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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변해가는 경우가 있다. 원래는 분명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라는 생각을 하지만 오랜 반복적인 회사에서의 상황 때문에 변하는 것이다. 회사라는 특정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 특정한 목표만을 위해 일하는 조직에 정신적으로 고립되기 때문이다.

그 중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소위 "갑질"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당신에게도 나타날 수 있는 위험한 변화를 알아보자.

1. 전치(Displacement)

'전치'는 누군가에게 향했던 감정을 바로 대체할 만한 다른 누군가로 향하는 것이다.

가장 일반적으로 드러나는 변화다. 쉽게 말하면 종로에서 빰 맞고 한강에다 화풀이 하는 것이다. 주로 과장이나 팀장처럼 아랫사람이 있는 중간관리자에게 자주 나타난다. 내가 누군가에게 심하게 깨지고 욕먹고 와서 받은 그 분노를 그대로 다른 누군가에게 옮기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꽂은 칼을 그대로 뽑아서 다른 사람을 찌르는 것이다.

소위 "갑질"도 이 경우에 일부 해당된다. 소비재 관련 회사에서 매출 부진으로 상사로부터 욕을 먹고 그 스트레스를 '을'인 관련 업체에게 풀어버리는 경우도 해당된다. 이것이 욕설과 상식을 벗어난 요청이나 협박 등으로 나타난다.

2. 퇴행 (Degression)

'퇴행'은 극심한 좌절에 부딪혔을 때 그 동안 이룬 발달의 일부를 상실하고 현재보다 훨씬 유치한 과거 수준으로 후퇴하는 것이다. 당신이 열심히 일주일간 야근을 해서 완성한 보고서를 상사가 깊은 고민도 없이 대충보고 훑어만 보고 "이따위로 할래? 너 몇 년 차야? 이것밖에 안 돼?"라는 욕을 퍼 부을 때도 퇴행 현상이 시작 될 수 있다. "그래 그렇지, 열심히 하면 뭐해, 어차피 이런 취급 받을 텐데"라는 마음가짐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 이후 다시 유사한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면 미리 겁을 먹고 충분히 할 수 있는 수준보다 더 낮은 수준으로 일을 처리하게 된다. 이런 퇴행은 동생이 생긴 유치원생에게도 나타난다. 부모님의 사랑을 동생에게 뺏기게 되자 자신도 사랑을 받고 싶어 유아기의 동생과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다.

직장인에게 퇴행은 기대한 것보다 매우 낮은 평가를 받거나 오해로 인한 형편없는 평판을 들었을 때도 생긴다. 자신이 열심히 해 봐야 이 회사에서는 소용없다는 체념이 자포자기 까지 이어져 일의 성과를 내거나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행동을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

3. 투사 (Projection)

나의 욕구를 타인에게 그대로 적용하여 그 사람도 그럴 것 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투사'라고 말한다. 쉽게 말하면 "내가 그러니까 남도 그럴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투사는 물론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 내가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을 "사회에서 꼭 필요한 일을 해 주는 고마운 분들" 이라고 생각한다면 남들도 그렇게 여길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주로 부정적인 욕구나 생각이 주로 투사되는 경우가 많다. 내가 회의 때 남의 의견을 무시하는 말을 많이 한다면, 다른 사람이 나의 말에 의견을 더하기만 해도 "나를 무시한다"라고 생각해 버리는 것이다. 내가 일을 성공하도록 만드는 것보다 내 것을 뺏기지 않는 것에만 몰두한다면 남도 똑같이 그럴 것 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소위 뭐 눈에는 뭐만 보이는 것과 비슷하다.

4. 동일시 (Identification)

주변의 중요한 사람들의 태도나 행동을 닮아가는 것을 말한다. 어린아이 같은 경우 자신도 모르게 부모의 태도를 닮는 것이다. 내가 그 사람이 너무 좋아서 롤 모델로 삼고 싶어서 동일시되는 것은 긍정적인 방향의 동일시다.

특히 회사에서는 상사가 원하는 스타일대로 보고를 하고 말을 하게 된다.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상사가 원하는 것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기에 자신도 모르게 이런 '동일시' 현상이 쉽게 나타난다. 흔히 조직에서 중간 관리자 급이 상사의 총애를 받고 있다면 자신을 상사와 같은 수준으로 평가하고 동일시하는 경우도 여기에 해당된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나 자신도 모르게 닮고 싶지 않는 사람도 닮아가는 경우다. 이처럼 미워해서 절대로 닮고 싶지 않은 사람도 닮아가는 것도 이 동일시의 한 종류다.

