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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24일, 국정원이 실시하는 안보특강에 극우보수 성향의 인터넷사이트 '일베저장소(일베)' 회원들을 초청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양재역에서 안보특강 참석자들을 태운 버스가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정원에 도착하고 있다.
 2013년 5월 24일, 국정원이 실시하는 안보특강에 극우보수 성향의 인터넷사이트 '일베저장소(일베)' 회원들을 초청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양재역에서 안보특강 참석자들을 태운 버스가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정원에 도착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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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성향을 띠고 인터넷 생활을 하다 보면 반대 성향 누리꾼들과 자주 충돌하기 마련이다. 한번은 정치적 사안을 두고 '키배'(키보드 배틀)를 하고 있는데, 그 누리꾼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자기는 국정원에서 준 절대시계를 가지고 있다고.

유치한 싸움 같지만 일종의 열을 받았다. 절대시계가 뭔지 알아보니 '종북'을 신고하면 그중에서 우수 신고자를 뽑아 국정원에 초청, 절대시계와 소량의 상품을 준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몇 시간씩 구글링(구글에 특정 키워드 검색)을 해 북한 찬양글을 찾아 신고하기 시작했다.

"이게 뭐지?"

몇 달 뒤 나는 메일함에서 '국가정보원'이 적힌 메일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꾸준히 북한 찬양글을 신고하면서도 시간이 지나자 잊고 있던 터라 왜 이 메일이 왔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메일을 열어보니 이런 내용이 적혀있었다.

"국가정보원 「111콜센터」입니다. … 국정원은 여러분들의 나라사랑 마음과 소중한 제보에 보답하고자 국정원 초청행사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 신고자님의 참가를 환영하며 금번 행사 계획 수립을 위해 몇 가지 사항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자 하오니 …. "

바라던 국정원 초청행사에 초대된 것이었다.

좌파의 자존심... '공산당 선언' 들고 국정원으로

​메일에 회신한 후 며칠이 지나자 국정원 직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오준승 씨죠? ○○고등학교."
​"네."
"국정원 초청행사 때문에 연락드렸는데요, 참석하실 건가요?"
​"네."

처음에는 2월 28일(2013년) 서울역 2번 출구로 나​오라는 답변을 받았다. 얼마 지나자 국정원 직원으로부터 새로운 연락이 왔다.

​"오준승씨, 저 지방에서 올라오는 참석자들이 있는데 괜찮으시다면 다른 모임 장소로 오셔도 괜찮나요?"

미리 인터넷에 검색해 본 결과 모임 장소는 서울역과 양재역이었다. 나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고 여겨 괜찮다고 했다. 예상 대로 국정원 직원은 나보고 당일 양재역 2번 출구로 오전 9시까지 나오면 된다고 했다.

친구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북한 찬양글을 국정원에 신고했는데 국정원이 날 행사에 초대해줬다고. 그러자 친구가 국정원 갔다 오면 절대시계 한번 보여 달라면서 농담을 건넸다.

"너 코렁탕(고문을 할 때 설렁탕을 입이 아닌 코로 먹인다는 데서 나온 말) 먹겠다?"

좌파인 주제에 국정원에 가게 된 나를 생각하고 날린 농담에, 나는 헛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기왕에 국정원에 가게 된 거, 철저하게 준비하면 좋을 것 같아 친구에게 뭘 가져가면 좋을지 물었다. 친구가 이야기했다.

"<공산당 선언>이라도 들고 가면 어때?"

​지금 생각해보면 제정신이 아닌 것 같지만 젊은 혈기(?)인 나는 '괜찮다'라고 생각했다. 기왕의 '좌파'인 내가 '우파의 성지'라 할 만한 국정원에 가게 됐으니, 들고 가서 읽는 것도 큰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한 탓이다. 좌파의 자존심이었다. 물론 친구는 농담으로 던진 말이었겠지만….

그렇게 나는 행사 당일 한 손에 공산당 선언을 든 채 양재역으로 갔다. ​

​양재역 2번 출구로 가니 흰색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버스 앞에 서 있던 국정원 직원이 나에게 물었다.

"국정원 행사 참석하러 오셨나요?"
"네."
"신분증 보여주시고요."

신분증을 보여준 나는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니 몇몇 사람이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중간 창가석에 가서 앉았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국정원 직원이 식사 대용으로 샌드위치와 오렌지 주스를 건네줬다. 더 있으니 먹고 부족하면 말하란다.

