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L은 올 시즌부터 감독이 심판에게 직접적으로 판정에 항의하는 것을 금지했다. 국내 프로농구의 고질적인 병폐인 과도한 판정 항의로 경기 흐름이 자주 끊기는 것을 방지하고, 심판의 권위를 세워주려는 목적이었다. 경기 중 공식적으로 판정에 대한 질의는 주장을 통해서만 하게 돼 있다.

하지만 이는 또 다른 부작용도 낳고 있다. 오심이나 석연치 않은 판정에 대해 정당하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창구가 그 만큼 막힌 것. 일부 심판이 이를 악용해 무분별하게 휘슬을 남발하거나, 주장을 통한 질의에도 불성의하게 대응하는 경우가 늘면서 현장과 팬들의 불만이 높아졌다.

지난 25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인천 전자랜드와 울산 모비스의 경기에서는 테크니컬 파울(이하 T파울)만 6개가 나왔고, 이로 인해 감독과 선수(전자랜드 유도훈 감독, 테렌스 레더)가 잇달아 퇴장당하는 볼썽사나운 장면이 펼쳐졌다. 과열된 경기 분위기도 문제였지만 처음부터 이런 사태를 초래한 데는 심판진의 매끄럽지못한 경기 운영이 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1쿼터 종료 1분을 남기고 테렌스 레더가 문태영을 수비하다 파울을 지적당했다. 레더는 심판에게 문태영의 터치 아웃이라며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도리어 강하게 항의하다가 T파울을 받았다. 이에 격분한 레더는 공을 발로 찼고 바로 두 번째 T파울을 받아 퇴장 당했다.

갑작스러운 레더의 퇴장에 황당해진 유 감독은 심판진에 이유를 물었으나 대답을 듣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도 판정에 항의했다는 이유로 T파울을 받았다. 이후 유 감독은 4쿼터 종료 6분여를 남겨놓고 전자랜드 이현호와 모비스 리카르도 라틀리프가 몸싸움으로 동시 테크니컬 파울을 받았을 때 다시 항의하다가 두 번째 T파울로 퇴장 명령을 받았다.

이날 심판의 경기 운영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았다. 첫 번째는 역시 레더의 퇴장 과정이다. 레더의 T파울 자체는 잘못된 판정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볼을 걷어차서 받은 두 번째 T파울에 비해, 첫 번째 T파울은 먼저 터치 아웃 상황에서의 판정 번복이 있었고, 그에 대해 선수가 아쉬움을 표현하는 제스처를 두고 대뜸 T파울을 줘야 할 만큼 과격한 행동이었는지는 심판의 재량을 감안해도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주축 선수의 갑작스러운 퇴장으로 감정이 격해진 상대 벤치 측에 주장을 통해서라도 아무 상황 설명도 해주지 않고, 항의했다는 이유로 감독에게 다시 T파울을 준 것은, 융통성없는 감정적 대응이라고 밖에 볼 수 없었다.

4쿼터 유도훈 감독의 퇴장 상황도 깔끔하지 못했다. 유 감독의 퇴장에 빌미를 제공한 이현호와 라틀리프의 신경전은 골밑에서 리바운드 경합을 위해 몸싸움을 벌이다가 나온 상황으로 농구 경기에서는 흔한 장면이었다. 두 선수가 팔이 엉킨 채로 넘어졌지만, 이를 거칠게 뿌리치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쪽은 라틀리프였고 이현호는 그에 대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심판은 두 선수에게 똑같이 T파울을 줬다. 유도훈 감독도 이 점을 강하게 어필했다.

심판은 유 감독이 라인을 넘어와서 항의를 했다는 이유로 1쿼터에 이어 두 번째 T파울을 선언했다. 유도훈 감독은 퇴장 당하기 직전, 모비스 유재학 감독 역시 라인을 넘어왔는데 왜 자신에게만 T파울을 줬는지도 이의를 제기했지만, 심판은 이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감독과 주축 선수를 모두 잃고 사기가 꺾인 전자랜드는 결국 힘 한 번 못써보고 66-90으로 완패를 당했다. 결국 심판의 휘슬이 이날 경기 흐름을 완전히 결정 지어버린 것이나 다름 없었다.

민감한 상황일수록 심판의 판정은 단호해야 할 필요도 있지만, 그 전에 정확해야하는게 우선이다. 이날 심판은 경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휘슬을 부는데 추호도 주저함이 없었지만, 경기 운영의 타당성은 양 팀 벤치와 팬들을 납득시키기에 한참 부족했다. 오해의 소지가 있는 판정에 대해 최소한의 소통도 거부하고 휘슬을 내세워 권위로만 억누르려는 모습은 팬들의 공감대를 끌어내기 어렵다. KBL의 인기 하락의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는 경기력 문제에는 심판의 자질과 판정 논란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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