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 심장을 쏴라>의 원작자인 정유정 소설가가 21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내 심장을 쏴라>의 원작자인 정유정 소설가가 21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오마이스타 ■취재/이선필 기자·사진/이정민 기자| 영화 <내 심장을 쏴라>의 원작자 정유정 작가를 앞에 두고 소설가를 꿈꾸며 대학 졸업 후 4년 동안 여러 번 공모에 떨어진 친구 이야기를 했다. 돌아온 답은 "아직 멀었네요!"였다. 2000년에 소설 <열한 살 정은이>로 데뷔한 후 11번 공모에 떨어지며, 7년 뒤에야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로 화려하게 등단했던 과거의 무게가 담겨 있었다. 당시 나이 마흔둘. 이제 막 완성한 자신만의 인장을 소설로 보인 때였다.

친구의 나이가 서른넷이니 정유정 작가 입장에선 조금 더 인내하며 갈고 닦으란 의미였을 것이다. 충분히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다.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여러 이유로 간호대학을 나왔던 정 작가는 5년간 간호사로 일한 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9년을 일했다. "그리고 그만뒀죠!(웃음)" 일을 그만두고 자신은 안 되는 인생이고 재능이 없다고 생각할 즈음 날개를 단 셈이다.

영화계에서 정유정 작가는 새롭게 주목받는 존재다. 당장 28일 개봉인 <내 심장을 쏴라>를 비롯해 또 다른 소설 <7년의 밤> 역시 영화 제작이 확정됐기 때문이다. 특히 <내 심장을 쏴라>는 등단 이후 그의 첫 출세작이기도 하다. 세계문학상 당선으로 얻게 된 1억 원의 고료도 그렇거니와 연극으로, 영화 시나리오로 재탄생하고 있다.

아드레날린 중독자..."위험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

 <내 심장을 쏴라>의 한 장면

<내 심장을 쏴라>의 한 장면 ⓒ 리틀빅픽쳐스


정신 병동에 갇힌 20대 청춘의 각성과 치열한 자기 성찰. 재벌가 자제지만 집안싸움에 말려 정신병원에 갇힌 승민과 공황장애로 자존감마저 잃어버린 수명의 이야기가 소설의 주요 뼈대다. 이민기가 승민 역을, 여진구가 수명 역을 맡아 생명을 불어넣었다.

막상 정유정 작가는 "난 청춘의 분투기로 썼지만 문제용이라는 신인 감독님이 어떻게 변주할까 관심이 많았다"고 운을 뗐다. 마침 감독은 작가의 속마음을 읽었고, 8명의 각색가가 작업할 동안 '청춘의 분투'라는 핵심은 놓치지 않길 주문했다. 그리고 정유정 작가는 그저 영화가 곧 나오겠거니 기다렸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세상을 향해 박제된 청춘들이 외치고 싶었던 일갈이 핵심이다. 비정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깨고 싶었던 청춘은 '차라리 내 심장을 쏘라'고 한껏 호기를 부린다. 사실 이 제목엔 웃긴 사연도 담겨 있다. 2009년 세계문학상 당선 이후 출판사에서 제목이 강하다며 다른 제목을 권했고, 마침 소설을 검토했던 한 지인은 "심장이 강하다면 간은 어때?"라며 반 농담을 했단다. 자칫 소설과 영화 제목이 <내 간을 쏴라>가 될 수도 있었다.

제목을 두고 여러 사람이 왈가왈부했어도 핵심은 청춘이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토록 청춘에 목매게 했을까. 정유정 작가는 큰 한숨부터 쉬었다. "짠하다. 기성세대가 청춘을, 청춘이 기성세대를 100% 이해하진 못하겠지만 다들 청춘을 거쳐 왔으니 그 불안정성은 누구나 알 것"이라고 언급했다.

