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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제가 캄보디아 여행시켜 줄게요!"

지난해 9월의 어느날 밤, 우리는 안산역 건너편 '국경 없는 마을'에 있는 '작당'이라는 커피숍에서 인터뷰 중이었다. 이주노동자의 이야기를 작업 중인 김성희 만화가와 성공회대 어학당에서 한국어 공부를 하는 문리 못(아래 못) 그리고 얼결에 따라간 나 이렇게 셋이 앉아 수다 꽃을 피우는 중이었다.

못은 이주노동자로 한국에 와서 일을 하고 본국으로 돌아갔다가 공부를 위해 다시 한국을 찾았다. 한국어 공부를 하면서 못은 캄보디아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협회에서 통역, 서류작성 등 각종 일을 도맡아 했다. 못과 나는 '지구인의 정류장'이라는 이주노동자 쉼터 겸 교육 공간에서 알게 되어 친한 사이였다.

이주노동자가 살던 고향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함이 많았는데, 못이 겨울에 고향집에 간다면서 대뜸 함께 가자고 했다. 캄보디아에서 제일 경치가 아름다운 바다와 호수를 보여주고 싶다며. 제주도보다 멋질 거라는 못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선생님, 제가 캄보디아 여행시켜 줄게요"

4명의 캄보디아 이주노동자와 그 친구들이 함께 한 제주여행
▲ 용눈이오름, 제주 4명의 캄보디아 이주노동자와 그 친구들이 함께 한 제주여행
ⓒ 빈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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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그를 포함한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4명과 함께 제주여행을 한 적이 있다. 가보고 싶다는 말에 덜컥, "그래 가자!"를 외쳐버렸다. 노동자들은 회사에 어렵게 휴가를 내고, 각각 제주도로 모였다.

배를 타보고 싶던 이는 인천에서 출발하고, 소식을 듣고 갑자기 비행기를 타고 온 친구도 있었다. 한국에서 일하면서 제주도가 멋지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이들은 여행 내내 아주 즐겁게 지내다가 돌아갔다. 물론 비행기와 숙소 예약부터 모든 일정을 만들고 책임졌던 나는 녹초가 되어 있었지만(물론 나도 재미있었다).

그 이후로 못은 자기도 캄보디아 여행을 시켜주겠다고 말하곤 했었다. 그런데 이번엔 말하는 이도, 듣는 이도 사뭇 진지했다. 왠지 갈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사실 이미 버마로 돌아간 이주노동자에게 초청을 받은 터라 휴가를 다 겨울로 미룬 상황이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번엔 캄보디아가 좋을 것 같다. 못과 더 친하기도 하고, 못의 집이, 못이 사는 나라가 더 궁금했으니까.

멤버는 못을 포함 총 4명으로 구성되었다. 못이 처음 한국에 왔을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지금은 강릉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 중인 안프로(제주 여행시 운전 담당)와 김성희 만화가와 나 그리고 이 여행을 책임지게 될 못.

여행 일정은 지난해 12월 초였고, 좀 더 저렴한 표를 위해 10월이 되기 전 비행기 표를 샀다. 우리의 기대는 한껏 부풀었다. 못이 있었기에 당연히 아무도 여행 준비는 하지 않았다. 배낭을 튼실하게 꾸려서 따라만 가면 되는 것이었다.

출발 3일 전, 못 간다는 못... 우리끼리라도 가자

캄보디아로 떠나는 비행기가 생애 최초 비행이 된 김성희 작가는, 먼 곳으로 노동하러 떠나는 이들의 마음을 상상하고 상상했다고 한다.
▲ 어떤 마음으로... 캄보디아로 떠나는 비행기가 생애 최초 비행이 된 김성희 작가는, 먼 곳으로 노동하러 떠나는 이들의 마음을 상상하고 상상했다고 한다.
ⓒ 김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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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3일 전, 못에게 급한 전화를 받았다. 당연히 나올 줄 알았던 비자 발급이 너무 늦어져서, 못 가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비자는 한 달 정도 걸린다고 했다. 휴가를 어렵게 조정하고, 이미 여기 저기 소문을 내놓은 우리는 어쩌란 말인가.

