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저 4강에 오른 한국은 여러가지 정황상 A조 마지막 경기에서 개최국 호주를 1-0으로 물리친 덕을 크게 보고 있다. 2위로 8강에 올라왔을 경우, 기후나 잔디 조건이 상대적으로 나쁜 브리즈번 스타디움에서 거친 중국을 상대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 팀보다 하루 먼저 경기를 끝내고 휴식을 취하며 전력을 분석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23일 천신만고 끝에 승부차기까지 거친 이라크가 한국의 상대로 낙점되었다. 라디 스와디 감독이 이끌고 있는 이라크 축구대표팀이 이날 오후 3시 30분 호주 캔버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5 AFC(아시아축구연맹) 아시안컵 8강 토너먼트 이란과의 맞대결에서 연장전까지 3-3 명승부를 펼친 끝에 승부차기에서 7-6으로 승리를 거둬 준결승에 올랐다.

이란 데자가의 오른쪽, 위협적이었다

아시아 축구의 묵직한 강팀 이란은 역시 오른쪽 측면에서 공격의 물꼬를 텄다. 카타르 클럽 알 아라비에서 활약하고 있는 아쉬칸 데자가가 뛰고 있는 바로 그 지점이다. 경기 시작 후 24분 만에 선취골을 그렇게 만들어냈다.

데자가가 이라크 수비수 두 명의 저항을 뿌리치고 공을 소유한 다음 지체없이 오른쪽 풀백 가푸리에게 오른발 바깥쪽으로 절묘하게 연결했고 여기서 올라온 띄워주기를 받아 떠오르는 골잡이 사르다르 아즈문(루빈 카잔, 러시아)이 이마로 골을 성공시켰다. 쇼자에이와 아즈문이 동시에 헤더 골을 노리며 골문 바로 앞에서 솟구칠 때 이라크 센터백들은 몸싸움을 걸지도 못하고 구경만 했다.

데자가는 선취골 이후 4분 뒤에도 오른쪽 측면을 시원하게 돌파하여 낮게 깔아주는 연결을 통해 왼쪽 공격형 미드필더 하지사피의 오른발 돌려차기를 이끌어냈다. 이라크 수비수 아흐메드 이브라힘이 가슴으로 겨우 막아낼 정도로 위협적인 장면이었다.

그런데 의외의 변수가 전반전 끝 무렵 생겼다. 22분에 이미 노란 딱지를 받은 바 있는 이란의 왼쪽 풀백 풀라디가 42분 상대 문지기 잘랄 하산에게 불필요한 발길질을 가하는 바람에 벤자민 윌리엄스(호주) 주심이 또 다시 노란딱지를 내민 것. 아예 경기장에서 쫓아낸 것이다. 이에 케이로스 감독은 잔뜩 인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

풀라디가 쫓겨난 뒤에는 하는 수 없이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던 하지사피에게 풀백 역할을 맡겼다. 전반전 종료 휘슬이 울린 뒤 주장 자바드 네쿠남과 케이로스 감독이 벤자민 윌리엄스 주심에게 항의했지만 풀라디의 퇴장 명령을 뒤집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란의 '늪 축구', 퇴장 구멍

이번 아시안컵을 통해 이른바 '늪 축구'라는 신조어가 대중화되었다. 무조건 수비에만 치중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 팀이 좀처럼 골을 터뜨리지 못할 정도로 탄탄한 수비 조직력을 자랑하는 팀을 향해 붙은 별명이다. 한국의 슈틸리케 감독이 4강에 진출하기까지 네 경기를 통해 5득점 0실점으로 '늪 축구'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이에 못지 않게 또 다른 '늪 축구'로 대표되는 게 이란이다. 그러나 전반전이 끝나기도 전에 왼쪽 측면 수비를 맡아왔던 풀라디가 쫓겨났기 때문에 수비 조직력에 비상등이 켜졌다. 왼쪽 측면에서 공격형 미드필더 역할을 하던 하지사피를 풀라디의 빈 자리에 세웠지만 동료들과 완벽하게 호흡을 유지할 수는 없었다.

이에 이란의 케이로스 감독은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가운데 공격형 미드필더 쇼자에이를 빼고 바히드 아미리를 들여보내 아홉 명의 필드 플레이어 포메이션을 4-2-2-1로 재편했다. 하지사피는 그대로 왼쪽 풀백으로 내린 상태였고 바꿔 들어온 아미리는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 섰다.

그로 인해 생긴 왼쪽 측면의 공격 공백은 골잡이 아즈문과 교체 선수 아미리가 번갈아 나가서 날개 역할을 담당해야 했다. 이로 인해 많이 뛰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는 아즈문이 종아리 근육 경련으로 실려나갔다. 60분이라는 비교적 이른 시간이 이란의 위기를 말해주고 있었다.

