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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5일장 구경가는 할아버지와 손주들 - 강원도 정선군 선평역.
 정선 5일장 구경가는 할아버지와 손주들 - 강원도 정선군 선평역.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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뺨을 스치는 쌀쌀맞은 바람, 썰렁한 풍경, 하루해마저 일찍 저무는 겨울은 절로 마음이 헛헛해지는 계절이다. 모든 것이 편리하고 풍부한 도시지만 겨울철 농촌에 농한기가 있듯 도시 또한 한산하고 적적하기는 매한가지. 사람들의 북적거리는 온기로 따뜻하고 먹거리 풍성한 시끌벅적 장터가 그리울 때 찾아가곤 했던 곳이 강원도 정선 오일장이다. 돌이켜 보면 정선 오일장터는 어느 계절에 가도 정겨움과 푸근함을 선사해 주던 곳으로 기억된다. 

얼마 전까지 정선 오일장은 봄부터 가을까지만 열렸었는데 요즘 같은 한 겨울에도 장터가 열린다는 반가운 소식에 식구들을 대동하고서 정선행 기차에 올라탔다. 그런데 서울 청량리역에서 정선역을 향해 달려가는 열차가 올해 이채로운 변신을 했다. 평범했던 무궁화호 열차가 '정선아리랑열차(A-Train)'으로 개명을 한 것. 정선오일 장날(2일, 7일, 12일, 17일, 22일, 27일)과 주말·공휴일에 맞춰 하루 한 번 떠나는 관광열차다. (청량리역-정선역 기준 성인 26,100원, 어린이 14,800원, 경로 19,300원)

정선장(場)이 인기가 많다보니 정선아리랑열차는 충청권에서도 이용가능하다. 대전역(07:42발)에서 출발해 제천역(09:15착)에서 정선아리랑 열차로 환승하고, 올 때는 다시 제천역으로 돌아와 대전역행 열차를 이용하면 된다고.

즐거운 여정이 된 기차여행, 정선아리랑열차 

수하물을 올려놓는 곳까지 창문을 터서 조망이 참 좋은 정선아리랑열차.
 수하물을 올려놓는 곳까지 창문을 터서 조망이 참 좋은 정선아리랑열차.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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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탈 것 중에 자전거 다음으로 기차를 좋아한다. 구불구불 이어진 궤도를 일정한 속도로 달리면서 내는 기분 좋은 소음과 리듬이 때론 자장가처럼 편안하게 느껴진다. 창 밖의 풍경을 보기도, 음악을 듣기도, 책을 읽기도, 그저 멍하니 상념에 빠지기도 좋다. 너무 빠르지 않은 적당한 속도는 가만히 앉아 풍경과 함께 흐르는 느낌을 준다. 몸을 옥죄는 안전벨트를 안 해도 되는 편안함과 짜증스런 교통정체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것도 큰 장점이다.  

기존열차를 개조해 관광열차로 탈바꿈한 정선아리랑열차는 기차의 여러 장점 외에 열차를 타는 순간부터 여행이 시작되는 기분이 드는, 여정이 느껴지는 교통편이다. 정선선 열차의 가장 큰 즐거움은 넓은 창으로 펼쳐지는 눈 시원한 풍경이다. 좌석 위 수하물을 놓는 자리를 과감하게 창으로 바꾸었다. 덕분에 모든 좌석에서 한 폭의 수묵화 같은 강원도의 풍경과 청정 자연을 감상할 수 있었다. 좌석 옆 창문이 열고 닫을 수 있는 개방형이라는 점과 좌석마다 휴대기기 충전을 할 수 있는 콘센트가 설치돼 있는 것도 좋았다. 

열차의 맨 뒤 칸인 4호차로 가면 전망칸이 있는 데 좌석에선 볼 수 없었던 기찻길과 주변 경관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춘천행 기차 꼬리 칸에 주저앉아 친구와 기타를 치고 맥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다 감탄했던 북한강변의 장쾌한 산하(山河)가 아스라이 떠올랐다. 같은 풍경이지만 다가오는 풍경과 달리 멀어져가는 풍경은 또 다른 감흥을 불러 일으켰다.     

정선읍 동네만큼이나 소담한 정선의 관문 정선역.
 정선읍 동네만큼이나 소담한 정선의 관문 정선역.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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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자리로 돌아오니 열차는 어느 새 봉긋봉긋 솟은 강원도 두메산골을 꿰고 달린다. 눈덩이를 인 기암괴석이 손에 닿을 듯 지나고, 까마득한 철교 아래로 동강이 동작을 멈춘 사람처럼 흐르지 못하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널찍한 전망창으로 그림 같은 풍경이 지나갔다. 눈이 내리는 날 이 기차는 그냥 눈꽃열차가 되겠다. 영월역, 예미역, 선평역 등에서 몇 분간 숨을 고르는 사이, 정선장에 구경 가려 기차에 오르는 지역 주민들의 모습이 정답다. 할아버지 손을 꼭 잡고 마실 나온 귀여운 손주들, 매일 보는 풍경일 텐데도 뭐가 그리 신기한지 그림 감상하듯 창밖 풍경에 푹 빠졌다.  

