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히어로 한국 포스터

▲ 빅 히어로 한국 포스터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인터스텔라>와 동시 개봉한 첫 주부터 미국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은 <빅 히어로>가 드디어 한국에 상륙했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와 마블 스튜디오의 합작이라는 측면에서 제작 당시부터 상당한 화제를 뿌렸고 <겨울왕국>의 성공을 이어가려는 야심찬 프로젝트란 점에서도 평단과 관객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전통적으로 애니메이션이 강세를 보이는 미국 극장가의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인터스텔라> 같은 대작을 단 번에 밀어내고 골든글로브와 영국아카데미 등에서 최우수 애니메이션으로 손꼽힌 작품인만큼 기대가 따르는 것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빅 히어로>는 주인공 히로가 힐링로봇 베이맥스(Baymax)와 함께 형의 죽음과 관련한 의문을 풀어가는 액션 어드벤처 애니메이션이다. 주인공인 히로는 불법 로봇격투를 낙으로 살아가는 천재소년이다. 그는 형인 테디와 함께 어려서부터 이모의 품에서 자랐지만 형과는 달리 대학 입학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던 어느날 형이 재학 중인 대학 연구소에서 캘러헌 교수를 만나 자극을 받은 히로는 대학교 입학을 위해 과학 전시회에 발명품을 출품한다. 그의 발명품은 '마이크로봇'. 압도적인 효율과 기능을 가진 발명품에 히로는 마침내 대학교 입학증을 받아든다. 하지만 그 날 저녁 연구소에서 일어난 화재로 형인 테디가 죽자 히로는 끝도 없는 방황에 빠져든다.

빅 히어로 히로에게 베이맥스를 소개하는 테디

▲ 빅 히어로 히로에게 베이맥스를 소개하는 테디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디즈니와 마블이 만나 '빅히어로' 나왔다?

영화는 디즈니의 낭만성과 마블의 전형성을 적당한 수준에서 결합시킨 작품이다. 마블 코믹스의 동명 만화에서 영감을 얻은 이 작품은 영웅물적 특성과 가족주의 등이 적잖게 반영돼 있다.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 <밤비> <신데렐라> <라이온 킹> <타잔> <겨울왕국> 등에서 반복된 주제의식 즉, '부모의 상실과 그로 인한 어려움 속에서도 타고난 재능을 발현시켜 마침내 승리하는 주인공의 성공기'가 어김없이 이어진다.

<빅 히어로>의 히로는 부모를 잃고 이모에 의해 길러진 14살 소년으로 화재 사고로 하나뿐인 형마저 잃어버린다. 형의 죽음 이후 히로는 끝없는 절망에 빠져들지만 형의 죽음에 모종의 음모가 얽혀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범인을 잡기 위해 나선다. 히로는 자신의 재능을 발휘해 형이 발명한 로봇 베이맥스를 진화시키고 이를 통해 적에 맞선다. 이 과정에서 선의를 가진 주변인들의 조력도 빠지지 않는다. 디즈니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일관된 특징이다.

<백설공주>와 <신데렐라>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계모의 괴롭힘으로 고난에 처하고, <라이온 킹>의 심바와 <겨울왕국>의 엘사는 부모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왕국을 지켜야 하는 어려움에 봉착한다. 하지만 그들은 타고난 선의와 품성, 용맹과 초능력 등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하고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다. 일곱 난장이와 왕자, 마녀, 착한 동물들, 한스와 크리스토프, 올라프 등의 도움도 뒤따른다. 디즈니가 픽사와 함께 제작한 <인크레더블>에서도 초능력을 가진 가족이 순수한 노력으로 능력을 가진 악당을 제압한다는 점에서 같은 주제의식을 공유한다고 할 수 있겠다.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나 <신데렐라>에서 백마 탄 왕자가 결정적인 활약을 하던 것에 비해 최근 작품들에선 주인공의 주체성이 두드러진다는 점이 발전이라면 발전이라 하겠다.

<빅 히어로>에서는 여기에 더해 도움을 주는 주변인들을 히로와 함께 일종의 영웅적 캐릭터로 설정하고 있다. 원작 제목이 < Big Hero 6 >라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 영화엔 히로와 베이맥스 뿐 아니라 네 명의 친구들이 각자의 능력을 가진 영웅적 캐릭터로 등장한다. 고고와 허니레몬, 와사비, 프레드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진 않지만 영웅물 특유의 다채로운 매력을 선사하긴 충분하다.

