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틸리케호의 '맏형' 차두리 주가가 폭등하고 있다. 지난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에서 폭풍 드리블에 이은 그림 같은 어시스트로 손흥민의 쐐기골을 끌어내며 한국의 3회 연속 4강행을 이끈 차두리의 활약에 팬들의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대회를 끝으로 대표팀 은퇴를 예고한 차두리를 붙잡아야한다는 여론까지 형성되고 있는 분위기다.

차두리는 2001년 11월 8일 세네갈가의 평가전에서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른 이후 통산 A매치 73경기에 출전하여 4골을 넣었다. 1980년생으로 어느덧 35세, 나이로 보나 대표팀 경력으로보나 의심할 여지없는 슈틸리케호의 최고참이다. 무엇보다 2002 한일월드컵 4강멤버중 유일하게 아직까지 대표팀에 남은 현역이라는 점만 봐도, 차두리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전설' 급이다.

사실 차두리는 이번 아시안컵에 합류하지 못 했을 수도 있었다. 차두리는 몇 년 전부터 심각하게 은퇴시기를 고민해왔다. 독일 뒤셀도르프 시절 개인사정이 겹쳐 잠정적으로 현역 은퇴를 결심했다가 FC 서울의 강력한 권유로 K리그 행을 선택하며 결정을 뒤집은 적이 있고, 지난해 2014 브라질월드컵 최종엔트리에 낙마했을 때도 비슷한 고민에 빠졌다. 슈틸리케 감독이 부임한 이후 차두리는 대표팀에 복귀했지만, "차기 월드컵이 현역 생활을 이어가는데 동기부여가 될지 모르겠다"며 현역 연장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차두리를 간절히 원하는 목소리가 너무나 많았다. 지난 시즌 FC 서울에서 절정의 활약을 보여주며 베스트11에 선정되었고, A매치에서도 여전히 녹슬지 않은 기량을 선보였다. 무엇보다 베테랑 선수로서 풍부한 관록과, 해외파-국내파의 가교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친화력 및 리더십에서 차두리는 대체 불가한 존재가 되어있었다. 차두리는 장고를 거듭한 끝에 서울에서 현역 생활은 1년 더 연장하기로 결정했고, 대표팀은 이번 아시안컵을 끝으로 은퇴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마냥 화려한 선수생활을 이어온 것 같지만 차두리의 축구경력은 알고 보면 부침이 많았다. 2002 한일월드컵 4강-2010 남아공월드컵 원정 16강 등 한국축구사의 가장 화려한 순간을 함께했지만 2006 독일월드컵-2014 브라질월드컵에서는 최종엔트리에 들지 못하고 방송 해설자로 월드컵을 지켜보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자주 바뀌는 대표팀 감독의 성향에 따라 차두리에 대한 호불호는 극과 극을 달렸다.

공격수에서 수비수로 포지션을 전향하는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고, 독일무대에서는 1, 2부리그 팀을 오가며 '강등머신 '이라는 달갑지 않은 징크스에 시달리기도 했다. 기성용과 함께 2012년 스코틀랜드 셀틱에서 생애 첫 리그 우승컵을 처음 들기 전까지는 우승과도 별 인연이 없었다.

무엇보다 '넘사벽'에 가까운 대 선수였던 부친 차범근(A매치 통산 132경기 59골)과의 비교는 차두리의 축구인생에 있어서 후광인 동시에 곧 그늘이기도 했다. 차두리는 지난해 K리그 시상식에서 "차범근의 아들로서 축구계에서 인정받기가 쉽지 않았다"며 그동안의 고충을 에둘러 표현하기도 했다.

차두리가 부친 차범근보다 유일하게 앞서있는 부분이 바로 대표팀에서의 성취다. 차범근은 86년 멕시코월드컵에 한 번 출전했으나 득점이나 승리를 맛보지는 못했다. 차두리는 월드컵 본선에 두 번이나 출전했고, 바로 한국축구가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둔 대회들이었다.

