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두산은 풍부한 자원 속에 끊임없는 경쟁이 계속되었다. '화수분 야구'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해마다 새로운 얼굴이 많이 나왔고 세대교체가 자유롭게 이뤄질 수 있는 몇 안 되는 팀 중 하나이기도 했다.

김경문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놓은 뒤에도 그런 양상은 변함없었고 지난해에도 '가뭄 속 단비'와도 같은 좌완 함덕주를 발굴해냈다. 프로 1년차이지만, 당찬 투구로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지난해 시즌 후반, 또 한 명의 선수가 팬들의 레이더망에 들어왔다. 3루, 1루에 이어 좌익수와 우익수까지 소화하는 수비 능력을 지니면서 나쁘지 않은 컨택 능력까지 겸비했다. 비록 팀은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지만, 이 선수의 짧은 활약상을 기억하는 팬들은 생각보다 많다. 2014시즌 정규시즌 최종전에서 '끝내기 안타'를 기록했던 두산 김진형의 이야기이다.

두산 김진형 두산 야수진 경쟁에 뛰어든 김진형

▲ 두산 김진형 두산 야수진 경쟁에 뛰어든 김진형 ⓒ 두산 베어스


어느 포지션이든 준비가 된 선수, 왜 멀티 포지션에 도전했나

김진형은 장비 가방에 1루수 미트, 외야수 글러브, 내야수 글러브 총 세 개의 글러브를 가지고 다닌다. 1군이 됐든 2군이 됐든 장소를 가리지 않고 경기에 나설 때면 어느 포지션에서든 준비가 됐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지난 시즌 우익수, 1루수, 3루수를 오가며 분전했고 딱히 어느 포지션에서 단점이 드러난다는 느낌을 주지 않아 멀티 플레이어로서의 가능성을 드러냈다.

2009년 두산에 입단한 그는 입단 동기들에 비해서 큰 주목을 받진 못했다. 허경민, 박건우, 정수빈 등은 비교적 이른 시점에 1군에 콜업이 되었으나 한동안 2군에서 머물렀다. 드래프트에서 가장 마지막 순번, 구단으로선 남은 카드 중 하나를 뽑아야했기에 지금 당장보단 미래를 내다보는 선택을 받았다. 그래도 그는 잘 나가는 동기들의 활약을 보며 입맛을 다시기 부지기수였다.

KBO에 등록된 선수 명단에서 김진형의 포지션은 '외야수'로 표기되어있다. 하지만 경쟁력 강화를 위해 멀티 포지션 도전에 과감히 도전장을 던지며 내야수로도 변신했다. 좌익수와 우익수, 외야의 양 코너를 오갈 수 있는데 여기에 1루와 3루 수비 훈련에 박차를 가하며 무려 네 포지션에서 수비 소화가 가능해졌다.

멀티 포지션의 특성상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은 존재한다. 그럼에도 김진형은 마다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의 장점으로 밀고 나가려고 한다. 오랜 외야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송구 능력도 나쁘지 않고 수비 기본기도 다져진 선수이다. 아직 1군에서 많은 경기에 나오지 않아 각 포지션에서의 특성은 뚜렷하지 않지만 가능성이 있는 만큼 올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가 가장 중요하다.

2014시즌 2할3푼7리의 타율, 헌데 보통 우타자들과는 달리 좌투수에게 약한 면모를 보였다. 좌투수를 상대로는 13타수 2안타로 1할5푼4리을 기록했는데 우타자와의 상대에선 22타수 7안타 3할1푼8리의 타율을 기록했다. 아이러니하지만, 지난해 프로 데뷔 첫 안타를 기록한 5월 6일 사직 롯데전(VS 김승회)도, 마지막 타석이 됐던 10월 17일 잠실 NC전(VS 박명환)에서도 상대는 '우투수'였다.

꿈만 같았던 정규시즌 막바지의 '기회'

보여준 게 많지 않을 뿐 잠재력은 퓨처스리그에서도 인정받은 지 오래이다. 지난해 퓨처스리그에선 57경기 출장 타율 .272 180타수 49안타 5홈런 24타점을 기록했으며 가장 최근에 나왔던 경기는 8월 23일 kt전이었다. 다시 말해 이 경기를 끝으로 김진형은 송일수 전 감독의 부름을 받아 1군에 콜업되었다.

