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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글에서 박근혜 정부의 '기업형 임대주택'이라는 야심찬 프로젝트가 사실은 상당한 문제점을 내포한 정책적 결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대형 건설사들은 망설이고 있고 중견 건설사들은 대형 건설사의 추이를 본다고 하네요. 주목하는 지점은 박근혜 정권이 왜, 지금 이시기에 이러한 정책을 발표했는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연말정산 '폭탄'이 터졌습니다. 최경환 부총리는 정말 당황했습니다. 나성린 새누리당 정책위부의장은 짐짓 "예상했었다"라며 태연한 척 했지만, 당황한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발 빠른 대응을 했습니다. 소급적용을 하겠다는 겁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인데, 과연 그렇게 될까요?

'기업형 임대주택'과 '연말정산 소급적용'은 매우 다른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저는 같은 의제로 읽혔습니다.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층위가 '중산층'이었습니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정리해 보았습니다. 방송 원고를 기반으로 작성합니다.

최경환의 당황과 사과... 무엇을 의미하나?

아마도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에게 지난 20일은 잊지 못할 하루일 것입니다. 그동안 시한폭탄이라 불리던 '연말정산' 폭탄이 터졌기 때문이죠. 최경환은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연말정산으로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 드려서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중산층과 서민층의 세부담 증가를 최소화 하도록 (소득세법을) 설계했으나 근로자 수가 전체 1600만 명에 이르는 관계로 공제항목 또는 부양가족 수 등에 따라 개인별 세 부담 차이는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최경환 부총리는 당황했습니다. 그 근본원인은 세제 설계를 할 때 시뮬레이션을 잘못했기 때문으로 짐작이 됩니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비상이 걸렸고 대책을 마련하려고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서 답답해하고 있습니다.

결국 꺼낸 카드는 '소급적용'이라는 '전례'가 없는 결정이었습니다. 그간 새누리당이 세월호 참사 진상조사위원회에 유가족이 참여하는 문제에 대해서, 그리고 공무원 연금 개편 논의기구에 당사자 단체가 참여하는 문제 등에 있어서 '법과 전례'를 앞세워 반대했습니다. 이를 감안한다면 참으로 기이하기까지 합니다.

최경환으로 하여금 급하게 다섯 가지 보완책을 만들게 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요? 대통령 지지율이 30%대 이하로 떨어졌기 때문에 당황해서인가요? 핵심 지지층인 대구경북과 50~60대층이 등을 돌려서인가요? 그것이 원인일 수도 있지요. 하지만 저는 조금 달리 생각합니다. 중산층 견인의 문제 말이죠.

현재의 모습은 앞에서 언급한 '기업형 임대주택'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군사정권조차 비록 수식어에 그칠망정 '서민주거복지'라는 의제는 끌고 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은 당당하게 이야기 합니다. 국토부에서 펴낸 Q&A 3쪽에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6. 정부가 왜 중산층까지 주거지원을 하는지?
□ 정부는 앞으로도 서민층의 주거안정을 최우선 정책과정으로 추진해 나갈 계획이나,
ㅇ 중산층의 주거불안을 줄여나가는 것도 정부의 역할 중 하나임

노골적으로 '중산층'표를 끌고 가겠다는 겁니다. 최경환 부총리가 연말정산으로 인해 당황하고 사과를 하는 것은 '정윤회 파동'으로 인해 더 밀릴 수 없는 상황까지 온 처지이기 때문입니다. 지지기반의 핵심이라 이야기 할 수 있는 '중산층'의 심각한 이반이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차근차근 살펴보죠.

노림수 하나, 지지기반의 확장과 공고화

지난 16일 발표된 한국 갤럽의 여론조사 결과 박근혜 대통령이 직무 수행을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35%로 나타났습니다. 또 27일 리얼미터에 따르면 29.7%라고 합니다. 취임 이후 가장 낮은 수치입니다. 두 여론조사의 결과가 말하는 것은 흔히 이야기 하는 '소가 밟아도 깨지지 않는' 콘크리트 지지층만 남기고 다 이탈했다는 의밉니다.