나는 정말 징글징글하게 일을 못하는 팀장 밑에 선임 과장으로 2년간 일해본 적이 있다. 3명의 팀장이 같은 회의를 들어갔다 와도 시키는 것이 나만 달랐다. 같은 얘기를 들어도 이해력이 현저히 떨어지기에 다른 일을 시키기 때문이었다. 그 팀장 덕분에 일이 평소의 3배로 늘어났고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밤늦도록 열심히 파면서 삽자루가 수 십 개는 부러져 나가 버렸다.

이렇게 모든 사람이 싫어하고 일 못한다고 소문난 팀장과 일하면서 내가 소스라치게 놀란 것이 하나 있었다. 나도 모르게 그 팀장의 말투와 생각하는 방법을 닮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너 니네 팀장이랑 비슷해진다"라는 말을 해 주지 않았다면 나는 모두가 싫어하는 그와 같은 사람이 되어 버렸을 지도 모른다. 이처럼 닮고 미워하고 절대로 닮고 싶지 않는 사람을 닮아가는 것을 '적대적 동일시(Hostile Identification)'라고 한다.  

동일시에 또 다른 극단적인 모습이 바로 '병적 동일시(Pathological Identification)'이다. 마치 국회의원 비서가 자신이 국회의원인 것처럼 거들먹거리며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것이나, 명품 매장 직원이 자신이 명품인 것처럼 고객을 무시하는 것도 이에 해당된다. 이는 사람의 성품과 독특한 직업이 함께 만나서 생기는 현상이다.

요즘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가 되는 소위 "갑질 논란"의 모습이 어찌 보면 이 병적 동일시 현상에 기인 한다고 할 수 있다. 회사에서 회사의 필요 때문에 주어진 위치와 권리를 평생 함께하는 전신 갑주처럼 여기고 남들에게 서슴지 않고 칼을 휘둘러 대는 것이다.

마치 회사와 자신을 동일시하기에 회사에 납품을 하거나 자신을 돕는 업체들을 하대하고 무시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나는 회사를 위해 한 일이야, 어쩔 수 없어, 남들도 다 이 정도는 하니까"라고 스스로를 자위한다.

이처럼 자신의 권리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행동은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는 오히려 '열심히 일하는 사람' 혹은 '강한 추진력이 있는 사람'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게다가 여기에 '회사 안의 남들도 이런 일을 하니까'라는 환경적인 동질감까지 더해지면 '갑질의 전사'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병적 동일시가 나타나는 가장 큰 이유는 '개인의 건전한 가치관의 부재' 때문이다. 어떤 사건에 대해 옳은지 그른지,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건강한 개인의 원칙'을 기준으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판단의 기준을 남이 잠시 빌려준 힘에 두고 있기 때문에 갑질을 하고 다니는 것이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기준이 없이 남이 부여해준 기준만으로 사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갑질 문제가 생긴다. 회사가 시켰어도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개인의 가치관과 원칙에 상충된다면 하지 말아야 한다. 잘 돌려 말하면 충분히 그 일을 하지 않을 방법이 있다. 그것이 회사와 개인 모두에게 장기적으로도 올바른 행동이다. 회사가 강제하는 기준이 아닌 건전한 '개인의 기준과 원칙'이 필요한 이유다.

위와 같은 여러 가지 모습은 어찌 보면 정신적 방어기제다. 머릿속에 발생하는 부조화 상태의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나타나는 행동이다. 자신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천만 다행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여러 심리학적 변화가 자신이게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그것이 오랫동안 지속된다면 당신은 큰 문제가 있는 것이다.

매일 매일 야근에 치여 살아가는 직장인이라면 내가 이렇게 잘못되고 있는지 인식할 여유조차 없다. 개미는 땅속 굴에서만 살기에 자신의 변화를 인지하기 어렵다. 오랜만에 학교 동창을 만나 "너 좀 변했다"라는 말을 듣는다면 당신도 부지불식간에 회사에서의 나쁜 물에 젖어 들어가고 있는지 의심해 봐야 한다.


태그:#직장인, #갑질, #회사생활, #나는 무적의 회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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