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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기둥이 트위스트 춤을 추네요!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가 다 허망하다. 만약 모든 형상을 형상이 아닌 것으로 본다면 곧 여래를 보리라."

금강경에 나오는 부처님 말씀입니다. 아무리 단단한 다이아몬드라 할지라도 인연이 다 되어 버리면 흩어져 사라지고 맙니다. 그 도리를 알면 무엇이든 본래의 모습대로 바르게 바라볼 수 있다는 뜻이겠지요.

이 세상의 모든 형상 있는 것들의 참모습을 지혜의 눈으로 바르게 바라보고 그대로 행한다면 모든 문제의 해결은 간단하게 해결될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세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진실을 손바닥으로 가리고 거짓을 진실로 말하는 세상입니다.  

트위스트 춤을 추듯 비틀어진 화엄사 보제루 기둥
 트위스트 춤을 추듯 비틀어진 화엄사 보제루 기둥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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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보제루를 들어서니 삐틀삐틀한 기둥들이 춤을 추며 보제루를 받들고 있습니다.

"와우, 기둥이 트위스트 춤을 추네요!"

몇 해 전 호주에서 온 친구 존이 저 보제루 기둥을 보고 한 말입니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보제루 기둥들이 정말로 트위스트 춤을 추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는' 존의 눈은 참으로 진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부처님께서도 분명히 우리와 똑같은 육안으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았겠지요. 그렇지만 부처님은 육안, 천안, 혜안, 법안, 불안 즉 오안을 두루 갖추고 계셔서 모든 것을 동일한 몸으로 본다고 합니다. 즉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사물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하나로 눈으로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모든 중생을 두루 제도한다는 뜻을 가진 보제루는 보통 대웅전 앞 위치하고 있습니다. 중심 불전을 마주 올려다 볼 수 있는 누각에서 법회의식을 진행을 하는 곳이지요. 그런데 화엄사 보제루는 특별함이 숨어 있습니다.

대개 절에서는 누하진입이라 하여 누각 아래로 들어가지만, 화엄사 보제루는 기둥을 낮게 하여 누하진입을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어 오른쪽으로 돌아서 본전 전각으로 들어서게 되어 있지요. 이는 화엄사의 중심영역인 각황전, 대웅전, 대석단, 탑이 펼쳐지는 장엄한 경관을 보다 감동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건축적 배려라고 합니다. 자신을 낮추어 보다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어내는 셈입니다. 

자연 그대의 모습을 간직한 화엄사 보제루 기둥
 자연 그대의 모습을 간직한 화엄사 보제루 기둥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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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런 비밀스런 건축적 배려보다는 나는 보제루를 받치고 있는 삐틀삐틀한 기둥에 눈이 꽂힙니다. 보제루의 기둥은 보면 볼수록 자연미가 넘쳐흐릅니다. 자연 그대로의 굵은 나무를 굽은 대로 설렁설렁 다듬어 그대로 사용을 한 것입니다.

얼핏 보면 존이 말한 것처럼 나무 기둥들이 트위스트 춤을 추고 있는 듯이 보이기도 합니다. 단청도 하지 않은 채 자연 그대로의 숲 속 나무를 그대로 옮겨 놓은 모습이 더욱 고색찬연하게 돋보입니다. 

화엄사의 매력은 바로 건물을 받치고 있는 기둥들에 있습니다. 화엄사에는 수많은 보물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어 볼거리가 수두룩하지만 전각을 받치고 있는 나무기둥들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화엄사를 올 때마다 나는 기둥들이 살아 있는 듯 춤을 추며 보제루를 받치고 있는 자연그대로의 고색 찬연한 모습에 반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지리산 자락에 장엄하게 펼쳐진 화엄사
 지리산 자락에 장엄하게 펼쳐진 화엄사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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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제루에서 오른쪽으로 돌아서면 절로 감탄사가 나옵니다. 화엄사 최고의 멋진 경관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높은 석단으로 둘러싸인 너른 마당에는 두기의 석탑이 서 있고, 석단 위로는 각황전, 대웅전, 원통전, 명부전의 오래된 전각이 지리산 봉우리들과 함께 장엄하게 펼쳐집니다.

