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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어린이집 아동폭행 문제로 아동인권은 물론이고 어린이집 운영 실태가 언론에 집중적으로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무척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와 함께 노인인권과 노인요양시설의 실태를 떠올려보게 됩니다. 어린이집 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제 판단입니다. 어린이는 심하게 말해서 물불 안 가리는 엄마가 뒤에 버티고 있지만 노인은 아무도 없습니다. 치매 등 노인병을 앓는 경우는 자신의 고통을 호소할 능력조차 없습니다.
 
저는 8년째 중증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돌보면서 셀 수도 없이 많은 선택지 앞에 섰었는데 그중 하나가 치매약을 처방하는 문제였습니다. 숱한 갈등을 거듭한 끝에 약을 쓰지 않는 쪽으로 결정했고 그 결정을 천만다행으로 여깁니다. 치매약을 쓰지 않기로 결정하는 과정이 녹록지 않았지만 고심의 과정을 통해 도달한 귀한 깨우침은 아래와 같습니다. 이것은 이 글의 주제인 치매를 앓는 분들에게 자연치유 삶을 제안하는 기초가 되겠습니다.

치매는 병이 아니다

치매를 병으로 보지 말자는 것은 모든 치매 대안의 바탕입니다. 왜냐면, 치매는 그동안 어머니가 살아오신 삶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치매를 마치 떼어내야 할 이물질처럼 생각하고 이 치매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라는 해부학적 차원으로 접근했다는 자각이 있어서입니다. 치매증상에 대한 일반적인 시선과 대응은 신체상태, 인지력, 공간구성력, 행동장애, 성격이나 감정 장애 등만 따로 떼어내서 당사자로부터 분리시키려는 시도였다고 여깁니다.

우리 어머니의 삶 자체를 있는 그대로 일단 수용하고, 그 자체를 통째로 존중하여 마지막 숨을 놓는 순간까지 어머니의 존엄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라면 어머니의 몸과 마음을 해체하여 무엇은 제거하고 무엇은 보존하고, 어떤 것은 귀하게 여기고 어떤 것은 혐오한다는 것은 이치에도 맞지 않으며 불가능한 일입니다.

치매약을 쓸지 말지 고심하는 근본 동기를 살펴봤습니다. 부정할 수 없는 것이 내 편의성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치매로 인해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이미 괴로움이니 즐거움이니 하는 오감 저 너머로 가셔서 이른바 정상인들의 삶과는 궤를 달리하는 영역에 가 계십니다. 그것을 나의 기준에 맞추어서 왈가왈부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또 하나는 내 삶의 괴로움 원천을 어머니의 치매에서 찾고자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것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면, 마치 어머니 치매만 아니면 만사 오케이인 듯이 굴었다는 것이죠. 가정이건 우리 형제관계건 고통과 불행의 뿌리가 어머니 치매에서 비롯된다고 여긴 것이지요.

내 생활반경이나 경제활동 등도 그렇다고 봤습니다. 치매를 앓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사회적 해악보다는 이른바 정상인이 저지르는 사회적 해악이 더 큰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치매를 앓는 우리 어머니가 잘 알아듣고 잘 판단해서 행동하시기를 바라긴 하지만 그 처방이 치매약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의사도, 어떤 기관도 치매의 원인을 명쾌하게 규명하지 못합니다. 치매의 증상과 신체적(뇌) 특이점만 겨우 찾았지요. 그런 특이현상의 근원에 대해서는 아무도 해명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치매약이 있습니다.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전형적인 대증요법입니다. 증상에 대한 완화제이지 근원에 대한 처방은 아닙니다.

이제 '치매관리법'이라는 관련 법령도 생기고 국가차원의 여러 대책도 만들고 있지만 치매는 노인 자살에 비하면 사망원인 순에서 한참 밀립니다. 세계 최고인 우리나라 자살률은 2012~2013년의 경우 평균치가 10만 명 당 28.5명인데 80대 이상 남성 노인 자살률은 이보다 6배 가까이 많습니다.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쌓인 스트레스는 치매 발병률에도 크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봅니다. 병인은 사회와 경제에 있는데 원인도 놔둔 채 증상만 막으려고 약을 쓸 수는 없지 않겠어요? 증상에 대한 대응은 한시적이고 제한적일 때만 필요하다고 봅니다.