풀라디의 빈 자리는 오래 지나지 않아서 드러났다. 56분에 바로 그 자리에서 동점골이 터진 것이다. 이라크의 왼쪽 공격형 미드필더 압둘 자흐라가 날카롭게 왼쪽에서 찔러준 공이 골문 앞에서 양 팀 선수들이 뒤엉키는 바람에 그냥 통과된 것. 반대쪽에서 달려든 아흐메드 야신이 오른발 슛을 골문 왼쪽 구석에 그대로 꽂아넣었다. 8강에 올라오기까지 무실점 슈퍼 세이브를 자랑하던 이란 문지기 알리레자 하지지의 가랑이 사이를 정확하게 통과하는 골이었다.

동점골을 내준 이란은 60분에 근육 경련으로 실려나간 선취골 주인공 아즈문에 이어 64분에도 수비수 포울라리간지가 높은 공을 다투다가 동료 하지사피의 팔꿈치에 맞아서 또 실려나갔다.

케이로스 감독은 62분에 아즈문 대신 들어온 자한바크쉬를 데자가가 뛰던 오른쪽 측면으로 보내고 경험과 스피드가 충분한 데자가를 골잡이 자리로 옮겼다. 그러나 열 명의 열세를 극복할 수 있는 근본적인 처방은 아니었다. 결국 83분에 데자가를 빼고 골잡이 구차네자드를 들여보내 결승골을 뽑아내기 위한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연장전 장군멍군 명승부

후반전 추가 시간 5분까지 뛰면서도 결승골을 뽑아내지 못한 양팀은 결국 연장전에 접어들었다. 캔버라의 해넘이를 등지고 연장전을 시작한 이란은 단 2분 만에 역전골을 얻어맞았다. 역시 이란의 구멍난 왼쪽 수비라인이 심각한 형편이었다.

이라크의 왼쪽 측면 2:1 패스가 빛났다. 알리 아드난과 뒤르감 이스마일의 단짝 호흡이 이어져 이란의 오른쪽 측면이 허물어졌고 이스마일의 날카로운 찔러주기가 이란 골문 앞으로 뻗어왔다. 이 공이 이란 문지기 하지지 다리에 맞아 반대편으로 흘렀다. 이 기회를 노련한 골잡이 유누스 마흐무드가 몸을 날려 머리로 성공시켰다. 쫓겨난 풀라디 대신 그 자리에서 뛰고 있는 하지사피가 유누스 마흐무드를 놓친 것이 눈에 띄었다.

이로써 이라크 선수들은 한층 여유 있게 경기를 운영할 수도 있었지만 내주지 않아도 될 코너킥 세트 피스를 허용하는 바람에 뼈아픈 동점골을 얻어맞고 말았다. 판단력에 문제가 있는 이라크 문지기 잘랄 하산의 작은 실수가 원인이었다.

103분, 테이무리안의 오른쪽 코너킥이 날아왔고 공격에 가담한 수비수 포울라리간지가 이마로 골문 왼쪽 구석을 갈랐다. 이라크 수비수들이 많았지만 효율적인 대인 방어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연장 전반에 한 골씩 주고 받은 맞수들은 후반전에 들어서도 양보없이 치고받는 양상을 펼쳤다. 여기서 더 극적인 장면이 만들어졌다. 113분에 페널티킥이 선언된 것이다. 이란의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린 주인공 포울라리간지가 이라크 살림꾼 야세르 카심의 드리블을 태클로 무리하게 넘어뜨린 이유로 윌리엄스 주심의 휘슬이 길게 울렸다.

이 절호의 기회를 이라크의 왼발잡이 뒤르감 이스마일이 놓칠 리 없었다. 11미터 페널티킥을 강하게 왼발로 차 넣어 이란 문지기 하지지를 완벽하게 속이고 가운데 방향으로 왼발 인사이드 킥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명승부는 이대로 끝나지 않았다. 연장전 공식 시간 종료 2분 가량을 남겨놓고 왼쪽 코너킥 기회를 얻은 이란은 테이무리안이 오른발로 감아올렸고 두 차례나 골대를 때리는 슛이 터져나왔다. 이 순간 끝까지 높은 공 집중력을 발휘한 주인공은 이란의 슈퍼 서브 레자 구차네자드였다.

아랍에미리트와의 C조 세 번째 경기에서도 90분에 극장골을 터뜨린 바 있는 레자 구차네자드가 기적같은 헤더 동점골을 성공시킨 것이다. 이 과정에서도 이라크 문지기 잘랄 하산의 미숙한 볼 처리가 눈에 띄었다.

가혹한 승부차기 운명, 이라크 웃다

종료 직전에 이라크의 공격을 온몸으로 막아낸 이란 문지기 알리레자 하지지의 어깨와 손 부상으로 추가 시간이 2분 더 이어졌다. 하지만 끝내 결승골은 터지지 않아 비정한 승부차기가 이어져야 했다.