​버스가 출발하자 국정원 직원이 말했다. 어떤 참석자가 휴대폰으로 사진을 촬영해 올렸는데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삼가주길 바란다고.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이번 강연자로는 변희재 대표가 참석하십니다."

갑자기 주변에서 "꺅~" 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변희재 대표가 연예인이라도 되나 생각했다. ​참석자들 사이에선 변 대표가 참석한다는 게 꺅 소리가 나올 만큼 좋았나 보다. 버스는 그렇게 내곡동으로 들어가 국정원에 도착했다.

​"강연자로 변희재 대표가 참석했습니다", "꺅~"

강연 직전 파트타임 때 변희재씨에게 받은 사인.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강연 직전 파트타임 때 변희재씨에게 받은 사인.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 오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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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에는 공항에서 볼 법한 검문검색대가 있었다. 핸드폰 등 전자기기를 안에 가져갈 수 없게 철저하게 막는 것이다. 나는 국정원이 무슨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건가 라고 생각하면서 핸드폰을 차에 놓고 나왔다.

강연장은 홍보관 2층에 있는 행사장이었다. ​대충 과장급으로 보이는 인사가 인사말을 하며 분위기를 풀었다.

"여러분, 주변 분들이 국정원에 간다고 하니 뭐라고 말씀하시던가요?"
​"코렁탕 먹는다고 하던데요."

나는 손을 들고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주위 참석자들도 덩달아 웃었다. 물론 실제로 들었던 말이다. 애국가 제창과 국민의례가 있었다. 애국가를 4절까지 다 부르더라. 그것도 외워서. 참 저 사람들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강연자는 앞서 말했던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와 탈북자 출신 정성산 감독이었다. 고소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강연 내용을 자세히 말하긴 어렵지만, 변희재 대표는 국내 '종북 세력'에 대한 발언을 했다. 정성산 감독의 경우 탈북 스토리와 그외 자잘한 에피소드를 말했다.

강연을 시작하자 나는 메모지 뒤에 강연자들의 주요 발언들을 메모하면서도 중간중간 당초 목적을 위해 가져왔던 공산당 선언을 읽었다. 웬만해선 하기 어려운 일이라 생각하니 심장이 쿵쿵 뛰었다.

강연이 끝나고 강연자에게 질문할 수 있는 시간이 돌아왔다. 나는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손을 들어 변희재 대표에게 물었다.

​"변희재 대표님. 일간베스트 저장소에서는 5·18을 폭동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변 대표님은 5·18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을 물었던 이유는 당시 지인 중 한 명이 변 대표의 5·18 관련 입장을 매우 궁금해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변 대표는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해 공식적인 이야기를 하지는 않고 있었다. 질문을 하자 주변 참석자들이 웃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일베 회원인 줄 알았다고 하더라.

아무튼 변 대표는 "5·18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며 답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지만원 박사의 주장을 흥미롭게 체크하고 있다"며 "지만원 박사를 중심으로 이 부분(5·18)을 재논의하는 것은 찬성하고 있다"고 답했다. 지만원 박사는 5·18 북한군 개입을 주장했다.

'좌파 커밍아웃' 하자 주변 표정이...

​강연이 끝나고 나서 참석자들은 식사를 하기 위해 연회장으로 이동했다. 연회장에는 여러 개의 테이블이 놓여있었고, 한 테이블 당 7명 내외의 참석자들이 앉았다. 테이블에는 국정원 직원들이 편의를 도와주기 위해 앉았다.

나는 9번 테이블에 앉았다. 대강 10대부터 20대까지 젊은 연령층의 사람들이었다. 한 명씩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조기 졸업을 했는지 어린 나이의 대학생도 있었다. 내 차례가 됐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대충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여러분들, 좌파가 다 종북이라 생각하지는 마세요. 제가 좌파입니다."​

내 말에 국정원 직원을 포함해 앉아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그 자리에는 일간베스트 저장소 회원이 앉아있었다. 이렇게 '좌파 커밍아웃'을 했던 이유는 좌파도 국정원에 초대받는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다. 좌파의 자존심이라 할까.

식사로는 ​중식이 나왔다. 팔보채였는데 그렇게 썩 맛있지는 않았다. 맛이 밍밍해서 말 그대로 속을 채우는 정도였다. 식사 도중 국정원 직원에게 질문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한 참석자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국정원 직원을 지망하는데, 이 행사 참석이 경력이 될 수 있나요?"

답변은 '되지 않을까'였다. 나도 주변 눈치 보다가 국정원 직원에게 물었다. ​

"이번 대선에서 국가정보원 정치 개입이 논란이 됐는데, 뭐 아시는 것 없으신가요?"
"그게 언론에서 과장된 것도 있고요​…."

