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표 감독은 몇 편의 스릴러 영화도 연출한 바 있지만 <죽어도 좋아>,  <너는 내 운명>,  <내사랑 내곁에> 등의 멜로를 고집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멜로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것은 사랑이다. 이들의 사랑이 얼마나 지고지순한지, 진실된 것인지 영화를 통해 보여준다.


그런데 이번 신작 <오늘의 연애>는 감독이 고수하던 기존의 멜로와는 좀 다른 색깔을 보인다. 제목부터가 오늘의 날씨에서 착안한 오늘의 연애는 마치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날씨와 연애의 미묘한 상관관계를 드러내는 것 같다.

이 영화가 표방하는 썸이라는 관계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연애가 시작되기 전 남녀 간의 미묘한 감정의 기류를 일컫는다는 썸. 이 영화는 과연 영화의 제목처럼 썸남과 썸녀의 가벼운 연애담일까?

준수는 초등학교 교사로 18년 동안 여자 사람인 친구 현우의 곁에서 친구라는 이름으로 머물러 있다. 그동안 다른 여자 친구랑 교제를 해보기도 했지만 언제나 3개월을 넘지 못하고 헤어져 쓰라린 연애사를 가졌다.

인기 있는 기상 캐스터인 현우는 날씨의 여신으로 뭇 남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지만. 정작 유부남 피디(동진)와 사랑에 빠졌다. 준수는 지속적인 연애에 계속 실패하고, 현우는 이루어질 수 없는 상대와의 연애에 빠져 있다. 이들이 맺는 관계는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그것이 준수와 현우의 관계에 빈틈이 되는 것이다.

실패한 연애 경험을 공유하고 서로를 위로하고 붙잡아 줄 수 있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관계의 터닝 포인트다. 준수는 묻는다.

"아직도 내가 너한테 남자 아냐?"

현우가 대답한다.

"미안한데 브라더. 여기 심장이 안 떨려."

그리고 교차하는 키스는 일반적으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키스와는 좀 다르다.

"좋아해."
"나도 좋아해."

그리고 이어지는 키스는 시작의 설렘을 안겨주지만 이들의 키스는 좀 당혹스럽다. 취중 키스라서 그럴까?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한 침대에서 잠을 깨는데도 로맨틱하지 않다. 현우의 '자기야'라는 말은 오글거리고 사귀기로 했다는 말도 장난처럼 싱겁다. 급기야 서로에게 아무런 떨림도 없었다는 말로 감정의 변화를 부인한다. 마치 초등학생이 상대를 좋아하면서도 '너 싫어!'라고 하듯이.

하지만 이 일을 계기로 준수는 현우에 대한 마음을 주워 담을 도리가 없어 혼란스럽다. 현우는 냉담한 준수의 반응에 다른 썸남과 만나기 시작하고 준수 역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썸녀를 밀어내지 않는다. 그리고 준수는 고백한다. 자신이 너무도 싫어하는 족발을 현우 땜에 그동안 먹어왔다고.

현우를 위해 현우와 같은 걸 공유하고 싶어서 준수는 많은 것들을 그녀에게 양보해 왔다. 그것이 그의 사랑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원하는 사랑은 확 밀어붙이는 남자에 가까웠다. 그에 반해 준수는 끝까지 지켜주는 남자였다. 준수와 현우의 관계는 준수의 취중진상 고백을 뒤로하고 급격히 냉각된다.

이때 터지는 현우의 스캔들은 관계를 뒤집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기 위한 예상 가능하고도 뻔한 사건이었다. 언론의 뭇매를 맞고 상처받은 현우가 잠적을 하고 준수가 찾아 헤매는 장면까지. 상처받은 현우와 어찌할 줄 모르는 준수에게 그들의 부모는 사랑에 대해 알은 척을 한다. 냄비가 끓듯 뜨거운 사랑이 있는가 하면 천천히 데워지는 사랑도 있다고. 시간이 지나면 오래 끓은 만큼 간도 맞아진다고. 그리고 생각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옮기라고 말이다.

준수와 현우는 어른들의 조언에 따라 서로를 찾고 서로에게 사랑을 고백하게 된다. 이때 고소공포증을 지닌 준수가 목숨 걸고 자이로드롭에 올라 현우에게 소리치며 고백하는 장면은 그리 멋지지 않다.

눈물 콧물 다 흘리며 마지막인 것처럼 '사랑해!'를 외치는 준수가 찌질해 보일 정도다. 그럼에도 이 장면을 배치한 것은 감독이 이야기하고 싶은 메시지 때문이다. 가볍고 현대적인 관계의 썸이라는 게 있지만 결국 사랑은 이토록 진부한 것이다.

상대를 바라보고 맹목적으로 나아가는 것, 상처와 고통에도 물러서지 않는 것, 네가 아니면 안 되는 게 바로 사랑이라고 목숨 걸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 영화가 썸타는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아니다. 이 영화는 철저하게 사랑, 그 진부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뻔하지만 디게 유치하지만 그게 바로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