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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객실 청소원이 된 지 16개월째 접어든다. 관광호텔 수요와 공급이 늘어나면서 룸메이드라 불리는 호텔객실 청소원은 요즘 인력난이다. 인력난이다 보니 해고의 위험은 거의 없다. 주 5일 근무에 4대 사회보험 등을 공제 후 월평균 실수령액이 기본 120만원 이상은 되니 50세이상 여성의 일자리 치고는 꽤 괜찮은 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남의 주머니 속의 돈을 내 것으로 만드는 일 중에 쉬운 일이 있던가. 원하기만 하면 취업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일이 매우 힘들고 이직율이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2013년 10월. 15년째 운영하던 가게를 폐업하고 직업을 구하던 중, 중구청이 운영하는 일자리플러스를 찾았다. 그곳에 3만원을 내고 3주에 걸쳐서 호텔 룸메이드 기본 교육을 받았다. 기본교육 이수 마지막날 몇몇 호텔에서 바로 출근이 가능한 교육생이 혹시 없는지 강사를 통해 연락이 왔고 취업이 절실했던 나는 기쁘고 들뜬 마음에 A호텔에 면접 후 취업하게 됐다.

온갖 달콤한 말로 마치 전문직인양 교육을 하고 청소란 말은 한마디도 안 했지만, 중구 어디를 가나 걸려있던 호텔일자리 현수막을 보고, '청소겠구나' 눈치챘다. 그래도 떨렸다. 그것마저 못 구하면 어쩌나 하고. 취업이 결정되는 순간 기뻤고, 초등학교 5학년이던 아들을 데려와서 보여주며 비장하게 "엄마가 내일부터 청소하게될 호텔이야. 예전처럼 남산을 자주 가지는 못할 것 같다"고 했다. 고맙게도 아들은 누가 엄마 뭐하냐 물어보면 A호텔에서 청소한다고 당당하게 말했고, 일터로 친구를 데려오기도 했다.

호텔룸
 호텔룸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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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욕으로 시작한 호텔 청소, 그러나

청소원이 장래 희망인 사람은 없다. 살다가 한가지 이상은 실패를 경험하고 아무일이나 닥치는대로 하겠다 마음먹은 사람들이 대부분 청소일을 한다. 그래도 이왕 시작한 일이니 일을 사랑하자 마음먹었고 나름대로 즐겁게 일했다. 객실 점유의 8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관광객에게 그냥 주워들은 토막 중국어 한두마디 하다가 본격적으로 중국어를 독학하며, 현장에서 한두마디씩 해보는 재미도 꽤 쏠쏠했다. 우리가 이름도 성도 모르는 낯선이를 부를 때 '저기요' 하는 것처럼 중국인들은 '니하오' 한다는 것을 현장이 아니면 어찌 배우랴.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청소만 열심히 하면 되는줄 알았는데, 청소원이 된다는 것은 온갖 사람들로부터 갑질과 무시의 대상이 되는 것을 뜻한다. 게다가 나는 1년제 계약직 파견노동자. 어떤 방법으로 분류해도 최하위 계급이란 것을 부정 못한다. 어쨌거나 순국선열이 목숨 바쳐 일궈낸 나의조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법앞에 만인이 평등하단 것을 믿고 싶었다. 손가락에 힘줄이 튀어나오고 발바닥이 아파서 잠을 설치고 근무일에는 밥을 제때 못먹는 게 다반사로 숨쉴틈 없이 일해도 평균월급 120만원 받는 파견 계약직 청소노동자를 하는 것이 내 능력의 최선이니 조용히 받아들였다.

처음 접한 현장의 분위기는 놀라웠다. 현장소장은 50대 중반의 룸메이드 출신 여성이었는데, 엉덩이를 만지는 등 남녀를 안 가리고 성추행을 일삼는 데다 우리를 부를 때 "야" "너"라 하는가 하면, 늘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댔다. 현장 경험이 처음이니, 나를 향한 성추행만 못하게 거부 의사를 확실히 밝히고 다른 것은 그냥 지켜봤다.

문제가 터진 것은 2014년 4월부터다. 우리의 기본 할당은 하루에 12개 또는 13개를 청소하는 것인데, 개당 4800원 또는 4500원 정도 받는 셈이다. 우리의 기본급이 노동 강도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할당을 채운 후 초과업무 수당은 임금을 구성하는 큰 부분 중 하나이다. 그런데 본사의 방관과 무언의 응원을 등에 업고, 소장은 4500원만 계산하고 4800원짜리 일을 시키는 것이었다.

그렇게 코묻은 돈을 가로채서 회사가 얻는 이득은 월 십여만원 수준이었다. 소장에게 정식으로 문제제기를 하자 아침 미팅시간마다 나를 비난하고 왕따를 시키려 했다. 나의 무능력은 저임금으로 충분히 대가를 치렀으니, 더 짓밟히는 느낌은 참을 수 없었기에 회사에 정식으로 민원을 넣었다. 근로기준법을 지켜줄 것과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해줄 것을 요구했다. 또한번 난리가 나긴 했지만 회사 부장과 만나 대화한 후 내 의견이 수용되었기에 더 이상 코묻은 돈 빼앗길 일은 없을줄 알았다.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는 최소한의 법인 근로기준법도 대놓고 무시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소장의 말은 법 위에 있었다. 2014년 6월 30일 아침미팅 시간에 '내일부터 작업라인이 바뀐다'는 발표를 하는데, 라인만 바뀌는게 아니라 기본할당을 슬그머니 올려서 급여를 1인당 약 4만원가량 삭감하는 것이었다. 동료들 일하는 현장마다 다니면서 나를 비난하는 소장과 대화를 시도해 봤지만 모욕과 괴롭힘으로 일관하는지라 또 본사에 시정을 요구했는데 이번에는 본사도 노골적으로 소장의 편을 들었다.

윽박과 성희롱, 급여삭감...시말서 거부하고 소송하다

문제를 일으킨 사람은 소장인데 나를 징계하면서 시말서를 요구하기에 원만히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며 나는 민주공화국의 법에서 인정하는 나의 권리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가면 회사도 소장도 민형사상의 책임을 물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청소원아줌마의 말이어서 그랬는지 그냥 무시하기에 시말서 쓰기를 거부하고 퇴사하면서 위자료 청구소송, 체불임금신고, 모욕죄로 인한 고소를 동시에 하게 되었다.

결국 위자료 100만원과 체불임금 57만원을 받고 모든 걸 취하하며 합의해 줬다. 휴일을 싸우는데 쓰기가 너무나 피곤했다. 제발 법이라도 지키라고, 정상적인 운영을 건의하던 나와 회사의 7개월에 걸친 싸움은 그렇게 끝이 났다.

요즘 갑질이란 말이 유행어가 되었다. 갑과 을은 계약서의 매끄러운 모양새를 위하여 고유명사 반복을 피하기 위해 쓰는 대명사일 뿐이다. 그런데도 갑질하는 사람이 있다면, 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포기하지 말고 을질하면 된다. 을이 정당한 을질을 해야 갑의 부당한 갑질이 멈춘다고 굳세게 믿으며, 을들은 서러워 말고 포기하지 말기를 바란다. 


태그:#갑질에는을질, #갑을관계, #갑을은대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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