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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굴의 시대>책표지.
 <비굴의 시대>책표지.
ⓒ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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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하루에 벌금 100만 원. 열한 사람이니까 하루에 벌금이 천백만 원이란다. 스타케미칼이 227일차 굴뚝농성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방해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구미에 있는 스타케미칼 굴뚝 농성을 접고 그 밑에 있는 천막을 철거하지 않으면 노동자들한테 벌금이 하루에 천백만 원씩 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요즘 권력은 물리적 폭력뿐만이 아니라 벌금으로 무지막지한 폭력을 가한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2001년 한국으로 귀화한 박노자가 <비굴의 시대>(한겨레출판)라는 책을 펴냈다.

박노자는 책에서 "진정한 폭력자는 누구인가" 하고 묻는다. 지난해 국가가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으로 간 희망버스를 폭력으로 매도하면서 사측이 고용한 용역에 맞선 희망버스 참가자의 행동만을 폭력으로 규정하는 상황이 폭력성의 극치라고 말한다.

자본은 진작 정규직이 되었어야 할 사람을 10년 넘게 불법적으로 비정규직으로 고용해 왔고, 조합 활동을 탄압해 왔고,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대법원의 판결까지도 무시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절망에 빠져 항거하지만 오히려 폭력자로 규정된다. 이런 사회에서 을이 생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이 책은 2009년부터 2014년까지 한겨레 블로그 '박노자 글방'에 연재했던 글을 주제별로 묶은 책이다. 비굴하고 잔혹한 요즘 시대에 '어떻게 살 것인가' 길을 찾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믿지 말라, 무조건 따르지 말라, 그리고 동류를 찾으라'

박노자는 이명박 정권을 사기꾼형 정권, 박근혜 정권은 광신도형 정권이라고 규정한다. 이 광신도형 정권은 역사의 시계추를 김대중 정권 이전으로 돌려놓았다고 단언한다.

그 사례로 전교조를 법외 노조화시키고 통진당의 해산을 든다. 그런데도 이런 폭거에 대한 저항 수준은 2008년 촛불항쟁에도 미치지 못한다. 왜 저항적 역사의 곡선은 갈수록 아래로 처질까? 정권은 오히려 악랄해지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얌전해진 것일까? 하고 박노자는 묻는다.

박노자는 한국에서 진보주의자들이 승리를 기약할 수는 없지만 일단 투쟁한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사회화 과정에서 느낀 답답함과 억압감에 짓눌린 젊은이에게 이와 같은 투쟁에 합류하는 것은 이타적 자아실현과 희망을 위한 길이 될 수 있다는 것. 여기서 박노자는 온건 사회주의자가 되건 급진 아나키스트가 되건 '나는 혼자가 아니다'는 느낌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도저히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대체로 위와 같은 조언을 하고 싶다. '믿지 말라, 무조건 따르지 말라, 그리고 동류를 찾으라.' 종합적으로 말하면 세 가지 충고로 압축된다. 그러나 개인마다 사정이 다르니 이를 천편일률적으로 다 적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 어쨌든 '대들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 자체는 이미 성공의 반이다."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투쟁의 길

박노자는 책에서 '아득하지만 가야 할 좌파의 길'이 어떤 길인지 알려 준다. '사회주의가 꿈꾸는 사회'는 어떤 사회인지, 좌파가 다수에게서 신뢰를 얻으려면 이 무정한 사회의 심장 역할을 해 줘야 하는데 그것은 어떤 일인지 설명한다.

"가망 없는 우리 일의 성공을 위하여"

1970년대 구소련 재야인사들이 건배를 할 때 쓰던 유명한 말이다. 박노자의 말에 따르면, 구소련에서는 자유주의적 운동이든 좌파적인 운동이든, 결국 어떤 반체제 운동이 아직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시절 재야 세력이 현실 정치에 실패했다 하더라도 그들의 저항은 역사의 거름이 돼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박노자는 한국의 근현대사에서도 그런 일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하면서 박헌영, 이현상, 이관술, 이재유, 김태준, 박치우 같은 공산주의자들을 사례로 든다. 그이들은 싸우다가 고통스럽게 죽었지만 그들의 노력은 전혀 헛되지 않았다.

지금 이 땅에는 장기 투쟁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많다. 코오롱, 재능교육, 기륭전자, 스타케미칼, 콜트콜텍,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이 길게는 10년씩 싸우고 있다. 칼바람이 부는 이 추운 날씨에 70미터 높이 굴뚝에 올라 농성하는 노동자들도 세 명이나 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 전원 복직'을 요구하며 4박 5일 동안 기다시피 가는 오체투지를 하는 노동자들도 50여 명이나 있다. 끊임없이 막는 경찰에 항의하며 온몸을 찬 땅에 대고 바닥에 엎드려 절한 채로 몇 시간씩 있다가 병원으로 실려 가는 노동자도 있었다. 박노자는 <비굴의 시대>에서 한국의 노동자들이 이렇게 세계사에서 전례 없는 긴 투쟁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렇게 상상을 초월하는 투쟁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 못하고 고통스럽게 죽어 갔던 옛 의인들처럼 역사의 거름으로만 남을 뿐일까? 아니다. 이들은 현재 회사로 복직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 그것이 정의를 실현하는 일이고, 그래야 후손들에게 좋은 세상을 물려 줄 수 있다. "가망 없는 우리 일의 성공을 위하여"가 아닌 "가망 있는 우리 일의 성공을 위하여"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작은책> 발행인입니다. 이 글은 민언련 홈페이지(www.ccdm.or.kr)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태그:#민언련, #책이야기, #안건모, #비굴의 시대, #박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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