5월 18일 NC전 이후 타석에 들어서지 못했던 김진형은 약 100일이 지나서야 그토록 간절했던 기회를 잡았다. 8월 30일 NC전부터 9월, 10월까지 꾸준히 경기 중후반에 접어들 즈음 반드시 한 타석 정도는 백업으로라도 그라운드를 밟을 수 있었다. 썩 만족스러운 내용은 아니었지만 이 모든 것이 처음인 김진형에겐 경험 자체가 소중했다.

정규시즌 최종일이 서서히 다가오면서 선발 라인업에도 이름을 올렸다. 팀은 4강 진출이 물 건너간 상황이었고 송 전 감독은 1.5군 선수들을 위주로 기용하면서 젊은 선수들 중에서도 가능성이 있는 재목들에 관심이 많았다. 김진형도 그 중 한 명이었고 퓨처스 팀에서 보고를 받을 때도 김진형을 예의주시했다.

이윽고 그의 진가는 경기를 통해 고스란히 나타났다. 10월 13일 문학 SK전에서 프로 데뷔 첫 멀티히트 경기를 펼쳤고 10월 15일 잠실 SK전에서는 2루 주자였던 김진형이 상대 1루수 박정권의 미숙한 땅볼 타구 처리를 노려 센스있는 주루플레이를 선보였다. 이튿날인 16일 잠실 SK전에서 두 번째 멀티히트를, 시즌 마지막 경기인 NC전에선 배테랑 투수 박명환의 속구를 밀어쳐 1·2루간을 가르는 끝내기 안타를 뽑아내 승리를 책임졌다.

끝내기 안타 친 김진형 정규시즌 최종전에서 끝내기 안타를 친 이후 허경민과 이성곤의 축하를 받고 있는 김진형

▲ 끝내기 안타 친 김진형 정규시즌 최종전에서 끝내기 안타를 친 이후 허경민과 이성곤의 축하를 받고 있는 김진형 ⓒ 두산 베어스


주마등처럼 스쳐간 4일은 본인으로선 '김진형 이름 석 자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선수들과 팬들은 4강에 대한 꿈이 멀어졌음에도 선수 한 명을 발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끝내기 안타를 치고 1루를 밟는 순간 정규시즌이 종료되었고 두산의 2014년은 막을 내렸지만 김진형은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한 셈이다.

두산 내·외야진 경쟁, 새로운 변수로 떠오른 김진형

두산의 1차 스프링캠프가 진행중인 애리조나에서 여러 선수들과 함께 김진형도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김태형 감독은 1군 멤버와 2군 멤버를 확실히 구분해 스프링캠프를 준비했을 만큼 어느 정도 김 감독의 1차적인 구상은 끝났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원석이 군입대를 했지만 여전히 내야도, 외야도 총성없는 전쟁터이다.

두산에서 내·외야를 오가는 선수는 거의 없다. 고영민과 허경민이 잠시 중견수로 변신을 꾀했는데 성공적인 결과물을 낳지 못해 다시 본업으로 돌아갔다. 그나마 좌익수와 1루수를 겸업하는 김현수가 있기는 하다. 다만 내·외야를 오가면서 부분별로 두 포지션 이상 활약하는 선수는 김진형 한 명에 불과하다. 리그를 통틀어봐도 이런 자원이 드물어 두산으로서도 트레이드나 2차 드래프트, 특별지명 시기가 오면 반드시 신경을 쓰게 된다.

올시즌 주전 경쟁에서 뚜렷한 성장세를 보일지가 관건인데, 선발 자리를 꿰차기가 여의치 않다. 외야진만 봐도 김현수-정수빈-민병헌 '국대급' 선수들이 즐비해 포화상태이고 내야진은 잭 루츠의 영입으로 3루와 유격수, 2루수 자리는 주인이 정해졌다. 만일 주전 자리에 욕심을 낸다면 오재일과 김재환과의 경쟁을 벌여야 하는 1루 자리가 현실적인 대안이다.

아직까지 스프링캠프 초반이라 성과를 냈다고 하기에도 이른 시점이다. 경쟁은 계속 진행형에 머물러있고 일본으로 건너가서도 이러한 경쟁 구도는 계속될 전망이다. 김진형뿐만 아니라 이 때를 노린 다른 선수들도 있기에 그들과의 경쟁에서도 피해갈 수 없는 노릇이다. 이겨내야만 하는 게 원망스러울 수도 있으나 이것이 현재 두산 야수진의 현주소이다.

강한 수비와 허슬두, 컨택 능력 삼 박자를 갖춘 멀티 플레이어, 그의 노력이 올시즌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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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위 기사는 뚝심의 The Time(blog.naver.com/dbwnstkd16), 매일경제 BIGS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프로야구 두산베어스 김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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