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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교육 현안에 대해 이야기하며 활짝 웃고 있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교육 현안에 대해 이야기하며 활짝 웃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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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성향 단체의 대표를 하고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가 경북대 총장에 임명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가 있어요. 믿고 싶지 않아요. 그건 박 대통령의 식견을 무시하라는 거라고 봅니다. 정확한 이유를 알려줬으면 합니다."

26일 김사열 경북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의 말이다. 김사열 교수는 지난해 11월 경북대 총장임용추천위원회에서 총장 1순위 후보자로 뽑혔다. 총장 직선제에서 간선제로 바뀐 뒤 첫 총장 후보의 탄생이었다. 경북대는 교육부 장관에게 2순위 후보를 포함해 임용 제청을 요청했다. 국립대 총장은 교육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지난달 15일 교육부는 경북대에 다시 총장 후보를 뽑아달라고 요청했다. 두 후보를 제청하지 않은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경북대 교수회의 요청에도 교육부는 '비공개'라며 입을 닫았다. 김사열 교수가 지난달 직접 정보공개를 청구했지만, 교육부로부터 어떠한 답변도 듣지 못했다.

김 교수가 진보 성향 단체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교육부로부터 퇴짜를 맞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김 교수는 "알 수 없는 일"이라면서 "9월 이후 총장 공석 탓에 학사 일정에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판사 출신인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법을 어기면서까지 이유를 왜 밝히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21일 서울행정법원에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임용 제청 거부를 취소하라는 내용의 소송을 냈다. 이미 같은 상황에 처한 류수노 방송통신대학교(방송대) 총장 후보와 김현규 공주대 총장 후보는 소송에서 이겼다. 김 교수는 "교육부는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있다, 힘의 우위로 계속 밀어붙인다면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비판했다.

법원, 교육부에 잇단 철퇴... 황우여 "대법원까지 가겠다"

교육부가 잇달아 경북대·공주대·방송대·한국체육대학교(한체대) 등 국립대 4곳의 총장 임용 제청을 아무 이유 없이 거부하고 있어 파문이 일고 있다. 한체대의 경우, 2012년 12월에 추천된 안용규 총장 후보를 포함해 4명의 후보가 교육부로부터 퇴짜를 맞았다. 2013년 3월 전임 총장이 퇴임한 이후, 1년 10개월째 총장 공석 상태다.

결국 한체대는 지난 6일 정·재계 인맥을 강조한 김성조 전 새누리당 의원을 총장 1순위 후보로 뽑았다. 공주대와 방송대는 각각 5월과 8월에 새 총장 후보를 추천했지만, 교육부가 임용 제청을 거부했다.

문제는 교육부가 이들 대학의 총장 후보에게 퇴짜를 놓은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황우여 교육부 장관의 말 바꾸기가 있었다. 황우여 장관은 지난해 10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교육부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관련 질의에 "임용 제청 거부 사유를 당사자에게 통보하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황 장관은 25일 공개된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제청거부 사유를) 알려주는 것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교육부는 전통적으로 그런 것이 없었다"면서 "만약 (대법원) 판례가 공개하라면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도종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 따르면, 황 장관의 대답은 사실과 다르다. 2000년 이후 전국 13개 국립대의 총장 임용 제청 거부 사례는 박근혜 정부 이전에 3차례 있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교육부는 음주운전 전력과 재산 형성 과정에서 문제가 드러난 김아무개 전북대 총장 후보에 대한 임용 제청을 거부했다.

이명박 정부는 강아무개 제주대 총장 후보와 정아무개 부산대 총장 후보에 대한 임용 제청을 거부하면서 각각 공무원 겸직허가·영리행위 금지 의무 위반, 선거운동 제한사항 위반이라고 그 이유를 공개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 국립대 4곳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7차례의 임용 제청 거부 사례가 발생한 것은 정상적이지 않다는 게 대학가의 목소리다. 

교육부는 이미 법원에서 철퇴를 맞았다. 22일 서울행정법원은 교육부의 류수노 방송대 총장 후보에 대한 임용 제청 거부 처분을 취소했다. 교육부가 임용 제청을 거부하면서 근거와 이유를 밝히지 않은 것을 두고 행정절차법 23조 1항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전날 서울고등법원은 교육부를 상대로 같은 내용의 소송을 제기한 김현규 공주대 총장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는 지난 2011년 9월 부산대 총장 후보자에 대한 임용 제청을 거부하면서 교육공무원법 위반이라는 사유를 밝힌 바 있다.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는 지난 2011년 9월 부산대 총장 후보자에 대한 임용 제청을 거부하면서 교육공무원법 위반이라는 사유를 밝힌 바 있다.
ⓒ 교육부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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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 맞는 인사 앉히려고 하나?"

교육부가 법을 위반하면서까지 국립대 총장 임용 제청 거부 사유를 밝히지 않은 것을 두고, 정권의 입맛에 맞는 총장을 앉히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김사열 교수는 진보 성향인 대구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민예총) 회장을 지냈고, 2004년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회원으로서 국가보안법 폐지 성명서에 이름을 올렸다. 문계완 경북대 교수회 의장은 "'진보 성향 탓에 교육부가 거부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고 지적했고, 이 학교 이형철 교수는 "(교육부가 임용 제청을 거부한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고 비판했다.

류수노 후보는 지난 2009년 이명박 정부를 규탄하는 교수 시국선언에 참여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청와대 직원이 2009년 시국선언에 참여한 경위와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과의 관계 등을 물었다"고 밝힌 바 있다. 방송대 총장 임용 비상대책위원회 성준후 대변인은 "류 후보가 시국선언에 참여하는 등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고, 검정고시·방송대 출신인 탓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 교육부는 직선제로 총장을 뽑던 국립대에 간선제로 전환하라고 압력을 가했다. 겉으로는 "줄서기와 파벌 폐해가 심각하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교육부가 총장 선거에 개입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었다.

이형철 교수는 "교육부가 총장 직선제를 폐지하도록 강요한 이유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국립대 총장을 임명하기 위해서였단 말인가?"라면서 "(임용 제청 거부는 교육부가) 국립대 총장을 직접 임명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비민주적이고 대학의 자율성을 무참하게 훼손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법원도 판결문에서 이를 지적했다. 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서울행정법원은 "헌법의 자주성과 대학의 자율성은 외부세력의 간섭을 배제하고 대학 구성원 자신이 대학을 자주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대학에 부여된 헌법상의 기본권"이라면서 "(총장 임용 제청 거부는) 교육공무원법에 의하여 구체화된 대학자치권을 제한하는 의미를 가진다"고 밝혔다.

도종환 의원은 "박근혜 정부는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한 헌법까지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다, 3번에 걸친 소송에서 연이어 패소하고도 대법원까지 소송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힌 건 부끄러운 일"이라면서 "정권과 코드가 맞는 인사를 국립대 총장에 앉히고 싶은 속내가 아니라면, 빠른 시일 내에 총장 후보들을 임용 제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교육부 대학정책과 관계자는 "패소한 사건에 대해서는 항소나 상고를 할 것이다, 대법원의 판단을 받아보겠다"면서 "교육부는 지금까지 대학 쪽에 임용 제청 거부 사유를 밝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적인 이유로 국립대 총장 후보의 임용 제청을 거부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에 "드릴 말씀이 없다"며 대답을 피했다. 


태그:#교육부의 속내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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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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