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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왜 배워요?" 가끔 듣는 소리이다. 이럴 땐 선생님께서 혹은 어른 분들께서 이렇게 답하신다. (머리를 한 대 때린다.) "왜 때려요?" (머리를 한 대 때린다.) "왜 때리세요?" (머리를 한 대 때리는데 그걸 막는다.) "이번에는 막았네? 이게 역사를 배우는 이유야!"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많은 생각을 했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과거의 일을 인지하고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것일까?' 하지만 나는 요즘 역사에 대해서 위의 생각보다는 이런 생각을 더 많이 한다. '역사를 보면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나아갈 방향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알 수 있다는 것이 무슨 말일까? 사실 나는 역사에 관심을 가진 것이 2014년 초반이다. 왜 내가 관심도 없던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 나는 역사를 보면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알 수 있겠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면, 우리나라 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했다. 즉, 임시정부의 뜻을 이어받았다는 것이다. 그럼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무엇을 계승했을까? 3.1운동이다. 3.1운동은 무엇일까? 유관순 누나를 비롯한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일어나서 나라를 바로잡는 것이 아닐까? 3.1운동과 비슷한 역사적 사건이 또 무엇이 있을까? 동학농민운동이다. 나는 3.1운동이 동학농민운동을 이어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럼 결국 우리나라는 동학농민운동을 계승한 것이다. 

동학 농민운동은 3.1운동과 마찬가지로 전봉준을 비롯한 농민들이 주도하여 나라를 바로잡으려고 노력한 것이다. 나는 여기서 굉장한 민주주의 성질을 느꼈다. 농민들이 주도. 즉 국민들이 주도한 것이다. 이건 얼마나 멋진 말인가? 국민들이 주도한다. 나는 우리나라가 동학농민운동으로부터 비롯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가 나아갈 방향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국민들이 중심이 되어 나라를 이끌어 가야 한다. 물론 직접민주정치는 현실적으로 힘들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이끌어 나간다는 것일까? 시민들이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스마트혁명으로 인해 우리는 정치에 참여할 기회가 더 늘어났다. 사회과학 용어로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신민형 정치문화라고 생각한다. 즉 정치적인 생각은 있지만 참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참여형 정치문화(정치적인 생각과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문화)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것이 역사를 배우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처칠이 말씀하셨다. 박은식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여러 역사학자분들께서 다 이런 뉘앙스로 말씀하셨다. '역사를 잊지 말라.' 역사를 잊는다면 나라가 어떻게 발전해 왔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모르게 된다. 나는 국민들이 우리나라는 동학으로부터 비롯됐기에 우리가 주도해서 나라를 운영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따라서 정치참여를 높이고 의견을 자연스럽게 표출해야 한다. 비판도 틈틈이 하며 나라를 바로잡는 것은 '우리'라는 것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물론 정치는 정치인들이 하겠지만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의견을 잘 수렴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민들이 표출한 비판들을 잘 수렴해 반성하고 바꿔야 한다. 비판을 규제하고 억압해서는 안 된다. 국민과 정치인들이 자연스럽게 소통할 때 비로소 진정한 민주주의가 되지 않을까? 내가 근현대사를 좋아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물론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야 할지 알려주기도 했지만, 근현대사를 보면 우리가 반성할 것이 많다. 창피한 것도 많다. 부정적인 것들이 많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그 부정적인 것들을 다 수정하고 바꾼다면 우리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래서 역사가 좋다.

문학속의 역사

우리학교에는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들이 많이 계신다. 아니 모든 선생님들이 뛰어나시다. 나는 항상 그분들을 보고 반성하고 배운다. 그 중에서 최명주 선생님이 계신다. 문학 선생님이시다. 그 선생님께서는 수업시간에 수업내용을 설명하시지만 다시 말해서, 우리는 문학을 배우는데 수업시간에 문학작품을 설명하시지만, 다른 이야기를 또한 많이 하신다. 예를 들어 작가의 출생, 작품의 배경, 작품 속 한자의 뜻, 작가가 그 작품을 쓰게 된 계기 등등이다. 

급식실에서 밥을 먹는데 한 아이가 이런 말을 했다. "최명주 선생님은 너무 딴소리를 많이 하셔. 배보다 배꼽이 큰 것 같아. 시 한편 설명하시는데 30분이 걸려." 나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이셔서 화가 난 것일까? 아니다. 내가 그 선생님을 존경하는 이유는 그런 방식으로 수업을 하시는 선생님을 처음 봤기 때문이다. 

