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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에 열린 '세월호참사 2차 범국민촛불행동'에 참가했던 참가자들중 일부가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청와대 행진을 시도했다. 캠코더를 든 경찰이 집회 참가자들의 얼굴을 채증하고 있다.
 지난 5월에 열린 '세월호참사 2차 범국민촛불행동'에 참가했던 참가자들중 일부가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청와대 행진을 시도했다. 캠코더를 든 경찰이 집회 참가자들의 얼굴을 채증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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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이 무분별한 채증으로 인권 침해를 일으킨다는 논란이 계속 되자 '채증활동규칙'(아래 채증규칙)을 개정했지만 오히려 채증을 자의적으로 확산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번 채증규칙 개정으로 경찰청이 합리적 방안이 마련됐다고 자평했지만 오히려 채증을 확대시킬 수 있는 조항이 포함돼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채증요원에 의무경찰을 포함시키고, 스마트폰과 같은 개인 장비도 채증에 이용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채증은 수사 과정에서 증거를 수집하는 행위로 녹화·녹음·촬영 등의 활동을 포함한다.

경찰청, 논란 축소 기대했지만...

경찰청은 지난 20일, 경찰청 예규인 채증규칙 개정안이 최근 경찰위원회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개정된 규칙은 '채증'을 '불법 또는 불법이 우려되는 상황에 대한 녹화·녹음'에서 '불법행위 또는 이와 밀접한 행위를 녹화·녹음'하는 것으로 변경됐다. 또 채증 시점은 불법행위 직전부터 가능하도록 개정했다.

이에 대해 경찰청은 "이번 개정으로 채증과 관련된 논란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라면서 "앞으로 무분별한 채증은 최소화하면서 채증 대상은 신속·정확하게 채증해 집회 시위 문화의 선진화를 이루는 데 최선을 다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이번 개정은 여러 논란을 담고 있다. 현직 경찰관이 아닌 의무경찰(아래 의경)을 채증 요원에 포함한 것과 부득이한 경우에 한해 스마트폰과 같은 개인 장비를 이용해 채증이 가능하게 한 것이 대표적이다.

채증규칙 2조는 '채증 또는 이와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는 경찰 공무원'으로 채증 요원을 규정하면서 '경찰 공무원의 지시를 받는 의무경찰을 포함한다'라고 명시했다. 의경은 군 복무를 대체하고 경찰관의 업무를 보조하기 위한 인력이다.

채증 장비를 규정한 규칙 7조는 "원칙적으로 경찰관서에서 지급한 장비를 사용한다"면서 "다만, 지급한 장비를 사용할 수 없는 부득이한 경우 개인 소유 기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명시해놨다. 개인 소유기기란 경찰관의 개인 스마트폰 등이다.

그밖에도 경찰은 채증을 '불법행위와 그에 밀접한 행위'에 한정해 가능하도록 했다. 대법원이 지난 1999년 9월, 채증을 "현재 범행이 행해지고 있거나 행해진 직후"로 제한한 것과는 배치된다. '불법행위'라는 규정에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인권위 권고·경찰청장 지시했지만... 채증 도중 기자 사칭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연대 단체 참가자들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구로구 쌍용자동차 구로정비사업소 앞에서 정리해고 비정규직법제도 전면폐기를 위한 2차 오체투지 행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카메라를 든 구로경찰서 정보과 소속 경찰(붉은 색 표시) 몸을 숨기며 행진단을 주시하고 있다. 이날 구로경찰서 정보과 경찰은 <오마이뉴스> 기자라고 사칭하며 불법채증을 벌이다가 오체투지 행진단에게 발각됐다.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연대 단체 참가자들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구로구 쌍용자동차 구로정비사업소 앞에서 정리해고 비정규직법제도 전면폐기를 위한 2차 오체투지 행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카메라를 든 구로경찰서 정보과 소속 경찰(붉은 색 표시) 몸을 숨기며 행진단을 주시하고 있다. 이날 구로경찰서 정보과 경찰은 <오마이뉴스> 기자라고 사칭하며 불법채증을 벌이다가 오체투지 행진단에게 발각됐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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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무분별한 채증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4월 4월 인권위는 집회·시위 참가자에 대해 인권 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채증의 범위·방법·자료관리 기준 등 관련 제도를 개선할 것을 경찰청장에게 권고한 바 있다. 인권위는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증은 초상권 침해 우려가 있다"라면서 "또 채증을 당한 사람에게 정보를 정정·삭제할 수 있는 권리도 주어지지 않아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침해 소지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세월호 추모 집회에서 과도한 경찰의 채증 행위가 도마에 오른 바 있다. 이같은 지적에 강신명 경찰청장은 지난해 9월 "집회·시위 현장에서 경비 경찰이 활용하는 채증 카메라는 가급적 명확한 불법행위가 있거나 경찰 스스로 절차의 정당성을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활용하도록 지시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같은 지시에도 경찰은 고가의 채증 장비 예산을 늘려 왔다. 2015년 채증 장비 구입 계획을 보면 경찰은 '집회시위 현장 불법행위 증거수집' 명목으로 5억8597만 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이는 전년도 예산에 비해 16.8%나 늘어난 것이다. 특히 한 대당 400만~500만 원가량의 고성능 카메라를 구입해 채증이 갈수록 고도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관련기사 : '너도 나도 찍힌다'... 경찰, 내년 채증장비 예산 16.8%).