관광열차답게 승무원들이 진행하는 음악방송, 기념사진을 찍어주는 포토 서비스, 휴게실에서 남녀 두 분이 약식으로 들려주는 정선 아라리 민요도 들을 수 있는 이벤트도 진행해 기차여행이 지루하지가 않았다. 강원도의 대표적인 민요 정선 아라리는 신세 한탄, 시집살이의 설움, 남녀의 사랑, 농삿일의 고됨 등 가사가 참 다양하기도 했다. 애잔하고 구성진 노랫가락에 해학과 유머, 풍자가 담겨있어 뭉클하다가도 웃음을 터트리게 하며 듣는 이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한다.

'얼른 와요! 여가 장터래요', 겨울에도 훈훈한 정선 5일장터

야외에서 빛을 발하는 농악소리가 정선장을 더 흥겹게 한다.
 야외에서 빛을 발하는 농악소리가 정선장을 더 흥겹게 한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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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읍 마을처럼 소담한 시골 기차역 정선역에 내렸다. 나무 장승 한 쌍이 반기는 정선읍의 관문이기도한 기차역을 둘러보다가 정선(旌善)이라는 동네이름이 '착한 고을이라는 사실을 깃대를 세워 표시하고 산다'는 뜻이라는 걸 알게 됐다. 푸근하고도 의미 있는 이름이다. 정선역엔 흥미로운 숙소가 있다. 기차를 개조해 만든 정선 게스트하우스. 명소 많은 관광지 정선이 여정이 풍성한 좋은 여행지가 되고 있었다. 

정선5일장은 정선역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인 정선읍 내에서 펼쳐진다. '얼른 와요! 여가 장터래요' 재미있는 강원도 사투리로 쓰인 장터 간판이 반긴다. 1966년에 생겨났다는 정선오일장터는 전국 최대의 민속 재래시장으로 주차장의 많은 관광버스들은 물론 이렇게 전용 관광열차가 운행될 정도로 찾는 이들이 많다. 장터는 물론 길 양쪽으로 빈틈없이 들어찬 수많은 점포와 각종 노점 좌판들이 5일장을 찾아온 사람들과 함께 장사진을 이룬다. 장터에서 들려오는 태평소, 북, 꽹과리 등이 펼치는 농악소리가 흥겹다. 체면 차리는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신나게 농악무리가 이끄는 데로 들어가 어울렸다. 역시 우리 농악은 실내가 아닌 야외에서 들어야 제 맛이다.   

강원도 청정 지역 정선의 신선한 고랭지 농산물과 메밀전병, 곤드레나물, 올챙이 국수, 수수부꾸미, 콧등치기 국수 등의 별미는 단연 인기다. 송이를 잘라 기름소금에 찍어 먹어 보라며 말을 건네는 할머니의 강원도 사투리는 호객행위로 들리기는커녕 재미있고 정답다.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정선의 자랑인 산나물과 황기 같은 특산물을 믿고 살 수 있도록 가게마다 신토불이 상인 인증을 하고 있는 점도 눈길을 끌었다. 장터의 먹거리는 3만 원 이상 주문하면 택배배송도 가능하다.

강원도의 먹거리가 다 모여있는 정선시장.
 강원도의 먹거리가 다 모여있는 정선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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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장날엔 정선아리랑극을 현대극으로 만든 '메나리' 공연을 볼 수 있다.
 정선장날엔 정선아리랑극을 현대극으로 만든 '메나리' 공연을 볼 수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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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밥으로 들기름의 고소한 향과 나물의 구수한 향이 좋은 곤드레나물밥과 모듬전을 한상 차려 먹는데 식당 할머니가 팥죽 한 그릇을 슬며시 밥상위에 올려놓았다. 녹두 앙금을 넣은 수수부꾸미는 한 김 식으면 쫄깃해져서 더 맛있다는 비결도 알려 주셨다. 메밀쌀을 맷돌에 갈아 만드는 메밀전병은 알싸한 맛이 나 물어보니 다진 갓김치를 넣는단다. 후식으로 취나물로 만든 '수리취떡'을 먹었더니, 콧등을 친다는 재미있는 이름의 '콧등치기국수'는 미쳐 못 먹고 시장 안에 마련된 장터 공연장으로 갔다. 장날이면 장터 공연장에서는 떡메치기, 아리랑 공연, 노래 자랑 대회 등이 펼쳐진다.

매주 토요일과 장날 오후 2시에 정선 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는 정선아리랑극 상설공연을 관람하면 더욱 좋겠다. 이 공연은 시장에서 현금대신 쓸 수 있는 정선아리랑 상품권을 5,000원 이상 구입한 관광객이라면 그냥 입장 할 수 있다니 거의 무료 공연이나 마찬가지다. 정선 아리랑 상품권은 열차 내, 정선역 등지에서 판매한다.