제가 어머니 모시고 살면서 치매 약을 전혀 쓰지 않는 이유를 길게 얘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 치매 얘기를 하지만 결국 '삶'을 말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약의 부작용

치매약을 쓰지 않는 이유 하나는 그 부작용 때문입니다. 횃대 위에 올라 앉아 졸고 있는 병든 닭들처럼 치매약은 사람의 기력을 망가뜨립니다. 가족이건 요양원이건 병원이건 이른바 '관리'의 편의를 위해 처방한다고 하는 게 맞습니다. 치매약은 치매인자에만 접근하지 않고 몸 전신을 소금에 절인 배추모양으로 만듭니다. 약 성분 자체가 그렇습니다.

겨울에 수돗물이 얼어 어머니가 잠시 요양원에 계실 때 어떤 치매약도 사용하지 말라고 했지만 간호사는 이른바 '전문성'을 내세워 내 허락도 없이 파스처럼 몸에 붙이는 치매약인 '엑셀론'이라는 패치를 붙였습니다. 이 약품은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의사 처방 없이는 살 수도 없는 '전문의약품'인데도 말입니다.

휴일이나 간호사가 비번일 때는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이 붙이고 떼고 했는데 깜빡하고 이틀이나 갈아 붙이지 않다보니 그 부위에 욕창까지 생겼습니다. 이 약 덕분에 (공격성이) 왕성하던 어머니는 순한 양처럼 되었습니다. 더운물에 데친 상추 같았습니다. 신체기능 전반이 약화되는 게 치매약입니다.

장황하게 치매약 얘기를 한 것은 치매에 대한 통상적인 이해와 접근을 바꾸자는 것입니다. 나이 들어 중풍도 걸리고 치매도 걸리고 귀도 멀고 하는 것은 인생살이의 한 부위입니다. 그런데도 일단 격리하고 수용합니다. 아니라고요? '복지'라는 이름이 붙을 뿐이지 노인 당사자 입장에서는 격리·수용 맞습니다. 그 목적이 당사자의 고통을 줄이고 사회적 비용도 낮추기 위한 것이라고요?

글쎄요. 몸이 아프면 누구나 힘든 게 사실이지만 고통이란 더 깊은 뿌리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몸의 불편함과 아픔을 완화해야 하는 건 필요합니다. 치매 노인에게 큰 고통은 인지력 저하나 행동장애가 아닙니다. 치매로 가족에게 무시당하고 폭행 당하는 것입니다. 가족과 떨어지고 정든 집을 떠나는 것입니다. 손 때 묻은 가구나 물품들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반려동물 하나 가까이 둘 수 없는 처지가 되는 것입니다.

반려동물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얘긴데 사람보다 반려동물이 몇 배 나을 때가 있습니다. 사람은 배신을 하지만 동물은 신의(?)를 지킵니다. 믿음이란 삶의 큰 지주입니다. 우리 어머니는 지금껏 고양이나 강아지, 닭 등 늘 반려동물을 곁에 두고 있는데 동물의 치유력을 크게 실감했습니다. 요즘은 발도로프 인형을 사 드렸는데 아주 좋은 동무가 되었습니다.
2013년 한 해 노인 한 분의 의료비가 322만원으로 발표되었습니다. 절대액만 높은 게 아닙니다.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노인 치료비 비중은 11.0%(2010년)에서 24.3%(2030년), 40.1%(2060년)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건강보험료는 꼬박꼬박 잘 내면서도 지난해 한 해 단 돈 5만원의 의료비도 안 들었고 건강합니다. 어떻게 보면 건보 재정이 바닥나는 처지에서 우리 어머니는 대단한 애국자입니다. 우리 마을에서 어머니보다 건강하시던 어르신들이 다 돌아가시고 우리 어머니가 최고령자가 되었습니다. 올해 93세입니다. 건강은 약이 보장해 주지 않습니다. 생활이 건강하면 병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병이 생겼다면 생활의 균형이 깨졌다는 방증입니다. 약에만 의존하면 깨진 생활을 복원하기는 더 어렵습니다.

