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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대학교 전경 모습.
 모 대학교 전경 모습.
ⓒ 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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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월, 7월이면 대학생들 사이에 엇갈리는 '희비의 징후들'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바로 국가장학금 소득분위 심사결과 발표 때문이다. 다음 학기에 수백만 원의 학자금 '빚 마일리지'를 적립할지, 한 시름 덜게 될지가 이 발표에 달렸다. 당연히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은 근심이 많을 수밖에 없다.

국가장학금은 등록금 부담완화를 위해 국가가 학생과 그 가족의 소득 수준을 심사해 장학금을 차등 지급하는 제도로 2012년부터 시행 중이다. 장학금 지급은 학생과 그 가족들에게 가뭄의 단비일 수밖에 없다.

반값등록금 공약... 장학금 대상자만 늘려 놓은 꼼수

OECD 최고 수준의 대한민국 등록금 부담은 시민사회에 문제점으로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마침내 2012년 대선을 앞둔 정치권은 새삼 여론을 의식해 등 떠밀리듯 등록금 문제를 주목했다. 당시 대선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도 '반값등록금'을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교육부는 지난 5일, 등록금 연간 총액이 14조 원으로 파악되는 가운데, 정부 예산 3.9조 원에 대학 자체 노력을 통한 나머지 조달로 총 7조 원이 지원됐으므로 대통령 공약이 달성됐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대통령 공약으로 탄생한 등록금 공약은 '선택적 복지' 논리가 숨어있다. 소득분위에 따라 저소득층에 더 많이 지원해주고, 전체 대학 재학생 중 절반 이상이 얼마라도 지원은 받게 된 것은 사실이다. 비용적으로는 14조 원의 절반인 7조 원이, 수혜 학생 수로는 절반 이상이 혜택을 받아 사실상 반값등록금이 달성된 게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교육부와 한국장학재단은 2015학년도 1학기 국가장학금·학자금 대출 등 학자금 지원을 위한 기준금액 및 소득분위 산정 결과를 지난 19일에 발표했다. 특히, 올해 국가장학금 1차 신청자 93만 명 중 80.8%인 75만여 명이 장학금 지급 대상자로 선정했다고 전했다.

올해는 보건복지부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을 활용돼 국가장학금 산정 기준에 기존 상시소득·부동산·자동차뿐만 아니라 금융재산·연금소득·부채 등이 포함됐다. 이에 따라 월소득 평균액과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한 '재산환산 평균액'을 합친 소득인정액에 따라 산정체계가 새로 마련됐다.

그런데 당사자인 대학생의 반응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 최근 한 대학 커뮤니티 게시판은 국가장학금 문제로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발단은 교육부와 한국장학재단이 학생과 그 가족의 소득수준 조사에 공정성을 더 확보하겠다며, 올해부터 조사시스템을 '건강보험료DB'에서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사회보장정보시스템'으로 바꾸면서 시작됐다.

그 결과, 조사범위가 다양한 지표로 넓어졌다. 얼핏 보면 장학금이 합리적으로 조정될 것 같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하우스 푸어 가정은 갑자기 소득분위가 고평가돼 주택이 소득으로 환산되는 경우가 늘면서 등록금 부담이 오히려 늘어나는 사례가 생겼다.

고통받는 학생들끼리 "우리 집도 힘들다고요" 마음의 상처만 늘어

'선택적 복지' 체계 안에서는 장학금을 덜 받게 된 학생이 생기면 그 몫이 다른 학생에게 간다. 따라서 '집이 있다면 사정이 더 좋으니 당연한 것 아니냐'는 입장과 '집이 있지만 결코 사정이 더 나은 것도 아니라'는 학생들 간에 서운한 말들이 오고 간다.

학비 문제로 '고통'받는다는 점만은 동일한 친구들끼리, 이제는 '누가 더 가난하고 부자인가?', '누가 장학금을 받아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놓고 인정투쟁까지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일어나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본래, 시민사회 등록금 인하 운동의 출발 정신은 '등록금이 절반 정도가 되면 좋겠다'라는 소박한 바람에서 시작됐다. 여기서 '반값'이라는 말에 담긴 함의가 중요하다. 이는 '경제적 사정과 상관없이' 모든 학생의 등록금이 일괄적으로 반값이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좀 더 어려운 학생에겐 반값 이상을 지원해주고, 나머지 학생들은 못해도 반값은 지원해주자는 의미의 반값이다. 지금 정부 '정신승리'하는 반값과는 달리 '선택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라는 두 축이 모순없이 반영된 진정한 의미의 '반값'이었던 것이다.

'선택적 복지'로 온갖 지표들이 '선택과 집중'을 위해 동원된다. 우리는 이것이 숫자의 논리로 실질적 삶을 '추상'한 것일 뿐이라는 점을 망각해선 안 될 것이다. 한계는 존재한다. 문제는 한계를 인정하고, 이를 꾸준히 극복해 나가려는 의지가 중요하다. 숫자가 삶에 봉사하는 것이지, 삶이 숫자에 봉사하는 것은 아니다. 대학생 A씨는 이번 발표 후, 학교 게시판에 다음과 같은 멘트를 남겼다.