요약하자면 <빅 히어로>는 일곱 단계의 서사구성으로 나눌 수 있다. ① 반항적인 사춘기 천재 소년이 재능낭비를 한다 ② 그의 형이 재능을 일깨워주고 바른 길로 인도한다 ③ 모든 것이 잘 되어갈 무렵 형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④ 형이 남긴 로봇과 만나고 우연한 계기로 사건의 이면을 발견한다 ⑤ 형에 대한 복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한다 ⑥ 감춰진 사연이 드러나고 주인공과 악당이 충돌한다 ⑦ 대결전에서 승리하며 형의 진정한 뜻을 이해하고 복수를 중단한다.

사실 이런 서사는 기존 여러 오락영화의 기본 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처럼 서사에 대한 큰 고민없이 캐릭터만 새롭게 치장한 최근의 오락물과 차이가 없다는 점은 <빅 히어로>의 치명적인 단점이다.

빅 히어로 히로의 발명품을 보고 서로의 주먹을 치는 형제

▲ 빅 히어로 히로의 발명품을 보고 서로의 주먹을 치는 형제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를 둘러싼 왜색 논란...그럼에도 매력은 있다

전반적으로 디즈니의 낭만성과 마블의 전형성이 고민없이 결합된 꼴이지만 캐릭터와 영상, 디테일에 있어서는 관객들에 호소할 수 있는 매력적인 부분들도 엿보인다. 무엇보다 베이맥스의 캐릭터는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며, 진보한 애니메이션 기술을 토대로 구현한 영상 역시 흥미롭다. 베이맥스(Baymax)는 히로의 형 테디가 만든 발명품으로 치료용으로 만들어진 힐링로봇이다. 동그란 얼굴에 거대한 체구를 한 이 로봇은 펭귄의 체구와 걸음걸이를 본 뜨고 디즈니의 노하우를 한 몸에 받은 덕에 더없이 귀엽고 포근한 캐릭터로 태어났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베이맥스는 히로에 의해 최첨단 수트와 로켓을 장착한 수퍼히어로로 거듭나 관객들에게 짜릿한 비행의 재미까지 선사한다.

다른 유명 작품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점도 볼거리다.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쿵푸를 학습하는 장면은 베이맥스가 가라테를 배우는 씬으로, <배트맨>시리즈의 브루스 웨인은 프레드의 대저택과 집사 등을 통해 패러디된다. 이 뿐 아니다. 히로와 베이맥스의 비행은 <아바타> <드래곤 길들이기>의 비행씬을 연상케 하며 오프닝의 로봇격투는 <리얼 스틸>을 보는 듯하다. 악당이 연구의 결과물을 가로채기 위해 주인공의 가족에게 해를 입힌다는 설정은 <닌자터틀>과 같고 악당의 외양은 <스파이더맨 2>의 닥터 옥토퍼스와 유사하다.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텔레포트홀 씬은 <인터스텔라>와 <그래비티>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를 보며 다른 영화들을 떠올리는 것이 또 하나의 재미인 이유다.

빅 히어로 <아바타>와 <드래곤 길들이기>의 비행장면을 떠오르게 하는 히로와 베이맥스의 비행

▲ 빅 히어로 <아바타>와 <드래곤 길들이기>의 비행장면을 떠오르게 하는 히로와 베이맥스의 비행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왜색 논란, 과연 문제일까?

<빅 히어로>는 개봉 전부터 왜색 논란에 휘말린 바 있다. 영화에 일본식 이름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에 몇몇 영화팬들이 거부감을 보인 것인데 막상 뚜껑을 연 작품엔 문제의 소지가 많지 않아 보인다. 미국과 일본을 얼마씩 섞어놓은 듯한 도시 샌프란시소쿄가 영화의 배경인 것과 화재가 일어난 연구소가 '이토 연구소'인 것, 주인공의 이름이 일본식인 히로인 점 등 일본풍이 강하게 엿보이는 걸 부인하긴 어렵다. 그렇다 하더라도 영화의 개봉 자체를 문제삼는 건 편협한 태도가 아닌가 싶다. 물론 원작의 포스터에서 전범기를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긴 하다. 본 영화에선 제거되었다.

오히려 관객이 문제제기 할 만한 건 이 영화가 새롭지 않다는 점이다. 그간 익숙해진 서사를 캐릭터만 바꾸어 보여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로부터 관객들은 철저히 검증되고 가공된 감동을 느낄 것이며, 이 영화의 성공에 근거한 수많은 같은 영화를 매년 만나보게 될 것이다. 디즈니가 앞으로 내놓을 수십 수백의 영화들이 모두 같은 방식으로 동일한 이야기를 하게 될까 두렵다. 다수의 관객들이 그러한 영화에 호응한다고 해서 그것이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바람직한 미래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언젠가는 디즈니가 관객의 상상력을 앞서가는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빅 히어로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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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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