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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생명이 움트는 봄이나 초록이 절정을 맞는 여름에 이곳을 찾고 싶었다. 그러나 몇 개월을 기다릴 수 있는 참을성보다 호기심이 앞섰다.

지난 13일, 인천광역시 연수구 동춘동 청량산 자락 아래에 위치한 흙·바람·생명이 머무는 터 '돌심방'을 찾았다.

돌이, 심복이, 방울이

   
고선희 도자기환경조형연구소 대표와 강아지들.
 고선희 도자기환경조형연구소 대표와 강아지들.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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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PC방, 노래방을 얘기하듯 돌심방을 무슨 '방'으로 생각하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요. 돌심방은 돌이, 심복이, 방울이라는 강아지 이름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에요."

고선희(59) 도자기환경조형연구소 대표의 설명은 호기심을 더욱 자극했고, 여기를 찾은 이유도 잠시 잊은 채 한참을 그의 사연에 빠져들게 했다.

"남편 회사 근처에 버려진 강아지가 한 마리 있었어요. 털이 다 빠지고 다리는 절고 거죽은 심한 피부병으로 썩어가고 있었죠. 며칠은 못 본 채 했는데 도저히 더 외면하기 힘들더라고요. 동물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수의사가 길어야 2개월밖에 못 살 것 같으니 죽기 전까지 추위나 막아주고 먹을 거나 주라고 하더라고요"

고환을 심하게 다쳐 생식기능이 불가능하다고 수의사는 판단했다. 누군가 지속적으로 강아지를 학대했고 급기야 그 부위를 심하게 걷어차 그 지경이 됐다고 했다.

고 대표는 그 강아지에게 '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동네 놀이터에 버려진 암놈 유기견 '심복이'를 남편이 데려와 키우고 있던 터라, 부담스러웠지만 생식기능이 없다고 해 '돌이'도 데려와 키웠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 생겼다. 둘의 사랑으로 '방울이'가 태어난 것이다. 수의사는 의사생활 19년 만에 이런 기적같은 일은 처음이라고 놀라워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수필가 문남선은 <돌심방(2011. 나라)>이라는 제목의 수필집을 내기도 했다.

새로 태어난 삶, 거룩한 부자가 되기로
   
 돌심방 도자기환경조형연구소의 입구 모습.
 돌심방 도자기환경조형연구소의 입구 모습.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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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공예를 전공한 고 대표는 흙과 불의 예술인 도자기에 매료됐다. 대학 졸업 후 더 깊이 공부하고자 대학원에 진학하려했으나 결혼과 동시에 그 꿈을 접어야했다. 남편 뒷바라지에, 아이들 키우는 재미에 빠져 있던 그에게 오히려 남편이 대학원 진학을 제안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렸고 행복하던 그때, 부귀영화를 누리며 자신만 알던 시절이었다.

"남편도 사업이 잘 됐고, 저도 대학원 졸업하고 도예전에도 입상하면서 잘 나갔죠. 그러다 갑자기 한꺼번에 시련이 몰려오는 거예요."

남편의 사업이 어렵게 됐을 무렵 가족 중 한 명이 암 판정을 받았다. 너무 불행해 삶의 존재 이유를 찾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지푸라기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어릴 때 잊었던 신을 다시 찾았다. 종교생활로 나 혼자만이 아닌 주변과 함께 행복해야 진정한 행복이란 걸 배웠고, 자신에게 주어진 '달란트'로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성경에 나오는 '거룩한 부자'가 되기로 한 것이다. 그럴 무렵 '돌이'도 만났다.

모든 이에게 열려있는 야외 갤러리

 돌심방 도자기환경조형연구소에 전시된 도자기들.
 돌심방 도자기환경조형연구소에 전시된 도자기들.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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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서울에서 태어나 대학원까지 서울에서 다녔어요. 25년 전 남동공단에 있던 회사를 분양받아 인천에 왔죠. 제가 동춘동 대우3차아파트에 사는데, 그때는 이 아파트를 제외하고는 주변이 온통 나대지나 논밭이었죠. 아파트에서 내려다보니 청량산이 보이는 거예요. 산이 아담하고 예쁘더라고요."

힘든 시기를 겪으며 아름다운 이곳이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살려야겠다고 결심했다. 더불어 공부하면서 접한 유럽인들의 정서에는 우리나라 산처럼 아담한 산들을 좋아해 찾아다니는 배낭여행객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이곳을 그처럼 만들고 싶었다.

