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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을 했습니다. 물어보아야 할지, 물어보지 말아야 할지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얼마 전 새로 산 옷이 정말 마음에 들기에 그 옷을 망가뜨릴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아내에게 전화를 걸기로 결심했습니다. 아내의 폭풍 잔소리가 몰아치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고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다고 몇 번이나 자신까지 했기에 부담스러웠지만 더 이상 버틸 수는 없었습니다.

사실 얼마 전 아내가 한국에 들어가면서 제게 몇 번이나 물어보았습니다.

"나 한국 가서 한 달 이상 있을 것 같은데 그동안만 일주일에 한 번만 집안일 해주시는 아주머니 쓰면 안 될까?"

제가 집안 청소도 제대로 안 하고 빨래도 잘 못할까 걱정이 된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집안이도 청결하지 못하고 빨래도 이상하게 되어 혹시라도 건강상의 문제가 생길까 걱정이 된다는 것입니다. 허. 이거 참. 해외에 나온 후 결혼 전에 혼자 산 것이 몇 년인데 청소와 빨래 이 정도 집안일도 제대로 못 하겠습니까? 그래서 아내에게 그럴 필요 없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를 했습니다.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다고 말이죠.

"혼자서 잘 할 수 있다" 큰소리 쳤는데... 빨래가 이상했다

그렇게 큰소리를 쳤는데 빨래가 제대로 안 된다고 물어보기는 좀 민망한 것 아니겠습니까. 아 그런데 제가 좋아하는 옷이 빨기만 하면 망가지는 느낌이 드니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저기 나 요새 빨래가 잘 안 되는 것 같은데. 향도 별로 안 좋고."

우선 용기를 내어 한국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습니다.

"세제만 넣지 말고 피X(섬유유연제)을 넣어야지."
"넣었어. 나 그거만 넣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세제는 안 넣고 섬유유연제만 넣는다는 것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싶습니다. 그렇지만 그때는 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내가 말한 '피X'을 제가 알아서 잘 쓰고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것만 넣는다고?"
"응. 그 세탁기 위에 있는 거 맞잖아. 빨간 거. 나 그것만 쓰는데."
"혹시 빨고 나면 뻣뻣한 느낌 들지 않아?"
"어!"

역시 물어보기를 잘했다 생각했습니다. 생각해보니 향도 향이지만 자꾸만 옷이 뻣뻣해진다는 것이 제 큰 고민이었던 것입니다.

"세탁기 문 열면 하얀 거품 남아 있고."
"아. 맞아! 맞아. 세탁기 문 열 때마다 궁금했는데. 왜 그런지."

아내는 신기하게도 제가 늘 궁금했던 것까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듯 했습니다.

"으이구. 세제 어디에다 넣었어?"
"중간에 넣는데. 액체로 된 것은 중간에 넣는 거잖아."

아내의 공격에 저는 가볍게 방어막을 쳤다고 생각했습니다. 액체로 된 것은 세탁기 세제 넣는 칸 중 중간에 넣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맨 오른쪽 칸에 넣어야지. 세제는 맨 오른쪽 칸에 넣고 섬유유연제를 중간 칸에 넣는 거야."
"어? 그... 그래?"
"그러면 지금까지 세제 묻은 옷 입고 다닌 거야?"

어쩐지 몸이 가려운 이유가 있었습니다. 아내 말처럼 평소에 집안일을 잘 도와주었으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인데 말입니다. 그 대가로 비록 한동안 세제 입은 옷을 입고는 다녔지만 그래도 그 대신 큰 것을 얻었습니다.

앞으로 집안일 뿐 아니라 정말 고민이 되는 일이 있을 때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아내에게 의논하자는 결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빨래를 잘 못하는 작은 일 하나에도 제 건강을 생각하며 진심으로 저를 걱정해주는 아내입니다.

그런 아내라면 어떤 크고 중요한 일이라도 자존심을 뒤로 해두고  가장 솔직하게 의논할 수 있는 정말 소중한 동반자이겠지요. 자존심보다 더 소중한 아내에게 저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해도 됩니까?

"여보, 사랑해."

덧붙이는 글 | 자존심 때문에 응모글



태그:#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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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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