사회 문제로까지 비화되는 각종 노인문제, 요양시설들의 반사회적 문제들은 노인 또는 치매에 대한 서구중심의 기계론적 이해와 기능주의적 접근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노인 자살, 노인 가출, 노인 빈곤, 노인 폭행 뿐 아니라 시설의 노인 감금과 학대는 노인의 삶이 시장상품화 된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노인 관련지수를 놓고 노인 전문가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걱정을 쏟아냅니다. 특히 노인인구 증가와 노인질병, 그리고 치매에 대한 수치들에 대해서는 더 심합니다. 과장되거나 지나치게 호들갑을 떨고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때로는 일부 솔직하지 못한 지표들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예가 우리나라 치매인구 증가 도표나 일본과의 치매 치료비를 비교하는 내용들입니다. 정확하게 현실을 알려면 노인인구 비율과 노인 치매인구가 비교되어야 합니다. 노인 인구가 늘어서 노인인구 비율이 높아졌는데도 총 인구대비 치매인구 비율만을 따지는 것은 치매인구 증가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합니다. 평균수명이 늘어서 생긴 일을 마치 치매가 심각한 전염병처럼 여겨지게 하는 통계조작은 삼가야합니다.

시스템과 시장 만능주의

이런 과장과 과도한 경계 뒤에 따르는 수순은 노인시장의 확대입니다. 복지라는 이름으로 노인산업이 팽창하고 있습니다. 국정감사에서 북한의 위협이 과장되고 군 장비의 부실이 거론되면서 곧장 국방비 인상과 첨단무기 구입으로 이어지는 것과 같다고 봅니다.

제가 볼 때 우리나라 노인시장은 노인의료자본을 주축으로 노인교육자본, 노인시설자본, 노인휴양자본들이 개입해 있습니다. 이를 노인전문가들이 크게 돕고 있지요. 조상 묘 관리도 벌초대행 시장으로 흡입되는가 싶더니 제사상도 대행업체로 넘어가고 급기야 부모 모시는 일마저 국가까지 개입하여 노인시장으로 넘어 가버린 꼴입니다. 과격한 주장이라고 여기실 수 있지만 20~30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못할 일들입니다. 부모를 돈 받고 대신 봐 준다는 걸 도대체 상상이나 했습니까?

부모를 전문요양시설, 주간보호, 단기보호 또는 방문요양선생님들에게 맡기고 자식들은 다 어딜 갈까요? 돈 벌러 갑니다. 왜요? 세금내고, 자식 과외비내고, 부모 요양비 내려고 그럽니다. 돈 벌러 나가야 하다 보니 경차라도 한 대 사야하고 식구마다 스마트폰을 가져야 합니다. 더 부지런히 돈을 벌어야합니다. 참으로 우스운 꼴입니다.

이런 왜곡된 삶에 대한 날카로운 이해 없이 노인관련(치매관련) 각종 센터와 각종 기관들의 난립은 노인시장을 확대하는 데 이바지할 뿐입니다. 치매관리법이 제정되고 나서 국가치매관리위원회가 생기고 각 보건소마다 치매상담센터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광역지자체에는 광역치매센터가 생겨났습니다. 센터장은 대학병원 의사들이나 전문의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역할이 중복되거나 생색내기 기관이 또 만들어질 겁니다. 이런 기관은 대형 대학병원을 끼고 생겨나는 추세입니다. 이런 식으로 모든 멀쩡한 국민을 환자로 만들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엄한 법령과 매서운 감시기관이 있어도 왜 시설에서 각종 노인 학대행위가 끊이지 않을까요? 왜 거룩한(?) 종교인들이 운영하는데도 시설의 부정수급과 허위조작이 사라지지 않을까요? 왜 노인 폭행에서 가족폭행이 으뜸을 차지할까요? 시설에(갇혀)서 색칠이나 하고 종이나 접고 실이나 꿰는 것을 행복이라고 누가 그러는가요? 노인시장이 부추기는 의식의 왜곡이라고 봅니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시스템 만능주의에 빠져 있지 않은지 되돌아 봐야 할 시점이라고 봅니다. 한국 고유의 '효' 개념의 정립과 한국인 특유의 부모에 대한 이중적인 정서를 살펴보면  새로운 접근이 가능하다고 여겨집니다. 자연치유 공동생활가정 협동조합과 자연치유 생태 노인요양원 시범사업을 제안하는 이유입니다.

2006년 10월 12일자 뉴욕타임즈에 인상적인 기사가 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이를 <경향신문>이 인용보도 했습니다. 전문치매약이 가짜약보다도 효과가 없었다는 시험결과입니다. 도리어 시험에 쓰인 치매전문약이 부작용만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비타민제로 만든 가짜 약은 플라시보 효과로 치매가 호전되기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병'이라는 말이 떠오르게 합니다. 시시한 실험이 아닙니다. '뉴잉글랜드 의학저널'에 발표된 실험보고서에 기초한 기사입니다.