공부란 무엇일까? 시험보기 위해서? 우리가 시험보기 위해서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이미 입시라는 제도의 노예가 된 것이다. 우리가 공부를 하는 이유는 공부를 하면서 사고를 늘리는 것이다. 그럼 문학을 왜 배울까? 그냥 한 사람이 쓴 시나 글을 왜 우리가 배우는 것일까? 문제풀기 위해서? 아니다. 문학작품을 통해 그 작가의 생각을 이해하고 그 시대상황을 배우는 것이다. 왜냐하면 문학이란 그 당시 사회에 대한 한 사람의 심정을 솔직하게 적은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학작품을 보면 그 시대의 사람들의 심정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백석'이라는 일제 강점기 시대의 작가를 생각해보자. 백석이 쓴 시를 우리가 왜 배우는 것일까? 단지 문제풀기 위해서? 아니다. 그 시를 통해서 우리는 일제 강점기 시대를 간접 체험하는 것이다. 문학작품 속에는 많은 의미들이 함축되어 있다. 우리는 그 작품들을 통해서 그 시대의 삶을 느끼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문학의 아름다움이자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문학을 배우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문학은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문제풀이의 역사

문학은 문제풀이가 아니라 문학작품을 통해 그 시대의 삶을 느끼는 학문인 것처럼 역사도 또한 문제풀이가 아니다. 나는 솔직히 한국사 필수과목에 반대했다. 왜냐하면 한국사가 필수가 된다면 선생님들은 수능을 위해서 문제풀이에 초점을 맞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의 '한국사는 문제풀이가 아니다.'라는 의견과 반대가 된다. 한국사는 왜 문제풀이가 되면 안 되는 것일까?

역사를 문제풀이로 배운다면 가장 큰 문제점이 역사를 연구하면서 느끼는 '우리가 나아갈 방향'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단지 문제풀이로만 역사를 생각하게 된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단지 문제풀이로만 역사를 생각한다는 건 한마디로 이런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역사는, 특히 근현대사 같은 경우는, 한 A라는 사람이 어떤 행위 B를 했을 때 우리는 A라는 사람이 왜 B라는 행위를 했는가에 대해서 초점을 맞춰야한다. 또한 왜 그 행위를 할 수 밖에 없었는가에 대해서 초점을 맞춰야한다. 즉, 문제풀이로만 역사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A라는 사람이 B라는 행위를 했다' 그 자체만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문제 풀이를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역사는 이것이 아니다.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생각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통해 배우기 위해서는 A라는 사람이 B라는 행위를 함으로써 얻게 된 것들을 통해서 우리가 반성해야 할 것은 반성하고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참고해야 할 것은 참고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역사라고 생각한다. 반성과 참고를 통해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인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흥선 대원군의 쇄국정치를 살펴보자. 개화를 반대한 흥선 대원군이다. 만약 문제풀이로써의 역사가 된다면 흥선 대원군은 쇄국정치를 실시했다. 이것으로 끝난다. 왜냐하면 우리는 문제풀이를 통해 대학을 가야하기 때문에 문제풀이에 초점을 맞추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역사는 이것이다. 흥선 대원군을 A라고 하고 쇄국정치를 B라고 한다면 A가 왜 B를 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한다는 것이다. 왜 B를 할 수 밖에 없었는가? 그리고 B를 찬성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무엇이고 B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무엇인가? B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왜 반대를 하는 것인가? 등등을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역사책에는 이 내용이 적혀있을 수 있다. 그리고 훌륭하신 선생님들께서는 수업시간에 다 설명해 주실 수도 있다. 하지만 학생들이 문제풀이를 들어갈 때에는 이러한 설명들은 다 배제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다 까먹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행위를 했다 그것만 인지하는 것이다.

역사는 어떻게 배워야 할까?

내 주변에는 역사를 싫어하는 친구들이 많다. 역사는 양도 더럽게 많고 더럽게 어렵다고 한다. 외울 것도 많을뿐더러 심지어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다고 느끼는 친구들도 많다. 어쩌면 이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 방대한 양을 단지 문제풀이로 생각하며 외우기만 하니까 당연히 역사는 어렵고 재미가 없다. 역사는 끊임없는 탐구와 연구이다. 나는 역사는 교육 방법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쉽게 말해서 시험을 없애야 한다.

그럼 역사는 어떻게 배워야 할까? 시험이 없다면 우리는 역사를 어떻게 배워야 할까? 나는 최소 근현대사 만큼은 문제풀이가 아닌 토론 및 토의의 형식으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입장에서 또는 그것을 반대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연구하며 참된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역사를 배운다면 우리는 진정한 역사관이 잡힐 것이고 진정한 역사관이 잡힌 나라는 틀림없이 발전할 것이다.

거짓 역사

근현대사를 연구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극우 역사 교과서가 있다. 비판 받아야 마땅한 친일파들을 정당화 시키는 교과서이다. 그리고 그 교과서는 일부 학교에서 쓰이고 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어쩌면 그 일부 학교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간접적으로 그런 극우 교과서의 내용을 인지하는 경우가 있다. 

혹시 광복절을 건국의 날이라고 제정하자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과연 이것이 옳은 말일까? 아니다. 만약 광복절을 건국의 날이라고 제정한다면 동학농민운동은 잊히게 된다. 우리나라는 동학농민으로부터 이어왔다는 것을 무시하는 것이다. 즉, 국민들이 주도하여 나라를 바로잡는다는 인식의 싹을 자르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들 때문에 우리는 역사를 제대로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역사에 대한 제 생각을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태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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