둘러말했지만 결론은 언론에서 과장했기 때문이란 내용이었다. 당시 국가정보원 정치개입 사건은 의혹만 가득한 채 아무런 근거도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은 상황이었다. 본격적인 근거는 사실 권은희 수사과장이 관련 내용을 폭로한 후 터져 나왔으니까. 지금 물어본다면 "헛소리하지 마라"고 말할 텐데 말이다.

​테이블에 앉은 참석자끼리 잡담을 하면서 한 참석자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비난했다. 자신이 국정원에 간다니까 전교조 교사가 비난을 했단 것이다. 명색이 좌파인데 가만히 있을 수 있나. 조심스럽게 반박했다.

"제 학교에도 전교조인 분들이 계시지만, ​그런 분들은 없으시던데 말이죠."
"그게 아니라​…."

나는 우리 학교 전교조 교사 분들은 그렇지 않다며, 일반화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언성이 높아지려고 할 즈음 국정원 직원이 중재를 했다. 그런 사람들도 있고 아닌 사람들도 있다나. ​

​"여러분, 죄송합니다만 기술적인 문제가 생겨서…."

​원래 일정은 식사를 마치고 나서 페인트탄 사격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무슨 문제가 생겨서 성인들은 실탄 사격을, 청소년들은 테러정보종합센터 관람으로 일정이 변경됐다. 페인트탄을 쏴보고 싶던 나는 아쉬운 마음으로 테러정보종합센터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졸았다. 일정에 맞추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난 탓에 지루한 설명을 들으니 곯아떨어진 탓이다. 테러정보종합센터 다음으로 국정원 내에 위치한 안보 전시관으로 갔다. 이곳에는 국정원의 역사에 대한 내용과 ​작전 중 사망한 요원을 추모하는 기념비가 있었다.

​안보전시관을 견학한 후 참가자들은 강연장으로 이동해 한 편의 안보 영상을 봤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이 안보 영상, 어디서 봤던 거다. 알고 보니 보훈처에서 배포했다는 '종북세력의 실체' 영상이었다. 뭔가 수상해서 손을 들어 국정원 사회자(직원)에게 물었다.

"이 영상, 국가보훈처가 배포해 논란이 된 영상 아닌가요?"

그러자 국정원 직원이 서로 뭐라고 말을 주고받더니, 과장급으로 보이는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이 영상은 저희가 만든 게 아니고, 잘 만들어진 영상을 유튜브에서 가져와 상영한 것입니다."

그렇게 일정을 끝낸 나는 '국가정보원 표 절대시계'와 문화상품권 5만 원권, <꾿빠이 전교조>라는 반전교조 성향의 책과 국정원 이니셜이 새겨진 스마트폰 케이스를 얻었다. 물론 스마트폰을 지갑처럼 수납하는 방법의 구식이라 지금도 어디서 써먹지는 못한다.

'국정원표 절대시계'를 손에 넣다

국정원 안보강연 참가 선물로 받은 소위 '절대시계'
 국정원 안보강연 참가 선물로 받은 소위 '절대시계'
ⓒ 오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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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국정원 방문 후 5일 뒤에 터졌다. 학교에서 절대시계를 보여달라던 친구가 다짜고짜 나에게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이 국정원 기사, 네가 제보한 거야?"

무슨 소리인가 싶어 기사를 보니 경향신문에서 이 국정원 행사를 보도한 것이다. 변희재 대표의 강연 내용이 주였는데, 실제 내가 들은 내용과 차이 있는 부분이 많았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나 아니야."

그렇게 설명을 하고 나서 이래저래 상황을 알아보았다. 일베 사이트를 보니 내가 <경향신문>에 제보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공산당 선언> 읽는 '간첩'이 있었다나. 앞으로는 절대시계 가졌어도 의심을 해봐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참 황당하기 그지없었지만 그러려니 했다. 일베 이용자들이 생사람 잡는 게 한 두 번 있는 일인가. 오히려 <경향신문>에 제보한 사람이 누군지 정말 궁금했다. 제보를 할 거면 정확하게 해야지, 틀린 부분이 많아 오히려 고쳐주고 싶을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좌파의 자존심'이란 생각에 참 국정원 가서 별일을 다 한 것 같다. 그래도 후회는 하지 않는다. 매우 재미있는 경험을 했으니까.

덧붙이는 글 | '자존심 때문에' 응모글입니다.



태그:#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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