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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주말에 서울광장에서 열린 쌍용차 범국민대회에 참석했습니다. 추운날씨에도 활기가 넘치던 자리, 김진숙 지도위원의 발언에 눈물이 맺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집에 물건을 두고 나온 것 마냥 이상한 아쉬움이 밀려들더군요.

그도 그럴것이 집회의 맨 앞에 항상 자리를 지키고 있던 정치인들이 단 한 명도 없었던 탓이었습니다. 미안했습니다. 종북 빨갱이라고 지탄받을지언정 이런 자리에 빠지지 않고 함께 구호를 외쳤던 옛 진보당 의원들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큰 도움이 되지 못해도, 머릿수라도 하나 더 채우려던 그 노력조차 하지 못하는 처지가 미안함으로 밀려든 모양입니다.

시민들의 외면과 싸우던 평택역 농성장의 기억

쌍용자동차의 모기업인 마힌드라그룹의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이 14일 오전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본사를 방문한 가운데,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70m 굴뚝 위에서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33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인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정욱 사무국장과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이 깔개 위에 청테이프로 'Let's Talk'이라는 글자를 만들어 들어보이고 있다.
이날 이 실장은 "오늘 아난드 회장과 노조와의 짧은 만남으로 진전된 것은 없고 진정한 대화로 볼 수 없다"며 "사측은 본격적인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 쌍용차 굴뚝 외침 'Let's Talk' 쌍용자동차의 모기업인 마힌드라그룹의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이 14일 오전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본사를 방문한 가운데,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70m 굴뚝 위에서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33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인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정욱 사무국장과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이 깔개 위에 청테이프로 'Let's Talk'이라는 글자를 만들어 들어보이고 있다. 이날 이 실장은 "오늘 아난드 회장과 노조와의 짧은 만남으로 진전된 것은 없고 진정한 대화로 볼 수 없다"며 "사측은 본격적인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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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해산된 진보당의 당직자입니다. 그리고 평택에서 태어나 부모님이 평택에 살고 있는 탓에 평택을 고향으로 갖고 있기도 합니다. 대추리와 쌍용차로 유명해진 그 평택, 지금 두 동지들이 올라간 굴뚝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그 평택 말입니다.

그래서 명절마다 평택역에 내려 광장을 가로질러 집으로 가는 길에 차마 외면하지 못하고 쌍차 노동자들의 천막에 음료를 사다 놓고 집으로 향하곤 했습니다. 괜한 동질감과 부채감 탓이었을 것입니다. 천막으로 발걸음을 옮겨 음료수를 전하며 '힘내세요'라고 소심한 한마디를 건네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연신 고맙다고 하는 노동자들의 인사를 매번 받아야 했습니다. 자격없는 인사를 받고는 '얼마나 많은 외면과 싸우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우울해지기 일쑤였습니다.

지난 12월에 '인권콘서트'라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저는 기획단에서 일하며 콘서트 말미에 낭독할 선언문 작성을 맡게 되어 쌍차 문제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그리곤 김득중 지부장님에게 데면데면 연락을 해서 검토를 부탁드렸죠.

대법 판결 이후라 아무래도 제가 다소 우울한 분위기로 작성한 모양입니다. '연대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로 맺은 글에 '우리는 싸움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패배란 있을수 없습니다, 반드시 승리하겠습니다'라는 문구를 붙여달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무척이나 부끄러웠습니다. 한편, '앞으로 어떻게 하려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도 일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선언문의 결의를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 쌍차 노동자들이 굴뚝에 올라갔습니다. 오체투지를 한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그간에 진보당은 해산되었고, 얼마간 기사와 페이스북을 통해 굴뚝 소식을 접하며 안타까운 마음만 쌓아가고 있었습니다.

저금통이라도 뜯어 굴뚝에 보냅니다

문득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석 달 전에 결혼한 옆지기에게 동전 저금통을 뜯어 굴뚝에 보내자고 조심스럽게 얘기했습니다. 직장을 잃어 벌이도 없는 주제에 후원이나 하자는 게 한심하게 보이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고맙게도 흔쾌하게 '좋아'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둘이 앉아 신나게 저금통을 뜯어 동전을 세었습니다. 5만 4700원. 여기에 당이 해산된 후 <오마이뉴스>에 작성한 기사에 후원금으로 들어온 5만 7000원을 보태어 굴뚝으로 보냅니다.

아내의 흔쾌한 허락에 지난 몇달간 부부가 함께 모은 동전 저금통을 뜯어 굴뚝으로 보냅니다.
 아내의 흔쾌한 허락에 지난 몇달간 부부가 함께 모은 동전 저금통을 뜯어 굴뚝으로 보냅니다.
ⓒ 조용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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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서 내려와 일상으로 돌아갈 날을 응원합니다

비할바는 아니지만 싸우다가 직장을 잃었다는 데에서 우리는 동지입니다. 하지만 저에겐 돌아갈 직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입니다. 그래서 이 돈이 저보다 쌍차 노동자들이 복직하는 데 쓰이는 것이 더 가치있겠다는 생각에 이렇게 작은 돈이나마 힘을 보탭니다.

꼭 승리해서 복직하세요. 그래서 저 사법부의 판결봉 따위가 우리의 삶을 들어낼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시길 부탁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굴뚝에서 내려와 공장에서 동료들과 차를 만들며 땀을 흘릴 수 있기를, 주말이면 아이들과 평택 체리농장에도 놀러가고 삽교천에 가서 조개구이를 먹으며 투쟁을 추억하는 일상을 되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응원합니다.

굴뚝이 아니라 공장으로, 농성이 아니라 노동으로 돌아가는 그날, 이창근 기획실장님의 말대로 너른 공장에서 함께 막걸리 한잔 할 날을 저도 기다리겠습니다.

힘내라, 김정욱 이창근! 응답하라, 쌍차!


태그:#쌍용차, #굴뚝, #김정욱, #이창근, #해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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