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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를 방문한 악마들- 투르판 02
▲ [당신에게 실크로드 10] 실크로드를 방문한 악마들- 투르판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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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으려면 돈을 내

"10 위안."

그의 냉정한 눈길에 주춤했다. 사진을 찍으려면 돈을 내라는 거다. 정확히는 그가 아닌 그가 몰고 가던 귀여운 염소들을 찍고 싶었는데. 어쨌든 10위안을 내지 않으면 사진을 찍을 수 없단다.  

토욕구 대협곡에 위치한 마자촌. 이상하게 차가운 마을이다. 이 마을의 역사는 1700년, 신장위구르 자치구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이다. 투르판 시내에서 47km 정도 떨어져있다. 화염산 남쪽 기슭 토욕구 대협곡에 둘러쌓인 아담한 마을이다.

이곳엔 중국에 이슬람을 전파하러온 성인 7명이 묻혔다는 '성도의 무덤'이 있다. 마을 건너편 절벽엔 석굴사원이 보인다. 원나라 말 이슬람교가 전파되기까지 이 마을은 불교의 중심지였다. 오래되어 부서진 나무 대문이나 흙벽돌이 메마른 주변 풍경과 잘 어우러졌다.

토욕구 대협곡에 위치한 마을, 1,7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 마자촌 토욕구 대협곡에 위치한 마을, 1,7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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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폐허가 된 고창고성이나 교하고성이 아마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 마자촌 지금은 폐허가 된 고창고성이나 교하고성이 아마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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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마을은 아름다우나, 마을 사람들은 차갑다는 거다. 늘 하듯이 먼저 인사를 하거나 웃어 보이면 돌아오는 건 경직된 표정과 경계의 눈빛이다. 카메라를 들이대지도 않았는데 먼저 "노 포토(No Photo)" 혹은 "10위안" 이라며 무서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상하다. 내 미소가 매력이 떨어졌나. 어제만 해도 포도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내게 환하게 마주 웃어주었는데. 여행을 하면 늘 현지 사람들과 즐겁게 어울리는 편이다. 먼저 눈을 마주치고 웃으면, 상대도 쉽게 경계를 푼다. 여행을 하면서 생긴 노하우가 있다.

일단 간단한 그 나라 말을 익혀둔다. 특히 "엄마" ,"아빠", "언니", "오빠" 등 호칭을 익혀두었다가,  "익스큐즈미"보다 그 호칭을 부른다. 우리도 외국인이 한국어로 말을 하면 더욱 호감이 생기듯이, 간단한 말을 익혀두면 효과가 좋다. 조금 공부를 해서 현지어로 숫자라도 외우면 물개 박수 리액션을 받기도 한다. 사진을 찍을 때는 먼저 친해진 후 사진을 찍고 결과물을 보여준다. 젊은 사람들은 이메일 주소를 받아놨다가 보내주기도 한다.

아이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풍선을 불어 주기도 한다
▲ 투르판의 모녀 아이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풍선을 불어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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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지금껏 딱히 시비에 휘말리거나 냉대 받을 일이 없었다. 어딜 가나 환영받으며 즐겁게 여행했다. 하지만 이곳에선 어떤 미소나 제스처도 통하지 않았다. 할머니와 아이들만 조금 마주 웃어줄 뿐이었다. 왜 날 싫어하는 거지. 섭섭한 마음으로 건포도나 한 줌 사서 먹으면서 돌아다녔다.

마을 입구 쪽으로 되돌아 나가려는데 한족 관광객들과 마주쳤다. 하나같이 화려한 메이크업과 현란한 레깅스 차림이다. 가이드가 설명을 하고 있는 동안 관광객들은 사람들 사는 집에도 들어가 보고, 기웃기웃 모스크 문도 밀어본다. '아, 안 되는데. 모스크는 스카프 두르고 들어가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안타까운 마음이 되어 마을 사람들을 돌아봤다. 하지만 그들은 보고 있으면서 보고 있지 않은 척하고 있었다. 묘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다행히 모스크 문은 잠겨있었다.

아, 한숨이 나온다. '충분히 냉대 받을 상황이구나' 싶다. 관광이라는 이름으로 멋대로 남의 생활터전에 들어가고, 카메라를 들이대며 타인의 일상을 침범하고 있었다. 무지를 핑계로 타인의 종교를 존중하지 않기까지 한다. 거기에 한족과 위구르인의 오랜 반목도 영향을 미쳤을 거다. 나 역시 한족이라고 생각 되었을 거다. 찝찝한 마음으로 마을을 벗어났다.