"8년 전에는 이곳이 쓰레기가 쌓여있던, 버려진 땅이었어요. 할머니 한 분이 살고 계셨는데 뜻 맞는 예술인들의 도움으로 지금의 돌심방을 만들었습니다."

돌심방은 고 대표의 작업실이며, 모든이에게 열려 잇는 야외갤러리이기도 하다. 낮시간이면 방문이 가능하다. 고 대표는 돌심방뿐만 아니라 청량산 자락을 문화예술의 메카로 만들기 위해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건의도 하고 다양한 시도를 하기도 했다.

"2008년에 오픈하고 도심 뒤의 작은 숲으로 만들어 야외음악회, 시낭송회, 야외결혼식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어요. 사람들의 반응도 뜨거웠죠."

사재를 털어 정원을 가꾸고 비싼 야생화를 심기도 했다. 24시간 개방해 인천시민이 힐링하며 마음을 나누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과는 달리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청량산을 찾는 남성 등산객들이 돌심방 주인을 위협하는 일도 있었고, 노상방뇨를 하거나 토사물을 쏟기도 했다.

주변 고등학교 학생들이 담배를 펴 제지하자 '재수 없다'고 말하며 침을 뱉고 가기도 해,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했다. 누구든 쉬어가라는 열려있는 마음처럼 열어놓기엔 부작용이 많아 지금은 일부만 조건부 개방을 하고 있다.

하늘과 땅을 잇는 천사인 1004마리 새를 만들다
   
 돌심방 도자기환경조형연구소 외부 곳곳에 전시된 1004마리의 도자기 새들.
 돌심방 도자기환경조형연구소 외부 곳곳에 전시된 1004마리의 도자기 새들.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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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고 대표는 지인들에게 인천아시안게임 전까지 도자기로 된 새 1004마리를 만드는 작업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혼자 생각으로만 그치면 게을러지게 돼 포기할 것 같아서였다.

"청량산 아래에서 자유로운 새의 이미지와 땅과 초목, 생명의 모태가 되는 장소의 이미지로 작업을 시작했어요. 나약한 피조물인 제가 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고요. 제가 세상을 뜨더라도 깨지기 전까지는 반영구적인 도자기니까 영원한 사랑을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었던 거죠."

인천시민뿐만 아니라, 인천아시안게임을 맞아 인천국제공항, 인근에 있는 송도국제신도시 등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청량산과 한국도자기, 한국야생화를 알리기 위해 고 대표는 민관이 힘을 모아 청량산 문화마을을 만들기 위한 노력했다. 그러나 그의 열정이 무산되자 주변 예술인들의 재능기부와 최소한의 경비만으로 인천아시안게임이 열렸던 보름간 돌심방 주변에서 다양한 예술 공연을 열었다.

"야외갤러리와 뒷집 마당을 빌려 서양화, 서예, 도자기 등을 전시했어요. 난타, 재즈피아노, 색소폰, 오카리나, 요들송 등 다양한 음악행사를 하기도 했고요. 마을잔치를 하는 분위기였죠. 일부러 홍보는 않했는데 입소문이 나서 많은 사람이 꾸준히 방문했어요. 외국인들도 왔는데 시종일관 '원더풀','퍼펙트'를 외치더라고요."

돌심방이여, 영원하라!

처음 이곳을 개방했을 때는 분실사고가 많았다. 도자기는 물론 비싼 야생화까지 도둑맞아 마음고생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주민들이 고 대표와 같은 마음으로 이곳을 지켜주고 있다. 돌심방 담장은 대나무로 엮었으며 대나무 위에 1004마리 새를 올려놓아 시민들에게 전시하고 있다.

"얼마 전에 새 한 마리가 떨어져 깨금발로 새를 세우려 했더니, 지역주민이 '거기 뭐하시는 거예요' 소리쳐 얼굴을 돌렸어요. 누가 집어가는 줄 알고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참 고맙죠. 지금은 지역주민들이 이곳을 지켜줍니다."

꽃 피는 봄에 다시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돌아서려는데, 고 대표가 말린 감 조각을 비닐에 싸서 맛있다고 '심심할 때 먹으라'고 줬다. 강사료 외에 별다른 수입원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라 받는 손이 미안했다. 마음 따뜻한 이곳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http://blog.naver.com/joosimbock)

덧붙이는 글 | <시사인천>에 실림



태그:#고선희, #돌심방, #청량산, #도자기환경조형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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