마치 연꽃으로 장엄한 화엄세계에 들어온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절대로 서두를 일이 아닙니다. 보제루의 마루에 편하게 걸터앉아 지리산자락에 펼쳐진 장엄한 화엄세계를 찬찬히 음미해 보아야 합니다. 

보제루 마루에서 바라본 각황전
 보제루 마루에서 바라본 각황전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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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는 1500여 년 전(백제 성왕 22년, 서시 544년)  천축국(인도)에서 연이라는 짐승을 타고 온 연기조사가 창건을 한 절입니다. 신라시대 원효대사는 이 터에서 화랑도들에게 화엄사상을 가르치며 신라통일의 위업을 달성케 했고, 의상은 각황전 자리에 장육전을 짓고 벽에 화엄경을 새겨 넣어 화엄사상을 펼쳤습니다. 그 당시 장육전은 3층 규모로 1장 6척(4.8m)의 거대한 석가여래입상을 모셨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신라말기(875)에 도선국사는 동오층석탑과 서오층석탑을 조성하여 화엄사 중흥조가 되었습니다. 도선국사는 풍수지리의 대가입니다. 도선국사는 화엄사 대가람의 배가 백두산 혈맥의 웅대한 힘과 섬진강의 태극의 힘에 출렁되는 것을 보고 부처님 사리를 두 탑에 봉안하여 요동함을 막음과 동시에 가람의 원만한 기운이 감돌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원더풀! 저 기둥은 활처럼 휘어졌군요!" 

보제루 마루에 한동안 걸쳐 앉아 있다가 높은 석단을 올라갔습니다.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웅전에 참배를 하고 나와 왼쪽으로 돌아가 그 유명한 각황전 앞에 섰습니다. 각황전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장육전 자리에 새로 지은 건물입니다. 법당을 지은 후 숙종은 각황전이라는 편액을 내려주었는데, 각황전의 사액에는 거지가 숙종의 공주로 환생하여 시주하였다는 민간의 설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원더풀! 저 기둥은 활처럼 휘어졌군요!"

활처럼 휘어진 채 각황전 처마를 빋치고 있는 활주
 활처럼 휘어진 채 각황전 처마를 빋치고 있는 활주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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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호주에서 온 존이 한 말입니다. 존은 각황전 처마를 활처럼 휘어진 기둥이 받치고 있는 모습을 매우 신기한 듯 한참동안 바라보았습니다. 저렇게 활처럼 휘어진 활주는 화엄사 각황전에서만 볼 수 있은 멋진 기둥입니다. 저렇게 휘어진 채 몇 백 년을 무거운 처마를 받치고 있다고 생각을 하니 그저 신기하게만 보일 따름입니다.

활주는 목조건축물 중 추녀가 밖으로 많이 돌출되어 지붕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처지는 것을 막기 위한 보조기둥입니다. 그런데 대개 다른 건축물의 활주는 곧은 기둥을 세우기 마련인데, 각황전은 활처럼 휘어진 곡선미를 가진 나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본래 그 모습 그대로 것이 아름다울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화엄사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기둥입니다.  

부처님 진신사리 73과를 모신 화엄사 사사자석탑
 부처님 진신사리 73과를 모신 화엄사 사사자석탑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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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황전 뒤 언덕에는 자장율사가 부처님 진신사리 73과를 모셔와 사사자삼층석탑에 봉안을 했습니다. 동백꽃이 맺혀있는 108계단을 따라 올라서면 거대한 소나무 밑에 연기조사의 지극한 효심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석탑과 효대가 있습니다. 지금도 연기조사는 머리에 석등을 지고 어머님께 차를 올리고 있습니다. 천년이 넘게 차를 공양하고 있는 연기조사의 효성은 경건하기 그지없습니다.  

암수 두 쌍, 네 마리의 사자가 받치고 있는 사사자삼층석탑은 그 모양새가 독특합니다. 히죽 웃는 모습, 슬픈 표정, 찡그린 모습, 환한 얼굴 등은 인생의 희로애락을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화엄사에 가거든 반드시 이곳에 올라 참배를 하고 오래된 소나무 그늘 아래 앉아보세요. 섬진강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휘휘 둘러보는 지리산 자락과 섬진강을 내려다보는 풍광은 두고두고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태그:#화엄사 보제루 기둥, #각황전 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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