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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짜리 여행이었다. 오전에는 일을 했고 오후에는 관광지를 돌아다녔다. 그렇게 빠듯한 일정에서도 세 번이나 찾아간 곳이 있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달려갔던 곳. 인터넷을 통해 여러 번 봤지만 그럼에도 믿을 수 없던 곳. 나는 바다사자를 보러 부두로 향했다.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가까운 거리에서 바다사자를 볼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가까운 거리에서 바다사자를 볼 수 있다.
ⓒ 김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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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사자는 39번이라 이름 붙여진 부두에 몰려 있었다. 잠을 자는 녀석도 있었고 뭐가 억울한지 울고 있는 녀석도 있었다. 햇살 좋은 날 그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지금 내가 있는 시공간이 모호해졌다. 육안으로, 전혀 다른 형태의 수족관을 경험하는 것은 판타지이자 동화 같은 일이었다. 아득한 어떤 기억이 떠오를 것도 같았다. 그런 묘한 매력에 이끌려 그 후로도 몇 번 더 부두를 찾았다.

바다사자들이 있는 39번 부두 앞 건물 2층에는 '바다사자 센터'가 있다. 센터라고 하니 거창한 느낌이 드는데, 실은 작은 규모로 바다사자에 관한 여러 정보를 제공해 주는 곳이다. 바다사자의 실제 뼈도 전시되어 있고 관련 영상도 볼 수 있다. 그곳을 둘러보다 문득 궁금한 게 생겼다. 바다사자는 왜 여기에 있는 걸까.

바다사자가 이곳에 온 건 1989년 '로마 프리에타(Loma Prieta) 지진' 이후부터 라고 한다. 초기에는 10~50마리 정도로 많지 않았으나 청어가 풍부한 환경 때문인지 바다사자들이 점차 몰려왔고 그 결과 2009년 11월에는 1701마리를 기록했다고 한다.

바다사자들은 번식을 하기 위해서 여름에 이동을 한다. 작은 그룹이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39번 부두를 찾는 바다사자들은 끊이지 않고 있으며 그로 인해 샌프란시스코의 바다사자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게다가 캘리포니아의 해양포유류보호법에 의해서 보호도 받고 있으니 앞으로도 바다사자는 이곳에서 계속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의 바다사자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의 바다사자
ⓒ 김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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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사자가 준 평온함 때문이었을까. 나는 좀 걷고 싶었다. 생각해보니 미국에 온 후로는 걸어 본 적이 거의 없었다(미국 생활 1년 후에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했다).

좀 걷다보면 사라지는 인도. 그럼에도 당황하지 않고 도로의 갓길로 꿋꿋이 걷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갓길로 걷는다는 게 운전자나 보행자 모두에게 위험하다는 걸 깨달은 순간부터 나는 걷지 않게 됐다. 인도가 없다는 것은 걷지 말라는 것이리라.

운전자 기준의 도시설계를 탓했던 것도 잠시, 나는 차가 주는 달콤한 유혹에 빠져 버렸다. 그런 이유로 참 오랜만에 걷는다. 걷기 위해 참 멀리도 왔구나. 바다를 옆에 끼고 걷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길 끝에 집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빌딩숲에서 ‘트렌스아메리카 피라미드(Transamerica Pyramid)’라는 독특한 형태의 빌딩을 보았다. 이 빌딩은 1972년에 완공된 샌프란시스코의 랜드마크로, 높이가 260미터(48층)에 달한다.
 빌딩숲에서 ‘트렌스아메리카 피라미드(Transamerica Pyramid)’라는 독특한 형태의 빌딩을 보았다. 이 빌딩은 1972년에 완공된 샌프란시스코의 랜드마크로, 높이가 260미터(48층)에 달한다.
ⓒ 김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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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끝에서 만난 건 빌딩숲이었다. 그런데 서울의 빌딩숲과 달리 날카롭고 차가운 느낌이 없다. 고풍스럽고 묵직해 보이는 건물 외관은 유럽의 건축물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석조건물의 매력이란 게 이런 건가. 빌딩숲을 걸으며 중세시대 어디쯤을 흉내내본다. 아, 이것은 정말이지 본디 내가 알던 빌딩숲이 아니다.

한참을 걷다보니 잘 아는 이름의 가게가 보인다. 판매하는 물건 대부분이 천원인 가게. 이곳은 1.5달러(한화 약 1500원)란다. 가게 이름 옆에 'JAPAN(일본)'이라고 쓰여 있는 걸 보니 분명 그동안 사지 못했던 '그것'들이 있을 것이다. 문화가 같아서 좋은 점을 나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찾았다.

모든 물건을 1.5달러에 판매하는 가게
 모든 물건을 1.5달러에 판매하는 가게
ⓒ 김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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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망과 밥주걱이 필요했다. 있으면 좋지만 그렇다고 꼭 필요한 물건은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그동안 불편함을 숨기고 살았던 것 같다. 빨래나 밥을 할 때면 분명 이것들을 떠올렸을 텐데 말이다. 꼭 필요한 물건은 아니라고, 없어도 괜찮다고, 그렇게 매 순간 무의식이 나를 설득했을 것이다.

"득템, 득템!"

명품 가방도 옷도 아니었다. 고작 1500원짜리 밥주걱에 나는 '득템'을 외치고 있었다. 이런 내 모습이 낯설고 부끄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주부가 되어가는 나를 발견한 것에 뿌듯하기도 했다. 싫지 않았다. 쇼핑을 끝내고 호텔로 들어가는 길에는 TV에서만 보던 배우를 마주쳤다. 이럴 때는 '대박'이라고 외쳐야 하나. 호텔로 들어온 나는 저녁 내내 그 배우 이야기를 했다.

살면서 누구에게나 좋든 나쁘든 예상 밖의 일들이 생긴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우리는 인생이라고 부른다. 여행도 그런 것 같다.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뜻밖의 일이 벌어졌을 때 비로소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덧붙이는 글 | 2014년 8월 9일~14일까지 샌프란시스코에 머물면서 있었던 '어느 하루'의 이야기입니다.



태그:#샌프란시스코, #바다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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