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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살기 힘들다."

이 말이 너무 흔하기 때문에 아무런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못하리란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참신하지 못한 말을 또 하려는 이유는 정말 먹고살기 힘들기 때문이다.

흔한 프로필... 스펙 쌓기, 만년 인턴, 월급 126만 원(세전)

나의 사연도 '먹고살기 힘들다'는 말만큼 흔하다. 나는 대학 시절 학보사 기자였고, 수 많은 무급 대학생 인턴십을 했으며, 1년여간 어학 연수도 다녀왔다. 이런저런 것을 하느라 대학을 늦게 졸업하고 몇 년간 인턴으로 일했다.

직위는 인턴이었으나 정직원만큼의 책임과 의무가 있었다. 월급을 줄 때는 "경력이 없으니까" 120만 원, 실수했을 땐 "'나는 인턴이니까' 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과는 일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대표가 또 한 번 "그런 사람과는 일할 수 없다"고 했을 때, "그럼 그만둘게요"라고 대답해버렸다. 그렇게 지난해 11월 두 번째 직장을 떠났다. 이것이 나의 흔하디흔한 프로필이다.

월급 120만 원. 자취방 월세, 학자금대출, 보험료, 통신비를 제외하면 밥값도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속 시원히 친구들에게 밥을 산 적도 없고, 마트에서는 언제나 가장 싼 것만 카트에 담았다. '아직 젊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는 돈을 벌 거니까.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이 뒤축이 조금 떨어진 내 신발을 보고 "돈 없어서 그런 걸 신고 다니는 거냐"고 물었을 때, 새삼스레 내가 얼마나 가난한지를, 앞으로도 별로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것을 왠지 예감했다. 자취방으로 돌아와 낡은 신발과 옷을 버리며 많이 울었다.

정신 차려보니 88만 원 세대

2014년 겨울 눈 내리는 도쿄.
▲ 추운 겨울, 추운 오늘 2014년 겨울 눈 내리는 도쿄.
ⓒ 최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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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 원 세대라는 흔한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을 완전히 무시하고 살았다. 하나의 키워드로 세상을 일반화하려는 무리한 시도라고 생각했고, 나는 이와 무관한 삶을 살 거라고 막연히 확신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주변의 거의 모든 친구가 비정규직으로 적은 급여를 받으며 일하고 있었다. 얼마 전 정규직으로 전환된 친구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면서, 이런 것을 축하해야만 하는 세상이 새삼 원망스러웠다. 

우리 세대는 사회로부터 요구받은 다양한 인턴 경험, 유창한 외국어 실력, 컴퓨터 활용 능력을 갖추느라 대학을 늦게 졸업하고, 셀 수 없이 많은 이력서를 낸 끝에 겨우겨우 인턴 자리를 하나 얻고, 또 인턴으로, 계약직으로 일하며 돈도 경력도 잡히는 것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청춘의 특권이라는 방황도 허용되지 않는다. 노력만으로 기회를 얻기 힘들어진 세상이 우리를 겁먹게 했고, 늦은 졸업과 긴 인턴 생활로 새로운 시도를 하기엔 '나이와 경험이 너무 많아서' 쉬이 신입사원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사회는 "대기업 채용에서 스펙 중요하지 않아", "요즘 젊은이들 도전 정신 부족해" 같은 말을 하며, 잘 살아보고 싶었던 우리의 분투를 세태에 휩쓸린 미련한 잘못이라고 무책임하게 탓한다.

알고 있다. 많은 사람이 정규직으로 안정된 월급을 받으며 일하고 있고, 세상은 원래 내 맘대로 되는 것도 공평하지 않다는 걸. 누가 잘못인지, 무엇이 바뀌어야 우리가 조금 더 희망을 가질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그냥 힘들다.

종종 울컥한다. 무언가가 바뀌었으면 좋겠다. 벌써 서른 살이 됐는데 이 '젊어서의 고생'이 언제쯤 끝날지, '내 꿈이 이뤄지는' 때가 언제인지 '사람이 먼저'가 되는 세상이 언제 올지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가내수공업 인디잡지 <흔한열정>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http://comecommon.blogspot.kr/2015/01/pdf.html



태그:#인턴, #88만원세대, #학자금대출, #스펙, #청년실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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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미디어홍보 간사 - 가내수공업청년매거진 <흔한열정>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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