"20대에 내 인생을 못살고 암담하게 지냈어요. 삶을 버티는 것만으로도 힘들었죠. 그때 누군가 제 어깨만이라도 토닥거렸으면 어땠을지 종종 상상해요. 지나고 보니까 그런 시기를 보내고 있는 청춘에게 할 말이 있더라고요. '인생은 자기가 가는 거지 남이 살아주진 못한다'라고. 소설 역시 그런 생각으로 쓴 것입니다."

자신의 욕망을 제대로 아는 게 중요..."내 인생의 전사를 찾아라"

 영화 <내 심장을 쏴라>의 원작자인 정유정 소설가가 21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아드레날린 중독자. 정유정 작가를 잘 아는 이들이 붙인 별명이다. 잘 나가는 직장을 그만두고 15년을 오롯이 전업 작가로 살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수긍이 간다. 정 작가는 "스스로를 벼랑 끝에 세우는 편"이라며 "위험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고 삶에 대한 자세를 털어놨다.

<내 심장을 쏴라>는 그에겐 삶의 이유이자 원천이기도 하다. 정신병원을 탈출한 승민이 가장 가고 싶어 했던 곳은 바로 히말라야에 속한 안나푸르나다. 오로지 상상으로만 안나푸르나의 이미지를 소설로 담아냈던 2009년으로부터 4년 뒤, 정 작가는 생애 첫 해외여행지로 그곳을 택했다. 또 다른 소설 <28>을 발표한 직후였다.

"승민이 소설에서 바라봤던 그곳을 직접 다녀온 거죠. <28>을 쓴 후 완전 방전상태였어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그 욕망으로 살아왔는데 아무것도 쓸 수가 없더라고요. 슬럼프와는 달랐습니다. 암반 속에 용암이 지글거리기에 그 암반만 깨주면 다시 타오를 수 있는 게 슬럼프라면, 방전은 완전 잿더미처럼 아무런 에너지도 없는 것이었죠.

오랜 시간 생각하고 자료를 준비한 게 있었는데 전혀 쓰고 싶지 않았어요. 우연히 2008년에 작성했던 작업 노트를 봤습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을 써놓고 괄호에 '전사를 찾아라'라고 지문처럼 적어놨더군요. '그래, 이거야!' 외쳤죠. 그 부분만 잘라서 유리병에 담아 히말라야로 갔고, 5460m 고지에 그걸 묻었어요."

 영화 <내 심장을 쏴라>의 원작자인 정유정 소설가가 21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정 작가는 그곳에서 봤던 별들의 바다를 언급했다. 약 17일간의 등반 중, 고산병으로 죽을 뻔했던 위기를 지나 맞이했던 축복의 순간이었다. 동료들이 자고 있던 깊은 새벽에 별들은 한데 모여 큰 빛을 내뿜었다. 정유정 작가는 동이 틀 때까지, 그 별들이 서쪽으로 넘어갈 때까지 서 있었단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그래도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게 바로 인생과 투쟁하는 전사의 모습이었다. 즐기지 못하고 무조건 달렸던 정유정 작가는 "여행을 원체 좋아하지도 않았고 노는 것도 연습해서 놀려고 했던 내가, 달리지 않으면 고꾸라진다는 강박을 안고 살았던 내가 그걸 고쳐보려 안나푸르나에 갔더니 역시 난 나였다"라고 그때의 깨달음을 언급했다. 

"변화가 있었죠. 어떤 삶이든 간에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그것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던졌다면 결과가 어떻든 받아들일 수 있겠더라고요. 소설 속 승민도 마찬가지고요. 자유의지, 그게 중요해요. 혹자는 제가 작가로 자리를 잡아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 아니냐 하겠지만 저 역시 수없이 공모에 떨어지며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넌 작가가 되고 싶은 거니, 아니면 글을 쓰고 싶은 거니?' 자신에게 물어봐요. 전자는 직업에 대한 질문이고 후자는 욕망에 대한 질문인데 항상 답은 후자로 나오더라고요. 그러면 머리를 싸매고 누웠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돼요. '그래! 내 삶을 살자!' 라며(웃음)."

정유정 내 심장을 쏴라 이민기 여진구 히말라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