일체유심조. 마음이 고요하고 마음이 평화로우면 아무리 큰 병도 더 이상 병이 아닙니다. 병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개념이며 병이 있고 없고는 절대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치매가 질병이냐 아니냐. 치매는 괴롭냐 아니냐로 접근 할 게 아니고 주어진 삶의 조건을 먼저 경건하게 수용하고, 일상을 자연순리의 삶으로 정상화시키는 것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자연치유는 민족전통 삶 속에 녹아 있습니다. 치매에 대한 자연치유 시범사업은 시스템과 기구와 규칙과 감시와 처벌과 보상으로 이루어진 지금의 시설중심 노인요양 방식을 사랑과 호혜와 모심과 보람과 긍지로 바꾸는 시도입니다. 세 가지 방안을 제안합니다.

자연치유 부모 모심 시범가정

큰 사업을 할 때는 시범사업을 합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전국적으로 확대 실시하기 전에 시범사업 했듯이 자연치유의 삶을 복원하는 시범가정을 운용해 보면 어떨까 합니다. 이 시범사업은 한국의 전통적인 효 개념에 전통의학과 자연치유의 개념을 접목하여 몇 가정을 대상으로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전통적인 효 개념 얘기를 하니까 시대적 흐름에 뒤떨어지는 유교적 폐습을 떠 올릴지 모릅니다. 제가 말하는 전통적 효 개념은 동학에서 말하는 '천지부모' 개념입니다. 해월선생의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시설에 부모를 보내 놓고는 모든 자식들이 심리적으로 위축됩니다. 이게 한국인의 심리입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자위하면서도 늘 죄인인 양 얼버무립니다. 서양은 안 그렇습니다. 제가 스웨덴과 노르웨이 가서 놀란 것이 있는데 이들 나라는 초등학교 때부터 국가에서 용돈까지 주더라는 겁니다.

이들 나라에서는 자연스럽게도 부모를 봉양한다는 것은 자식의 몫이 아니라 국가의 책임이라고 여깁니다. 어릴 때 용돈까지도 나라에서 주고 공부도 부모가 아니라 나라에서 공짜로 시켜줬으니 늙으신 부모를 돌보는 것은 자식보다 나라가 할 일이라고 여깁니다. 서구적 복지개념의 토양이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누리과정이 국가나 지자체의 몫이 됐듯이.

물론 그만큼 세금을 내기도 하지요. 호주에도 가서 노인시설을 둘러 볼 기회가 있었는데 노인 한 분 당 요양인력이 1:1입니다. 그 비율이 1:2.5인 우리나라는 아직 더 있어야 할 듯합니다.

자연치유 시범가정은 설계를 아주 잘 하면 재미있는 결과치가 나타나리라 봅니다. 의료비도 대폭 줄어들 것이며 자긍심과 행복도가 높아지리라 봅니다. 제 자신의 8년 생활이 그렇습니다. 시범가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혈육적인 부모-자식 관계를 넘어서서 공자의 '효경'이나 부처님의 '부모은중경' 뿐 아니라 해월의 '천지부모'를 철학적으로 체득하고 봉사나 헌신, 인내가 아니라 통합된 자신의 삶으로 참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통합된 삶이라는 것은 자신의 일상 속에 치매 부모를 흡입하는 것입니다. 대상화 하지 않고 가족 성원으로서 채매 앓는 부모를 주체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상은 가족단위 촌락공동체를 떠올리면 됩니다.

'밥이 보약이다'는 기본자세로 자연식을 하고 음악, 레저, 운동, 미술, 원예 등 인위적인 치유작업 대신 일상생활 자체가 이를 담보하게 하는 것입니다. 제 어머니가 그랬습니다. 좋은 음악도 듣게 했지만 바람소리 새소리 물소리를 듣게 했습니다. 농사일을 돕게 하면서 자연과 대화를 하게 했고 실내가 아니라 밖에서 주로 생활하니 일광욕이 절로 되었습니다. 종이접기가 아니라 고추를 기르셨고 색칠하기가 아니라 삶은 콩으로 아랫목에서 청국장을 띄울 수 있게 했습니다.

자신에 대한 자긍심도 생겨났고 목소리에 힘도 들어가게 되었고 집안 경제에 한 몫을 담당한다는 자부심도 생겨났습니다.

