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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태권도복, 오리 인형 그리고 춤. 지난 25일 열린 대한민국 청소년 연설 대전에서 참가자들이 사용한 소품이다. 시민단체 다준다연구소와 청소년 교육기업 사람에게 배우는 학교, 자원봉사단체 대학생 교육기부단은 지난해 12월부터 대한민국 청소년 연설 대전을 마련, 이번에 3회차를 맞이했다. 연설대전 참가자 중 성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연설한 이우고교 한용욱(19)군을 만나봤다.

"여러분, 여러분에게 섹스란 무엇입니까?"

분홍색 수면 바지를 입고 연설대에 오른 한 군의 첫 마디였다. 그의 말에 관중들은 민망해하는 표정으로 연신 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는 "성(性)은 의식주처럼 생활과 밀접한 것인데 사람들이 부끄러워하며 말하길 꺼려한다"며 "이처럼 모두가 기피하는 소재다 보니 제가 나서서 연설 대회의 소재로 삼게 됐다"고 대회 참가 동기를 밝혔다.

그러면서 한군은 "여성학자 정희진씨의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은 것도 연설 소재를 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며 "책을 통해 생물학적 개념의 성(性)인 섹스(Sex)와 사회·문화적 성인 젠더(Gender)가 나뉜다는 것을 깨닫고, 이와 관련한 성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한국 성 교육의 현주소

제3차 대한민국 청소년 연설대전에 참가한 한용욱(19) 이우고교생이 연설을 하고 있다.
 제3차 대한민국 청소년 연설대전에 참가한 한용욱(19) 이우고교생이 연설을 하고 있다.
ⓒ 윤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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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교육 시간을 학생들이 지루해하는 이유를 아십니까. 학생들은 야동(야한 동영상)을 통해 유희로써의 성에만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학생들이 교내 성 교육보다 앞서 이미 섹스에 대해 알고 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젠더에 대한 성 교육은 이뤄지지 않아, 성에 대한 학생들의 몰이해가 높다는 것이 한군의 생각이다.

"성에 대한 왜곡된 이해는 제 주변에서도 가깝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떤 친구가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은 여성을 보며 '걸레'같다고 말한 것이 바로 그것이지요. 야동을 통해서만 알게 된 '노출'이 여성에 대한 언어 폭력으로 이어졌습니다. 저는 이 일화가 현재 한국 성 교육의 현주소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한군은 연설을 통해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지난해 '남녀 격차 보고'에서 한국의 남녀 평등 수준은 조사 대상 142개국 중 117위"라며 피상적 성 교육이 그릇된 성 이해와 남녀불평등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강조하기도 했다. 

젠더 성교육 필요해

따라서 한군은 사회 문화적 맥락에서 '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성 교육 시간에 짚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순히 섹스에 대해서만 다루는 성 교육에 그친다면 학생들의 성에 대한 관념은 '부끄럽지만 자극적인 무언가'에서 발전되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 사회, 더 나아가 세계에서 남성과 여성이 평등하며 두 다른 성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다루는 성교육을 꿈꿉니다."

이번 연설 대회 참가에만 그치지 않고, 앞으로도 교내에서 성에 관한 콘텐츠를 만드는 등 올바른 10대 성 교육 문화를 만들고 싶다는 한군. 그는 분홍색 수면바지를 팔락이며 인터뷰를 마쳤다.

"남성이 편하게 분홍색 의상을 입는 그 날까지 활동하고 싶습니다. 사실 남자가 분홍색 수면바지를 입는 것 이상한 거 아니잖아요?"    

그를 통해 남성이란 젠더에 갇혀 분홍색을 자랑스럽게 좋아하지 못했던 남성, 혹은 여성이란 이유로 신생아 때 파란 옷을 입지 못하는 시절이 한국에서 멀어질 수 있길 기대해본다.


태그:#다준다연구소, #사람에게배우는학교, #대학생교육기부단, #대한민국청소년연설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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