우리나라 '3대 아리랑'엔 정선아리랑과 함께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이 있다. 엉덩이가 들썩이고 어깨가 저절로 덩실거리는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로 시작하는 밀양아리랑과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으로 잘 알려진 진도아리랑. 그러나 정선아리랑은 두 아리랑과 사뭇 달랐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가락이 느릿느릿하고 구슬프다. 돌이 많고 척박한 땅에서 먹을 것 없이 가난하게 살았던 옛 강원도 주민들의 시름이 고스란히 아리랑 가락에 묻어나는 듯 했다.

'메나리'라 하여 정선 아라리를 현대극으로 재구성한 아리랑극 임에도 곡조에 담긴 특유의 애잔함이 속 깊이 남아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배우들이 무대 인사를 하는 와중에도 정선 아리랑의 흥(興)이 계속 귓가를 맴돌았다. 강원도 정선군 북면 여량리에 있는 강나루 아우라지의 뱃사공이 부르던 노래가 바로 '정선아리랑'의 유래라고 한다. 아라리의 고향답게 정선에선 '정선아리랑' 즉 '정선아라리'를 사랑하는 강원도민의 마음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심지어 장터 화장실 한쪽 벽면에도 노래 가사가 잘 새겨져 있다.

'산천에 올라서 임 생각을 하니 풀잎의 마디마디에 찬 이슬이 맺히네',
'이밥쌀밥에 고기반찬 맛을 몰라 못 먹나 사절치기 강냉이밥도 마음만 편하면 되잖소.'

폐갱도를 걷다가 마주친 놀라운 동굴 속 세계, 화암동굴

일제강점기때 금을 캤던 폐갱도가 먼저 맞이하는 화암동굴.
 일제강점기때 금을 캤던 폐갱도가 먼저 맞이하는 화암동굴.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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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에 와서 못 가봐 내내 아쉬웠던 화암동굴(033-562-7062, 입장료 5천원)에 갔다. 화암8경 가운데 하나라는 이 동굴은 정선역이나 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버스가 다닌다. 화암동굴이 있는 화암리(畵岩里)의 지명은 마을 부근의 산이 마치 그림과 같다 하여 옛날부터 그림바위라 불렸고, 마을 명을 화암리라 지었단다. 산 좋고 물 좋은 강원도 정선은 우리나라 지하자원의 보고였다. 석탄 산업이 활발했던 7.80년대 정선군 고한읍과 사북읍은 어느 지역보다 활기가 넘쳤다.

그보다 훨씬 이전인 일제강점기인 1920~40년대엔 정선군 화암면이 금광으로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화암동굴은 일제 강점기인 1934년 금광의 갱도를 굴착하는 도중에 우연하게 발견됐다. 금맥을 찾는 과정에서 석회암의 천연 종유석 동굴을 발견한 것이다. 이후 1993년 3월 1일에 일반인들에게 처음으로 공개됐으며 관람 구간은 약 2km에 2시간 정도 걸린다.

이 동굴의 독특한 점은 강원도의 다른 동굴과는 달리 광산의 갱도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석탄이 아니라 금광이다. 일제강점기 '노다지'로 꼽히던 천포광산의 폐갱도를 따라 걸으며 동굴에 들어가는 기분이 이채롭다. 일제에 의해 약탈됐던 금광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동굴 옆엔 금을 캐며 살아가던 당시 사람들의 삶을 생생하게 재현해 놓은 천포  금광촌이 조성돼 있어 눈길을 끌었다.

갱도를 지나면 놀라운 동굴속 세계가 펼쳐진다.
 갱도를 지나면 놀라운 동굴속 세계가 펼쳐진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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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갱도를 지나다보면 200m가 넘는 길이의 오르락 내리락 경사의 철계단과 함께 하늘이 열리고 사방이 트이면서 놀라운 지하세계가 나타난다. 화암동굴은 여기서 부터가 진짜다. 금광을 따라 연결된 동굴 속 날것 그대로의 모습이 고스란히 비현실적으로 나타난다. 조명 빛에 의지해 어둠속을 같이 걷던 사람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자연이 만든 종유석 폭포와 대형석순, 석주, 동굴꽃이라 불리는 석화와 곡석 등 동굴 속에 자리한 기묘한 돌들이 즐비하다.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국내 천연동굴 중 최대 규모라 할만 했다. 그 신비로움에 넋을 내놓고 서성였던 덕택에 2시간 걸린다는 동굴을 3시간 만에야 나왔다.

구불구불 옥빛으로 흐르는 아름다운 동강을 비롯해 정선엔 좋은 여행지가 많다보니 정선아리랑열차는 당일에서 1박2일까지 패키지 여행상품도 마련되어 있다. 정선5일장, 정선아리랑극 외에 화암동굴 코스와 동강 병방치 전망대, 구절리역에서 아우라지역까지의 레일 바이크, 아우라지 나룻터 뱃사공 체험, 아라리촌 등을 여행한다. (문의 : 코레일관광개발
http://www.korailtravel.com)

기차를 개조해 만든 이채로운 숙소, 정선 게스트하우스.
 기차를 개조해 만든 이채로운 숙소, 정선 게스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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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ㅇ 지난 1월 31일에 다녀왔습니다.



태그:#정선아리랑열차, #정선오일장, #화암동굴, #A-TRAIN, #정선아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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