저는 이것을 거꾸로 해석합니다. 집권 이후 인사파동부터 시작해서 온갖 이유로 스펙터클한 국정운영을 보여 준 박근혜 정부가 '십상시 파동'으로 인해 치명적 타격을 받고도 30% 가량의 지지율을 갖고 있습니다. 이는 어떤 계기점만 있으면 다시 언제든지 반등이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그 반등을 위해 간첩도 조작하고, 정당도 해산시키고, 종북몰이도 하고 여러 가지 다양하게 포석을 깔았습니다. 그런데 최대의 약점인 '경제적 성과'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야심차게 '미래창조과학부'를 신설하고 '창조경제'의 모범사례로 '싸이'를 거론했지만 아직도 일부 현장에서는 창조경제 구호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박근혜 정권에게 중산층 지지 확보는 대단히 중요한 반등기회를 잡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현 정권에 대해 열렬히 지지를 하지는 않지만, 야당에 대해서도 미덥지 않고 비판적인 중산층 말입니다. 그렇게 애지중지 소중하게 다뤄야 하는 지지층이 이번 연말정산 폭탄에 제대로 상처를 입고 화를 내니까 전례 없는 '소급적용'까지 거론하며 사과한 것이지요.

전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전격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참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박근혜 정권이 다급했다는 증거이기도 하지요. 박근혜 정권으로서 중산층은 '가까이 있어도 늘 그리운 그대'입니다. 이들에 대한 지지기반을 늘리고 또 이를 공고화 하는 작업을 하는 첫 단계는 경제적인 차원에서의 남다른 서비스입니다.

현재 부동산 시장의 트렌드는 임대로 갈 것인데, 중산층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먼저 '고품질'로 접근하여 선점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기업형 임대주택'인 것입니다.

노림수 둘, 시장 트렌드에 대한 선제적 주도

서민층은 여전히 전세를 선호하지만 시장의 트렌드는 이미 월세로 전환됐습니다. 국토부가 지난 22일 발표한 '2014년도 주거실태조사'의 주요지표를 살펴보면 뚜렷하게 알 수 있습니다. 자가주택 보유율이 58%이지만 8년째 감소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내 집을 꼭 마련하겠다'라는 생각도 줄어들면서, 월세가구는 2012년 50.5%에서 지난해 55.0%로 증가한 반면 전세가구는 49.5%에서 45%로 감소했다는 겁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집이라는 것이 '사는 것(buy)'에서 '사는 곳(live)'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빌려 쓴다는 '렌트(Rent)'의 시대가 트렌드로 정착하고 있다는 겁니다.

사실 '빌려다 쓴다'라는 개념이 시대의 주요 트렌드로 변하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의 1인 가구의 증가, 그리고 '솔로이코노미'라 불리는 '1인 시장'이 확대되는 것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1인 가구의 증가는 세계에서도 가장 빠른 수준이고, 이미 2012년에는 1인 가구의 비중이 25%를 넘어서 4인 가구 비중을 넘어섰습니다.

쉽게 말해 세 집 건너 한 집은 혼자 산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이미 '렌트카'나 '정수기'같이 빌려 쓰는 게 확실하게 대세인 시장도 있습니다. 이런 소비패턴은 가전과 식품, 생활제품으로 확대 되면서 결국 부동산 시장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부동산 시장에서 전세 물건은 부족한 반면 월세 물건은 늘어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전세와 반전세, 월세가 공존하면서 점차 월세가 표준화 되는 상황을 정부가 먼저 선제적으로 주도하려 합니다. 기업형 임대주택 사업에 대해서 경실련은 건설경기 부양정책이라고 혹독하게 이를 비판했습니다.

즉, "임대주택의 핵심은 공공이 서민주거안정을 위해 지속적인 예산투입을 통해 시장에 대응할 수 있는 안정적인 공공임대 주택을 늘리는 것이지 경영난에 빠진 건설사에게 신사업 물량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주장입니다. 충분히 타당한 주장입니다만 이것이 모든 것을 설명해 주지는 못합니다.

대신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요? 정부가 먼저 부동산 시장의 임대 트렌드를 주도하고 그 시장을 장악하게 되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봅시다. 주거에서 '공동체'의 형성이라는 것은 지역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합니다. 그런데 그 주거가 끊임없이 불안정하고 '내 지역'또는 '내 터전'의 생각이 아니라 '빌리는 곳' 또는 '빌렸다 언제든 반납하는 곳'으로 생각합니다.