못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함께 여행을 가자고 말했는데 이렇게 되어 미안하다며 연신 사과를 하는 못을 진정시키고 대책을 논의했다. 못은 한 달 후로 일정을 조정해서 함께 가자고 했지만, 휴가 조정이 그리 쉬운 게 아니었다. 오래 생각할 틈도 없었다. 뭐, 우리끼리라도 가보자.

그제서야 우리는, 못을 따라 처음 발을 딛게 될 프놈펜이라는 도시가 캄보디아의 수도이고, 웬만한 한국 사람들은 앙코르와트를 보기 위해 시엠립이라는 도시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주 동안 아무 정보도 없는 캄보디아에서 무엇을 한단 말인가.

떠나기 2일 전, 서울에 넷이 모여 앉았다. 안프로와 김성희 만화가(아래 김작)가 지방에서 올라왔다. 미안함에 몸둘바를 몰라하던 못은, 캄보디아에서 인터뷰 할 사람을 열심히 찾아봐주겠다고 했고, 우리는 프놈펜이 어디 있는 도시인지 지도를 봤다.

자정이 넘어 비행기가 도착하니까, 그래도 최소한 첫날 묵을 숙소라도 정하고 가자 싶어, 인터넷으로 부랴부랴 한 호텔을 예약했다. 이제 될 대로 되는 수밖에 없다. 가이드북이 없었지만, 인터넷을 총 동원해 우선 프놈펜의 숙소까지만 도착하고 보자고 다짐했다.

상해 푸동공항을 경유, 4시간 반의 비행을 더 하고 프놈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못은 12월의 캄보디아 날씨는 한국의 10월 쯤으로 선선하다고 했다. 평소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싸늘한 저녁을 대비해 두툼한 옷을 많이 챙겨왔다. 공항에 도착해 밖으로 나오니 자정이 넘었지만 후끈한 공기가 느껴진다. 배낭에 든 모든 옷이 쓸모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제서야 왜 현지 온도를 안 찾아봤는지 미련함에 웃음이 난다. 못을 믿었지 뭐야! 땀이 흐른다.

프놈펜의 숙소까지만 도착해보자, 택시를 탔건만...

공항에서 대기하는 택시와 흥정하는 모습. 알고보니 시내까지 가는 택시비는 15달러 정액이다.
▲ 프놈펜 국제공항 도착 공항에서 대기하는 택시와 흥정하는 모습. 알고보니 시내까지 가는 택시비는 15달러 정액이다.
ⓒ 김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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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를 잡아 타고 낯선 시내로 들어갔다(택시는 정액 15달러이다. 15달러가 적힌 표를 준다).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12월은 분명 건기라고 들었는데, 점점 못이 알려준 정보가 안맞기 시작한다. 설상가상 택시 타이어가 펑크 났다. 어딘지 절대 모를 곳에 택시가 섰고, 우리는 택시에서 내렸다.

기사님이 바퀴를 수리하는 동안 우리는 어두컴컴한 도시를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두리번 거렸다. 5분쯤 지나자 새로운 택시가 나타났다. 영어가 서로 서툰 관계로, 지도만 계속해서 보여줬다. 다행히 숙소에 도착했고, 하루 동안의 긴 여정에 넉다운이 된 우리는, 맥주를 한 캔씩 급하게 마시고 바로 잠을 청했다.

밤새 도마뱀이 울었나보다. 알 수 없는 울음소리에 잠을 많이 설쳤다. 창 밖을 보니, 세상에. 진짜 다른 곳에 와 있다. 겨울에서 순식간에 여름으로, 씨끌벅쩍한 대도시에서, 미지의 세계로 도착했다. 아무런 일정이 없는 우리는, 이제부터의 일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프놈펜에 도착한 첫날, 잠을 자고 일어나서 본 첫 창밖 풍경
▲ 프놈펜 호텔 창문에서 바라본 첫 풍경 프놈펜에 도착한 첫날, 잠을 자고 일어나서 본 첫 창밖 풍경
ⓒ 김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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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캄보디아, #프놈펜, #배낭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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