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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유예생의 연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보다 더 많이 듣는 말이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너 졸업해?"

대학생들에게 '졸업'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단순히 4년의 대학 교육과정을 마치고 학교를 떠난다는 의미가 아니다. '졸업'은 할 수 있고, 할 수 없음(Can과 Can't)으로 나뉘며, 취업 '성공'과 '실패'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취업을 하지 못해 최소 1~2년의 졸업유예를 한 학생들에게 졸업을 할 예정인, 아니 졸업을 '할 수 있는' 친구들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7년 째 대학생. 명절 때마다 만나는 친척 어르신들은 왜 아직도 내가 대학생인지 이해를 못하신다. 뵐 때마다 "아직 학생이에요", "아직 졸업 안 했어요"라는 말만을 반복하는 내가 의아하실 것이다. 나는 "졸업 안 하고 미루는 게 취업하기에 좋아서 그래요"라고 살짝 덧붙여드린다. 하지만 어르신들의 의아한 표정은 쉬이 풀리지 않는다. 졸업을 미루는 것이 취업에 좋다니, 나조차도 이해가 안 되는 걸.

누구네 아들은 대학교 3학년인데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더라, 누구네 딸은 교대라서 또 간호대라서 졸업만 하면 바로 취업이라더라... 실체도 없는 누구네와 누구네가 나를 짓누른다.

"그러니까 너도 얼른 취업해야지."
"예, 그래야지요..."

졸업유예, 선택 아닌 절박함에 따른 필수요소

졸업유예 2년차. "졸업하고 여태 뭐했어요?"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 일부러 졸업을 유예했는데, 이제 돌아오는 말은 "여태 졸업 안 하고 뭐했어요?"다.
 졸업유예 2년차. "졸업하고 여태 뭐했어요?"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 일부러 졸업을 유예했는데, 이제 돌아오는 말은 "여태 졸업 안 하고 뭐했어요?"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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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갓 스무살이 되어 대학교에 입학하는 사촌동생은 기세가 등등하다. 어른들의 세뱃돈도, 덕담도 두 배다. 얘야, 나도 너 만할 때는 다 술술 풀릴 줄 알았단다. 하지만 그 아이의 철 없는 웃음마저 부럽다. 초라한 반백수인 나에게는 이 명절이 잔인하다.

대학생들이 졸업을 미루는 이유는 간단하다. 기업이 졸업생보다는 재학생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기업이 재학생만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졸업 후 붕 뜬 1~3년 간의 시간동안 무언가 생산적이거나, 도전적이거나, 창의적인 일을 한 학생이 있다면, 졸업생이어도 괜찮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차라리 졸업을 미루고 재학생으로 남는 것이 낫다. 학교를 다녔다는 변명거리라도 있으니까.

4년 학교생활을 마치고 바로 취업에 성공한 이들은 복 받은 존재니 차치하고, 많은 학생들이 취업 재수 혹은 삼수를 하는 상황에서 수퍼 갑(甲)인 기업들이 재학생을 선호한다는데 졸업을 몇 년 미루고 수료생/졸업유예생으로 있는 것은 개개인의 선택이 아니다. 절박함에 따른 필수요소다.

졸업유예 2년차. "졸업하고 여태 뭐했어요?"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 일부러 졸업을 유예했는데, 이제 돌아오는 말은 "여태 졸업 안 하고 뭐했어요?"다. 취업 준비를 했다고 대답하면 내가 너무나도 형편없는 사람이 될 것만 같다. 우물쭈물하다가 제대로 된 대답을 못했다. 못마땅스러운 면접관님들의 표정에 그렇게 나는 발목에 묶여있는 돌덩이들과 함께 아래로, 아래로 내려앉는다.

그러게요, 지난 2년 간 나는 뭘 했을까요. 취업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버린 지금,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토익성적을 조금이라도 더 올리는 것이었고 각 회사 입사전형에 맞는 취업 스터디를 하는 것이었다. 근데 이제 회사는 '왜 그것만 했냐'고 질책 아닌 질책을 한다.

유예생들이 걱정하는 건, 늘어나는 입학 후 햇수

가끔은 '졸업유예생'이라는 이도저도 아닌 신분에서 벗어나보려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기도 한다. '석사라도 따면 조금은 수월해지지 않을까'하고. 그러나 그것도 생각대로 쉽게 풀리진 않는 듯했다. 친구 A는 올 2월 석사졸업을 앞두고 지원한 전공 관련 기업 최종면접에서 고배를 마셨다. A는 2년 전 학사 졸업 때보다 더 똑똑해졌고 더 노력했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것은 '탈락'이라는 결과였다. 나는 비슷한 입장에서 친구를 토닥여 주었다. 석사 타이틀도 취업 패스권은 아니라는 생각에 나는 또 암울해진다.

2월, 졸업이 다가온다. 잠시 고향에 내려와 쉬고 있는 나에게 "졸업해?" "졸업 신청해?" "어떡할 거야?"하며 부유하는 영혼들에게서 문자가 온다. 아직 마음의 결정을 못 내린 나도 "몰라, 어떡하지?"하며 함께 부유에 동참한다.

누군가는 졸업을 하기로 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하지만 모든 졸업생들이 취업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일부는 더 이상 졸업을 미룰 수 없는 상태에서 다른 선택권 없이 졸업을 하기도 한다. 같이 취업스터디를 했던 선배 B의 이야기다. 05학번으로 입학해 학교 4년, 군대 2년, 워킹홀리데이와 배낭여행 1년 그리고 취업 준비로 인한 유예 3년. 만 10년을 꽉 채우고 이젠 졸업을 하려 한다. 차마 11년 동안 학교에 적을 둘 순 없었던 모양이다.

남들은 해가 바뀌면 한해, 한해 한 살 더 먹는 나이를 걱정한다. 우리 유예생들은 한해, 한해 늘어나는 입학 후 햇수를 샌다. 입학 7년, 아니 8년차인 나. 고민을 한다. 여자 나이 스물 일곱, 한 해 더 이곳에 머물러도 될까.

며칠 전, 졸업유예제도를 폐지한다는 흉흉한 소문이 취업스터디 단체톡방을 휩쓸었다. "이제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 못하는 것 아니냐, 사용하려면 돈을 내야 한다더라"하며 우린 서러워했다. 겨우 어깨를 부비고 있던 학교마저 우리를 거부하려 한다. 이제 우리는 학교에마저 거부당한다. 그 어디도 갈 곳 없는 우리를 거두어 주는 곳은 없어 보인다.

2008년에 입학해 만 7년을 학생으로 지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7년 중 4년이 '학생'이다. 그 중 1년은 어학연수를 이유로 휴학생이었고, 나머지 2년은 '수료생' 혹은 '졸업유예생'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졸업을 하려 한다. 자의인지 타의인지 모를, 애매한 이유로.


태그:#졸업유예제도, #졸업유예생, #수료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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