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느 시골마을이나 똑같은 풍경이 있지요. 허리 휜 할머니가 빈 유모차 끌고 다니고 할아버지들은 햇빛 바라기 하고 고양이 어슬렁, 적막을 깨는 건 개 울음소리. 우리 마을도 이런 풍경 쉽게 볼 수 있지요. 차이가 있다면 마을 청년(?)들이 좀 많다는 것.

물론 환갑 진갑 다 지나고 쉰 넘은 청년들이 많긴 하지만, 동네청년회 멤버들이니 청년은 청년들이지요. 청년회 이름붙이기도 대략 난감하지만, 마을 구성비로 따지자면 마을일 활발히 하는 사람으로 치자면 청년이 맞습니다.

마을 청소, 해바라기 꽃길 만들기, 장승세우기, 산신제 지내기, 정월보름 달집태우기, 풍물놀이, 눈 오면 눈 쓸고, 명절 때 외지 나간 아들딸 반겨 맞도록 마을 풀치고 쓸어놓는 것도 모두 마을 청년회원들이 앞장서지요.

올해 환갑 맞은 청년회장 위해 앞도랑 개울에 전 회원이 나가 뼈에 좋다는 가재 잡아 선물할 정도로 청년들 정 나눔도 갸륵하지요.

마을 청년들이 어르신들 모시고 마을 초입에 장승세우기를 했습니다.
▲ 마을 장승세우기 마을 청년들이 어르신들 모시고 마을 초입에 장승세우기를 했습니다.
ⓒ 이우성

관련사진보기


박달마을은 장수마을로 지정된 마을입니다. 아흔 넘으신 어르신부터 70~80대 어르신들이 많지요. 청년들이 심은 해바라기가 활짝 피었습니다.
▲ 장수마을 간판 박달마을은 장수마을로 지정된 마을입니다. 아흔 넘으신 어르신부터 70~80대 어르신들이 많지요. 청년들이 심은 해바라기가 활짝 피었습니다.
ⓒ 이우성

관련사진보기


해발 825m 박달산이 두 팔 벌려 마을을 감싸고 있어 박달마을로 불리는 우리 마을은 4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습니다. 단(檀-박달나무 단자)군 신화와 옛 선조들의 역사와 삶에 얽힌 지명이 많은 유서 깊은 박달산은 꼭 어머니 품처럼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랍니다.

올해에는 우리 박달마을 청년들이 일을 좀 냈습니다. 이곳은 잡곡 주생산지로도 유명한 곳인데요. 특히 토종 콩을 몇 해 동안 심어오다가 올해 '박달청춘'이라는 이름의 토종콩세트를 마을상품으로 기획해 내놓게 되었지요.

청년회 회원 7명의 농부들이 의기투합해 '박달밝은달토종모임'을 만들고 농가마다 밥에 넣어먹는 밥밑콩 1품종씩을 심어 5가지를 세트화해 토종콩 상품을 만들었습니다. 관청의 도움 없이 순수하게 마을 청년들 힘으로 상품을 만들어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이익태 화백께서 재능기부로 써주신 '박달청춘' 글씨. 토종콩으로 갚아야지요.
 이익태 화백께서 재능기부로 써주신 '박달청춘' 글씨. 토종콩으로 갚아야지요.
ⓒ 이우성

관련사진보기


'청춘을 담아 토종을 심었습니다' 우리가 내세운 광고문구입니다. 청춘을 바쳐 농사를 짓고 있고 박달 청춘들이 모여 만든 것이니 그렇게 이름 붙여도 되겠지요.

토종서리태, 선비잡이콩, 붉은밤콩, 적두(팥), 현미찹쌀(돼지찰) 5품종으로 만든 토종콩세트입니다. 오랜 세월 우리 땅에 적응해온 토종품종이니 우리 몸에 더할 나위없이 건강한 농산물일 테고, 괴산의 맑고 깨끗한 물과 바람과 햇빛 받으며 자랐으니 더욱 기운 넘치는 농산물일 거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알아주는 분들이 계시더군요. 정월대보름에 오곡과 함께 많이 드시는 산나물과 부름까지 세트화하려고 했으나 여의치 않아 올해는 토종콩 오곡만 세트화했습니다. 내년 숙제로 남겨두었습니다.

소포장된 토종콩세트 사진입니다. 포장지마다 마을 청춘들 얼굴을 스티커로 찍어 붙였습니다.
▲ 토종콩세트 소포장된 토종콩세트 사진입니다. 포장지마다 마을 청춘들 얼굴을 스티커로 찍어 붙였습니다.
ⓒ 이우성

관련사진보기


'박달청춘'이 나오기까지는 많은 분들 도움이 있었습니다. 건국대 산림학과 김재현 교수와 연구원들은 우리 마을 청년들과 머리를 맞대고 마을을 어떻게 가꿀 것인가 아이디어를 많이 주었지요.