현대사회 개인의 특징을 개인화·파편화·원자화라고 이야기합니다. 분절된 개인은 연대를 거부하며 그 시대적 트렌드에 몸을 맡겨 삽니다. 당연히 권력을 쥔 입장에서는 조각조각 나뉜 개인을 권력의 힘으로 평정하는 것이 지역 혹은 근거지를 기반으로 연대한 개인을 누르기보다 훨씬 쉽겠지요.

권력에는 다행이랄까요? 시장의 트렌드가 리스나 렌트로 바뀌는 모습이 보이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시장을 주도할 생각을 하지 않을까요? 이것을 제가 두 번째 노림수로 시장을 주도하려는 목적이라 판단했습니다. 아, 무슨 치밀한 계획을 짜내서 만든 것은 아니라 기득권 보호를 위한 '본능'에 의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는 생각 이상의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예상을 해 봅니다. 물론 제 추측입니다.

노림수 셋. 시장권력에 대한 순치(馴致)와 정치권력의 우위 확인

군사정권도 '서민주거복지'라는 의제를 사용했는데 박근혜 정권은 아예 이를 뺀 것처럼 보입니다. '왜 이리 뻣뻣할까?'하고 생각을 해 보았지요. 이는 정치권력이 경제권력보다 우위에 있음을 확인하는 작업입니다. 이명박 대통령 당시에도 이익공유제를 두고 정계와 재계가 충돌한 적이 있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005년 7월 5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시책 점검회의'에서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이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간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여러 가지 힘의 원천이 시장에서 비롯되고 또 시장에서의 여러 가지 경쟁과 협상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 같습니다. 정부는 시장을 어떻게 공정하게 관리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정부가 중소기업 정책을 많이 해서 나름대로 기여를 하긴 했겠지만 지금 정책을 하면서 정부 정책만으로는 결국 이 문제가 다 해결되지는 않을 것 같다는 판단을 우리는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이야기는 노무현 대통령의 '읍소'였습니다. 저는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대기업이 협력해 줄 것을 당부하기 위한 인사말로 받아들였습니다. 당시 언론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이 이야기를 '무책임'한 발언으로 규정했습니다. 어쩌면 재벌들도 스스로 그렇게 믿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상황은 경제에 관해서는 무능력의 극치를 보이고 있는 박근혜 정권도 마찬가지입니다. 박근혜 정권은 시장권력이 자신들에게 더 기어오르지 못하게 채찍과 당근을 적절히 조절할 줄 아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되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장기적으로 정치권력과 시장권력의 순위에 대해서 명확히 선을 그을 프로젝트가 또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박근혜 정권은 이를 경험해봤습니다. 경제를 적절히 통제하고, 정책을 진행할 줄 압니다. 상대적으로 진보적 정권은 그런 부분이 약하지요. 벌써 어떤 건설기업의 경우 임대주택 시장으로의 진출을 기정사실화 했다고 합니다. 결코 박근혜 정권의 이런 프로젝트가 허언으로만 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마무리를 하며

뜬금없는 '기업형 임대주택'의 발상과 '연말정산 소급적용'의 사례는 현재의 박근혜 정권의 명확한 자기 성격을 보여줍니다. 지지기반의 확산과 공고화, 시장 트렌드의 주도화, 경제권력에 대한 순치 등은 그다지 크게 다가오지 않는 경제 의제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명징하게 알 수 있는 것은, 현재의 보수진영이 나름의 '자기지향성'을 가지고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난리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절대 법인세를 올리지 못한다고 엄포를 놓고 있습니다. 근원적인 문제는 '증세 없는 복지'인데 누리꾼들이 '증세, 없는 복지'라고 조롱하는 것이 현재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박근혜 정권이 이렇게 잘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야당의 지지율이 밑바닥이라는 비극입니다. 보수정권은 결코 허약하지 않습니다. 진보정권보다 더 치밀합니다.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직썰'에도 투고했습니다.



태그:#경제에서 정치읽기, #연말정산 소급적용, #지지기반 확장, #시장 트렌드, #시장권력 순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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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요한, 1969년 서울 산(産), 2000년부터 방송에 관심 있어 주변을 맴돌다 2005년 우연히 얻어 걸린 라디오 전화인터뷰부터 시사평론 방송시작, 2014년부터는 경제 Agenda에 집중, 시사경제평론을 하면서 몇몇 경제채널 출연하고 있음, 어떻게 하면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는지 종일 고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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