한 노숙인 수는 2만8800명에 달한다.

사실 프랑스에서 노숙인이 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어느 날 갑자기 실업 상태가 되고, 아내와 가족이 집을 떠나고 임대료를 낼 수 없으면 집에서 쫓겨나 거리로 몰리게 된다. 프랑스로 이주한 지 25년이 된 난 아직도 한국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 노숙인들을 볼 때마다 '아니 이들은 가족도 없을까?'란 생각에 안타깝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개인주의 사상을 배우고 자란 프랑스인들은 자신의 고통을 가족과 나누는 것을 불편해 한다. 또 가족에게 자신의 어려움을 알리더라도 반드시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길에서 얼어 죽은 노숙인의 가족이 나중에 "가족이 노숙인 신세였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하는 걸 들을 때마다 안타까움을 넘어서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지하철 벤치 1인용으로 바꾸기, 칸막이 설치하기...

 파리 지하철 역 내에 있는 개인용 의자. 노숙인들이 몸을 눕히지 못하도록 만들어놨다.
 파리 지하철 역 내에 있는 개인용 의자. 노숙인들이 몸을 눕히지 못하도록 만들어놨다.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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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날로 증가하고 있는 노숙인들은 곳곳에서 구걸을 하거나 공원 벤치에 앉아서 하루를 보낸다. 추운 겨울이면 지하철역으로 내려와 추위를 피한다. 이들을 추방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가 프랑스 전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파리 근교의 우파 도시 아르장퇴이(Argenteuil)시는 2007년 시내에 자리 잡고 있는 노숙인들을 추방하기 위해 시청 직원에게 냄새가 고약하고 인체에 해로운 일종의 화학제품을 노숙인들이 자주 가는 장소에 뿌리라고 지시했다. 시청 직원들이 지시를 거부하자, 결국 노숙인들이 주로 자리 잡은 주변 지역 상인들이 대신 이 약품을 뿌려서 화제가 된 바 있다.

겨울철 노숙인들에게 꼭 필요한 공간, '지하철역'에 대한 방어 또한 날로 진화하고 있다. 파리의 지하철역에선 구석에서 이불을 덮어쓰고 잠들어 있는 노숙인들의 모습을 한낮에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의자가 아닌 지하철역 구석의 차가운 타일 위에 몸을 누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지하철 내의 벤치가 일인용 의자로 바뀌거나, 벤치의 모습을 하곤 있어도 중간에 칸막이가 있어 몸을 누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파리의 지하철 회사 RATP는 노숙인들의 지하철 내 주거를 막기 위해 이렇게 지하철 의자 형태를 바꾸고 있다. 심지어 일부 지하철역에는 앉는 의자 대신 이용자들이 기댈 수 있는 기다란 철판을 설치했다.

지난해 12월 말, '세계 만화 축제'로 유명한 도시 앙굴렘시는 시내에 위치한 벤치에 철조망을 설치했다. 노숙인들의 시내 진입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언론과 여론의 부정적 반응이 거세지자, 곧바로 철조망을 철수시킨 바 있다. 지난 1월 11일 프랑스 남부 도시 페르피냥시는 노숙인들이 자주 드나드는 장소의 벤치를 모두 제거했다. 그러자 일부 시민들이 시청 앞에 소파를 갖다 놓는 해프닝을 벌였다.

이렇게 의도적으로 노숙인 추방 정책을 벌이는 도시들은 어떤 성향을 갖고 있을까?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의 지난해 12월 26일자 <도시들이 어떤 방식으로 노숙인 추방정책을 펼치고 있는가>에서 지리학자 필립 갸르고브(Philippe Gargov)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추방정책은 도시의 우파-좌파 성향에 달려있지 않다. 가장 구체적이고 가장 쇼킹한 정책이 우파 도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좌파 도시도 같은 정책을 벌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단지 그들의 방법은 좀 덜 드러날 뿐이다."