아시안컵 역시 차범근-차두리 부자와 남다른 인연이 있는 대회다. 차범근은 1972년 5월, 당시 만 18세의 나이로 방콕 아시안컵에 출전했다. 차범근의 A매치 데뷔전이자 당시 한국 선수로는 아시안컵 최연소 출전 기록이기도 했다. 차범근은 크메르(캄보디아의 전 이름)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A매치 데뷔 골을 장식했다. 하지만 한국은 결승에서 이란에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무려 55년간 이어지는 한국의 아시안컵 잔혹사의 한 페이지였다.

차두리는 2004년, 2011년 대회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 아시안컵 도전이다. 2004년 중국 대회에는 8강에서 이란의 벽에 막혔고, 2011년 카타르 아시안컵은 준결승에서 승부차기 끝에 일본에 패해 3위에 만족해야했다. 55년만의 아시안컵 우승을 노리는 이번 대회는 일본, 이란 등 우승후보들이 조기에 탈락하면서 한국의 우승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차두리에게도 부친 차범근의 그늘을 넘어 화려한 대표팀 경력에 정점을 찍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마지막'이라는 의미가 선수의 집중력을 더욱 끌어올린 때문일까. 차두리는 이번 아시안컵에서 3경기(선발 1, 교체 2)에 출전하여 벌써 도움 2개를 기록하며 맹활약하고 있다.

당초 무릎부상으로 오른쪽 풀백 선발 자리를 김창수에게 내주고 벤치에서 출발했으나, 오만과의 1차전에서 김창수의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출전기회를 잡으며 한국수비의 버팀목으로 거듭났다. 쿠웨이트와의 2차전에서는 그림 같은 빨랫줄 크로스로 남태희의 선제 결승골을 어시스트하며 녹슬지 않은 기량을 과시했다.

하이라이트는 지난 우즈벡과의 8강전이었다. 팽팽한 0-0의 승부가 이어지던 후반 24분 교 체투입된 차두리는 '차미네이터'라는 별명에 걸맞게 공격과 수비를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그라운드를 누볐다. 한국이 손흥민의 선제골로 1-0으로 앞서가던 연장 후반 14분에는 차두리의 돌파력이 다시 빛을 발했다.

장현수의 패스를 이어받은 차두리는 역습 상황에서 50미터 이상을 단독 돌파하며 상대 수비수 2명을 잇달아 제치고 우즈벡의 문전까지 치고 들어와 손흥민에게 낮고 정확한 크로스를 건넸다. 손흥민은 차두리의 택배 패스를 정확한 트래핑에 이은 왼발 강슛으로 연결하며 한국의 완승에 쐐기를 박았다. 지켜보던 이들은 골을 넣은 손흥민도 잘했지만 '90% 이상 차두리가 만들어낸 골'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차두리의 아시안컵 활약은 왜 대표팀과 큰 국제대회일수록 '베테랑의 가치'가 중요한지를 증명한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다. 35살은 보통의 축구선수라면 환갑에 가까운 나이다. 최근 몇 년간 대표팀은 물론이고 차두리가 활약하는 K리그에서도 노장의 가치가 평가절하당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차두리는 철저한 몸관리를 바탕으로 체력과 리더십까지 겸비한 노장의 가치는 세월도 막을수 없다는 것을 실력으로 증명했다. 우즈벡전에서 50미터가 넘는 거리를 상대 수비수들을 달고 5~6초만에 돌파하는 장면은 한창때인 20대의 젊은 선수들조차 쉽게 흉내내기 어려운 모습이다. 노장 차두리가 여전히 실력만으로 대표팀에서 당당히 젊은 선수들과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순간이다.

결과적으로 슈틸리케 감독이 차두리의 은퇴를 만류하고 이번 아시안컵 명단에 합류시킨 것은 신의 한수로 증명됐다. 55년만의 아시안컵 우승에는 이제 두 번의 고비만이 남았다. 박지성과 이영표조차 이루지 못한 아시안컵 우승은 2002 세대의 마지막 유산이라 할 수 있는 차두리의 축구인생에도 아름다운 유종의 미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아시안컵 우승 유무와는 또 별개로, 차두리의 모습을 대표팀에서 더 보고 싶다는 여론도 당분간 계속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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