조그만 마을에 경찰은 왜이리 많은지
▲ 토욕구 마자촌 조그만 마을에 경찰은 왜이리 많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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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토욕구 마을 입구에는 독일 탐험대의 폰 르콕이 살던 집이 있다. 르콕은 이 집에 4개월 동안 머물며 이 지역 유물을 자유롭게 약탈했다. 피터 홈커크의 <실크로드의 악마들>이라는 책을 보면 서양 탐험가들이 마구잡이로 유물을 수집하는 당시의 상황이 잘 나와 있다.

석굴 사원인 베제클리크를 방문하면 르콕의 범상치 않은 업적을 볼 수 있다. 베제클리크는 위구로어로 '그림이 그려진 아름다운 집'이라는 뜻이다. 6세기 고창국시대부터 13세기 원나라 때까지 이어진 석굴사원이다. 화엄산을 지나 바짝 마른 풍경을 달리고 있노라면 갑자기 계곡에 물이 흐르고 나무와 민가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오아시스다. 베제클리크도 다른 석굴사원처럼 오아시스에 지어졌다.

토욕구 마자촌 입구에 위치한 폰르콕이 살던 집
▲ 르콕의 집 토욕구 마자촌 입구에 위치한 폰르콕이 살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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깎아지른 암벽에 자리를 잡다보니 석굴이 쉽게 눈에 띄진 않는다. 건너편에서 보면 빽빽이 매달린 벌집 같기도 하다. 르콕은 이곳에 도착했을 때의 심정을 이렇게 말했다. "마치 마술에 걸린 것처럼 막 화가가 붓질을 끝낸 듯한 생생한 벽화가 나타났다"고. 르콕은 이 벽화를 베를린으로 옮겨가기 위해 칼과 톱을 사용해 마음껏 벽화를 도려냈다. 대형벽화는 통째로 운반할 수 없으니 조각조각 잘라냈다.

르콕의 대담함은 20호굴에 들어가 보면 알 수 있다. 중앙에 불상이 모셔진 공간이 있고, 그 주위로 회랑이 둘러쳐 있다. 이 회랑에는 화려한 서원화가 그려져 있었다 한다. 하지만 지금 그 안을 들어가면 그저 깊고 어두운 복도일 뿐이다. 르콕은 이 긴 복도의 그림을 모두 다 도려낸 것이다.

하지만 르콕은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은 듯하다. 당시 무지한 인근 지역 농부가 벽화를 뜯어 밭에다 뿌리고, 이슬람 신도들이 불화의 눈을 몽땅 도려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1928년 이 지역을 여행한 영국인 여행가는 "유럽의 고고학자들이 무슬림 광신도에게서 불교유물을 구출했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중국 당국이 문화재의 해외 반출을 금지시킨 것은 1930년에 이르러서다. 그러나 베제클리크는 그 이후에도 수난을 겪었다.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들에 의해 또 짓밟히고 만 것이다.

내부에 남아있는 벽화가 거의 없다. 관전포인트는 통채로 뜯어간 자국 감상.
▲ 베제클리크 석굴사원 내부에 남아있는 벽화가 거의 없다. 관전포인트는 통채로 뜯어간 자국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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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유명하신 할아버님이시다
▲ 러와프를 연주하는 할아버지와 춤추는 손녀 나름 유명하신 할아버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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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문화재 보호라는 명분의 약탈 행위는 과연 정당화 될 수 있을까. 벽화의 안료가 특별한 비료라고 믿고 으깨어 밭에 뿌린 무지한 농부의 행위와 남의 나라 유물을 칼로 하나 하나 도려내서 자기 나라로 가져간 르콕의 위는 유물의 훼손이라는 점에서 결국 같은 선상에 있는 행동이다. 그의 욕심이 소중한 유물을 장물로 만든 것이다.

어이없게도 독일 탐험대가 반출한 벽화는 2차 세계대전 베를린 폭격으로 대다수 사라졌다. 베를린 박물관 벽에 벽화를 시멘트로 붙였는데 떼어내지 못해 결국 피해를 입은 것이다. 이 사건으로 르콕은 실크로드 최고의 악당이 되어 역사에 길이 남았다.

서원도(誓願圖). 전생의 석가모니가 미래에 부처가 되겠다며 성불의 서원을 세우는 내용이다. 이곳에 탐험대를 보낸 독일의 황제는 그 '서원'의 의미를 알았을까. 중생을 위해 원을 세우는 마음을 알았을까. 불교를 모르던 독일의 마지막 황제에게 이 벽화가 어떤 의미가 있었을지 궁금해졌다.