정부지원 안 받고 마을 자체적으로 가꾸고 싶은 마을 청년회원들 생각을 존중해 선진지 견학을 시켜주거나 관계기관과 연결해 주는 등 뒤쪽에서 자기 일처럼 물심양면에서 도움을 주었지요.

쌈지농부는 포장지 디자인을 재능기부 차원에서 해 주었구요. 농사펀드는 토종콩세트 완성을 위한 투자자 모집을 해주어 1차 펀딩이 한창 진행중이지요. 농부들의 생각에 찬성하고 함께 희망을 만들어가는 투자자들은 투자한 금액을 나중에 콩세트로 돌려받게 되구요, 농부들은 미리 자금이 생겨 제작하는 곳에 활용할 수 있어 서로가 서로를 돕는 구조를 만들어주니 농사펀드는 우리 마을 토종지킴이의 든든한 후원자인 셈이지요.

서부영화의 한 장면처럼 농사펀드에 소개된 박달청춘 포스터. 1차 펀딩 중입니다.
▲ 농사펀드에 소개된 박달청춘 서부영화의 한 장면처럼 농사펀드에 소개된 박달청춘 포스터. 1차 펀딩 중입니다.
ⓒ 이우성

관련사진보기


사실 우리가 우리 힘으로 마을 상품을 만든 데는 큰이유가 있습니다. 힘들게 농사지어도 팔 데가 없고, 특히나 제값을 못 받고 팔게 되면 생산비도 못 건지게 되는 농사의 허망함을 우리 힘으로 고쳐보자는 생각에서 출발했지요. 농사지어도 팔 곳이 없는 농부들은 농협이나 신협, 중간도매상을 통해 팔 수밖에 없는데 워낙 들쑥날쑥한 시장가는 생산에 들어가는 직접경비도 못건지는 가격에 넘기고 말지요. 실제 퇴비값, 비닐값, 종자값, 인건비, 모두 따지면 남는 것이 없지요. 특히 값이 싼 콩은 더욱 남는 것이 없는 구조이지요. 그래서 직거래에서 답을 찾고자 한 것입니다. 중간 단계 없이 소비자를 직접 연결해 팔면 지금보다는 높은 가격에 팔 수 있고 소비자는 싼 가격에 살 수 있으니 서로가 좋은 구조인 셈이지요.

오랜 시간 이 땅 환경에 적응해온 토종 농산물, 거기에 더해 농부에게 생명인 씨앗을 지키고자하는 농부의 자존심을 함께 팔고 싶었지요. 그 마음을 알아주는 소비자들과 함께 오랫동안 농사를 짓고 싶은 박달 농부들이 어렵게 어렵게 만든 투박하지만 진실한 마음이 담긴 마을 상품 '박달청춘'을 선보입니다. 동네방네 확성기 틀고 소개하고 싶은 마음을 제발 받아주세요.

올해는 1000세트를 목표로 소포장을 마쳤습니다. 마을 청년들과 형수님들까지 나와 겨울동안 수다를 떨며 콩을 갖고 놀았습니다.

박달청춘들이 겨울에 모여 토종콩 갖고 놀았습니다. 수다 마음껏 떨면서.
▲ 토종콩 소포장 박달청춘들이 겨울에 모여 토종콩 갖고 놀았습니다. 수다 마음껏 떨면서.
ⓒ 이우성

관련사진보기


청춘을 담아 매년 토종을 심고 가꾸려 합니다. 청춘을 바쳐 농사를 지었고 앞으로 아름다운 이 마을 지키며 남은 청춘을 바쳐 농사를 지을 것이니 '청춘을 담아 토종을 심을 것입니다'라는 광고 문구로 바꿀 수 있을까요? 박달청춘들이 부르는 토종 콩노래가 전국으로 메아리쳐 나갈 수 있을까요?

많은 분들의 밥 속에 토종콩들이 알알이 박혀 건강한 마음으로, 웃음으로 되살아나기를, 일곱 명의 박달청춘들은 빌고 또 빌어봅니다.

토종콩이 조금씩 들어간 콩밥. 소박한 밥상이지만 무엇보다 건강한 밥상입니다.
▲ 토종콩밥 토종콩이 조금씩 들어간 콩밥. 소박한 밥상이지만 무엇보다 건강한 밥상입니다.
ⓒ 이우성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충북 괴산 박달산 아래 청년들이 만든 토종콩세트를 소개합니다. 청춘을 담은 토종콩세트, 청춘이 지나가도 토종 지켜나갈게요. 어깨동무 환영합니다.



태그:#토종콩, #박달청춘, #박달마을, #선비콩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나무 한그루 심는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면 얼마나 큰 축복일까요? 세월이 지날수록 자신의 품을 넓혀 넓게 드리워진 그늘로 세상을 안을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낌없이 자신을 다 드러내 보여주는 나무의 철학을 닮고 싶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면 또 세상은 얼마나 따뜻해 질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