먼저 찬 팀이 약간 유리하다는 승부차기에서 그 권리를 선택한 쪽은 이란이었다. 첫 번째 키커는 풀라디 덕분에 왼쪽 수비수로 내려가 고생한 하지 사피였다. 그 부담이 고스란히 왼발 킥에 실려서 크로스바를 넘겨버리고 말았다. 이어진 이라크의 첫 번째 키커 압둘라미르도 왼쪽 기둥을 벗어나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 양쪽 모두의 부담은 무려 여덟 번째 키커까지 나와야 하는 끈질긴 승부를 이끌어냈다. 그 중간에 나온 선수들은 모두 침착하게 11미터 킥을 성공시킨 것이다. 승부의 갈림길은 이란의 여덟 번째 키커가 만들었다. 후반전 시작부터 교체로 들어와 뛰기 시작한 바히드 아미리가 회심의 왼발 인사이드 킥을 시도했지만 골문 오른쪽 기둥은 그를 외면하고 말았다.

이렇게 골대 불운까지 겪은 이란은 결국 이라크의 마지막 키커 살람 샤키르의 침착한 오른발 킥 앞에 무너지고 말았다. 한국의 4강 상대로 이라크가 선택된 것이다. 그런데 이라크의 기성용이나 다름없는 살림꾼 야세르 카심이 이 경기 68분에 노란딱지를 받은 것 때문에 한국과의 준결승전에 뛸 수 없게 되었다. 한국과의 중원 싸움이 험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과 이라크의 준결승전은 오는 26일(월) 오후 6시 시드니에 있는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열린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덧붙이는 글 ※ 2015 AFC 아시안컵 8강 결과(23일 오후 3시 30분, 캔버라 스타디움)

★ 이라크 3-3 이란 [득점 : 아흐메드 야신(56분,도움-압둘 자흐라), 유누스 마흐무드(92분), 뒤르감 이스마일(116분,PK) / 사르다르 아즈문(24분,도움-가푸리), 포울라리간지(103분,도움-테이무리안), 레자 구차네자드(118분)]
- 연장전 후 승부차기에서 7-6 이라크 승리

◎ 이라크 선수들
FW : 유누스 마흐무드
AMF : 알라 압둘 자흐라(65분↔알리 아드난), 저스틴 메람(46분↔마르완 후세인), 아흐메드 야신(106분↔암제드 칼라프)
DMF : 야세르 카심, 압둘라미르
DF : 뒤르감 이스마일, 살람 샤키르, 아흐메드 이브라힘, 왈리드 살림
GK : 잘랄 하산

◎ 이란 선수들
FW : 사르다르 아즈문(62분↔알리레자 자한바크쉬)
AMF : 하지사피, 쇼자에이(46분↔바히드 아미리), 데자가(83분↔레자 구차네자드)
DMF : 자바드 네쿠남, 테이무리안
DF : 풀라디(퇴장-43분), 포울라리간지, 호세이니, 가푸리
GK : 알리레자 하지지

◇ 승부차기 상세 결과(왼쪽이 이란)
1번 : 하지 사피 왼발 실축(높게 크로스바 넘어가) / 압둘라미르 오른발 실축(왼쪽 기둥 벗어나)
2번 : 포울라리간지 오른발 성공(왼쪽 톱 코너) / 왈리드 살림 오른발 성공(왼쪽 구석 중간)
3번 : 자바드 네쿠남 오른발 성공(왼쪽 톱 코너) / 뒤르감 이스마일 왼발 성공(오른쪽 톱 코너)
4번 : 잘랄 호세이니 오른발 성공(왼쪽 톱 코너) / 알리 아드난 왼발 성공(오른쪽 높게 크로스바 하단)
5번 : 보리아 가푸리 오른발 성공(왼쪽 구석 낮게) / 유누스 마흐무드 오른발 성공(중앙에서 약간 오른쪽으로 파넨카 킥)
6번 : 자한바크쉬 오른발 성공(왼쪽 톱 코너) / 야세르 카심 오른발 성공(중앙에서 약간 왼쪽 띄워)
7번 : 테이무리안 오른발 성공(발등으로 오른쪽 톱 코너) / 마르완 후세인 오른발 성공(오른쪽 톱 코너)
8번 : 바히드 아미리 왼발 실축(오른쪽 기둥 때려) / 살람 샤키르 오른발 성공(오른쪽 중앙 구석)

◇ 준결승 일정
☆ 한국 - 이라크(1월 26일 월요일 오후 6시,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시드니)
☆ 호주 - [일본 vs 아랍에미리트 승리 팀](1월 27일 화요일 오후 6시, 뉴캐슬 스타디움)
축구 아시안컵 이란 이라크 야세르 카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