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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숲으로 가는 산막이 계단길
▲ 계단길 소나무 숲으로 가는 산막이 계단길
ⓒ 임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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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하루 종일 안개가 자욱하다. 간밤에 비가 내리고 날씨가 포근하기 때문일까. 안개가 금세 사라질 것 같지 않다. 이슬비 같은 안개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음산한 날씨다. "오늘 같은 날에 딱 좋은 일이 없을까" 고민하다 갑자기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오르는 곳이 있어  짐을 챙겨 괴산으로 떠났다.

몇 년 전부터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산막이 옛길을 찾아가기 위함이다. 안개 자욱한 날에는 호수를 끼고 있는 산길에서 뜻하지 않은 멋진 풍광을 만날 것 같기 때문이다. 짙은 안개로 음산하기도 하지만 물안개 피어나는 호수도 좋고, 산 전체를 뒤집어 쓴 안개로 산 풍경이 제법 폼 날 것 같다.

등잔봉 가는길에서  괴산호수
▲ 괴산호수 등잔봉 가는길에서 괴산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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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막이 옛길은 충북 괴산군 칠성면 사은리에 있는 산길이다. 사오랑 마을에서부터 시작해 산막이 마을까지 이어진 십여 리 되는 구불구불한 산길이다. 1957년에 괴산댐이 건설됨에 따라 옛길은 대부분 물에 잠겨 없어지고, 일부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3년 전에 그 길을 다시 살리기 위해 호수 가장자리에 나무받침(데크)을 설치해 삼막이 마을로 가는 길을 복원해 놓았다.

주차료 2천 원을 내고 옛길로 들어섰다. 언덕 길을 조금 오르자 사오랑 마을과 산막이 마을로 가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삼거리에는 나무로 만들어 놓은 커다란 안내판과 설명문이 있는데,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도록 시원스럽게 만들어 놓았다. 옛길로 들어서자 갖가지 모양의 돌조각들이 도열해 있고, 넓은 과일 밭이 펼쳐 있다. 가을에 오면 마음이 풍성해질 것 같다. 산길에 과일 밭이 있다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무척 설레게 하기 때문이다. 

산막이 가는 길에서 만난 괴산호수의 모습
▲ 괴산호수 산막이 가는 길에서 만난 괴산호수의 모습
ⓒ 임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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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근한 안개길, 산막이 옛길을 찾다

산막이 마을로 가는 길은 좌측으로는 맑은 괴산 호수가 그림처럼 펼쳐 있고, 우측으로는 등잔봉(450m)이 병풍처럼 서 있다. 높은 언덕이 없어 남녀노소 누구나 걸을 수 있다. 잘 생긴 소나무들이 멋진 숲을 이루며 맑은 공기와 그윽한 솔 향을 마구 뿜어낸다. 또 여러 종류의 기암괴석이 종종 나타나 심심풀이로 말동무가 돼주기도 한다.

그러나 얼어 붙은 괴산 호수는 아무 말이 없다. 먼 산 위로 뿌연 안개만 피어 오를 뿐이다. 오가는 사람도 별로 없다. 산막이 마을로 가는 길에는 갖가지 모양을 한 바위와 특이한 모양의 나무들만이 길가에 서서 나의 시선을 멈추게 한다. 뫼산 자(山) 모양의 괴산바위며 미인의 엉덩이를 꼭 닮은 갖가지 나무와 바위들이 거니는 산길의 재미를 더해준다.

산막이 마을에서 올려다 본  안개 자욱한 등잔봉
▲ 등잔봉 산막이 마을에서 올려다 본 안개 자욱한 등잔봉
ⓒ 임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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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낀 산길에 보이는 모든 것이 신비함을 자아낸다. 멀리 홀로 서 있는 소나무 한 그루도 그러하고, 얼지 않은 물 위로 비친 산 그림자도 그러하다. 그리고 안갯속에 서 있는 소나무 숲은 또 어떠한가! 마치 내가 동양화 속 주인공이 된 듯싶다. 산길에서 만나는 나무와 쉬엄쉬엄 이야기하며 느릿느릿 걸어가자 어느새 산막이 마을이 동화처럼 눈에 들어온다. 고향 마을로 들어가는 것처럼 길이 굽이굽이 이어지고, 굴뚝에선 연기까지 따스하게 피어오른다. 참으로 오랜만에 만나는 정겨운 풍경이다.

산막이 마을에 이르러 가만히 바라보았다. 마을 앞으로는 얼지 않은 호수 가장자리로 앞산의 모습을 또렷이 비추고, 뒤로는 안개가 산 전체를 신비롭게 감싸고 있다. 어찌나 안개가 짙은지 산의 높이를 전혀 짐작할 수 없다. 신선이 사는 무릉도원이 다름없다. 그러나 몇 집 안 되는 마을은 이미 관광지로 변모된 듯 도회지 냄새가 물씬 풍긴다.

옛 모습은 사라졌지만

산막이 마을에는 새로 지어진 건물이 들어서 있다.
▲ 산막이 마을 산막이 마을에는 새로 지어진 건물이 들어서 있다.
ⓒ 임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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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산막이 마을이 아니라 여행객이 머무는 음식점과 숙박지로 대부분 변모되고 말았다. 기대했던 옛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산과 물그림자만 그대로 남아 있을 뿐이다. 장작더미를 수북이 쌓아 놓은 집들이 그래도 옛 정취를 자아내고, 손두부를 비롯한 올갱이 해장국과 같은 토속 음식들이 다소 위안을 준다. 하지만 옛 토담집에 앉아 화롯불에서 지글지글 끓는 청국장에 밥도 한 사발 먹고 싶고 흰 떡가래도 구워먹고 싶다.

오후 4시가 넘어 산막이 마을을 떠난다. 아직도 안개는 하늘과 산 전체를 덮고 좀처럼 떠날 생각이 없다. 별수 없이 내가 먼저 떠날 수밖에... 여름에는 호수가 얼지 않아 배를 타고 나올 수 있지만 겨울에는 호수가 얼어 다시 걸어 나오는 수밖에 없다. 산막이 마을을 뒤로하고 다시 옛길을 걸어 나온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등산로로 등잔봉을 거쳐 돌아오는 길도 있다. 등잔봉의 전망대에 올라가 내려다보는 괴산호수의 모습이 장관이다. 한반도 모습을 한 지형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계절 옛길을 걷는 맛이 다 다르겠지만 봄에는 진달래 동산과 만발한 산꽃들이 있어 산막이 옛길을 걷는 즐거움이 더 크리라 생각된다.

등산로 : 1코스 4.4km (노루샘부터 산막이마을), 2코스 2.9km (노루샘부터 진달래 동산)


태그:#산막이 옛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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