교하고성에 비밀을 묻고

투요크 마을에서는 서운했고, 베제클리크에서는 허무했다. 우울함은 시장에서 풀었다. 비둘기와 닭, 양그림이 나란히 그려진 가판대에서 꼬치구이를 사먹었다. 이게 비둘기인지 닭인지 몸짓으로 물어봤으나 잘 통하지는 않았다. 닭이겠지...?

가판대에는 닭그림과 양그림 그리고 비둘기 그림이 그려져있다. 설마?
▲ 닭꼬치 파는 여인 가판대에는 닭그림과 양그림 그리고 비둘기 그림이 그려져있다.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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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판은 볼거리가 많다. 화염산, 카레즈, 포도구, 베제클리크 천불동, 토욕구 외에도 신장에서 가장 높은 이슬람 탑인 소공탑, 과거 고창국 귀족들의 무덤이었던 아스타나 고분군, 그리고 고창왕국의 유적지 고창고성과 차사전국의 유적지 교하고성이 있다.

교하고성은 무르투크 강의 중간에 있는 절벽 위에 세워졌다. 위에서 보면 버들잎이라고도 하는데 항공모함 같기도 하다. 나무 한 그루 없이 황토색 과거의 흔적만 남아있다. 자연스럽게 대로를 따라 올라가다보면 여기는 관청, 여기는 주거구역, 여기는 불교사원 이렇게 장소마다 푯말이 붙어있다. 날이 뜨거워서인지 건물들은 지상과 지하가 연결되게 지어놨다.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걸 보면서 이곳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생각해봤다. 인구밀도가 꽤 높았을 거 같다. 이곳은 고구려 유민인 고선지 장군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강의 두개의 하류가 만나는 위치에 있어서 교하라고 한다
▲ 교하고성 강의 두개의 하류가 만나는 위치에 있어서 교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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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고선지 장군이 뛰어놀던 마을
▲ 교하고성 어린 고선지 장군이 뛰어놀던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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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다. 구불구불한 골목을 미로처럼 헤매며 절벽 쪽으로 가봤다. 이 절벽을 과연 어떤 적이 오를 수 있었을까. 과연 천혜의 요새다. 하지만 아무리 난공불락이어도 결국 나라는 없어지고 사람들도 사라졌다. 부서진 시간들만 남았을 뿐. 누군가의 집터였을 그늘에 앉아 혼자 음악을 들었다. 어떤 사람들이 살았고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을까. 그리고 어떻게 사라졌을까. 시간도 없고 공간도 없는 블랙홀에 들어온 기분이다.

안녕, 흑역사, 너는 내 청춘의 무덤, 안녕
▲ 교하고성 안녕, 흑역사, 너는 내 청춘의 무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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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드는 유적지에서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영화 <화양연화> 마지막 장면이다. 양조위가 앙코르와트의 부서진 벽에 말 할 수 없는 비밀을 속삭이던 장면. 한번쯤 따라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정도로 애틋한 사랑이 없다. 인생을 헛살았나... 애써 떠올려 봤지만 아무래도 유적지가 아깝다. 한참 고민하다 노트에 흑역사를 하나 쓰고 담벼락에 묻어두고 왔다. 안녕, 흑역사. 넌 이제 과거다. 언젠가 다시 마주치면 그땐 웃으며 인사하자. 안녕.

"사라져버린 세월은 한 무더기 벽과 같다. 먼지 쌓인 유리벽처럼. 볼 수는 있어도 만질 수는 없다."- 영화 <화양연화> 에서 -

덧붙이는 글 | 2014년 4월부터 10월까지의 여행 중, 실크로드- 경주, 중국,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이란, 터키, 로마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동쪽과 서쪽을 잇는 실크로드의 과거 이야기와 현재 진행형 이야기입니다. 더블어 히스테리가 극에 달한 노처녀의 한풀이이기도 합니다. 실크로드에서 건져낸 이야기를 점과 점으로 이어, 글을 읽는 당신의 마음에 또 하나의 실크로드가 그려졌으면 합니다.



태그:#실크로드, #투르판, #교하고성, #베제클리크, #토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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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 여행작가. 저서 <당신에게 실크로드>, <남자찾아 산티아고>, 사진집 <다큐멘터리 新 실크로드 Ⅰ,Ⅱ> "달라도 괜찮아요. 서로의 마음만 이해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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