몸에 이상(병)이 오면 성급한 약 처방 대신 민족생활의학 지혜들을 살펴보면서 대응을 하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치매성 설사, 변비, 자궁염, 장염 등이 잠깐씩 비친 적이 있었으나 모두 따뜻한 성질의 음식과 온수 반신욕 등으로 전혀 병원신세지지 않고 거뜬하게 치유했고 도리어 소화기능과 여타 신체기능이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훨씬 강화되었습니다. 자연치유의 힘이지요.

몇 가정을 선정하여 이런 시범가정을 운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라진 옛 집안 분위기를 만들고 집중적인 관찰과 분석을 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지금 주류 대응법으로는 치매에 대한 공연한 공포감만 증대시킬 것이며 의료비의 급증과 약물중독이 늘어날 것입니다. 국가재정이 고갈도 염려되지요.

하루 이틀 살펴보면서 따뜻한 생강차만 드려도 될 초기감기를 시설에서는 다짜고짜 병원으로 모셔가지 않으면 건강보험공단의 지도점검 대상입니다. 몸의 자연회복을 돕고 저항력을 높이는 섭생이나 부항, 뜸 등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 현재의 노인요양 시스템입니다. 저는 식이섭생과 부항, 뜸, 농사일과 집안일을 하는 것으로 어머니 건강을 챙겼습니다.

자연치유 생태 노인전문요양 시범사업

이것은 자연치유 시범가정을 일정하게 규모화 하는 것입니다. 2개의 광역지자체에 1개소씩만 만들어 봐도 좋겠습니다. 제가 지속적으로 구상해 보던 것입니다. 요양병원과 전문요양원을 체험하면서, 요양보호사 실습기간에, 어머니를 요양시설에 모시면서 계속 생각해 봤던 문제입니다.

자연치유 생태 노인전문요양원은 텃밭도 조성하고 신체 조건에 따라 어르신들에게 실생활을 담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부천의 오정노인복지관(관장 박노숙)에서 발간한 사례집에는 강점관점의 모델을 적용하여 실천한 결과 구성원들의 잠재능력이 잘 발휘되는 사례가 나와 있습니다. 복지관 내의 우체부 역할을 맡은 할아버지 이야기는 매우 인상적인 사례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어르신 끼리의 호·불호를 기준으로 작은 가정단위가 요양원 안에 만들어져도 좋을 것입니다. 빨래, 조리, 산책 등은 스스로 하거나 서로 도와서 하게 합니다. 배회하시는 어르신을 위해서는 맘껏 배회해도 되는 장소를 만듭니다.

옷도 실내복, 외출복, 잠옷을 따로 준비하고 아침에 일어나면 화장을 하고 평상복으로 갈아입게 합니다. 절대 제복이나 환자복을 입히지 않아야 합니다. 제복이나 환자복을 입히는 것은 사이즈만 맞으면 아무 옷이나 입히는 것으로 시설의 관리편의 때문입니다.

미국의 실험교도소를 떠 올려 볼 수도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몇 년 전에 특별교도소를 만들어 중요한 실험을 했었습니다. 보통의 일반 가정처럼 교도소를 꾸며 텃밭 가꾸기는 물론 반려동물 키우기, 봉사활동, 인문학 강좌 등을 한 결과 재범률이 현저하게 떨어졌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아주 엄정한 분석틀을 가지고 연구 분석한 결과치입니다.

자연치유 전문요양원은 반려동물을 키우면서 동물치유를 일상화하고 게스트하우스를 마련하여 가족들이 면회를 오면 별도의 독립 공간에서 가족과 하룻밤 지낼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어느 요양시설에도 면회실이 따로 없습니다. 그러니 면회 온 가족을 위한 숙소가 있을 리 없습니다. 먼 길 면회 온 가족들은 체육실이나 회의실 등에서 준비 해 온 음식을 부모님께 이것저것 권하다가 겨우 시내 구경 한 번 하든지, 시설에 과일 선물 한 상자 전하고 아쉽게 돌아가는 실정입니다. 게스트하우스는 수혜자 가족에게 일종의 별장처럼 쓰이게 합니다.