"와, 우리 집은 부자다! 소득 2분위 나오다가 이번에 9분위다. 잭팟! 집에 올라오는 반찬도 똑같은데, 식구 중 누가 로또라도 됐나..."

'자기 집이 있어서' 장학금 못 받는 사회?

방학 중에도 학생들이 학교에 나오고 있다.
 방학 중에도 학생들이 학교에 나오고 있다.
ⓒ 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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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번 심사 기준 변경이 긍정적 결과를 가져온 사례도 있다. B씨의 경우, 이번에 수혜금액이 늘었다. 부모님이 농사를 지으면서 농협에 채무를 진 점 등이 반영돼 수혜를 받게 된 사례다. 그녀는 이제야 부모님 부담을 덜어드릴 수 있게 됐다며 기뻐했다. 그러나 그들은 마냥 기뻐할 수는 없다.

F대학 자연대에 재학 중인, C씨는 반값은커녕 최소 금액을 받게 됐다. 그의 네 식구는 서울 노원구 상계동 아파트에 산다. 아버지는 택시기사, 어머니는 백화점 파견근로자다. 양친이 학자금과 생활비를 마련해줄 형편이 없기 때문에, 그는 줄곧 학자금 대출과 장학금, 아르바이트에 의존해 왔다.

물론, 그는 소득 심사만 올바르다면 자신보다 더 어려운 학우들이 수혜를 받는 것에 대해 이해한다고 했다. 그러나 가족에게 집이 있기 때문에 국가가 자신을 상대적 상류층인 7분위로 평가하는 일 자체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정부가 너무 1차원적으로 채무를 반영하고 있는 게 아닌지 궁금해했다. 융자를 끼고 집을 사 수 십년 간 빚을 갚으며, 입에 풀칠해 온 집안이 갑자기 부자가 되진 않는다는 것이다.

부동산학을 전공하고 있는 D씨는 C씨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는 이번 제도 변화 이후 오히려 수혜를 더 받은 학생임에도 정부가 한국사회에서 '집 한 채 딸랑'이 시사하는 바를 간과하고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기자는 집도 소득도 없어 '소득 1분위'이다. 여러 학생의 의견을 취재하면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집이 없다면 하우스 푸어 친구들보다 '못사는 것'은 맞지만, 하우스 푸어 친구들이 기자보다 '잘 사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다.

이 뉘앙스 차이를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의식주란 인간의 기초적인 실존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는 복지에 있어서 흥정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 우리는 '경제대국 10위'라는 허울 좋은 사회에 살고 있지만, '집이 있기 때문에' 부자로 인식되는 비극적인 사회에 살고 있다.

집 한 채 딸랑이라도 '자기 집에 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상대적으로 상류층으로 인정받는 사회. 또 어떤 사람은 '집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교육 복지 혜택을 못 받는 사회다. 이러한 현실에서 정부는 너무 '값싸게' 대통령 공약의 달성을 정신 승리해 버린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수많은 언론은, 국가장학금의 총 수혜금액이 얼마나 늘었고 심사 방식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따위의 피상적 보도들만 줄줄이 내놓는다. 정부는 말할 것도 없다.

기자는 교육부 대학장학과 담당자를 취재해 보았다. 지표들이 척도가 아닌 삶을 척도로 '진정한 의미의' 반값등록금으로 나아갈 의지가 있는지 궁금했다. 담당자는 이번 제도 변경의 취지와 자신들이 다양한 지표들을 반영한 개별적 이유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해주었다. 전화 너머의 목소리는 '선택적 복지' 노선에 대한 확신에 차 있었다.

그런 교육부 확신에, 대뜸 '집이 있다는 이유로, 장학금에 불이익을 주는 것이 적절한 방향인가요?'라고 던진 물음은 엉뚱해 보였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담당자는 그게 '보편적'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기자는 그게 오히려 모순이라고 느껴진다.

담당자는 기자에게 '강남 타워팰리스에 사는 집 학생이 소득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학생과 똑같이 장학금을 받는 건 문제가 있지 않나요?'라고 반문했다. 매우 강력하고 매력적인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극단적 사례를 듦으로써 국민에게 문제의 본질을 오도할 위험성이 있지 않나 싶다. 논점은 '집값이 얼마냐'가 아니라 '집에 산다는 이유로, 장학금에 불이익을 받아야 하는가'이기 때문이다.

주거 불평등의 문제는 '이미 고민 됐어야 할 문제'이다. 이는 주거라는 인간의 기초적 실존조건도 보장해줄 수 없고, 집이 '사는 곳(living)'이 아닌 '사는 것(buying)'으로 전도된 또 다른 고통의 추세이다. 이는 주택복지에서 노력을 기울여야 할 문제이다. 이를 '교육 받을 기회의 문제'로 당당히 끌어들여 흥정할 문제는 아닌것이다.

이런 문제 제기에 담당자는 "5400만 원까지 기본재산을 공제해 준다"는 점을 강조했다. 기자는 담당자에게 5400만 원으로, 서울 시내에서 4인 가족이 살 수 있는 집 한 채를 구해보기를 제안하고 싶었다. 그러나 더 이상의 논의가 평행선을 달릴 것 같아 관두었다.


태그:#국가장학금, #반값등록금, #박근혜, #교육부, #정신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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