경찰이 <오마이뉴스> 기자를 사칭해 채증하다 적발되기도 했다. 이에 구은수 서울경찰청장이 "기자 사칭은 매우 부적절했다"라면서 "<오마이뉴스> 소속 기자 여러분의 자부심을 훼손하게 된 것에 대해 서울 경찰을 대표해 유감을 표한다"라고 사과했다. 또 책임 추궁과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관련기사 : 경찰, <오마이뉴스> 기자 사칭해 무단채증하다 발각, 서울경찰청장, '<오마이뉴스> 기자 사칭' 사건 사과).

"채증 확대 우려" vs. "합리적 채증 가능" 공방

지난해 9월,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유가족과 시민들이 청와대에 서명지를 전달하기 위해 '3보 1배'를 하며 광화문광장을 출발하자 경찰이 세종대왕 동상에서 가로막았다. 경찰들이 항의하는 유가족들을 카메라로 채증하고 있다.
▲ 유가족 채증하는 경찰 지난해 9월,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유가족과 시민들이 청와대에 서명지를 전달하기 위해 '3보 1배'를 하며 광화문광장을 출발하자 경찰이 세종대왕 동상에서 가로막았다. 경찰들이 항의하는 유가족들을 카메라로 채증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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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규칙 개정에 대한 우려는 어김없이 제기된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박남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채증 기준에 기존에 없었던 '의경'을 포함시켜 판단력이 부족한 의경의 채증을 확대시킬 가능성이 크다"라면서 "'개인 기기'를 허용한 급박한 상황에서 상부의 지시 없이 자의적인 채증이 가능할 소지가 크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수사 행위로서 채증이 불법은 아니지만 채증에 대한 국회 안행위 차원의 엄격한 기준을 마련하겠다"라고 덧붙였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권영국 변호사는 "의경은 형사소송법에서 말하는 경찰관이 아니기에 채증 요원으로서 자격이 없다"라면서 "의경의 채증 자격 여부는 더 따져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권 변호사는 "사복 경찰이 스마트폰을 사용할 경우에는 채증 대상이 채증 당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게 된다"라면서 "이같은 예외 경우에 대한 더 엄격한 지침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지적에 김광호 경찰청 정보1과장은 "국회의 자의적 채증 우려와 내부적인 고려들이 포함돼 개정이 이뤄지게 됐다"라면서 "불법행위와 이와 밀접한 행위에 한해서만 채증을 가능하게 해 인권침해 우려를 덜어 합리적인 채증을 가능하게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의경 채증에 대해서는 "의경은 치안 보조자로서 불법행위 발생시 채증을 해왔지만 명시적인 규정이 없어 이번 개정이 포함했다"라면서 "의경 채증에 대한 우려를 없애기 위해 소속 지경찰관의 지도를 받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마트폰 이용과 관련해서도 "경찰 장비를 갖추지 못한 돌발적인 상황에서의 채증에 스마트폰을 이용하게 했다"라면서 "스마트폰 이용을 채증 규칙에 명문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태그:#채증, #채증 기자 사칭, #의무경찰, #스마트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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