시범 요양원이 정착되면 이곳에 노인전문대학 과정을 도입해도 될 것입니다. 일본의 '야마토마치'가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누리과정을 담당하는 교사도 유아교육학과 4년 과정을 이수하게 하는데 움직이는 박물관이라 할 어르신 모시는 일은 요양보호사 과정 240시간이라는 것은 우리 사회가 노인문제에 얼마나 소홀한가를 반증합니다. 노인전문대학이 만들어지고 복지학과에서 분리하여 노인학과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이런 시범시설에서 시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의 요양보호사들은 이직률도 높고 직업 만족도도 낮습니다. 처음에는 다들 부모 모시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시장에 공급된 임금 노동자의 한계를 못 벗어납니다. 처우도 부실하고 노동환경도 열악해서입니다. 열악한 환경의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은 노인들에 대한 언어폭력, 물리폭력의 당사자가 되기도 합니다. 얼마 전부터 치매전문 작업치료사 과정이 생겼지만 치매 앓는 노인을 돌보는 과정이 사명감과 헌신과 인내로만 가능하지 않습니다. 급료를 높인다고 해결 될 문제도 아닙니다.

노인을 돌보는 과정이 곧 스스로의 삶이 치유되도록 하는 그런 시범 시설이어야 할 것입니다. 늙고 병든 남의 부모를 모시면서 인생살이 생노병사의 뿌리를 깨우치는 치유의 삶. 그런 자연치유 시범 전문요양원이 하나쯤 시도 되어도 좋을 때입니다.

80 넘은 할아버지들이 자살을 선택하기까지 마음속으로 품었을 고독감. 외로움. 배신감. 좌절. 분노는 젊고 건강한 사람들을 무척 가슴 아프게 합니다. 노인은 물론 청소년의 자살률이 세계 최고인데도 다른 한편에서는 출산율이 너무 낮다면서 출산장려정책이 화려합니다.

경북 어느 군에서는 셋째 아이를 낳으면 1000만 원 이상을 준다더군요. 노인인구에 비해 경제활동 인구가 적어서 노인부양이 문제라고 계속 떠듭니다. 이건 노인들에 대한 지독한 폭력입니다. 이런 말 들으면 노인된 게 죄인이라도 된 듯합니다. 새는 둑 막을 생각을 해야지 물이나 더 채울 생각만 하면 순서가 틀린 것입니다.

노인요양 공동생활가정 협동조합

우리나라 노인장기요양보험법도 치매를 앓는 어르신이 집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물론 현실과의 차이는 큽니다. 노인문제에 대해 시민사회와 뜻 있는 개인들이 같이 협동조합 방식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가칭 '노인요양 공동생활가정 협동조합'은 조합원 자신과 그들의 부모가 수혜자가 되는 노인전문 협동조합입니다.

현행법으로 보면 노인요양 공동생활가정에서는 어르신 5~9인이 함께 살 수 있습니다. 그러니 가까운 사람들이 뜻을 모아 부모님을 같이 모신다고 여기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가 아이를 키울 때 공동육아 했듯이 공동봉양을 하는 것입니다. 의료협동조합도 생겼고 다양한 교육협동조합도 생겼는데 부모봉양협동조합을 못 만들 이유가 없지 않을까요? 자기 자신의 노후를 준비하는 차원이기도 합니다.

맹모삼천이다 하여 자식 키우기 위한 정성의 반의반만 있어도 될 것입니다. 조합원들이 정기적으로 노인관련 공부도 하고 사례도 분석하고 공동 세미나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협동조합간의 협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노인전문 협동조합끼리 할 수 있는 일은 의외로 많습니다.

요즘 구술 자서전이니 구전 민화 채집이니 하여 시골 노인들의 옛 삶을 채록하는 일이 대대적으로 벌어지기도 합니다. 특히 자서전 쓰기는 어르신들이 자신의 삶에 큰 애착을 갖게 하는 효과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사업을 노인요양 공동가정협동조합에서는 사진작가나 소설가, 관련학과 대학생들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족갈등 중인 당사자들에게 현장체험을 통한 자기치유 기회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사회적기업으로의 전망도 세울 수 있습니다.

이때, 공단의 급여만으로는 재정을 꾸리기에 모자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폭넓게 후원자를 모시는 것도 어렵지 않다고 봅니다. 그야말로 노년이 행복한 대표적인 공동체가 된다면 말입니다. '유니세프'나 '꽃동네'에 기부금도 내는데 이런 자연치유 노인협동조합에 성금 내는 것을 마다 할 이유가 없습니다.

국가 단위의 복지기능과 상업적인 시장기능에서 조금만 시선을 돌려보면 전혀 새로운 노령화, 노인문제 해법이 찾아 질 수 있을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녹색평론>신년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치매, #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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