노숙인 추방 사업에 나선 사기업들의 행태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에 보도된, 노숙인을 막기 위한 앙굴렘 시내 철책을 두른 벤치의 모습. 하지만 시민들의 거센 항의로 철책은 금방 철수됐다.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에 보도된, 노숙인을 막기 위한 앙굴렘 시내 철책을 두른 벤치의 모습. 하지만 시민들의 거센 항의로 철책은 금방 철수됐다.
ⓒ 리베라시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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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북서쪽에 위치한 셍 투앙(Saint-Ouen)에서는 지난해 12월 중순, 시에서 운영하는 건물 입구에 다음과 같은 안내문을 설치해서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주민 여러분, 노숙인들에게 건물의 현관에 자리를 내 주거나 음식을 주는 것을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규율을 어기는 자들은 건물에서 추방될 수 있습니다."

시 차원에서만 노숙인 추방 정책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노숙인 추방 사업엔 사기업도 같이 참여하고 있는데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지난해 7월 8일 프랑스 북부에 위치한 대도시 렝스(Reims) 시내에 있는 슈퍼 모노프리는 고객들을 상대로 '상점 근처에 자리 잡고 있는 노숙인에게 적선을 하거나 음식물을 주는 것을 금한다'는 안내문을 설치했다. 이유인즉슨, 이들로 인해 슈퍼에 자주 도둑이 들고 슈퍼의 안전에 해가 된다는 것.

프랑스 중서 해안도시인 라호셀 시내에 위치한 대형슈퍼 까르푸는 지난 2013년 10월부터 근처의 다른 상가와 연대해서 사립 경비원을 고용하고 있는데, 사립 경비원들의 임무는 상가 근처에 다가오는 노숙인들을 내쫓는 것이다.

이들 슈퍼상들이 싫어하는 것은 노숙인들이 슈퍼의 쓰레기통을 뒤져 유통기한이 지나서 버리는 식품들을 주워 먹는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 대형 체인점인 모노프리를 비롯해서 많은 체인점들이 노숙인들이 쓰레기통을 뒤지지 못하도록 쓰레기통에 자물쇠를 채우고 있다. 쓰레기 수거 트럭이 오면 그제야 자물쇠가 열린다. 하지만 더 심한 곳도 있다. 소형 체인점인 '8 à 8'(8시에서 8시까지라는 뜻) 슈퍼는 버리는 식품에 아예 자벨(일종의 유한락스)을 뿌리기까지 한다. 이들의 쓰레기에는 다음과 같은 공고가 붙여있다.

"우리 상점은 버리는 음식에 자벨을 뿌렸으므로 이 음식을 먹고 음식중독에 걸리는 자들에 대한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

 페르피냥 시청 앞에 소파를 갖다 놓는 시민들(1월 11일 자 리베라시옹)
 페르피냥 시청 앞에 소파를 갖다 놓는 시민들(1월 11일 자 리베라시옹)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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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기업들이 벌이는 이런 정책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marcube라는 이름의 한 독자는 프랑스 3 TV 방송 홈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댓글을 달았다.

"슈퍼들이 쓰레기통에 자벨을 뿌리는 진짜 이유는 오로지 상술을 위해서다. 쓰레기통을 뒤져서 허기를 채우는 자들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슈퍼 이용률이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먹을 것이 없어서 쓰레기통까지 뒤지는 '가난한 자'들을 핍박하는 '가진 자'들의 욕망은 어디까지일까? 이윤 추구가 기업의 첫 번째 목표로 설정되어 있는 현 상황이 바뀌지 않는 한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노프리 체인점은 '음식기부 정책'도 활발히 벌이고 있다. 그들 주장에 따르면, 모노프리는 2013년에만 150만 식사에 이르는 기부를 했다고 한다. 모든 슈퍼들과 식당들이 남는 음식을 보관해 먹지 못하는 자들에게 제공한다면 아프리카는 물론이고 유럽에서 굶어 죽는 자들이 생겨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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